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고통당하는 크리스천들 영어 Transcript
Iraqi Christians in Peril *관련글 : 이라크 라호 대주교 피살(08.02.29)
A Report by Carmen Eckhardt
카르멘 엑크하르트 라는 용감한 독일 여성 리포터가, 핍박받는 이라크 기독교인들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서
이라크 북부 아르빌로 날아갔습니다. 그의 취재기를 한국어로 번역해 봅니다.
<영어로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d5RVyAD4wo4#t=427
<한글로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m8EOo9NRFZA
카르멘, 리포터 (화면에 나오는 독일 여성)
가족들과 친구들의 불안감에서 오는 만류도 불구하고, 나는 아르빌로 날아갔습니다.
아르빌은 이라크 북부지역, 쿠르드 족이 사는 쿠르디스탄 자치구역의 수도입니다.
도착해서 본 제 첫 인상은, 놀랍게도 공항은 새 건물이었고, 매우 규모가 컸습니다.
쿠르디스탄, 즉 쿠르드 족 자치구는, 이라크 내에서 쿠르드족이 사는 지역입니다.
도시의 겉모습으로는 전쟁 손상의 징후를 보지 못했습니다. 경제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이유는,
이라크에서 크리스천들이 핍박과, 협박과, 납치와, 살해를 당하고 있다는 가슴 아픈 보도가 있는데,
이 아브라함의 고향 땅에서, 제가 그 실상을 한 번 직접 조사해 보고자 함입니다.
◑아르빌, 알코시에서 가브리엘라 수도원장과 만남
아르빌 국제공항 근처, Ankala 타운 외곽에, 2만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피신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을 지키는 경비원은 보시다시피 중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그 교회 신자들은 오순절 기념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남부 이라크에서 북부인 이 지역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바그다드, 바스라, 그리고 모술 지역은, 테러리스트들의 거점입니다.
난민들은 아무도 촬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독일 방송팀은, 그들에게 낯선 객이었고,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가브리엘라 튜마는, 갈대아(이라크의 옛 이름) 가톨릭 수도회의 수장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난민들의 거주지를 방문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라 수도원장
"저는 지금 모술에 오래동안 살고 있었던 한 가족을 심방하러 갑니다.
사담 후세인이 실각한 후, 그의 아버지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되었고,
남은 가족들은 협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풀려나자,
현재 그 가족은 모술을 떠나, 알코시로 이주하도록 압박당했습니다."
알코시는 기독교인들만 사는 타운이고, 거기서 기독교인을은 군사적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 마을의 한 가정은, 62살의 조셉 유니스와 그의 가족들이 삽니다.
그들은 모술에서 피난나올 때, 모든 재산을 다 버려야 했습니다. 조셉은 9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 3명만 이라크에 남아있고, 나머지 6명은 모두 이라크를 떠났습니다.
한때 그들의 아버지가 납치되었다 풀려난 것은, 그 후에도 모든 가족에게 정신적 상처로 계속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조셉 유니스의 증언입니다.
“납치범들은 제게 고함을 지르며, 저를 강제로 차에 태웠습니다. 저는 저항했지요.
그러자 그들은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그 중 한 명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 자를 죽이지 마라. 그는 우리에게 필요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나중에 제게 DVD를 강제로 보게 했는데,
거기엔 미국인들을 위해 일한 이라크인 한 동료가 나왔습니다. 그 동료는 겁에 질려서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이며, 저는 미국인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아들 에델 유니스의 증언입니다.
“그는 25명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들은 그(아마 기독교인)를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영상을 찍었고요, 그들은 그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아버지는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지요, 그들은 아버지가 눈을 떠서 쳐다보도록 윽박질렀습니다.
그들은 그의 목을 베었고, 그러자 피가 솟구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셉 유니스
“그러고는 우리들은 우리끼리 몇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엄마 시모나 유니스의 증언
“납치범들이 제 이름을 불렀을 때, 저는 놀라서 거의 쓰러질 뻔 했지요.
저는 제 시동생의 형을 불러서, 저들과 협상을 좀 해보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말할 기력이 없더군요. 그가 저보다 얘기를 더 잘 할 것 같았습니다.
