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느헤미야>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전번에 이 책의 개요와 구조가
<에스라서>와 매우 비슷하다고 얘기했지요.
그래서 이 두 책은 똑같은 사람이 (에스라) 기록했고,
두 책이 똑같이 네 단락으로 나누어지며, 똑같이 각각 2, 3, 3, 2개의 소단원으로 나누어집니다.
느헤미야서는 <3차귀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아직 바벨론에 있었고, 거기서 그는 예루살렘에서 온 나쁜 소식을 듣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었는데,
제 생각에는, 그는 에스더와의 관계 때문에 이 관직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더 왕후의 양자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원래는 유대인인데, 왕후가 된 사람이죠.
느헤미야가 이 자리를 얻었지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왕이 술을 마시기 전에, 그가 먼저 이 술에 독이 있는지를 마셔보아야 했는데,
중대한 책임이 있는 자리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왕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는 마치 왕의 물리치료사의 역할과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드시 왕의 신임을 얻어야 했고, 왕과 터놓고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의 인정을 받으며, 아주 가까이서 왕을 모셨습니다.
▶느헤미야가 받은 소식은, 전에 재건한 예루살렘 성벽이, 또 무너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인근의 사람들은, 그 성이 재건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성벽이 재건되면, 그들이 곧 바로 무너뜨리곤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이 소식을 듣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니, 왕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전에 자네의 이런 슬픈 얼굴을 보지 못하였네.’
성경은 말씀하기를, '느헤미야가 기도한 후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느2:4
아주 짧은 기도였지요.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라서, 왕에게 말하기 전에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뭐라고 왕에게 말할까요?’
그는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느헤미야, 너는 나의 좋은 친구니, 내가 너에게 권세를 주리니, 가서 성벽을 재건하여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조서를 내리리니, 건축 자재를 가진 그 인근 지역 관리들이,
건축 자재를 충분히 제공하여, 성벽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는 아주 좋은 시작이었습니다.
▶(1단락의 2소단원은) 그가 돌아와서 밤에 비밀리에 성벽을 살펴보았어요.
이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했습니다.
그는 무너진 성벽을 돌아보면서, 성문 숫자도 세고,
축성이 필요한 성벽의 길이도 계산해 보았습니다.
보세요. 그는 행동하기 전에 먼저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하였습니다.
막무가내로 앞으로 돌진하지 않았어요.
어리석은 사람은, 무조건 뛰어들지만,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과업을 꼼꼼히 살폈습니다.
그 날 밤에, 그는 그 과업을 측정하고, 노트를 했을 겁니다.
그리고 재건에 착수했지요.
◑예루살렘 옛 성의 위치
▶오늘날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성벽 위치를 틀리게 말해도, 사람들은 이해해 줍니다.
왜냐면 구약시대의 성벽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알기 어려우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거기에 서 있는, 오래된 성벽을 보면, 그게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벽인 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사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 지역의 성벽은 '경비 성벽'인데,
그 성벽들은 몇 백 년 역사밖에 안됩니다.
몇 세기전 십자군 전쟁 당시에, 술레이만 대제가 건축한 것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10대 술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구약 시대의 예루살렘 고성인줄 아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고,
예루살렘 고성은 오늘날의 예루살렘 성 밖에 있어요.
(사진을 가리키며) 이 혓바닥 모양의 땅인데, 오늘날의 '성전 지역의 바로 아래쪽입니다.
여기가 오늘날의 성전 지역(과거 솔로몬 성전자리)인데,
지금 거기엔 '바위 돔' 사원과, 악 아크사 사원이 있지요.
이 (성전 지역)의 면적은 대략 13 에이커이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하고 편평한 바위지역입니다.
성전 지역에서부터 산의 능선 아래로 한 내리막길이 있는데,
그 길이 원래 예루살렘 고성의 '높은 거리'입니다.
