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자아의 죽음 훈련 롬6:1~11 스크랩, 출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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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오래 믿었는데, '변화'되기 쉽지 않은 현실
▲내가 믿는 신앙이 진짜일까요?
그 부분에 대한 점검을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로메타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서 점점 죄를 이겨가고 있는가요?'
'나는 예수님을 믿어서, 점점 나의 속과 나의 겉이 변화 되어져 가고 있는가요?'
이게 핵심이예요. 우리가 교회생활을 통해서 뭐 성경도 배우고, 또 그럭 저럭 이렇게 성가대도 하고,
또 주일학교 봉사도 하고, 그런거 다 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게 예수님을 믿는 본질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본질은 뭐냐면, 그 예수가 내 속에 죄의 권세를 진짜로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겉만이 아니라, 나의 속이 점점 변화 되어져 가는,
이 경험을 하는 것이 진짜 신앙생활의 특징인 거예요.
▲물론 완벽하게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점점"입니다. 점점 progress가 나타나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러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본인이 예수님 만나고 그냥 확 뒤집어 지셨거든요.
그리고 정말 완전히 변화 된 줄 알았는데, 한 10년쯤 지난 다음에,
어떤 영상물을 뭐 일부로 본거는 아니고, 아이들을 관리하는 중에 잠깐 봤다가,
그 마음에 다시 그러한 정욕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으셨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난 10년 동안 나 자신을 마치 그렇게 철봉이 있다고 한다면,
완전히 구부려져서, 나 자신을 완전히 변화 시켜서, 그렇게 10년간 조금도 안놓고 살았는데,
여러분, 철봉을 10년간 구부리고 있었으면, 손을 딱 놔도, 계속 구부려져 있어야 되잖아요.
근데 손을 탁 놓는 순간, 이게 되돌아가더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목사님이 충격에 빠진 겁니다. '이게 내 본질의 모습인가?'
그러는데 주님께서 위로를 주시기를,
'그게 아니다. 10년간 붙잡고 있어서, 놨을 경우에 다 돌아간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 약간만 구부려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또 주님을 붙잡고, 또 붙잡고 살아가면, 10개 잘못 됐다가도 9개로 줄어들고,
9개 줄어들다가 8개로 줄어들고., 그렇게 점점 나의 삶이, 비록 완벽하진 않을 지라도,
계속 성숙되어져 가고, 변화 되어져 가는, 이 과정을 경험 하는것,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삶의 특징이다.. 라는 깨달음을 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여러분의 삶을 변화 시켜 나가고 계십니까?
▲어제 들은 한 간증에,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하셨는데, 아무튼 한 교인이 오면,
정말 정성을 다해서, 미국 같은 경우에는 한사람이 이민을 오거나 유학을 오면,
그냥 뭐 차를 태워서 공항에서 집까지 모시고,
그가 운전 면허증을 따는 일, 집 구하는 데 있어서, 막 그냥 전심을 다하여서,
아무튼 케어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 지나면, 개척교회니까, 사람들이 큰 교회로 다시 간다고 가고,
그리고 사람들이 뭐 다시 뭐 본국으로 돌아가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너무 실망을 이 분이 하셔서,
하나님 앞에 40일을 금식하며, 기도 하셨더라는 거예요.
하나님 주님 너무 마음이 슬프고, 너무 마음이 상처되고, 너무 힘이 듭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40일을 금식기도 하시고, 이 분이 주님을 뜨겁게 만나셨는데,
이렇게 간증하시더라구요.
그렇게 40일을 작정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셨으면, 그러면 교회에 사람들이 막 늘었나?
그러지는 않았데요. 그러면 무슨 변화가 일어났나? 자기 속이 변화 됐다라는 거예요.
그전에는 원망스럽고, 짜증나고, 낙심되고 했는데
정말 주님의 은혜를 받고 보니까, 이제 똑같은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용기가 생기고, 그리고 자신감이 생기고,
사람이 들어오든/나가든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이런한 기쁨이 막 들면서,
나 자신이 변화되어 지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내가 믿는 신앙이, 환경이 변화될 수도 있고, 변화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믿는 신앙은, 나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의 능력인데...
