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탄의 공격이 실제로 있습니다.
약하다는 감정이 자기 연민과 낙담, 절망,
죄에 빠지는 것이라면 나쁠 테지만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고 그 분께 의지하게 하고
그분 안에서 다시 용기와 힘을 얻게 한다면,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움과 자기 연민과 낙담에 빠지는 상황에는, 그 배후에 사탄의 공격이 있습니다.
사탄의 공격은,
사탄이 우리의 혼과 영과 육신에 해를 입히고자
개별적으로 하는 의도적이고 확정된 급습입니다.
사탄의 목적은 매우 매우 분명합니다.
우선,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훼방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영광을 속여
결국 우리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2. 문제는, 우리가 사탄의 공격을
어떻게 회피하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사탄의 공격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마귀가 있는 한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계속해서 여러 다른 관점에서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떻게 공격을 피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극복하느냐. 어떻게 대적하느냐.
어떻게 저항하느냐 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눌 메시지가
바로 그것에 관한 것입니다.
에베소 6장 펴 보십시오.
바울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사탄의 공격 시리즈 세 번째로
두 가지 요건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우선 적을 파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이 누군지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적을 대적해야합니다.
적에 대항해 견고히 서기 위해서
두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합니다.
이것은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으로
믿음으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진리의 허리띠를 매며,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성령의 검을 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말씀에
기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3. 전신갑주도, 기도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신갑주를 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제 우리가 읽을 구절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며
영적전쟁에 관련된 기록을 마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부터 보겠습니다.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To Stand Firm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렇게 전신갑주를 언급한 후에
그 다음18절을 보십시오. *이 설교의 본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7절에서 전쟁에 대한 것을 끝내거나
그 다음 부분은 전쟁 장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은 사탄의 공격에 버틸 수 있는
매우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에베소서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전신갑주만 취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사탄에 대적하기 원 한다면
이 마지막 구절을 잘 알아두셔야 합니다.
이것은 신도의 삶에서 가장
약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가끔씩 우리가 왜 약한지 궁금할 때가 있죠.
이유는 이겁니다.
바울은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의 힘, 권세,
이렇게 세 번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첫째, 사도바울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온전함과 확실함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 초자연적인 능력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능력을 주고
마귀의 공격이 있을 때
본질에 확실히, 견고히 설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4.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 자리에 굳게 <서 십시오!>
:13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To Stand Firm
바울은 ‘대적하라, 서라’는 말을
네 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대적하라, 서라, 대적하라, 대적하라’
우리의 힘의 근원은 그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가능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탄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탄을 거짓의 아비요
이 세대의 신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사는 죄악 된 세대에는
사탄이 매우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사탄의 목적은 매우 분명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오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해져야합니다.
사탄의 힘이 있기 때문에 바울이
말한 것처럼 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전지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바울은 그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성경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분입니다.
여러분 안에 살아계시며,
초자연적 능력이 있고, 사탄보다 더 위대하며
여러분을 대적할 수 있도록
강하게 설 수 있도록 해 주는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사탄의 불화살로부터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느냐 입니다.
문제는 적을 파악하는 것과
전신갑주를 아느냐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종종 빠뜨리는 것이
아주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도로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기도에 대해서
수없이 말할 때는
이 구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산과 바다를
움직일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 뿐 아니라, 죽은 자들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이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 되었고
우리는 영원한 안전을 가졌으며
천국에 속해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또한 우리 안에 살아계시므로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마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이죠.
마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맹렬히 공격했고
광야에서 시험했을 뿐 아니라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때,
돌에 맞게 하려 하였으며
절벽에서 밀어내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 매우 확실한
사탄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공격할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중요합니다.
성경은 가서 악마와 싸우라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스스로 무장하고
마귀를 공격하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대적하라, 대적하라, 서라,
저항하라고 말합니다.
왜 가서 싸우라, 공격하라고
말하지 않은 걸까요?
무장하고 마귀를 쫓으라고
하지 않는 걸까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이미 승리한 것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가셔서
하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 피를 흘리고
우리 모두의 죄를 씻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원한 안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 자기 사명지에 굳게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서 있기만 하면 됩니다.