여기(성의 동쪽)는 기드론 골짜기이고, 판결의 골짜기(욜3:14)라고도 하며,
바로 여기인데, 모두 무덤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 중앙(가운데)에 비교적 작은 골짜기가 하나 있고,
그리고 여기(서쪽)는 힌놈의 골짜기, 또는 게헨나 인데,
물줄기가 먼저는 서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북쪽으로 향합니다.
그래서 이 3개의 골짜기/계곡들이 합쳐져서, 결국 사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첫 두 개의 (동쪽 및 중앙) 골짜기 사이의 산등성이가 바로 여부스 족의 고성이고,
살렘 성입니다. 살렘 에는 전에 멜기세덱 이라는 왕이며, 제사장이 있었으며,
“살렘”은 평안이라는 뜻입니다. 샬롬, 살렘 같은 말이죠.
여기 혀 모양의 (좁고 긴) 땅이 예루살렘 옛 성 자리이고,
성전은 그 성의 맨 윗 쪽 부지에 지어졌고,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려면, '올라가야' 했고, *성경에 '오르자'가 자주 나옴
다윗의 왕궁을 통과해서 '높은 거리'를 올라가야 했습니다.
백성들이 살고 있던 지역은, 다윗 왕궁 아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은, 물 근원이 당연히 문제였고, 성 밖에 한 샘이 있었는데,
적이 침공해 올 때면, 그들이 예루살렘 수원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이 산을 통과하여 터널을 뚫어서 수로를 만들었는데,
이 수로가 성 안의 가장 낮은 곳, 실로암 연못에 도달하게 되지요.
그래서 물을 성안으로 끌어왔는데, 당신은 오늘날 이 수로를 통과해 걸을 수 있습니다.
이 산등성이(옛 성 자리)가, 태양이 낮을 때, 그늘이 져서
남쪽에서 보면 비교적 똑똑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남쪽에서 위로 올려다본 옛 성 지대이고, 오른 쪽은 기드론 골짜기,
중앙은 Tyropoean valley
왼쪽은 게헨나 골짜기(계곡)입니다.
빛이 이 산등성이를 비추면, 골짜기가 더욱 검게 잘 드러나서 옛 성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시대의 예루살렘 옛 성이고, 성전은 그 제일 꼭대기에 위치해 있습니다.
▶여러분, 제게 고고학자들의 자료가 있는데, 아마 여러분들이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이 사진은 동쪽에서 옛 성을 바라보며 찍은 것입니다.
산등성이 위의 옛 성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옛 성 지역에서의 고고학 발굴 현장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여기서 느헤미야의 성벽을 발굴하였어요.
지금까지는 이것만 발굴했어요.(사진)
하지만 이것은 당시 느헤미야가 재건할 때 사용했던 실제 돌들입니다.
제가 그걸 볼 수 있으니, 참으로 놀라워요.
저는 성경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고고학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나 고고학이 참으로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당신의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으니까요.
여기 돌들이, 당시 느헤미야가 직접 성벽 재건을 감독한 돌들입니다.
▶당시 그들은,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집 맞은편 성벽을 건축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아주 조직적으로 일을 잘 맡겼지요.
그는 어떤 사람에게는 보초를 맡겼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한 손에는 도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검을 들었는데,
이는 적이 공격해 오면, 아무 때나 맞이할 준비를 하였던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것은, 단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완공하였다는 것입니다.
7주간 반 만에,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완공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기를, 모두가 자원해서 일하였고,
집집마다 자기 집 앞의 성벽을 쌓았고,
그래서 전 도시를 둘러싸서 건축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성문에 보초를 세워서, 성문 출입을 감시하게 하고,
예루살렘이 마침내 포로 후 최초로 안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성벽을 쌓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이젠 사진을 거두고, 이 책의 개요를 보겠습니다.
◑느헤미야서의 개요 7:33~
▶그들은 방어적인 성을 건축하는 중에, 많은 어려움들을 만났어요.
외적인 방해가 있었지요. 그래서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이 다 동원되었는데,
1) 제일 처음 시도된 방해는 모욕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와서 “너희들이 쌓는 성벽은 여우도 허물겠다.”며 모욕했습니다.
