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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이느니라

LNCK 2015. 3. 9. 08:55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이느니라            마24:28, 눅17:37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이느니라   눅17:37

 

예수님께서 당신의 재림 시에 이루어지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말씀해 주실 때,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다.” 라며 그 징조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1. 그 날은, 심판의 날이다. 많은 죽음이 생길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고대 전쟁을 다룬 영화에 보면, 전쟁을 치른 다음 날, 그 전장 터에는 많은 시신이 널부러져 있고,

그 위로 공중에는 독수리 떼들이 소음을 내며, 맴도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는.. 그 날에는 많은 죽음이 일어날 것이며 (이것은 계시록 등 다른 성경의 증언과도 일치합니다.)

즉, 그것은 바로 '심판의 날'의 특징이요, 성격이 되는 것입니다.

 

▲2. 이 말씀을 <개인적 심판의 날>로 적용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썩은 시신, 또는 동물의 사체는 독수리를 끌어들이듯이

죄인들은, 자신의 삶에, 스스로 심판을 불러들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영혼이 살아 있지 못하면, 독수리/마귀들이 귀신 같이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법입니다.

 

어거스틴 성인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언짢은 죽음을 두려워하나, 언짢은 삶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심판/최후 심판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 죄악으로부터, 나의 자유와 나의 회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천상의 삶을 산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전에, 이미 자기가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심판을 불러들인다는 뜻입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오늘 나의 삶이, 심판의 근거입니다.

나에게 시체 썩는 냄새가 나서, 독수리 떼(마귀)가 모여들도록 해서야 되겠습니까!

 

▲3.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제자들까지도 박해하여 죽이거나 모두 쫓아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버리고, 제 스스로 살기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영혼의 죽음이었고, 그 썩는 냄새는 독수리 떼들을 몰고 왔습니다.

로마군대의 상징은 독수리입니다.

 

서기 70년에 독수리를 상징하는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시킵니다.

이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썩는 냄새를 풍겼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강릉 바닷가에서, 엄청난 천 마리가 넘는 갈메기 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끼륵 끼륵 끼륵 소리를 내면서, 수많은 갈메기 떼들이 모여 들었지요. 장관이었습니다.

 

   이유인즉, 근처 횟집에서, 생선회를 뜨고 나서 남은 부위를, 바닷가에 가지고 나와서, 

   갈메기 떼들에게 먹이로 던져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어는, 수 킬로 밖에서도, 피냄새를 맡고 찾아온다고 하지요?

   갈메기도, 생선회의 피 냄새를 맡고서, 순식 간에 몰려들었습니다.

 

   마귀도.. 본능적으로, 피 냄새를 맡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수리처럼 맴돌면서, 죽이고/도적질하고/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내 영혼이 죽어있으면 안 되고,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것이 비록 예루살렘에만 해당한다고 말하신 적이 없습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도 그럴 것이고, 우리 공동체도 그럴 수 있고, 우리 가정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살아 있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냄새를 계속 풍기게 되면.. 독수리 떼들이 몰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썩는 냄새는 자신을 멸망시킬 것들을 불러들입니다.

파리가 몰려있으면, 거기엔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이에나가 몰려있으면, 거기엔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엇인가 썩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를 멸망시킬 것들을 불러들이지 않기 위해서

싱싱한 물고기들이 되어야 합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모이겠지만,

꽃이 있는 곳엔 꿀벌과 나비가 모일 것입니다.

 

▲서기 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폭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은, 화산재에 뒤덮혀 사망하고 말았는데요,

그 유적과 화산재에 뒤덮인 시신들을, 지금도 고고학 유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폭발시간에 그 날 정오, 낮 12시인데,

그 시간에 갑자기 폭발한 것일까요? 아무 예고도 없이요?

 

아닙니다. 적어도 그 날 새벽부터, 지진이 나고, 화산재가 휘날렸으며..

화산은 그렁그렁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징조"가 보일 때, 빨리 대처했더라면, 화산재로 응고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내 주위에도, 하나님은 경고의 싸인을 보여주십니다. 그때는 빨리 피하고, 도망해야 합니다.

   그 싸인을 계속 무시하면.. 베수비오 화산처럼, 주님의 심판이 폭발하는 때가 옵니다.

   그 때는.. 늦습니다.

