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엡5:29, 마10:28
◑피할 수 없는 고난의 현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우리 삶에서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 중에, 에스더 센터에서, 북한에 고향을 둔 탈북 성도님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고
제가 말씀 전하는 사역을 마치고, 몇몇 분들을 기도해주는 시간을 가졌어요.
30~40분 정도 와서 기도를 받았는데, 그 분들이 제가 기도를 해주니까, 그 직전에
자기의 문제/기도제목들을 제 귀에다 대고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목사님,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런 기도를 해주십시오.’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건너왔을 것이고
이 땅 가운데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분들이 기도의 제목들을 말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거예요.
어떤 분은, 자녀가 15살인데, 대한민국 땅에 와서 적응 잘하면 좋겠는데
매일 피시방에 있다는 거예요. ‘목사님, 아들이 피시방에 안가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웃기는 기도의 제목이지만, 아버님의 마음 가운데는
아들이 어떻게든 이 땅에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게, 아버지의 마음인 거예요.
어떤 분은 피부가 사람 피부가 아닌 거예요. 화상을 입었나 여쭤봤더니
이유 없이 피부에 괴사가 오신 분이었던 거예요. 그분을 위해서 기도드린 거예요.
‘하나님, 이 분의 피부가, 어린 아이 같은 피부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또 어떤 분은 암이 걸리신 거예요. 살려고 이 땅으로 넘어왔는데
몇 년 살다보니까, 위암이 걸린 거예요.
탈북해서 나오신 분들이 하나 같이, 질병 가운데, 환란 가운데, 물질적 어려움 가운데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거예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인생의 고난들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고난을 당하는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말합니다.
1) 인간이기에 삶 가운데 고난이 어쩔 수 없이 온다는 거예요.
창3:17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을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즉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고
수고를 하여야 먹고 살 수 있는 고난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새번역성경에 뭐라고 하느냐면 ‘그는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 짓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주한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창5:29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우리 인생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 남아있는 것이에요.
2) 시대적 상황 가운데 우리가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9~13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를 말하면서,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즉 우리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로서
인생 가운데서 시대적으로 겪는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의 말씀에도 사도 바울이 마지막 때가 되면 방탕하게 되고
술 취하게 되고 음란하게 되고 다툼이 있게 되고 시기가 있게 되고
정욕과 육신의 일이 이 땅을 덮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롬13:9~11
여러분 이러한 것들이 우리 인생 가운데서 고난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우리가 하나님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9절 말씀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고 보살피듯이 이 모두 자기의 몸을 양육하고 보살핀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양육하고 보살피겠다는 건데
이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마음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자녀 보살피듯 보살피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양육과 보살핌이, 교회와 여러분들께 부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택한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구약성경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들림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를 봅시다. 노아는 죄 가운데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노아를 건지셨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쥐고, 언약대로 사는 삶 가운데서
하나님은 위기 가운데 그들을 건지기도 하시고, 그를 보호하기도 하시고
그가 갈 길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었다는 거예요.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과 열왕들이 그랬구요.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 가운데, 그 고난을 통과하였음을 볼 수 있어요.
에스겔서 34:15절 말씀입니다.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양이라고 말합니다.
목자가 양을 지키고 보호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택한 자들은 지키시고 보호해왔다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를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보호하셨어요.
요17:12절에,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켰습니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 멸망의 자식 외에는, 하나도 잃어버린 사람이 없으니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그 신약의 교회들을, 초대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그들을 지키고 고난 가운데 그들과 함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어떻습니까. 역시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마28: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기에 우리는, 고난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요한계시록의 주제가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하나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거예요.
둘째는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시고
셋째는 성도들이 고난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넷째는 마지막 심판이 있고
다섯째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택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구약과, 신약시대는 물론이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께 공통적으로 주신 말씀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이것이 은혜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13장 말씀을 보면, 낮과 밤으로 비유하며
우리의 고난이 밤처럼 깊어질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어둠이 밤처럼 깊어질 것인데, 하나님의 날은 빛과 같이 임할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깊은 밤의 고난 같은 삶을 우리가 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겁니다.
이 시대의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고난 가운데 있고
여러분이 홀로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선 여러분들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선 여러분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겠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내 문제는 뭐냐면,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내가 보지 못하기에’
이것이 내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고요하게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성령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지금 내게 있는 상황을 뛰어넘을 힘이 저와 여러분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동영상 두 개를 봤으면 좋겠는데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2014년도 오픈도어 세계선교회의 그리스도인 박해지수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번 달에만 순교자가 몇 명 생겼는지 1월 17일 이집트에서 무슬림 ??(11:53)이
시위로 총에 맞은 그리스도인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진료를 안 해준 거예요.
그 분이 순교하셨습니다.
1월 3일에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성 요한 교회에서 성탄절에 테러로
37명이 죽임을 당했어요. 다같이 동영상을 보겠습니다.
이번 동영상은 아프리카입니다.
이집트, 알제리, 모로코, 에디오피아, 나이지리아, 수단, 탄자니아, 우간다, 코모로......
거의 모든 아프리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 샤뷔베의 반 기독교단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2010년도에 나온 영상인데 지금 11년도, 12년도, 13년도에도 동일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동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한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면,
그는 가족으로부터 명예살인 당할 수 있어요.