그들은 비웃음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을 보고,
2) 위협을 시도하여, 상황이 좀 더 위태하게 변했습니다.
3) 그들은 심지어 음모를 꾸미고, 느헤미야를 유인해서, 그 일에서 떠나게 하려 했어요.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과 협상을 해야겠다. 오라, 우리가 친구가 되자.
네가 오면, 우리가 서로 상의 해 볼 것이 있다”
그러자 느헤미야는 “아니다, 나는 성벽을 건축해야 한다”며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내적인 공격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성 안에서 대출업으로 인하여, 부한 사람은 더욱 부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대출업에 은사가 있어요.
그들은 오늘날에도 유럽에서, 은행을 통해 대출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
아시겠지만 베어링스 은행의 재산이, 로스차일드 가문 보다는 작아요.
그래서 어떤 유대인은, 고리대금과 담보대출로 매우 부유하게 되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불공평하게 (가난하게) 되었어요. 들어보니 아주 익숙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 백성에게 있어서는 아주 나쁜 것이지요.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부한 사람들의 차이를 좁히려고 하였어요.
▶하지만 성 안에 사는 사람의 숫자는 여전히 적었고, 대다수 사람들이 바깥에 흩어져서 살았습니다.
이러면 만약 적이 공격해 올 때, 도망치기가 비교적 쉽지요.
이로써 느헤미야는 성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성안에 와서 살도록 강권했어요.
그들은 집을 짓고는, 나갔어요. 그래서 느헤미야가 집집마다 찾아가서 설득했지요.
'보세요, 성은 이제 안전하니, 와서 성 안에서 사십시오.'
그리고 특별히 그는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후손들의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그 사람들에게 성 안에 들어와 살라고 설득했지요.
그는 또한 인구 조사를 하였는데, 이는 누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구조사 결과 유대인이 총 42,360명이고, 그 외에 7,337명의 종과, 245명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구 조사는 아주 재미있어요. 그렇죠?
그가 노래하는 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이는 당연히 성전에서의 예배를 회복하기 위함이었지요.
10:22~
▶이로써 에스라가 그 나무 강대상에서 율법을 낭독한 것을 우리는 봅니다. 느8:5
그가 낭독했을 뿐 아니라, 성경의 뜻도 해석해 주었습니다. *에스라가 느헤미야와 같이 활동
그저 낭독만 하면 안 되고, (이해도 해야 하는데)
저는 '성경은 큰 소리를 내어서 읽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을 다시 강조합니다.
여기 오신 분 중에 일부 사람들은 아시지만,
우리 교회에서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두 번 통독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
쥴리, 당신도 그 통독에서 일부분을 맡아 읽으셨지요?
한번 통독하는 데는, 일요일 저녁 9시부터 목요일 아침까지가 걸렸습니다.
우리는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모릅니다. *성경 읽기에 집중해서요
하지만 어떤 사람이 통계내기를, 그 나흘 동안 모두 2천명이 성경 읽는 것을 와서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가 0.5톤 되는 성경을 팔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후로 삶이 완전히 변했고,
많은 사람이 듣고는, 집에 돌아가기를 싫어했다고 하였습니다. '한 권만 더' '또 한 권만 더' 하였지요.
그들은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해요.
그들이 주일에 교회에 가면, 기껏해야 10문장의 성경을 들었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 가면 또 다른 본문에서 10문장 정도의 성경..
이렇게 하면,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만약 당신이 앉아서 성경 한 권 전체를 다 들으면, 진짜로 중독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밤에 오고, 또 이튿날 아침에 참석해서 통독성경을 들었습니다. *직장인
그건 아주 흥미를 유발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성경을 큰 목소리로(에스라처럼) 한 권을 다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각권에서 조금씩 일부분만 읽는 것은, 마치 간식을 먹는 것 같은데,
간식보다야 정찬이 좋지요. 제 말뜻을 이해하실 겁니다.