이때 제 시동생의 형이 나서서, 그들과 협상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들 에델 유니스
“납치범이 여기 알코시에 와서, 네 아버지 조셉이 납치되었다면서 몸값으로 2만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그것도 단 두 시간 만에요.
삼촌은 돈을 급히 준비해서, 그들이 가져온 플라스틱 가방에 넣어, 모술에 있는 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런 일은 과거에 이라크에서 없었던 일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누가 크리스천이라고 미움을 받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2003년(이라크 전쟁) 이후부터 일어났습니다."
리포터
놀랍게도 이라크의 신자들은,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는 비교적 안전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담 후세인 제거 이후 권력에 공백이 생기면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인 에델 유니스는 안전하게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는 다 허물어져가는 집을 수리하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몸값을 내고 풀려난 후로, 3년을 계속 벌어야, 몸값으로 빌린 돈을 다 갚을 수 있답니다.
그래서 이 젊은 기술공은 지금 좌절해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현재 이라크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는 다른 친형제들처럼 이라크를 떠나 외국으로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라크가 자기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은 이라크 영토에 속해 있지만, 지난 2천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온 크리스천들입니다.
알코시에서 3킬로 떨어진 곳에, 유명한 라반 수도원이 있는데, 주후640년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수도원입니다.
그후 수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당할 때면, 그들은 이 수도원에서 박해를 피해 왔습니다.
갈대아(이라크의 옛 지명) 가톨릭교회는, 그 역사가 사도 도마로부터 기원합니다.
그런 역사 가운데, 알코시의 기독교인들은, 17세기부터 로마가톨릭 교회에 편입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라반 수도원은, 19세기에 물 근원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계곡 아래쪽에 동정녀 마리아 수도원을 새롭게 세웠습니다.
오늘날 가브리엘라 신부가 이 수도원을 돌보고 있는데,
2백명의 기독교인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도사들은, 매일 아침 7시가 되면, 기도하러 모입니다.
그들이 예배 때 사용하는 언어는, 아람어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용했던 그 아람어입니다.
현재 이 수도원에는, 6~18살 사이의 남자애들 약 20명이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라크의 전 지역에서 모여온,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들입니다.
그들의 부모들은 죽었고, 그들의 집은 파괴를 당했습니다.
수도원이 운영하는 고아원은 그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시내에서 수녀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5년 전에, 바그다드에서 수도원장과 수도원식구들이, 이곳 알코시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수도 바그다드에 사는 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도원장 가브리엘라 튜마
“우리는 수도원 출입구 앞에 서 있었는데,
괴한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총을 쏘고 도주했습니다.
총알이 살짝 저희를 비켜갔지요. 총알은 제 바로 옆 수도원 벽에 맞았습니다.
또 한 번은, 괴한들이 차 한 대를 수도원 앞에 주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게 차량폭탄인 것을 직감했지요. 즉시 우리는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에, 그 차량은 폭발했습니다.“
수도원 벽이 너무 튼튼해서, 차량폭발로 인한 화는 면했지요.
마을에는, 이라크 군인들과 경찰이 치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족 자치 경비대도 안전을 지키고 있는데요, 바그다드만큼은 경비가 삼엄하지는 않습니다.
가브리엘라 수도원장
“매년 ‘그리스도의 몸을 경축하는 축제’때, 우리는 꽃과 다른 자연적인 재료를 이용해서,
교회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장식합니다.
금년에는 ‘사이아닷 교회’를 그렇게 장식하려고 합니다.
최근에 테러범들이 그 교회의 성직자 2명과 성도 50명을 학살했습니다.“
리포터
2010년 10월 31일, 이슬람 테러범들이 바그다드에서 (사이아닷) 교회를, 예배 보는 도중에 공격해서
모두를 인질로 잡았지요.
이라크 군경이 출동해서 그들의 안전한 석방을 위해 애를 썼지만,
테러범들은 인질들을 살해하고, 나중에 스스로 자폭하고 말았습니다. (화면에 사건 현장이 나옵니다.)
수도원 고아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그 심한 폭력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테러범의 공격을 받아서, 자기 아버지가 숨진 아이도 있죠.