▲자 그러면, 정말 내 속이 그렇게 변화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으로 변화 될 수 있을까요?
제가 이렇게 가만히 보면,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저절로 변화 되던가요?
여러분도 답을 아시잖아요. 교회를 5년, 10년 다녀도 변화 되지 않고, 더 걍팍해지는 분들 많이 계셔요.
그러면 많이 훈련 받으면 변화 되는가요?
훈련은 유익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뭐 내적치유 공부를 하고, 이것 저것 많은 지식을 쌓을때,
그 지식의 부분적 도움이, 나의 삶을 그래도 이렇게 바른 방향으로 잡아 나가는, 귀한 역할을 해요.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정말 나의 자아에 본질, 나라는 이 죄의 뿌리인 나 자신이
그 지식으로 변화 될까요?
변화 되는것 같다가, 도로 돌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절망을 합니다.
'내가 성경공부도 많이 했고, 내가 이런 저런 훈련도 많이 받았는데, 안 변해요. 안 변해!'
예전과 똑같이 화를 내고, 똑같이 또 넘어지고 하는 탄식이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 그 동안 많이 했던 탄식이잖아요.
도대체 예수님 믿으면, 변화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그러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변화될 수 있을까요?
◑십자가에서 자아의 죽음 훈련
▲여러분에게 성경 그대로 말씀을 드릴께요.
특별히 로마서가 신앙생활에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선포하는 말씀인데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성도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 시키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정말로 믿는 믿음밖에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나 그거 믿어요. 그런데 믿어도 변화되지 않던데요.'
아닙니다. 성경에 그렇게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진리를 진리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를 깨뜨리는 힘, 우리 안에 하나님 뜻대로 살수 있게 하는 힘은,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데 있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 부활 생명, 성령의 능력 복음,
그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 안에서, 우리의 자아의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권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보면요. 특별히 사도바울의 서신을 보면, 거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래요.
그 십자가에서 내가 주와 함께 못 박혔고, 그 십자가에서 세상이 내게 대해 못 박혔고..
십자가에 집중을 해요.
다른 어떠한 지식을 이야기 하지 않아요. 예수 십자가, 예수 부활 생명,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의 삶을 그 율법의 권세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내 힘으로 아둥바둥 해도 변화되지 않았던 그 근본을
십자가와 부활 생명이 변화 시킨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는 성경의 진리에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 중요한 <십자가 신앙>을 자세히 살펴보길 원하는데,
우리가 십자가를 생각하면, 어떠한 생각을 하냐면,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내 죄를 주님께서 가져 가셨다.
그래서 나의 과거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 하셨다.
이게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 이잖아요. 그게 십자가를 향한 믿음의 첫 번째입니다.
소위 '대속의 십자가 신앙'입니다.
그것을 믿을 때, 죄에서 우리가 건짐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반쪽입니다.
자 또 하나, 우리의 실생활에, 그 십자가의 능력을 어떻게 적용을 해야 되냐면,
읽은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는데요.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무슨 말이냐면, 진짜 예수 믿고 세례 받은 자는
그에 죽으심에 연합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죽을 때, 주님만 내 죄 값을 치르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주님 죽을 때, 나도 함께 내 옛사람도 함께 여기에 연합해서, 주님과 함께 죽었다고 하는,
이 십자가의 능력을 우리는 깨달아야 된다 라는 거예요.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의 옛 사람이
(따라 합시다)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그와 함께 장례식을 치렀나니",
우리는 장례식을 치른자라는 거예요.
옆에 있는 분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세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다 가신 자들이예요. 옛 사람은, 옛날의 그 옛사람은, 다 가신분들 이예요.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has gone, 이미 가 버렸습니다. 그와 함께 장례식 치른바 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이제 우리로 또한, 이 부활 생명,
그렇게 예수와 함께 내가 죽음으로써,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연합의 그 사실을,
내가 깨닫고, 고백하고, 붙잡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주님과 함께, 새 생명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난다 라는 거예요.
