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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

LNCK 2015. 6. 19. 13:38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            나훔1:1~8      11.06.13 출처보기

 

 

 

 

오늘 나훔서 1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고후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심판에 자유로운 나라, 자유로운 개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은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지옥 심판은 혹시 아니더라도,

그런데 크리스천도 불순종하고, 실족할 때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진노를, 이 땅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가운데

건짐 받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훔1: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나훔은 선지자입니다.

나훔서의 주제는 니느웨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런데 이 니느웨 심판의 경고와,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상관이 있습니다.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지금 이 시대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느웨의 범죄함이, 이 땅 가운데서도 똑같이 보여질 때면,

그 나라는, 어느 나라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니느웨가 왜 심판받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니느웨가 심판당한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앗수르의 수도

나훔서 3장에 보면, 그 심판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1) 첫 번째는 이쉬타르 라는 신이 있었어요.

이쉬타르는 음란의 여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음란의 여신을 섬기며, 그들의 삶이 음란했던 것입니다.

 

2) 두 번째 심판의 이유는,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와 그 백성들은 아주 잔인했습니다. 그리고 행패가 심했습니다.

남의 피 흘리기를 좋아했습니다.

 

, 그들은 자기의 강함을 자랑했습니다.

잔인하고, 행패를 부리고, 남의 피 흘리기를 즐겨하는 것은,

자기의 강함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약해!’ 하는 사람이, 잔인할 수 있을까요? 행패를 부릴 수 있을까요?

남의 피 흘림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자기가 약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싸움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어땠냐면, 실제적으로 강했고, 자기 강함을 자랑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인데, 앗수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앗수르는 얼마나 강했던지, 당시 고대 근동의 모든 국가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를 침입하였다가

   히스기야 왕때,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으로,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군대가, 하루아침에 185천명이 천사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급히 자기 나라로 도망갔던, 그런 아주 강한 나라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한 나라로 소문난 이집트 까지 멸망시킨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앗수르는 최고의 힘과 권력을 가진 힘 있는,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 땅이 심판받는 이유는,

너희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최고의 힘만 가졌다고 해서, 강한 것이 아닙니다. 핵심 포인트

어떤 사람은, 아무 힘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러운 나라와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였습니다.

 

그들은 힘없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민의식 때문에, 자기 나라는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기 자신의 강함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북이스라엘과 애굽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가 강하다' 라고 생각하는 나라와 백성들에게

심판이 임했음을 우리들은 볼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죠.

청년 사울이 처음에 왕에 선택되어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는, 굉장히 겸손했습니다.

얼마나 겸손했냐면, 왕이 되어서 전쟁을 하러 나갈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 제사를 인도할 사무엘 선지자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와서, 예배/제사를 드리고 나서 전쟁에 나가면,

희한하게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초기의 전쟁에서 승승장구 가운데서

사울의 마음에 나는 강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교만함이 언제 드러나는지 아세요?

블레셋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사무엘을 불러오라고 해요.

그런데 사무엘이 더디 오는 겁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까짓거, 사무엘만 제사 드리나? 내가 드리면 되지그래서 자기가 주도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자기가 강한 겁니다.

나의 강함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심판으로 말미암아, 왕의 직분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어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내가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강하다고 말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강하다고 말하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에요.

 

 

적용

 

여러분,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이 시대에도 여러분을 향하여 주목하고 계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향해서도,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부강한 나라다.. 이 정도면 살만하다.'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자랑하는 이 교만함이 멸망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살만하다고 생각하시죠? 자기 힘으로 이뤄서, 이제는 편안하다고 생각하시죠?

우리는 절대 자신이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상황 가운데 처하도록, 나를 도우시고 복 주셔서 이렇게 된 것이지,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그 축복이 계속 보존되어집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여러 성도님들을 만났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청년들도 만났고, 어릴 때 가르쳤던 주일학교 학생들,

지금은 장성한 그들도 만나 보았습니다.

 

그런데요, <내가 강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자기 자아가 강한 사람이 있더라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공부해서, 성공하겠다는 사람!

대학에서 지독하게 공부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증명해 보이겠다는 사람.

