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불’을 드리는 기도 레10:1~20 15.06.12.출처보기
*원제목 : 진노를 사는 기도와 상급을 받는 기도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나답과 아비후가 분향(향을 피워서 올림)하다가, 죽었습니다.
분향은.. 오늘날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도대체 기도를 드리는데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 자리에서 즉사(卽死)하는 그런 기도가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시는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인데, 즉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만 하면 대부분 무조건 합당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것이라고 여기는데,
실상을 보면 우리가 하는 기도의 대부분이
오늘 본문에서 읽은 대로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기도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한국교회 안에서 드려지는 기도들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 제사장이 기도하다가 죽은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성막의 법궤가 들어있는 지성소와 휘장이 있고
휘장 바로 앞에 분향단이 있는데,
이 분향단의 향을 피우는 일이, 기도를 뜻하는데
분향단의 향을 피울 때, 다른 불로 향을 피우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번제 단의 불을 사용하지 않고, 아무 불이나 사용해서 분향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기도를 멋대로 했다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와
하나님이 준비하신 상급을 받아 누리는 기도를 할 것인가를 동시에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자, 이렇게 분향단의 향 피우기가 뜻하는 기도의 메시지를 전하시면서
곧바로 우리가 읽지 않은 부분 8절 이하에 보면 성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고 들어갔거나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과 같은 상징적인 상태로 들어가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는 말씀은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가서 등대를 관리하고 향을 피우고
진설병 떡, 상위의 진설병을 놓거나 바꿀 때 항상 돌아봐야 할 것이
내 마음의 성막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막의 구조가 제사장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마음의 지성소 안에는 내 마음이 첫 번째로 사랑하는 대상이 들어오는 자리요,
첫 번째 관심사인 궁극적 관심사가 들어오는 자리로 지성소에 들어온 것에 의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의지적 활동을 하면서 인격체로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갈 때, 지성소 바로 앞의 분향단에 향을 피우는데
사람은 무엇이든지 지성소 안에 들여놓은 그것을
현실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추구하기 시작하는데
이 활동전체가 사실은 다 기도예요.
인간의 모든 삶은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여놓은 것을
현실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기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고 잘못된 말이 아니지요.
▶여기서 ‘포도주와 독주’로 말씀하신 이유는
마음의 지성소 안에 무엇인가를 들여놓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 기쁨을 줄 수 있고
그것이 내게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의 지성소 안에 돈을 들여놨다고 하면
돈이 주어지면 기쁠 것이라고 믿고 만족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돈, 돈 하면서 삽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만 기도가 아니라
사실은 삶 전체가 추구하고 성취하기 위해서 뛰는 것도 기도입니다.
마음의 지성소 안에 돈을 들여놓으면, 친구를 만나도 마음속에서 돈, 돈하고,
거래처를 만나도 돈, 돈 하고, 아내를 만나도, 자식을 만나도 돈, 돈 하고,
자식에게 돈을 잘 벌려면 이렇게 살라고 하는데 이게 취한 것입니다.
마음의 지성소 안에 뭔가를 들여놓으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돈, 돈 노래를 부르고, 자식을 들여놓으면 자식, 자식 노래를 부르고
또 일정구간 승진에 마음에 꽂혀있으면, 승진할 것을 생각하면서
동료를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누르고 승진할까
상사를 보면 어떻게 잘 보여서 승진을 할까.. 완전히 승진에 취해 있습니다.
마치 술이 들어오면 몸 전체와 생각전체가 다 술에 취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성막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인격을 상징하는 말씀의 돌판이 들어있는 법궤가 있는 지성소 휘장 바로 앞
분향단에 기도의 향을 피우는데
나답과 아비후의 마음이 뭔가 다른 것에 취해 있었다는 것인데
돈에 취해있거나 승진에 취해있거나 자식에 취해있거나
다른 것에 취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분향단의 향을 피울 때는
반드시 성막 바깥에 있는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서 향을 피웠어야 하는데
다른 불을 가져다가 피웠다고 합니다.
번제단의 불이 아니라, 다른 불을 가져다가 향을 피운 것은
(번제단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불사르고 태워야 하는데)
마음의 지성소 안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이 들어와 있어서, 취한 상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교회나 기도원에서 주여 삼창하고 기도를 드릴 때
거의 모든 사람의 80% 이상은, 그 자리에서 나답과 아비후처럼 즉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밤새 철야기도를 하는데,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고, 밤새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마음의 지성소 안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신 상태가 아니고
다른 것에 취해서 기도를 하는데, 다른 것이 왜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것이 내게 기쁨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고, 그것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나답과 아비후가 즉사했던 것과 같은 진노는, 그 기도의 현장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돈에 취해서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하고,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나를 기도하는 그 자리에서 즉사시키는 하나님의 진노는 내려오고 있는데요..