그때 우리의 삶이 지각 변동이 일어나면서,
변화의 능력이 꿈틀 꿈틀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것이 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자 11절 말씀 더 한번 보겠습니다.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죽은자로 여기고, 주와 함께 산자로 여기고, 이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
이것이 우리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제가 20대 초반에 정말 성령충만함을 받고 보니까, 고민이 생기더라구요.
왜냐면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주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까, 안되는 거예요.
주님이 '너 이렇게 살지 말아라. 저거 해라..' 하지만 안 되는 거예요.
이게. 그러니까 너무 영혼이 곤고해 지더라구요.
'왜 자꾸 실패합니까? 주님 왜 내가 안됩니까?' 제가 막 몸부림치는 시간들이
신앙 초기에 굉장히 제가 막 극도의 영적인 스트레스에 빠졌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로마서를 보면서, 지금 제가 말씀드린 <자아의 죽음>에 대한 이 진리를 열어 주셨어요.
'너의 옛 사람은 변화 안된다. 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밖는 게 (죽는 게) 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작은 소책자를 통해서, '아 정말 그렇구나.'
그런데 그 옛 사람을 못 박는 것은, 네 힘으로 하는게 아니라, 믿어야 되는 거다.
어제 이 목사님이 그 말씀 드렸죠. '믿어야 되는 거다.'
마치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나의 죄 값 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것을 믿을때 구원을 얻는것처럼
내 자아가 깨어지는 것도, 그것도 믿음의 역사입니다.
내가 로마서 6장의 말씀을 정말 마음에 믿으면, 내 옛 자아는 더 이상 역사를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20살 때, 그게 믿겨졌어요. 그게. 하루만에!
그 순간에 제가 딱 믿는 순간, '오 죄가 끊어 졌네. 와 내가 변화됐네.'
그리고 제 후배에게 막 로마서 6장에 진리를 막 선포하면서,
입에 거품을 내면서, "믿어야 된다" 이렇게 막 했거든요.
딱 하루 갔습니다. 하루. 그리고는 다시 또 자아가 올라와서 습격할 때,
"내 자아는 안 죽었나보다.'
그리고는 그 진리에 대한 빛은 있었지만, 다시 제 삶이 십자가를 떠나서, 또 다른데로 헤매고,
그래 그래도 십자가 밖에 없지 하다가, 또 헤매고
그렇게 한참 10년 넘게 그렇게 지냈던 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복음 학교, 거기를 들어 갔는데, 그때 깨닫게 하신 말씀은, 똑같은 애기를 하는 거예요.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헤매는 것뿐 이예요.
그런데 제가 뭐를 알았냐면
저는 이 의지력이 약해서 그 진리를 발견했음에 불구하고, 제 마음이 굳건하지 못하니까,
한때 잡았다가, 또 희미하게 놨기 때문에,
이 말씀이 내 안에 기둥이 안됐던 거예요.
그런데 유목사님이나, 우리 뭐 순회선교단에 그런 분들을 보니까,
주님의 이 명확한 진리에, 온전히 자신을 걸어 버리더라구요.
자아의 죽음,
거기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겁니다.
복음 학교 다녀 오신분들은 아시 겠지만, 선교사님 지망생들이 거기 모인 거예요.
처음에 며칠은 너무 행복 했데요. 그런데 조금 지난 다음에, 서로 갈등이 일어나는 거예요.
왜 나는 설거지를 하는데, 왜 저 사람은 설거지를 안해?
그러면서 QT할 때, 자기 적용 하는게 아니라, 남 적용하는 QT를 나누는 거예요.
그러면서 막 갈등이 심해졌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느낀게 '선교사 지망생으로 왔지만, 나 자아가 변화되지 않으면, 무슨 열방을 구원하겠느냐'
이거예요.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 깨달은게,
'자아의 죽음,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승리하지 못 하는 거구나.'