우리는 성경을, 여기저기서 조금 조금씩 읽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성경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통독을 했지요.
▶그런데 우리는 또한 사람들의 감성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저 지식만이 아니라요
이 비디오 강의가 바로 그런 목적으로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격려할 뿐 아니라, 감성을 느끼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숨겨진 하나님의 목적(지식)과 마음(감정)을, 열어서 명확히 알게 하지요.
에스라가 바로 이렇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성경을 낭독하다가 깨어졌어요.
이로써 울며 고백하는 백성들의 회개가 시작되었지요. 느9장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서로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지금이 울며 기도할 시기'라 생각했고,
느헤미야는 '파티를 열고, 지금 기뻐하라'고 말했어요.
오늘날에도 이렇게 다른 입장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둘 다 가져야죠.
에스라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들의 죄악을 들추어내면서 울었지만,
느헤미야는 '지금은 장막절이고 추수축제의 기쁜 계절이기에, 즐거워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장막절(추수)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짓는 사람'이라고 하였어요.
지금은 기뻐해야 할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기뻐하며 가능한 크게 잘 차려서 먹고 경축하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사실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우리도 울음도 필요하고, 즐거움도 필요합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에 웃어야 하고, 어느 때에 울어야 하는 것을 압니다.
에스라가 그들에게 언약(약속, 헌신)을 새롭게 다시 세우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기로 다시 약속하게 하였습니다.
이 언약의 갱신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도 백성들의 신앙을 개혁했습니다. *에스라처럼요
▶제가 말했듯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차이는, 에스라는 자기의 머리카락을 뜯었는데,
느헤미야는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뜯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차이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두 사람이 진짜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성격은 아마도 외향적인 것 같습니다.
그는 진짜로 범죄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뜯었습니다. 느13:25
그는 또한 이방과 통혼 한 사람들을 징계하여 갈라지게 하였어요.
그는 이방 여자를 아내로 취한 남자들의 머리털을 뜯어버리고, 그들에게 저주를 인용하여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공금을 횡령한 일들도 처리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어떤 사람은, 가룟 유다처럼, 사적으로 공금을 횡령하였습니다.
또한 안식일을 범한 일도 처리해야 했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해 온 사업가들은, 여기서도 동일하게 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여기는 바벨론과 같이 큰 시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안식일에도 가게 문을 열고, 매매를 했어요.
느헤미야가 안식일에는 성문을 모두 닫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장사를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었지요.
하지만 그들이 성문 밖에 천막을 치고 장사하여, 그는 또한 이 상황도 처리해야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도 많은 개혁을 행한 개혁가였고, 그 중 제일 중대한 일은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자기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인데, 그가 이 일도 바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두 사람 다, 반드시 성전, 성벽을 재건하는 건축가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백성들의 신앙을 재건하는 개혁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용기있게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수행했습니다.
◑느헤미야, 이 사람을 봅시다. 15:18~
▶대부분 사람들은 에스라보다, 느헤미야에 대해 더욱 우호적으로 생각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느헤미야에게 아주 좋은 강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큰 장점인데요, 그는 늘 즐거운 사람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도록 늘 격려하였어요.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당신의 힘입니다’라고 그가 말하였지요. 느8:10
여러분, 그 말씀을 수없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느헤미야가 한 말씀입니다.
저는 에스라가 이런 (기뻐하라는)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성경에는 안 나옴
에스라는 백성들을 위해 눈물 흘리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당신의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 두 사람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전과 성벽을 재건할 때도, '도움'과 '위로'가 둘 다 필요했고, *에스라, 느헤미야
우리 신앙생활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지요. *느헤미야, 에스라
우리는 양쪽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제가 느헤미야에게서 발견한 몇 가지 특징에 깊이 감명 받았습니다.
그가 자기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 에스라보다 더 솔직한데요, 느헤미야서에 보면,
그는 '내가 어떻다'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는 마치 '내가'하며 쓴, 자서전적인 구절들이 많이 나옵니다.