파키스탄은 회교도가 예수님을 믿어 개종하면, 신성모독죄가 되어 사형 당할 수 있는데
지금 이름이 알샤빈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님이 있는데
이 분은 30세인데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건 2013년도의 일이고요,
이란에서는 한 목사님이 기독교로 믿는다고 해서 배교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라크에서는 크리스천을 상대로 하는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아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고향을 떠나 난민으로 방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라크에 대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현재 50여개 국가들이 이러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난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보호한다는 말씀이 맞는 말씀인가.’
어쩌면 마24:13절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더 정확한 말씀일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느냐,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각지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가.
◑그런데 ‘보호’의 개념이 오염이 됐어요.
보호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풍요한 생활을 누리는 것,
직장과 생활에 문제가 없는 것, 환경적인 문제가 없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가 믿는 보호의 개념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보호와 다른 것이에요.
마태복음 10장 28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우리 하나님의 보호의 개념 무엇입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를 두려워하라.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몸은 죽여도 우리의 영혼은 죽이지 못하게 하실 힘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보호의 개념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을 구원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고난 상황 가운데서도
건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녀들을 보호받지 못한 상태로, 우리를 방치해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옥의 세력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를 죽인다 할지라도
결단코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병을 준다 할지라도, 우리를 죽음의 길로 내몬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귀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은 우리를 살릴 권세와 힘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단코 마귀와 사탄에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과 무덤이 예수님의 교회를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요11:25~2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멘.
우리가 지금 여러 세계 각지에서 고난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쫓김을 당하고
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의 영혼이 죽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살리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들은 진 자가 아니라, 승리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선이 바뀌기 원합니다.
시선이 바뀌어, 세상적 기준에 맞추어,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고 계시다는 개념이 지워져버리고
모든 사망 권세의 저주를 끊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내 인생 가운데 승리하는 인생이 되도록 하시옵소서. 아멘.
그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보름 전에 북한 선교하시는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어요.
15살 아이가 먹고 살기 위해 북한의 강을 건넜다는 거예요.
그 목사님이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그 분은 중국의 떠도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남한 땅으로 보내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그 아이를 남한 땅으로 보내기 위해서 같이 기도를 한 거예요.
그런데 그 아이가 예수님을 영접한 거예요.
그 아이가 자기는 남한으로 안 가겠다고.
지금 북한 땅에 부모님도 계시고 형제도 있는데
어떻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남한으로 가겠느냐.
그래서 성경책을 하나 달라. 그리고 쌀도 좀 주면 자기가 돌아가겠다고.
그 선교사님이 너무 마음이 안 좋으면서도 너무 기뻤다는 거예요.
그 아이를 보냈대요.
보냈는데 그 후부터 선교지에서 그 아이에 대한 소식을 한 번도 못 들었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가다가 죽은 거 같다고. 그 선교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아이가 실패한 자입니까, 성공한 자입니까?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자에요.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승리자입니다.
그 고난을 이겨내고 통과해서 그 영혼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건짐 받아
천국으로 간 자에요. 그 아이는 승리한 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한 인생입니다. 이 땅 가운데서 실패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안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여러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세상적 기준으로 ‘나는 고난당하고 있어’ 그렇게 판단할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기준은, 오로지 하나님 말씀의 기준 안에 서야 합니다.
수많은 나라들이 고난당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이 땅에서만 어떻게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대한민국의 삶이 우리가 보기엔 축복 같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축복이 아닐 수 있는 거예요. 왜요?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바라보고 순교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엔 더 귀한 것일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지 못하고
세상 것들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세상 축복을 바라보고 구하는 신앙생활 가운데,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여러분들이 특별해서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여러분을 부르시고 세우신 것입니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 여러분이 힘 써야 하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이 고난을 이겨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요한1서 4:18절 말씀 다 같이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고난을 만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을 보는 거래요. 누구의 사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본 사람들은
우리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 두려움이 쫓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3장 7절 말씀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가 또한 인생 가운데서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이 고난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붙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8: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멘.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을 주님은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인생 가운데서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간절히 찾고 만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작은 고난에도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 넘어질 수밖에 없어요.
▲북한에 지하 교회가 1,500개 있대요.
인구수로 따져보면 1.2퍼센트랍니다.
그 1.2퍼센트가 다 천국에 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에요.
여러분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인이 몇 퍼센트입니까.
그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전부일까요.
우린 대한민국에 살지만, 우리는 북한에 사는 사람처럼 그렇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힘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여러분의 환경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여러분의 고난을 꺾지 못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이미 예수님께서 구원으로 부활로 이뤄놓으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그분의 복음을 통해서
온전히 주님으로 인하여 새로워지는 귀한 시간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서 보호 받았던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성경 66권 전체를 보면. 하나님을 찾는 자, 예수님을 찾는 자들은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예수님 앞에서 모든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들을 버리고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줬어요. 아멘.
지금도 동일합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많은 것들을 누리는 게 죄가 아니에요.
큰 집에 살고 좋은 차가 있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죄입니까?
그게 내 전부가 되면 죄인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누리고 있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세상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여러분들,
하나님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정 가운데 직장 가운데 교회 가운데
부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 다 같이 찬양하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내 백성을 가게 하리라’ 찬양하면 좋겠는데요.
가사를 생각하면서. 고난당하고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열방에서 그 고난 가운데서
그 고난과 사망과 저주를 이겨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순교의 자리를 통과하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를 기억하면서
하나님, 그들에게 이미 주님께서 이뤄놓으신 그 구원, 그 죽음에서 부활하신 승리가
그 땅을 덮게 하여 주옵소서.. 라는 마음으로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타자 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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