‘아버지의 임재가 제 안에 있게 하소서.’
그런 기도도 할 필요 없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인) 우리에게서 절대 떠나지 않으십니다.
또는 ‘아버지, 우리 안에 오소서’
그런 기도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 가운데 서고
성령과 그 능력의 임재 가운데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결코 떨어질 수 없습니다.
▲5. 그러나 우리가 마귀와 싸우지 않을 때
마귀는 우리를 공격합니다.
전에 말했듯이,
마귀는 사도 바울을 공격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했으며
살아있는 우리 모두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사는
사람들을 모두 패배시켰습니다.
우리도 그러지 않으리란 것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이미 공격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모두 마귀의 공격에
해를 입은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마귀에게 져 본 경험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사탄의 공격인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싸우지 않고 대적합니다.
여기서 대적한다는 것은
방어적 모드이면서
또한 공격적 모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를 말할 수 있고
마귀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방어적으로 대적하고 또한
공격적으로 대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탄과 싸우지 않고
대적하라, 굳게 서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대적하면
사탄이 달아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탄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적하는 것입니다.
바르고 굳건히 대적한다면
사탄은 우리를 떠날 것입니다.
다시 올까요?
물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도 그랬을까요?
물론입니다.
우리의 적은 완전히 끝나지 않는 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양보나 굴복, 패배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방해받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경건한 삶, 거룩한 삶, 열매 맺는 삶
하나님의 아들께 존귀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무지함 때문에 우리는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6.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세 차례
이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6:10
이것은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힘, 권세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힘과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관점에서 사도 바울이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잘 보십시오.
네 차례나 기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해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바울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이해하기 바라고 있습니다.
바울이 ‘모든 기도’라고 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사탄의 공격에 저항하는데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모든 기도’라는 말이
일반적인 기도를 의미할까요?
간구의 기도, 감사의 기도, 찬양의 기도
중보의 기도 모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내 형제자매가 마귀의 공격을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중보의 기도를 하겠죠.
또는 하나님께서 하신 너무나 멋진
일을 보면서 어떻게 합니까?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을
송축하고 감사합니다.
모든 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하는
기도로서 ‘모든 기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부탁하는 말 ‘간구’라는
말을 따로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즉,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때
자신의 능력을 보이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하고
좋은 하루가 되길 도우며 이런 저런 것을
바라는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축복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종종 큰 축복을 받은 날에
사단의 큰 도전과 공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주님께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도한다면
‘주님, 오늘 저를 보호해 주소서.
저를 주변에 민감하게 해 주소서.’
‘사람들이 하는 말에 주의하고
구체적으로 오늘 일, 만날 사람,
약속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사람들의 말이 아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깨닫도록 해 주소서.
남들이 뭐라고 하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한다면, 여러분은
구체적으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러한 간구에 대한
개념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어떻게 나타내신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구체적인 뭔가를 구하는
기도 가운데 능력을 보이십니다.
우리가 간구하는 그대로 하나님은 하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간구하고’말합니다.
이 말은 날마다 ‘할렐루야, 주를 찬양
주 예수의 이름 송축하세.
▲7. 기도와 아울러 아버지와 교통하십시오.
‘저는 이것을 원합니다. 주세요.’라고
열심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담겨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간구하라는 것은
아버지와 교통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설명해 드리지요.
아버지와 우리는 어떤 순간이든 날마다 하루 종일
한밤중에도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즉, 그분과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말할 수 없다고요?
잠깐만요.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항상
‘오 하나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의식과 무의식 가운데 그분의
임재를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상황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압니까?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어떻게 하실까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하실까?
이것을 어떻게 고치실까?
어떻게 이 일을 이루실까?’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항상 말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종종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원하는데 우리는 의식도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내게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하나님께 ‘지금 무슨 말씀 하셨나요?’
