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우회전략, 이슬람 이민과 금융 신15:4~11, 딤전2:1~2, 출처1. 출처2.
◑기독교가 경제정의에 무관심하면, 그 촛대를 옮기십니다.
이슬람 금융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참고로 저는 경제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대략적이고 개략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먼저 신15:4~11절을 보시겠습니다.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6.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위 구절을 보시면요,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에게
힘들고, 어렵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품고 배려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죠.
우선 이 말씀 구절을 곰곰이 생각하시면서
이 시간에 이야기 하려는 내용을 연관 지어 보면, 기독교가 경제정의 실천에 무관심할 때,
성경이 그렇게 명령하시는 데도, 우리가 고의적으로 무관심/불순종하면
하나님은 그 ‘경제적 촛대’를 이슬람 등 다른 이방에게 옮기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예를, 아래에서 영국, 베트남 등으로 들고 있습니다.)
이슬람 금융이 우리가 익숙하고 친숙한 금융 시스템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아래에서, 그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봅니다.
▶우선 서론으로, 참 슬픈 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다, 또는 신앙이 좋다는 분들을 보면,
막상 돈을 벌고 모으고 쓰는데 있어서는, 신앙심과 믿음이 빈곤한 경우가 많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신앙과 물질관이 따로 노는 겁니다.
그리고 돈을 벌고 모으고 쓰는 영역에 있어서는, 성경적 사고가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 개념들을 살펴보면, 우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예를 들면, ‘적은 투자를 하고, 큰 수익을 거두는 것이 현명한 투자다’ 이런 개념,
혹은 돈이 돈을 번다.. 이런 개념,
혹은 큰 위험을 무릅써야지,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개념들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들이 성경적인지요?
우리가 너무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선, 적은 투자를 하고 많이 거둔다는 말은,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개념일지 모르나,
하지만 최소투자로 최대이익을 거두려다 보니까, 무슨 일들이 발생하는가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아이들이 땡볕에서 오래도록 커피 열매나 코코아를 채취하고
저임금을 받습니다. 목화농장도 마찬가지고요.
국내에서도, 납품업체를 쥐어짜서 단가를 후려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나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축복을 받았다고 얘기한다면,
몇몇 소수에게 큰 물질이 돌아가기 위해서, 다수를 유린, 억압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큰 물질적 복을 주셨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게 과연 성경적으로 바른 생각/삶일까요?
※혹자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최저임금 및 임시직과 연관짓습니다.
청년들이 정상적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니
결혼 포기, 나아가 출산포기까지 연결되는 겁니다. 상생이 안 되면, 결국 나라가 기울 수 있습니다.
뒤통수 맞는 격이지요.
▶‘기독교 신앙’과 ‘경제활동’에 있어서 이상적인 모델은
기독교 신앙의 확고한 정립가운데, 경제활동이나 자본주의가 그 지배를 받아야 되는데,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경제 활동’과 따로 국밥처럼,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경제 활동을 위해서, 기독교 신앙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구조로 가면, 둘이 따로 놀게 될 때
믿음 믿음 하면서도, 막상 돈 문제에 대해서는 철학과 신앙이 빈곤하게 됩니다.
어떻게 벌고, 모으고, 써야 될지를 모릅니다. 무조건 '복'만 외칩니다.
그런 분들에게 막상 조언을 하면,
‘내 돈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데 뭐가 상관이냐?’ 하면서 오히려 되받아칩니다.
또 믿음 믿음 하면서도, 경제활동은 성경적이 아니라,
철저히 자본주의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러다가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 나오는, 그 속의 부자처럼 될 수도 있는 거죠.
▶자 경제활동 밑에 기독교 신앙을 두면,
성경 구절들이, 경제활동 및 자본주의를 정당화 시키는 방향으로 이용됩니다.
신앙이 마치 자본주의의 시녀로 전락하게 됩니다.
‘번영신학’ 이라는 기형아가 탄생하게 되는 거죠.