거기서 그의 4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성경의 사람'이었고,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학사
다시 한 번, 그들은 서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독불장군 없습니다.
느헤미야의 제일 큰 장점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우리는 그가 드린 아주 긴 기도를 볼 수 있고, 또한 아주 짧은 기도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도의 중점은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깊이에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느헤미야서에서 그가 대중 앞에서 드린 기도를 볼 수 있고, 또한 그가 개인적으로 드린 기도도 봅니다.
우리는 그가, 일 하기 전에 드린 기도를 볼 수 있고, 일한 후에 드린 기도도 봅니다.
이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2) 둘째, 그는 아주 실제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이 점이 좋습니다.
그는 무섭게 실제적이고, 일을 조리 있게 진행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의 일만 생각하는데, 그래서 실제적/현실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면서도, 또한 아주 실제적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손으로 흙을 바르는 일도 거리낌 없이 했고,
일을 배치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조리 있게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성문과 성벽을 재건할 것인가를 연구했고,
그는 그 일을 하늘에서 계시를 받아 처리하려 하지 않았고, 아주 실제적으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실제적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기도의 사람이라면
아주 멋있지 않겠습니까.
3) 셋째, 그는 아주 깊은 감정이 있어서, 깊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아주 슬퍼했지만, 대부분은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어서,
항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을 기쁨을 통해 강하게 하였지요.
하지만 그도 화를 냈어요. 화가 나서 다른 사람의 머리를 뜯어 버릴 정도였어요.
저는 이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는 깊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4) 그러나 무엇보다 느헤미야는 사교적인 사람입니다. 매우 사교적이었어요.
저는, 에스라는, 느헤미야가 했던 것만큼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사람들과 함께 일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인사관리에 뛰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켰던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독립적으로 혼자 일했지만, 느헤미야는 사람들이 항상 같이 일했고,
그도 그들의 옆에서 항상 같이 했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그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일할 때, 그는 곁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할 마음이 생겼지요.
사람들은 느헤미야만 같이 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계속 전진하게 했고, 마침내 완성하게 했습니다.
'동료 여러분, 이제 일을 완수합시다. 힘을 냅시다.'
그래서 느헤미야에게는 뭔가 이와 같은 매력이 있었습니다.
5) 재미있는 것은, 그가 매번 사역을 얘기할 때는 “나”라고 하지 않고, 항상 “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가 개인적으로 성벽을 조사할 때는, “내가 성벽을 돌아보았다"고 했지만,
그가 재건 작업을 할 때는 “우리가 이 성벽을 재건하였다"고 하면서, 공로를 모든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일할 생각을 했고요. 우리가 52일 만에 완공했어요.’
이런 사람이 아주 매력적이지요? 그는 '이 일은 나의 업적이다. 내가 다 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아주 균형 잡힌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서도 매우 실제적이며,
기뻐하면서도, 슬퍼하였으며,
강한 면이 있는가 하면, 부드러운 면도 있으며,
하나님께 민감하면서도, 백성들에 대해서도 민감했습니다.
이렇게 느헤미야는 균형 잡힌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같은 성경 인물들에 의해 영감을 받아야 하고,
그들의 장점을 본받으며, 그래서 가능한 실수를 피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오래 전 역사를 읽고 연구해야 하지요? 19:45~
▶1. (하나님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렇게 오래 된 느헤미야의 역사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거리도 수 천 킬로 떨어져 있고, 년대도 2500년이나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요약하자면, 우리는 성경에서 흥미로운 사건들을 보고, 영감을 주는 인물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스토리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한 민족/나라와 언약을 맺어서 그들과 묶이셨습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해서, 그렇게 우리와도 스스로 묶이셨습니다.
느헤미야는 항상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했으며,
'나의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것이고, 나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며,
나의 하나님이 반드시 이 일을 완성하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주의해 보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약속/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가 그의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순복하면 그가 복을 주시고, 백성들이 거역하면 그가 저주하였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복도 주시고, 저주도 내리십니다.