여러분, 그런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좋은 직장에 한 번 들어가 보겠다.’

그런 소원은 건전한 것이지만, 그걸로 자기를 증명하고

자기의 강함을 나타내 보이려는.. 그런 야심이 가득찬 친구들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해 보겠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녀를 보란 듯이 잘 키워가지고

내가 만족할 만한 자녀로 키워보겠다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영광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고,

우리가 이 세상에 보내진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입니다.

자기가 너무 강하고, 자기가 너무 쎄니까, 온통 눈에 자기 밖에 안 보이는 거죠.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의 지병을 한 번 고쳐보겠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녀의 질병을 한 번 고쳐보겠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치유를 간구해야 하지만, 자기 자아가 너무 강해서,

병들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끝까지 바라보면,

그 사람이 나중에/결국에, 잘된 사람을 제가 못 봤어요.

정말입니다. 잘된 사람을 제가 못 봤습니다.

 

여러분들의 자아가, 내려놓아져야 될 줄 믿습니다.

나의 교만함이, ‘나는 내가 노력하면 어떻게 할 수 있어’.. 라는 그 자만심이 내려놓아질 때,

그것이 심판이 아니라, 그것이 저와 여러분께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내가 강할 때, 결국은 내가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는데요.

교회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저는, 제가 이때까지 읽었던 성경 지식,

제가 부교역자 생활하면서 20년동안 경험했던 그 목회와 사역의 경험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원 때까지 공부했던 그 지식들, 이런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어떤 문제가 닥치면 즉시로,

제가 바로 결론과 해결책을 딱 결정짓게 되는 겁니다.

, 이렇게 해결하면 되겠구나!’ 합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하고, 저 사건은 저렇게 대처하고..’

,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로 묻지 않고, 그저 자기 판단으로 처리해 버립니다.

이게 다 자기가 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성도님들이, 어떤 문제를 갖고서 조언을 구하러 옵니다.

그때 저는 즉시로 성도님, 이렇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 보시죠!’

 

그런데 이런 태도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내 자아가 강한 것입니다.

내가 너무 강하니까, 하나님께 기도로 묻지 않고,

이것은 이게 답이다라고 결론 내려 버립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때 결국 느끼는 것은, 절망입니다. 좌절입니다.

이런 절망과 좌절 가운데서, 우리 주님이 위로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5:30절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주지 않으시면,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면,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겸손함입니다.

 

그런데 감히 예수님도 아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매사를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내 강함을, 은연중에, 하나님 앞에 드러내며,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온전한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어야 될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들려주시지 않으면, 나는 절대 한 발걸음도 움직이지 않겠다!’

이렇게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내 발걸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까지요?

 

15:4절부터 나오는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처럼

내 안에 거하라(머물러 있으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강함과 교만함을 드러내지 말고 이게 모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거라 했습니다.

내 자아가 강한 것을 온전히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음성을 듣고서, 여러분은 움직이십시오.

 

여러분, 이러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 누굴까요?

사도 바울입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 자신이 강하다’..의 반대말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입니다.

내 생각이 죽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서 나온, 그 행동이 죽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심판 가운데서

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자신이 강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세요?

신앙생활 하면서도, 말씀이 자기 귀에/마음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나 자신이 강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교회는 5~10~20년 다녔는데도,

말씀이 자기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말씀이 임해도, 기뻐하지 않고

말씀이 임해도, 슬퍼하지 않고

말씀이 임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내 자신의 의로움만 계속 내세웁니다.

 

 

회생할 수 없는 심판을 받은 니느웨

 

여러분, 니느웨가 본문 나훔서 말고도, 요나서에도 나옵니다.

요나서에서 보면, 심판을 받아 멸망 받을 그 니느웨가

요나의 회개의 선포로 말미암아, 돌이키고 구원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같은 니느웨인데, 나훔서에서는

너희는 멸망 받고 심판받을 것이라고 나옵니다.

 

왜 요나서에서는,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나훔서에서는 심판과 멸망을 선포하십니까?

 

연대기를 보면알 수 있어요.