자기도 죽을 뻔했지만, 어떻게 폭발물이 터진 가운데서도, 그들은 목숨이 기적적으로 보존되었습니다.
가브리엘라 수도원장
“이 소년들은 알코시로 버스를 타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폭발물이 그들이 탄 버스 바로 곁에서 터졌습니다. 보통의 경우,
폭발물이 그런 가까운 거리에서 터지면, 근처 자동차 속에 탄 사람들은 거의 생존하지 못하는데,
성모 마리아께서 그들을 구해주셨나 봅니다.“
칼레드, 18세, 생존자 소년
“저는 독일의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테러의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셔서, 우리가 이 테러와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폭력과 테러를 몸서리치게 봐왔습니다.“
리포터
두려움은 여기서 늘 상존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여기서 예배를 드리려면
두꺼운 교회의 벽 안에서, 무장한 경비원의 보호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가브리엘라 신부는, 서구 사회가, 기도와 아울러, 그 이상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브리엘라 수도원장
“우리는 서구 기독교 사회가, 우리를 좀 보호해 주시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계속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땅은 우리의 조국입니다. 우리의 뿌리가 이 땅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알코시 마을은, 쿠르디스탄 자치구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행정상 모술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알코시는, 쿠르디스탄 자치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페시메가 민병대가 있는데요, 이라크 정부가 우리를 보호하는게 아니라
페시메가 민병대가 우리를 보호합니다. 만약 그들이 철수해 버리면, 우리는 죽게 됩니다.“
리포터
페시메가 민병대란, 쿠르드족 군대도 아니고, 아지즈 웨이시 장군이 지휘하는 지역 군벌입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페시메가 민병대는 사담 후세인 때부터 그에게 저항해서 싸웠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지역의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있는데요, 기독교인들도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페시메가 민병대 아지즈 웨이시 장군
“페시메가란, 문자적으로 ‘죽음을 직면하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부당한 억압과 정의가 실종된 곳에서, 대항하여 싸웁니다.
우리는 군사적으로, 이라크 전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을 보호하고 있는데,
쿠르드족 자치정부는 그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영구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이라크의 헌법이 효력있게 시행되어져야 합니다. 헌법이 국민들을,
자기가 어디서 살 건지,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고.. 그걸 법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나중에 그는, 종교의 자유도 법으로 보장되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키르쿠크에서, 루이스 사코 대주교 만남
리포터
이제 우리는 키르쿠크로 향했습니다. 그건 매우 위험한 여행이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이 어떤 길을 선택해서 어떻게 갈 것인지,
우리를 호위하는 군대와 상의했습니다. 우리가 그 호위병들을 찍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왜 지금 우리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느냐고요?
나는 이라크에서 모든 정치 분파들의 통합과 평화를 주도했던,
그 명망있는 한 대주교를 만나고 싶어서 입니다.
가는 길에 혹시 피습을 당할지도 몰라서 대단히 신경이 곤두서는 가운데서,
그래서 자꾸 자신을 잊어버리도록, 딴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화면은 소형카메라로 몰래 찍은 건데요,
지금 길 옆에 대형 유전이 있는 것이 보이시죠?
바그다드 정부는, 이 유전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키르쿠크에 도착했습니다. 대주교가 사는 곳은 마치 큰 성채 같군요,
입구에 검문소가 있고, 건물의 벽도 아주 높습니다.
루이스 사코 대주교는 최근에 암살 시도에서 겨우 빠져나와서 무사했습니다.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라크내에서 서로 대항하는 정치 집단과 종교 분파들을 모아서 화해시키는데
아주 놀라운 사도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대주교의 집은, 중립적 지역에 있습니다.
대성당에서, 그는 갈대아 기독교의 십자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코 대주교
"갈대아 기독교회에는 (개신교처럼) 십자가에 예수님의 몸이 없고, 비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을, 신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에서 출발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기독교에는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서방교회는 고행과 고난을 강조하겠지만, (그래서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지만)
동방교회는 부활을 더 강조합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비어 있습니다.)"
리포터
빈 십자가는.. 이라크의 구속의 희망입니다.