*복만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같은 하나님이 저주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하였는데, 그것도 그의 약속을 지키신 결과였습니다.
레위기 26:44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만약 계속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면,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지키셨습니다.
그럼 왜 70년이나 포로 되었을까요? <역대기>의 마지막에서 그 원인을 알려줍니다. 대하36:21
하나님이 율법에 '땅도 사람과 똑같이 휴식을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매 7년 마다, 아무것도 심지 말고, 땅을 쉬게 해서, 땅도 안식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음해에, 더욱 많은 것을 거두게 된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500년 동안 그들은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땅이 얼마만큼 휴식을 얻지 못하였지요? 70년입니다.
하나님은 <역대기>의 마지막에서 말씀하기를 “너희들이 땅을 쉬지 못하게 하였으니,
내가 땅을 쉬게 하리라. 이 땅이 70년 동안 휴식을 잃었으니,
너희들이 70년을 이 땅에서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포로 기간이 정확하게 70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 동안 땅은 휴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지키십니다.
그가 의인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고, 악인은 징벌하시겠다고 언약하였습니다.
그는 상도 주고 벌도 줍니다.
이는 그가 이렇게 하시겠다고 약속/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그의 백성 누구에게나 다 적용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요.
바울이 크리스천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5:10
우리 모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2. (하나님은 배후에서 역사하십니다.)
저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 하나님이 물밑에서 안 보이게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이 두 권의 책에는 예언이 하나도 안 나옵니다. 기적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기적을 행하셨는데요.
그가 먼저 이방인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일을 하셨어요.
고레스와 아닥사스다.
하나님은, 안 믿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셔서도 일을 하십니다. 참으로 놀랍지요.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과 인터뷰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하지만 상대방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이때 당신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를 읽을 때) 그런 점을 생각해 보셨는지요?
(기도하면) 당신이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은 조용히 그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십니다.
저는 그런 예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
그 인터뷰가 비록 실제 전쟁은 아니더라도, 마치 전투처럼 아주 까다로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국 제가 말하려고 했던 것들을, 다 말할 수 있도록, 상황이 준비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일을 하십니다.
뭔가 순간 팍 터지는 기적이 안 생겨도 괜찮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도 역사하시지만요.
이 두 권의 책에서 보면,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일으켜서 일을 해 나가십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스룹바벨, 여호수아 *이것도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합당한 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불러서 일 하시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백성들을 위해 합당한 지도자를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이런 방식도, 놀라운 기적입니다. *초자연적인 기적만 기적이 아니라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든 방식이 다 기적입니다.
▶3. (백성들은 쉽게 옛 죄악으로 되돌아갑니다.)
하지만 아주 슬픈 것은, 이것은 제가 어제 여기서 공부한 것인데요,
귀환한 사람들이 다시 죄를 범했다는 사실입니다.
단 한 가지 죄만 다시 범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우상 숭배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무서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다시는 우상을 숭배하는 죄로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죄들을 범했는데, 그건 참으로 비극이지요.
윈스턴 처칠 경이, 2차세계대전에 관한 총6권의 역사 대작을 썼습니다.
제가 읽었어요. 아주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중 제6권의 책명이 아주 재미있어요.
제6권은 2차대전의 막바지 부분을 서술했는데, 그 제목은 “승리와 비극”입니다.
그 부제는 이렇습니다. '위대한 민주주의가 승리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하게 되었다. 사람은 그게 습관이기 때문이다'
이게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의 결론적 판단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그러나 그래서 우리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하게 되었고,
그 이유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너무나 몸에 배여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와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우상 숭배 죄는 범하지 않았지만, 다른 죄로는 되돌아갔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400년이나 침묵하셨는데요,
하나님은 그 4세기 동안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고,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계속하여 때가 차기만 기다렸다가, 그의 아들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선지자 학개와 사가랴..
모두가 재건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고,
우리 성경은 말라기, 그 마지막 선지자로 끝나는데,
그가 이스라엘에게 예언한 마지막 말은 '저주'였습니다.