▶그 진노를 주님이 십자가에서 받아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 죽으심이 한 번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영원한 의미가 있어서 무한반복 되는 죽음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속죄적 죽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세상 것들을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여놓고 거기에 취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
그 속죄제도 아무 의미가 없는 상태로 영원한 지옥의 멸망으로 떨어지고 즉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되,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드리되
내 마음의 지성소 안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들어와 계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것이 들어와서 세상 것에 취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더 죄질이 악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나를 위해서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는 비용을 치루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무효화시켰으므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아예 부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악한 것이고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밖으로 나온 다음에 죽이셔도 되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즉사시켜버렸는데.. 이 뜻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목숨을 거두어 가시면서 대대로 선민들에게 전하시려고 하시는
그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우리가 캐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상급을 받는 기도와 진노를 불러들이는 기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살펴봅니다.
말씀드린 대로 지성소 휘장 바로 앞에 있는 분향단의 의미가 첫 번째입니다.
등대의 의미보다 더 앞서고, 진설병의 의미보다 앞섭니다.
진설병 떡 상의 의미인 하나님으로 배부름은 분향단의 기도가 잘 이루어질 때
배부른 것이고,
또 등대의 의미인 이 세상을 밝게 보고 살아가는 것도
분향단의 기도가 잘 드려질 때 가능한 얘기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분향단의 향을 피우는 것은, 오직 번제단의 불로 피울 수 있습니다.
번제단의 불이 뜻하는 것은 번제단의 불은 마음의 지성소 안에 돈, 자식, 승진, 건강,
이 세상의 성공, 목사님들의 경우는 숫자적인 부흥, 예배당 건축
이런 것들이 들어와 있는 나의 인격이 각이 떠져서 불살라버리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의 불은
마음의 지성소 안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이 들어와 있는 나의 인격을 죽이는 불이고,
나의 죽음을 초래하는 불이고, 나를 죽이는 이 불을 가지고 향을 피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죽이는 불로 기도가 점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가 된다는 것인데
마음의 지성소 안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들여놓으면 안 된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연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내가 자식을 사랑할 수 있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고,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데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대상들을 가만히 보면, 5감각으로 잡히는 것들입니다.
추상적으로 평화를 사랑한다고 해도, 추상적인 평화지만 평화가 뜻하는 바가
현실적으로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이 눈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평화를 사랑하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5감각으로 잡히질 않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만져지지도 않는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5감각으로 잡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내 마음이 죽음으로써, 간접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보이는 사랑할만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죽음으로써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치 A라는 남자와 B라는 남자가 있는데
두 남자 중에 한 남자를 결정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 여자에게 있어서
A를 결정했다고 하면, B라는 남자에 대해서 죽어야 하고,
더 엄격히 말하면 A를 결정할 때, 이 세상의 다른 모든 남자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A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남자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을 동시에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직접 하나님을 만지면서 사랑의 뜻을 표현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어떻게 표현을 하겠습니까?
보이는 사랑할 만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죽음으로써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마음의 지성소 안에 들여놓은 그것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마음의 지성소에 돈을 들여놓은 박씨 아저씨가 돈을 추구하는 것이 기도인 것처럼,
내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을 모셔 들였으면, 이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기도가 돼야 하는데
하나님을 추구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면 되는 것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봉사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추구해서 하나님으로 배부른 자가 교회를 봉사할 수는 있지만
교회 봉사 충성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세상 복을 추구하느라 교회 봉사하는 것이지요.
교회 봉사 열심히 하면 복을 주신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자기 바램’이예요.
마음의 지성소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셨을 경우에
하나님을 추구하는 방법은,
자꾸 이 세상에서 추구할 만큼 좋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나를 죽이는 것이고
나를 죽이기 위해서 번제단에서 불이 붙고 있기 때문에
나를 죽이는 이 불이 세상에서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추구하는 것들에 대해서 내 인격과 내 마음을 태워 죽이는 이 불이
내 인격을 점화시키고, 그래서 하나님만을 향해서 살도록 하는 이 준비가 되고 나서야
기도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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