내가 주의 함께 죽고, 예수가 내 생명되는 이 진리!
제가 20살 때 깨달았던, 그 오랜 이 진리에 복음이 그들에게 빛으로 왔는데, 거기 아주 생명을 건 거예요.
그래서, 그 들의 모든 삶은요. 항상 십자가 붙잡고, 예수 생명 의지하고,
그게 그 마음에 굳건한 진리 체계로 세워지니까,
그 다음부터 그게, 한번만 변화시키는게 아니라,
계속 그의 삶을 변화 시키는 능력으로, 이끌어 갔다라는 거예요.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부활, 이런것들을 깨달아도,
제가 20살 때, 하루 동안 깨달았다가, 또 헤맸던것 처럼,
머리로는 그게, 여러분 제자 훈련 여기 지금 많이 하셨잖아요.
그때 막 공부할 때는, 아 그렇구나, 깨달았지요. 이게 이게 지난주에 이게 4단원이 그거 했잖아요.
그래서 그 4단원 하는, 그 1주 동안에, '아 나는 주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런 애기 했잖아요. 1주일 동안. 근데 그 다음에, 질문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계십니까? 십자가외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거 모든 삶에 붙잡고 있으시나요?'
그렇게 안하시죠? 그래서 변화가 안되는 거예요.
한 청년이, 제가 안산광림교회에 있을때 그 청년은 가정적으로, 무척 어려운 가정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자살했고, 알콜중독에 폭력에, 거기에서 어릴 때부터 크면서,
이 청년은 그 마음에 깊은 상처, 또 음란함, 이러한 것들로 완전히 인생이 어두운 청년이었어요.
그런데 복음 학교 다녀오더니, 이 십자가 진리가 이 영혼속에, 왜 죄가 더 한곳에 은혜가 더 한다고..
너무 이 청년의 인생이 피폐하고, 그렇게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의 진리가 이 형제에게 빛쳐 졌을 때, 완전히 그냥 이 청년의 중심을 다 핵폭탄처럼,
이 복음이 깨뜨려 버린 거예요. 저한테 오더니, '목사님 제가 변화 됐습니다.'
'제가 그 전에는 그 음란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헤맸는데,
지금 제가 복음을 깨닫고, 지금 성령께서 내 속을 변화 시키는데,
그 제 속에 있는, 그 해결하지 못했던 그 내 쓴뿌리, 그 더러운 것들
하나님이 나를 변화 시켰습니다.' 하면서, 완전히 바뀐 거예요.
그러면서 '내 옛 사람이, 주와 함께 정말로 죽었습니다. 나 이게 믿겨 집니다.
이게. 그냥 이게 진짜, 내 생명입니다.' 하는데,
제가 그 형제 바로 보구요, 막 그 앞에 무릎 꿇고, 안수 좀 해주세요. 이렇게 하고 싶더라구요.
얼마나 이 청년이 변화 되였는지..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결론을 명확하게, 답을 내셔야 합니다.
이제 내가 붙잡을 것은, 십자가와 부활밖에 없다!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삶속에서, 그 십자가의 오늘 이 말씀, 내가 주님과 함께 죽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고, 이제 새 생명 가운데, 행합니다. 라고 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후에/ 최종적인/ 최고의 답인,
내가 주의 함께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신다고 하는, 그 십자가의 능력을
지식이 아니라, 정말 내 영혼 중심에, 정말 내 평생에 이것이 내 것이 되게 해주십시요.
그렇게 여기에 저와 여러분이 집중하기를 원합니다.
처음에는 안돼요. '나 죽었습니다.' 백번 해도 안돼요. 안 죽어져요.
왜 안 죽어지는지 아세요? 그것은 여전히 지식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 영혼 속에, 믿음으로 딱 와 닿을 때,
지식이 아니라, 내 이 심령 속에 살아있는 믿음이 되면서,
갑자기 그것이 내 것이 될 때, 진짜 죄가 팍팍팍 깨트려 지게 되는 거예요.