지금 현실적으로 우리는 주위에서 ‘잘못된 경우’를 종종 보는 데요, 즉
-기독교 신앙과 경제활동이 완전 서로 별개인 것처럼 따로 놀던지
-기독교 신앙이 경제활동에 시녀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에서 말씀드린 신15:4~11절을 실천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를 믿는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똑바로 못 서 있으면,
항상 대적들이 강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이 강성해지고 힘을 갖고,
주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을 허용하십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경제활동을 잘못할 때, 그렇게 악의 세력이 강성해지도록 허용하십니다.
그래서 그 징계의 막대기로 기독교인들을 때리셔서,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이죠.
◑이슬람 금융의 특징
▶2007~2008년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는요,
자본주의의 병폐를 다 보여준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그 사건 이후에, 이슬람 금융에 대한 논의가 학계에서 활발해졌습니다.
자 그러면 이슬람 금융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특징을 한 번 살펴봅시다.
우선 이슬람 금융은, 샤리아 법에 근거해서 금융활동을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기독교신앙을 경제활동에 잘 적용시키지 못했다’ 라고 하지만,
이슬람 금융은, 철저히 이슬람 종교적 가르침대로 잘 시행되고 있습니다.
상당히 성공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슬람은, 경제활동이 철저히 이슬람 종교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런 구조로 정착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금융의 특징은, 이자가 없습니다.
이자 개념이 아예 없습니다. 주1) http://blog.daum.net/ygbhygbh/7058344
예금을 맡기면, 그 은행은 회사에다 투자를 하겠죠.
그 회사가 이윤을 내면, 그 이윤에서 예금을 맡긴 고객에게 일부를 지급합니다.
그래서 이자가 없습니다. *수쿠크
이자 대신에 수익금을 주는 구조이죠.
그런데 기독교 금융에는, 이자가 당연하죠.
대출이자가 예금이자보다 높고, 그 차익으로 은행이 유지됩니다.
그리고 건물이라든지, 집이라든지
부동산을 사게 되면, 이슬람 금융에서는 공동소유개념으로 갑니다.
어떤 개인이 집을 사면, 이 집은 그 개인과 은행의 공동소유가 됩니다.
그래서 개인이 은행에다, 이자가 없으니까, 렌트비를 냅니다. 이자가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금융은 개인소유죠.
어떤 면에서는 이슬람 쪽에서는 더 공동체 개념이 강하게 작용하죠.
기독교 금융은, 집을 사면
대출 끼고, 은행에 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이슬람 금융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또 다른 특징은, 기독교 금융은, 이윤이 되는 곳에는 투자를 합니다.
이때 윤리적인 것은 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돈만 벌어준다면,
무기를 만들어 팔든, 마약을 팔든, 음란물을 팔든, 폭리를 취하든 별로 상관 안 합니다.
사채놀이, 대부업도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주들의 이익만 된다면, 사람들을 수 천 명을 해고하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일들, 별로 상관을 안 합니다. 이윤추구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슬람 금융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곳에는, 투자를 못 합니다.
이슬람 종교가 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술 제조업, 도박, 마약.. 이런 쪽으로 투자를 못합니다.
그래서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슬람 금융이 더 윤리적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슬람 종교법이 지배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기도 범죄와 죄악이 똑같이 있지만요.
이것은 대략적인 설명이었고요.
저는 이슬람 금융의 전문가도 아니고, 제가 ‘기독교와 이슬람’이란 수업을 들었을 때
이슬람 금융에 대해 페이퍼를 쓰면서, 대략적인 연구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지식을 지금 여러분과 나누는 것입니다.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 신앙이 기독교 물질관과 따로 노는 경향이 강했지만(특히 개신교)
이슬람은 기독교보다 ‘구제, 경제정의’면에서 더 잘한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7세기 경, 이슬람이 중동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때, 이전에 기독교 지역이었던
북아프리카, 중동아시아가 순식간에, 매우 빠른 속도로 모두 이슬람화 되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역사학자들은 ‘이슬람식 경제 정의’를 듭니다.
그곳 주민들 중 다수가, 이슬람식 경제 질서가, 자기들 생활에 더 낫다는 겁니다. 과세 제도 등.