대주교는, 성모자상(화면, 성모와 아기예수)의 성화를, 무슬림 화가에게 부탁해서 그리게 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종교를 서로 화해시키려고 합니다.
저는 대주교에게 '기독교인들을 대적하는 폭력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사코 대주교
"그 대답은 간단치 않고 복잡합니다. 이 폭력의 배후에는 크게 세 그룹이 있습니다.
-먼저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입니다. 이라크에서 이슬람신앙을 보존하려는 그들은
이슬람제국을 세우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마피아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납치하고, 교인들이 자기 재산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도록 협박합니다.
또는 납치해서, 대가로 돈을 요구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가족의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몸값을 요구대로 줍니다.
-그 다음에 정치적 세력들이 있습니다. 많은 테러 공격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기독교인들을 자기 편에 포함시키려는 목적으로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또 정치 계파가, 다른 정치 계파에게 서로 공격을 가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중간에 끼여서 두 계파에게 모두 위협을 당합니다. 우리를 배신하면 위험하다는 거지요.
이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대주교는 정말 이 곤경에서 빠져나올 탈출구를 본 것일까요?
사코 대주교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의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들과 대화할 때마다
우리는 같은 이라크인들이며, 같은 레바논 혈통이며,
여기는 우리의 땅이며, 여러분 조상들이 여기로 이주해 오기 전 옛날부터 그랬듯이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공헌하면서
서로 다른 배경인 모두가, 여기서 서로 협력해서 살아야 합니다.. 라고 강조합니다."
리포터
아얏 신부가 '보안문'을 통과해서, 가톨릭 유치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대주교는, 대화의 힘과, 상호존중과, 상호화해가 어린 유치원때부터 교육되고 실천된다면,
이 나라의 관용과 신뢰의 기반이 건설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유치원에서는, 크리스천 아이들과 무슬림 아이들이 함께 놀고,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를 안내해주는 아얏 신부는, 결혼한 신부입니다.
동방정교회처럼, 갈대아 가톨릭 교회도, 성직자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아얏 신부
"저는 결혼했고, 두 자녀가 있습니다. 아들과 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지역사회에 거울처럼 모범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포터
이라크에서 기독교 성직자로 임명 되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잘못하면 자기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사코 대주교
"이 새로 지은 예배당은, 우리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여기 키르쿠크에서만 2003년(이라크전쟁)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37명의 순교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라크 전체를 다 합치면, 이 기간에 순교한 분들은, 모두 937분입니다."
(교회 마당에 순교비) 여기에 적인 이름들이, 순교자들의 이름들입니다.
약 50만명 정도는, 핍박을 피해서, 국외로 탈출했습니다."
리포터
앞으로 이라크에서, 크리스천들은, 안전한 미래를 얻을 수 있을까요?
사코 대주교
"이라크에서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미래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미래의 비전에 대해 비관적입니다. 너무나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때때로 우리는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이런 급작스런 변화를,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리포터
그렇다면, 대주교는 왜 이라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는 것입니까?
사코 대주교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진 성직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른 이를 위해 내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신자들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용기를 갖고서, 인내하며, 견디다가, 순교까지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리포터
어둠이 내리기 전에, 우리는 대주교와 헤어져야 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외국인은 특히 납치의 위험이 가중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밝을 때, 이라크 북부의 아마디야에서 사역하는 알카스 주교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키르쿠크를 떠났습니다.
◑아마디야에서, 알카스 주교를 만나다
리포터
아미디야는, 과거에 한때 내전이 쓸고 가기는 했지만, 비교적 매우 평화로운 도시였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쿠르드 족이 독립을 위해 싸웠을 때,
사담 후세인은 이 지역의 수 천개 부락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그때 여기에 살던 쿠르드족, 기독교인들, 그외 소수자들이 크게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알카스 주교는, 이라크의 미래에 대해 분명한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먼저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부터, 복구되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알카스 주교
"제가 사는 부락만 해도, 많은 폭탄들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폭발물 사고로 죽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래된 교회건물을 가리키며) 이 교회는 6~7세기에 세워진, 아주 역사가 깊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 때, 이 교회 건물 안에도, 군인들이 폭발물을 설치 했습니다.