어제 유목사님이 그 말씀 하셨잖아요. 그 내가 죽었다고 하는 말씀이 깨달아 졌을 때,
너무 흥분이 돼서, 막 책상에서 막 일어나서 막 왔다 갔다 하면서, 너무 흥분 된다고 하시잖아요.
저도 20살 때, 그거를 깨닫고, 막 하루 동안에는요, 진짜 세상이 다 바뀌더라구요.
성령의 능력으로 지식이 아니라, 이거를 에베소서에서는 '계시의 영'이라고 해요.
계시의 영. 이 마음속에 마치, 내가 그 동안 교회 오래 다녀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안 믿겨졌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예수님의 십자가가 막 믿겨 지면서,
구원받은 그러한 사건처럼, 내가 주와 함께 죽었다고 하는 것이,
머릿속이 아니라, 내 심령 속에 빛으로, 성령의 역사로, 깨달아 질 때,
그 역사는 우리에게 천하를 뒤집는 권능으로 오게 될것입니다.
저는 그 다음 부터는요, 어떻게 훈련 하냐면요,
제 속에 잘 못된 생각이 올라오고, 죄가 꿈틀될 때 마다,
제 마음에는 그냥 곧장 십자가 바로 바라봅니다.
주님. 주와 함께 죽었습니다. 주님 죽었습니다. 그러면 몇 초 안가요.
그 생각이. 제가 막 막 그거 없애 버리려고, 막 할때는 그게 안됐거든요.
분홍색 코끼리 생각하지 마세요. 분홍색 코끼리 생각하면 망합니다.
여러분 머릿 속에는 분홍색 코끼리가 막 왔다 갔다 하지요?
'내가 죄를 이겨야지, 내 힘으로 싸워야지, 나쁜 생각 말아야지,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밉잖아요. 근데 십자가를 바라보고, 거기에 내가 주와 함께 죽었다고 하는,
믿음으로 동참하는 훈련을 계속 하니까, 진짜 쉽게 그 죄의 권세가 툭특툭 깨어져요.
저와 여러분에게 이제 진리의 길은 복잡 한게 아니예요.
이미 주께서 말씀 하신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는, 훈련을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마무리 말씀 드릴께요. 저는요 이 교회가 화려한 교회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 상가 교회라도 행복해요. 하나님께서 나중에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꿈은 화려한 교회가 아니예요. 제 꿈은 우리 성도들이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능력있는 신앙인으로, 세우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게 진짜 교회예요. 초대 교회가 그런 교회 였어요.
죄의 권세를 깨트리는, 내 영혼을 흔들 수 있는,
십자가의 능력은요, 세상을 흔들 수 있는 거예요.
그러한 성도들이 이 안에서 일어 난다면, 여러분의 가정이 변화 될 것이고, 세상이 변화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난주에 막 기도하는데, 막 제게 갈망을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거룩한 성도들이 일어나게 해주십시요.
이 마지막 시대에, 새 술를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는데,
그러한 거룩한 능력의 교회가 하나님 일어 나게 해주십시오."
무엇으로? 십자가로.
어떻게 믿으라는 거예요? 그러나 한 번에 안되니까 계속 훈련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십자가의 능력이 정말 이 마음에서 믿겨지고 깨달아 질 때,
사람들이 '당신 변했어. 당신 도대체 왜 변했어? 당신이 믿는 그 믿음, 나도 한번 믿고 싶다'고 하는,
이러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줄로 믿습니다.
함께 이 시간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가 정말로 변화 되기를 원합니다. 정말 내가 구원의 길을 걷길 원합니다.
해답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밖에 없습니다. 주님 집중하게 하여 주시고, 정말 믿겨지게 하여 주시고,
내 모든 삶에 십자가가 집중 되어지게 해달라고, 주여 주여 세 번 크게 부르시고, 기도합니다.
타이핑 : J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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