◈예수님의 죽으심 로마서 6:3, 고전11:24~25 출처보기 영어 Transcript
데이빗 파슨 His Death
<한글로 듣기>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먼저 자신을 못 박은 군인들을 걱정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그 날에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들의 생애 life에 대해 변명해야 하는
그들을 생각하며 걱정하셨습니다.
그 다음 십자가에 달린 좌우편의 강도들을 걱정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조롱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만해, 우리는 십자가형이 합당한 자들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아.“
그 죽어가는 강도는, 예수님이 미래의 왕이심을 보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대단한 믿음의 말이지요!
죽어가며 피 흘리는 사람을 보며 말합니다.
“당신은 왕이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형벌이 합당하나, 그분은 그렇지 않다.”
“주님,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 하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세 번째로 그의 어머니를 걱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어머니는, 십자가 곁에 계셨지만
하늘의 아버지는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의 어머니,
칼이 어머니의 마음을 찌르는 가운데, 죽어가는 그의 아들을 바라봅니다.
저는 경험으로 압니다.
자녀가 내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쳐다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 그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있었던 유일한 사도인 요한에게
어머니를 모시도록 하십니다.
“요한아, 너의 어머니다. 어머니, 당신의 아들입니다.”
“내가 목마르다.”
왜냐하면 몸의 수분이 말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외로움이 몰려옵니다.
예수님은 그 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곳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끔찍한 외로움 가운데...
이것은 영원 속에 처음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없이, 한 번도 혼자 계신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울부짖으셨습니다.
“다 이루었도다.”
단지 한 문장만 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빠. 당신의 손에 나의 영을 맡깁니다.”
십자가 위에서 7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것을 아시지요.
저는 하나님의 분노를 아들에게 부으신 그 날이
하나님께는 천년 같은 하루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는 끝이 없는 시간 같았습니다.
우리는 가끔 예수님의 고통에 집중하다가, 아버지의 마음을 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 속 깊이 고통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 분의 아들을 버리셨을까요?
바울은, 성경에서 우리의 믿음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고린도전서 15:3)
우리의 죄를 위해,
성경 말씀을 따라서...
‘이사야53장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십자가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한 곳이 있을까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 작은 구절은 우리의 이해를 충족시킵니다.
그 말씀에 여러분 자신을 넣어 볼 때
우리 각자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에 대해 살펴봅시다.
저는 십자가(CROSS)의 철자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왜 그 분의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시려 계획하셨는지 이해하도록 말입니다.
C 는 ‘정복’입니다. Conquest
악의 세력을 완전히 이기신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입니다.
두 번째로 R은 ‘속전(대속물)’입니다. Ransom
속전은 납치된 누군가를 자유케하기 위해 지불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을 속전(대속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의 노예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납치 당 했고 죄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그 값이 지불 되었습니다.
그 값은 매우 큰 것입니다.
모든 용서가‘ 예수님의 보혈’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은이나 금으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1:18-19)
그것은 당신의 자유를 위한,
하나님께로 데려오기 위한 대가 지불입니다.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속전입니다.
O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희생제물’입니다. Offering
우리가 행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드리는 속죄제였습니다.
S는 ‘충족’입니다. Satisfacton
자비가 제공될 수 있도록 공의가 충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모든 죄는 심판받아야합니다.
그러나 한 무죄한 사람이 당신 대신
심판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게 됩니다.
공의가 충족되어서 여러분을 자유케 한 것입니다.
마지막 S는 ‘대신함’입니다. Substitution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이 당신의 자리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선교사인 제 친구가 인도에서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인도사람이 회중 가운데서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두지 마세요.
예수님의 자리가 아니라 저의 자리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이 십자가에 달렸어야 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일찍이 폭력적인 죽음을 받아 마땅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셨기에 우리가 죽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가지 않아도 되었던 자리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 죽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여러분 안에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매우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십자가는 두 가지 면에서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가지 면에서 대신한 것만 봅니다.
무슨 말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그들의 죄를 예수님께 맡깁니다.
‘죄를 알지 못하는 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고린도후서 5:21)
두 가지 면에서의 대신함.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의 죄를 나에게 맡기렴. 나의 의를 너에게 줄께.”
“네가 사는 방식에 대해서 내가 대신 대가를 지불하겠다.”
“이제 네 속에서 내가 살고 싶다.
너의 죽음을 대신 할 뿐 아니라
네 속에서 내가 살고 싶다.”
“나는 네가 의롭기를 원한다.”
“ 너의 죄들을 내게 맡기렴.
그리고 내가 나의 의를 네게 줄게.”
이것이 바로 대신함의 두 가지 면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첫 번째 것만 좋아합니다.
두 번째 것은 별로 행복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십자가의 놀라운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물세례를 받을 때 십자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로마서 6:3)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장사되셨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부활하셨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과 함께
부활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았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장사됨, 부활과
연합되었습니다.
누가 세례를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나요?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온전히 연합하고
과거를 씻는 시간입니다.
물에서 나올 때 새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의 삶을
세례로 시작하라고 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세례 후에는 성만찬을 가짐으로 신앙의 삶을 지속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십자가를 잊도록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린도전서11:24-25)
우리는 남은 인생동안 십자가 아래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당신은 십자가의 장소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욕하던 군중 가운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강도들 중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당신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옛 생명은 죽었고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대신에 죽으신 것처럼
이제 당신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가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당신의 삶에는 매우 새로운 목적과
의미가 나타나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이 십자가 죽음에 참여했음을 알도록
십자가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이 곳에 있는 모두를 위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믿을 때, 여러분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에 대해 살게 됩니다.
온 세상이 변한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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