 

 

 

◑적용

 

일본의 어떤 유명한 교수님이 계신데, 그분께 한 신문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만약 교수님께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자 교수님은 조금의 생각도 하지 않고

“저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을 믿고 있으며, 이 믿음 안에서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만약 다시 태어나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처럼 신앙생활 할 자신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육신의 죄와 끊임없는 대결과 싸움의 연속'입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마귀와/자기 육신과 싸우고 대항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 길을, '다시 태어나서 또 다시 살겠다고요?' (물론 이게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번 뿐인 하루, 단 한 번 뿐인 2015년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밤 시간,

하루를 돌아보며 드리는 끝기도 내용 한 구절 한 구절은

얼마나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지, 얼마나 가슴 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님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끝기도를 바치는 시간은 ‘작은 죽음’의 순간입니다.

끝기도를 바칠 때 마다 저희는 “또 하루가 저무는구나. 또 한 번 죽는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당을 빠져나와 침실로 올라가는 저희는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주님의 손에 제 영혼을 맡기나이다.”

 

우리의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게 될 때, 주어지는 은총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우리 인간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가식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위선적인 삶에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그렇게 하찮아보이던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다가오게 될 주님의 날, 갑자기 바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지불식간에 마주치게 될 마지막 날, 허둥대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무덤에서 편히 쉬신 아들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편히 쉬게 되었으니,

내일도 잠에서 깨어나 부활하신 그분과 함께 새 생활을 시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았습니다.

인터는 ‘속으로, 또는 안으로’을 뜻하고, 스텔라는 ‘별’을 뜻합니다.

의미를 합하면 ‘별 속으로 혹은 내 안의 별’이라 하겠습니다.

 

영화는 물리학의 주제들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 줍니다.

‘중력, 웜홀, 블랙홀, 상대성 이론, 5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수많은 물리 법칙들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중력을 넘어서고, 블랙홀을 통과해도

우리는 지구보다 더 아름답고, 더 환상적인 별을 만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구원은 우리의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물리법칙을 넘어서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종말,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웜홀’을 통과해서 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종말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원소들은 변화할 뿐이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도 명왕성을 넘어서, 새로운 행성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구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물리적인 시간의 연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서쪽 하늘로 빨갛게 물드는 석양과, 동쪽 하늘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사랑합니다.

 

가을 산하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단풍을 사랑합니다. 바람에 떨어져 땅에 뒹구는 낙엽을 사랑합니다.

아이의 입에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눈빛을 사랑합니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희생, 헌신, 나눔의 자선을 사랑합니다.

 

인류의 여명을 밝게 비추어준 지성의 별들을 사랑합니다.

시와 음악 그리고 문학이 있는 이 지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나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과,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신 그 분의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분명 이러한 ‘인터스텔라’가 있는데

어쩌면 우리는 ‘엑스트라스텔라’를 찾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밭’에 하나님께서는 ‘보물’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 보물은 바로 ‘지구라는 별’입니다. 지구라는 넓은 밭에도 ‘보물’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 보물은 바로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은 중력장도, 웜홀도, 블랙홀도, 상대성 이론도, 5차원도 넘어서는 힘입니다.

 

 

◑5. 링컨의 리더십 


미국 국민들에게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은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가 남긴 업적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그가 보여준 인품이 어떤 대통령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지요.

 

최근에는 그의 인품을 보여주는 편지 한 통이 공개되어,

사람들은 링컨에 대한 더욱 더 큰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편지는 링컨이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게티즈버그 전투 때

북군 사령관이었던 마이드 장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보낸, 짧은 편지 한 통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경하는 마이드 장군!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공로입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만약 작전이 실패한다면 장군은 링컨 대통령의 명령이었다고 말하시고.

그리고 이 편지를 모두에게 공개하시오!”

 

책임은 자신이 지고, 영광은 부하에게 돌린 링컨의 리더십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진정한 용기의 모범이 아닐까요?

 

무조건 ‘나를 따르라’하면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참된 리더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난처한 상황이 처해지면,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리더라면 말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책임을 지고, 다른 이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리더.

그러한 리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말의 한계

한번은 누군가 목사이자 신학자이고 동시에 음악가였던 ‘슈바이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왜 의사가 되었습니까?”

 

아마 이 말 안에는 다른 많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었는데,

왜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라는 가난한 곳에 와서 그런 고생을 하면서 사느냐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슈바이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말로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말씀만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려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직접 사람이 되셔서 참 사랑은 낮아지고 가난해져야 함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이 가난해짐을 실천하지 않으면

사도요한이 경고한 ‘그리스도의 적’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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