'저주'가 여러분의 구약 성경의 마지막 단어입니다.
하지만 말라기는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다시 오시기를 바랐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메신저(예수님)를 선포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분이 누구인지 알고, 그 예언이 어떻게 응하였는가를 다 압니다.
◑백성들의 실패와 하나님의 구원 계획 26:48~
▶이제 우리 다시 구약성경의 도표를 보겠습니다. 지금 느헤미야서는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요?
우리가 두 번의 강의를 통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살펴보았는데요,
이것은 구약성경의 '역사서' 중에서, 제일 마지막 두 권입니다. *선지서의 마지막은 말라기
이것은 말라기이고, 400년 침묵 기간이 오기 전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우리 성경에 <말라기> 뒤에 <마태복음>이 연이어 나오니까,
우리는 이 두 권의 시간이 연이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4세기 동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엘리야처럼 입고, 하나님이 주신 예언을 선포하자,
전국의 백성들이 모두 그를 보러 갔던 것입니다. *4백년이나 기다렸으니까요
그는 말하기를 “너희들은 요단강에 들어가 깨끗이 씻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깨끗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생명을 대가로 지불했습니다.
그가,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인 헤롯이, 잘못된 결혼을 했다고 그를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도표에 여기 있네요. 우리는 지금 구약 성경의 마지막을 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말라기>에 예언된 요한(엘리야)은 아직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얘기하겠습니다.
다니엘이 한 가지 놀라운 예언을 했는데요, 그가 이방에 포로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그가 한 예언들은 정말로 경이롭습니다.
여러분이 제 비디오 강의 <다니엘서>를 보시면, 그의 예언이 아주 놀랍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중 한 가지 예언만 살펴보겠는데요, 그 예언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면 여러분들이 한번 들어보세요.
"그가 말하기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고레스 칙령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날 것이요,
62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실 것이다) 단9:25~26
다니엘이 포로되어 있는 기간에, 이 예언을 하였습니다.
7 이레와 62 이레를 합하면 490년이며, (실제로는 483년)
이는 1년을 365일 아닌, 360일로 계산한 것입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거의 490년) *옛날 당시에는 1년을 360일로 계산했음
예루살렘 재건하라는 명령이 있은 후부터
기름 부음 받은 왕이 오기까지 총 490년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만약 이 숫자들을 합치면, 귀환을 명령한 칙령이 몇 개이긴 하지만,
즉 그게 고레스가 내린 칙령이든지, 아니면 아닥사스다가 내린 명령이든지,
아무튼 재미있는 것은, 그 중의 한 가지 칙령의 년대로부터 계산해 보면,
얻는 결과가, (그때로부터 490년이 지나면) 서기 26년이거나, 서기 30년이 됩니다.
정확한 년대는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그간에 달력법이 바뀌었고,
1년을 계산하는 일수도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360일→365일로
하지만 불가사의 한 것은 이 법령이 발표된지 490년 이 후에
예수님이 탄생하였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것을 사전에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는 사실 몰랐겠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바벨론 포로시대 때부터, 메시야가 오실 것이,
이미 날짜가 정해져 있었고,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법령 발표 이후에 490년 만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오실 것이며,
그리고 그 분이 끊어져 없어질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후에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때부터, 예수님이 오심이 분명히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이 될 일을 보여주셔서, 우리들/그들에게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귀환 후 비록 곧바로 죄를 범하였지만, 전체가 다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지를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즉시 타락을, 조금도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벌써, 그 상황을 어떻게 옳게 되돌려 놓으실 것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구주를 보내어 그들을 죄에서 건져내게 하셨고,
그래서 490년 이후에, 예수님이 끊어져 없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멘.
'분류 없음 > 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욥기 1 / David Pawson (0) | 2015.08.19 |
---|---|
에스더 / David Pawson (0) | 2015.08.15 |
에스라 / David Pawson (0) | 2015.08.08 |
역대기 / David Pawson (0) | 2015.08.05 |
열왕기상하 2 / David Pawson (0) | 2015.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