군인들은 교회에 구획을 정해서, 자기들이 머물렀고, 주민의 반대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1993년에, 직접 목격한 일이지요."
리포터
쿠르드족 자치정부는, 새 교회 건물을 짓는데 재정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들과 주교들의 사례비까지도 지원해 준답니다. 아마 석유자원이 풍부한 모양이죠,
그래서 새 교회당에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신자들이 즐거운 교제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든지 깨어지기 쉬운, 위태로운 평화입니다.
언제 이 타운에 또 분쟁이나 테러가 갑자기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우리 독일 방송팀은, 주교와 함께 차를 타고, 쿠르디스탄 북부지역의 '도훅'으로 갔습니다.
그는 우리 팀에게,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교육 프로젝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인터내셔설 스쿨>은 알카스 주교가 주로 일하는 사역지인데, 그는 교장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라크에서 서로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알카스 주교
"우리는 교육을 '같이' 시켜야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교육을 통해서 진행되는데요,
보시다시피 쿠르디스탄에는, 지금 새로운 건물을 많이 건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보다,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새롭게 건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 국제학교는,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남녀공학으로 함께 공부하고,
그들이 쿠르드 족이든지, 아랍족이든지, 시리아인이든지 구분하지 않습니다.
학생이 어느 종교를 믿는지도, 중요하게 따지지 않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은 5개 언어로 진급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영어, 불어, 아랍어, 쿠르드어, 아람어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쓰는 언어는 영어입니다.
이 국제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종교교육도 시키지 않습니다.
알카스 주교/교장은, 종교문제로 나눠진 사회에서, 종교 문제를 푸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여깁니다.
이 국제학교는, 이 나라에서 가장 최고수준의, 또한 현대적인 학교입니다.
이미 3명의 졸업생이, 독일의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생들은 방학에 들어가게 됩니다.
알카스 주교
"이 학생들은 쿠르디스탄의 미래입니다. 우리는 받은 것을 그들에게 전달해주고
이 학생들은, 자기들이 받은 것을 잘 간직했다가,
또 다음 세대에, 그것을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구별없이 어울리는 이 학생들이 바로 쿠르디스탄의 미래입니다."
리포터
학생들은 우리 방송팀에게 다가와 인터뷰하기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무슬림 여학생
"제 절친은 메르나인데, 우리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무슬림이고, 메르나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베프(베스트 프랜드)입니다."
크리스천 여학생
"저는 그녀가 좋은 친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녀는 모든 일에 저를 도와줍니다.
공부하는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일상적인 일에도 도와줍니다. 그녀는 항상 제 곁에 있습니다."
무슬림 여학생
"우리는 정말 서로 좋은 친구입니다. 저는 이 친구를 너무 좋아합니다."
다른 여학생
"그가 무슬림이냐, 크리스천이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쿠르드 족입니다."
또 다른 여학생
"우리는 모두 밝은 미래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은, 우리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위해서
일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또 다른 여학생
"저는 약학에 관심 있습니다. 저는 약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의사도 될 수 있겠지요. 저는 기술자나 건축가가 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제 직업으로 쿠르디스탄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 원합니다."
또 다른 여학생
"저는 남들과 좀 색다른 직업을 갖기 원합니다. 저는 남들처럼 의사나 기술자가 되는 걸 원치 않아요.
저는 발명가나 탐험가가 되고 싶습니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되기 원합니다.
어쨌거나 남들과 좀 남다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여학생
"저는 전쟁이 치러지는 모술에 살고 있었는데, 지난 4년동안 저는 사람들이 죽고, 폭탄이 터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제 친척들도 여러 사람들이 죽었는데요, 저는 지금 그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거기서 고통당하는 제 친구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뭘하든지, 그들을 돕고 싶습니다."
알카스 주교
"이 교육 프로젝트가 안전하게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보장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헌법을 잘 따르고, 쿠르디스탄이 바그다드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주위의 다른 이웃민족들과도 좋은 관계를 갖기 원합니다. 관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유럽국가들, 미국도, 우리들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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