그때 이슬람화 된 이후로, 지금까지 그 지역이 계속 이슬람으로 남아 있죠.
제가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 보니까, “오늘날에도 이슬람 은행을 방문하면,
은행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회당(이슬람 사원)에 온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기독교 사회가 잘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신자, 타종교인 중에도, 기독교보다 더 바르고 윤리적인 분들이 있지만,
그게 대세이고, 대부분이면.. 뭔가 크게 잘못된 거죠.
기독교인들이 경제 정의를 실천 못할 때, *촛대를 옮기시듯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주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나누면서
경제 정의에 애를 썼던 호치민에게 베트남을 다스리도록 허락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말씀대로 못 사는 사람들보다
예수를 안 믿는 정의로운 사람에게, 하나님은 베트남을 넘겨주신 것입니다.
*호치민의 월맹에게 패망했던 월남은, 프랑스, 미국의 영향으로 그래도 상류 사회가 기독교를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재산을 팔아가면서 테러 운동을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에게
미국이 고생하게끔 놔두신 것은 혹시 아닐까요?
믿는다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불신자보다 못한 도덕, 윤리관을 볼 때,
과연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부디 우리의 신앙이, 우리가 삶속에서 하는 모든 경제, 사회 및 모든 영역에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장악해서, 대적이 우리보다 절대로 강해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적 또한 진리의 길로 이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이, 우리의 모든 영역을 다 지배하는 구조로 가야 되는 거죠.
▶정리하면, 특히 물질분야, 이게 안 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금융이 강성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가 똑바로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대로 서 있지 못할 때, 대적이 강해지더라.. 는 것입니다.
어디서 듣도 보지도 못하는 자들이 갑자기 신흥강국으로 부상하고..
그게 구약 성경의 역사입니다. 아람, 앗수르, 바벨론 등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신앙도 있고, 믿음도 있다고 하지만
막상 돈을 벌고, 모으고, 쓰는 영역에서 전혀 기독교적인, 성경적이 아닌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많이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신명기 본문 말씀을 실천, 순종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슬람은 영국을 어떻게 망가트렸는가?
이슬람 국가가 56개국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중에 중동에 위치한 나라들이 1970년대 초부터 석유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에 오일쇼크가 두 번 일어납니다. 둘 다 70년대에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석유자원이 없는 한국 같은 나라는 정말 힘들지만
중동 산유국들은 엄청난 이득을 보겠죠.
이게 솔직히 오일쇼크라는 것이
자기들끼리 가격 담합, 매점매석이죠. 천원에 팔 것을 만원에 파는 거죠.
이때 중동 산유국들이 엄청난 이득을 봤습니다.
이때부터 석유를 무기로 앞세워서 부를 일구고, 어마어마한 자본을 모아서,
중동국가들이 <이슬람 개발은행>이란 단체를 설립합니다.
그러고 나서 금융업에 뛰어들죠. 이때 막대한 오일 달러가 런던으로 유입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유럽의 다른 나라들,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는 이슬람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거든요.
그런데 이슬람 이민자들의 이주와 더불어서, 이슬람 금융까지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은 곳은 영국입니다.
덕분에 영국이 뉴욕과 맞먹는 금융도시가 되었어요.
현재는요, 영국이 독일과 프랑스보다는 이슬람 이민자 숫자가 조금 적지만,
그래도 역시 영국에는 이슬람 이민자가 수백만 살고,
그리고 이슬람 자본으로 샤리아 법에 근거해서 움직이는 이슬람 은행이,
큰 것만 10개 이상이 있습니다.
이런 탓인지, 영국의 기존의 은행들도, 이제 부분적으로 샤리아 법을 받아들이고,
이슬람 금융을 받아들이는 실정입니다. 그들이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이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만약에 수백, 수천억 달러의 자본이면..
지금도 어마어마한 돈인데, 지금 가치의 수 십배입니다.
(1970년대는 한국 서울의 집값도 한 채에 몇 백 만원에 불과했던 시절이었거든요.)
당시에 엄청난 수천 억 달러를 가지고, 영국의 금융시장에 뛰어든 것은, 무시무시했습니다.