요나서가 나훔서보다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니느웨가 우상을 섬기고, 너무 고집스러워서, 잔인하고, 피 흘리기를 좋아하니까

그 땅을 멸망시키겠다고 하나님이 요나를 보냈는데,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옷을 찢고 회개하니까.. 요나 때는 심판을 면했습니다.

 

그런데 회개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 겸손이 오래 가지 못하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니느웨)가 다시 강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훔 선지자를 보내서

너희의 강함과, 너희의 잔인함과 너희의 압제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심판하리라

 

그런데 나훔서의 예언대로 이루어졌을까요/ 아닐까요?

놀랍게 역사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앗수르는 주전 612년에 멸망했는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다시 일어서지 못할 만큼 멸망 받았습니다.

 

다른 나라는, 멸망을 받았어도

다시 일어난 민족이, 역사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조선도 일제 강점기 때 멸망 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어졌을 때, 그 심판이 이루어졌는데,

다시 회생할 수 없는 자리까지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회생할 수 없는 심판.. 여러분의 시대에도 반드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두려워 떠는 마음으로 들으십시오.

 

여러분, 주님 오시는 날, 그 회생할 수 없는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냐고요?

우리는 정확히 모르지만, 말씀에 비춰보면 임박했다는 것은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심판이 임박한 이때에,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여러분, 그것은 바로 내가 연약해 져야 해요.

내 강함이 내려놓아져야 되요.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을 내버리고

내가 공부를 하더라도, 가정을 꾸려나가더라도

내가 교회에서 봉사를 하더라도, 내가 전도를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라는 겸손함이 나를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몰랐던 니느웨

 

1.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성품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나훔서는,

절대로 그들이 강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지 않았어요.

 

니느웨가 멸망한 이유에 대해서 성경에 말하기를

 

1: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니요?

노하기를 더디하셨기 때문에, 요나서 때 심판을 면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이 편안한 이유가 뭔지 아세요?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을 많이 했기 떄문에?

내가 겸손했기 때문에?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대한민국 땅이 심판 받아 마땅할 땅이지만,

하나님은 이 땅을 향하여 기회를 주시고, 눈물 흘리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이 땅을 지켜보십니다.

 

그걸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니느웨가 멸망 받는 이유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아는 지식이 없어서 너희가 멸망하는도다

 

내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끊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으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1:3

 

2. 선하신 성품

나훔1:7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여호와는 선하시다고 하십니다.

아니 그렇게 무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니요?

여러분, 왜 선하신지 아세요?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가운데 심판을 행할지라도, 너희들이 내 안에 거하기만 한다면,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내가 너희에게 산성이 되어서

너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겁니다.

 

이 땅이 심판이 임하는 땅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진노와 심판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겸손해져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하며 돌아오기만 하면

내가 그 땅을 회복시키고, 그 환경을 회복시키시고, 너희를 내가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선하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끝까지 여러분께 기회를 주십니다.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당하는 환난이 얼마나 더 깊어져야

주님께 돌아오겠습니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여러분, 더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더 큰 환란이 여러분께 임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을 향하여, 기다리시며 눈물 흘리시는 그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우리가 바라보고, 우리가 그 분께 다가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볼 때에,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보호하심이, 주님 오실 그 심판의 때에 건짐을 받는 비결입니다.

 

마치는 말

우리가 드려지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일날 듣는 설교가 무엇입니까?

그 설교만 들으면 예배드리는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이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서, 내 자아를 죽이고, 겸손하게 그 말씀을 받아서,

믿음으로 반응하며, 돌이키는 삶을 사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도 이 나훔서를 통해 선포되어졌던 그 하나님의 성품이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성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오늘날 환난 가운데 있지만,

너희들이 돌아오면, 내가 너희를 품고, 내가 너희 산성이 되어서,

그 누구도 너희를 해할 수 없도록, 내가 너희를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이 시간에 여러분께 위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고 있는 그 고난, 어려움을, 여러분 애매히 받지 마세요.

그냥 있지 마세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세요. 주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주님이 산성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공부할 때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교회 나가기 싫을 때도 주님 이름 부르시고,

말씀이 들어오지 않을 때도, 주께 부르짖으십시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세요.

우리 아버지가 여러분께 산성이 되어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오늘도 그 능력의 하나님을 붙들고,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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