하고 물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니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친밀한 관계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우리는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마귀의 농간과, 계책 책략, 덫,
속임수에 강하게 서고,
선과 악,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을
분별하는 유일한 방법이
항상 하나님과 대화하는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회의에 참석할 때는 성령께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내게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어떤지 알려 주세요.
이 상황을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매 순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인도하고 감싸고 보호해 주십니다.
마귀의 속임수와 계략에 속아서
작게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그 다음엔 크게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할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기도는
정확히 이런 기도를 말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갈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하나님과 얘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무실에 앉아서도
아버지와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모든 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기도를 끝냈다’고
생각하신 적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기도 하러 가야지’
그건 기도가 뭔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단지 애기하고
교제하고 항상 교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고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무릎 꿇고 하는
기도를 싫어합니다.
단지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종일 기도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무슨 뜻일까요? 엡6:18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은
성령이 특정한 상황 가운데
나의 삶에 원하는 것에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성령 가운데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와 지시에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성령 안에서 산다고 하는데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성령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작은 암시를 줍니다.
저는 ‘작은 암시’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어떤 상황에 대해 점검해 보게 하는
자극과 같은 것입니다.
때때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하나님의 영이 작은 암시를 줍니다.
‘말을 조심하라’ 또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니 잘 살펴봐라.’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겠죠.
하지만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다면, 민감해지겠다면,
성령 가운데 걷겠다면
그분께 순종하며 사십시오.
순종하며 살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주어진 삶의
최고의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정말로 신나고, 훈계적이고
조심스러울 수 있습니다.
또한 상황의 좋은 점을
상기시킬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의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를 도울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되’라고
하며 경계를 유지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26:41. 막14:38)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주변 상황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욕망을 품고 있거나
화가 나 있거나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깨어 있어’라는 말은 눈을 뜨고
영적으로 주변 상황에
민감해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가끔 이런 흥미로운 일이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와서 ‘당신에 대해
말한 것 미안해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전혀 모르는 일이지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때때로 주변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분별의 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주변에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
매우 주의하게 됩니다.
경계심을 가지고, 민감해지고, 주의 하여
우리의 적은 가만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불화살을 당깁니다.
▲8. 항상 함쓰며!
마지막으로 이 점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은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라고 말합니다. :18
무슨 뜻일까요?
‘그만두지 말라, 내려놓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바울은 어떤 상황이든
멈추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 붙어서 떠나지 마십시오.
대답을 얻을 때까지 떠나지 마세요.
‘항상 힘쓰며’는 계속 이어나가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매우 주의해야 할 것으로
제가 오래 전에 얻은 교훈입니다.
내 삶에 너무 큰 짐이 있어 기도할 때였습니다.
저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도를 멈추고 일어나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아니다. 아직 아냐.’
저는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때때로 계속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계속 계속 해 나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질 않죠.
‘당신을 위해 기도할께요’하면서도
3, 4일 후면 여러분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벌써 잊어버린 것입니다.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여러분이 그 기도를 잊도록
만든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을 방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뜻을 꺾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어떤 일을 계속 해 나간다는 것은
지겹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는 동안 지겨울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힘쓰라고 한 말은
즉, 그만 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멈추지 말라는 말입니다.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직 아니다. 아직 아니야’하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그만두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 해 나갈 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말을 하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전신갑주를 취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응답을
우리가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삶의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충분한 시간을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위해 구체적인 간청을 할 만큼
그들을 사랑합니까?
그들의 삶에 역사하실 하나님을
살펴보고 기다리십시오.
오늘 아침 여러분이 들었던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공격을 받고 있고
날마다 패배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는지 아십니까?
마약과 술, 섹스 온갖 유혹에
넘어지며 이유를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무너지면서
관계가 깨지면서 이유를
모르고 있는지 아십니까?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을 부르기만 하면,
그분께 부르짖기만 하면
믿음으로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초자연적
에너지와 능력과 힘이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비참함 아니면 능력, 이 둘 중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묘사한다면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최선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릎을 꿇으십시오.
여러분 앞에 놓인 사탄의 모든 공격에
대적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기도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어
마귀의 모든 공격에 대적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구하고 믿고
실천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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