영국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통과는,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 법이 2010년도에 통과되었는데,
이 법이 통과된 후에 어떤 일들이 생기게 되었고,
영국의 크리스천들이 지금 어떠한 일들을 당하고 있는지는,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해 보시면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차별금지법’들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려는 일들을
단계적으로 진행했지만, 기독교인들이 막아서서 번번이 무산되었죠.
▶그런데 한국에도, 사탄이 우회해서 들어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흑백의 두 나라가 전쟁을 붙어서, 서로 치열하게 접전을 하고 있는데,
흑국이 우회작전을 씁니다. 전방에 필요한 인원 소수만 남겨놓고,
백국에서 파악 못하는 사이에, 몰래 흑국의 병력을 우회시켜서, 적진의 뒤통수를 칩니다..
백국이 딱 눈치를 챘을 때는, 손쓰기가 어려워지거나 이미 늦게 되는 거죠.
만약 영국에 이슬람 이민자들과 이슬람 금융이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더라면,
영국에서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었을까요? 아마 통과되지 못했을 겁니다.
요지는, 오래전부터 서구의 기독교계가 동성애, 낙태 등을 주적으로 간주하고,
그런 이슈와 싸우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우회전술을 펼친 겁니다.
그게 바로 이슬람 이민과 이슬람 금융의 유입이었습니다. 완전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거죠.
그래서 영국에서 ‘차별금지법’같은 것이 통과되는 것을, 두 눈 뻔히 뜨고도, 당하는 것입니다.
이슬람 이민과 금융이 영국사회를 어느 정도 거대 세력으로 장악해 버린 겁니다.
◑한국도 이슬람 우회 전략을 경계해야
※대다수 선량한 무슬림 말고, 이슬람 원리주의/근본주의를 경계하자는 뜻입니다.
수년전부터 한국에서 영적인 전쟁이 치열해지고, 그 양상은 더 거세어 졌습니다.
기독교의 관심이 종북, WCC, 동성애, 교회의 부패 문제들 공론화에 많이 치중되어 있었지
정작 이슬람에는 관심을 크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 그러다가 이슬람 금융이 지난 정권 때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수쿠크라는 이슬람 채권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여러 기독교 인사들이 반대해서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2015년도 3월에, 할랄 사업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할랄’은 이슬람 음식을 취급하는 건데요, 유대교에서는 ‘코셔’라고 부르지요.
여기 캐나다에서도 가게 창문에 ‘할랄’이라고 써 놨어요. 이슬람 정결 음식을 판다는 뜻이죠.
재미있는 것은, 3월 달에 한국이 할랄 사업에 뛰어들어서, 경제적 이득을 좀 보려고 했는데,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6월 달에 들어서 전국이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때문에
오히려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메르스가 발생한 게 우연이 아니라, 어쩌면 메르스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메르스로 고생하신 분들께는, 깊은 위로와 슬픔을 표합니다.
만약 지난 정권에 이슬람 채권(수쿠크)이 들어왔다면,
만약 이번 정권에서 할랄 사업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이슬람의 자본과 인력이 합법적으로 더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 이슬람 선교사들이 들어오는 경로가,
제가 알기로는, 학생 신분 또는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이 둘이 와서 미리 있던 세력과 합세해서 넓혀지면,
한국에 이슬람 선교사들과 거주민들에게 더 힘을 실어주게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이슬람의 이민과 자본이 자리를 잡아간다면,
영국과 비슷하게 구조가 되지 않겠는가.
‘(이슬람) 차별금지법’ 같은 것도, 그때는 통과되겠죠.
영국에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기 훨씬 이전부터,
영국은 이민 증가와 (돈을 갖고 들어오니까, 그걸 막지 못했겠죠)
이슬람 금융이라는 우회 전략에.. 경계심을 풀고 있다가,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이 강의의 주제입니다.
그러한 전략을, 어쩌면 한국에 제대로, 본격적으로 펼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한 번 해 보는 거죠. 그렇기에 국가 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부디 세계복음화의 사명에서 한국이 낙오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딤전2:1~2절을 읽고서,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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