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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욥기 1 / David Pawson

LNCK 2015. 8. 19. 15:52

www.youtube.com/watch?v=GKc1cVKbMGI&feature=youtu.be

욥기 1                  영어 녹취록                  출처

 

이제 <욥기>를 공부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제가 ''으로 발음하는데요, *영어는 ''이지만, 히브리어로 ''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 자음 'J', 영어로 'Y' 발음이 납니다. *요드

'B'는 영어로 'V' 발음이 납니다.  *베트

여러분이 영국분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한글성경은, 인명이나 지명을 히브리어에서 그대로 음역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발음과 아주 흡사합니다.

 

이제 우리 욥기를 봅시다.

<욥기>중의 어떤 부분들은, 여러분 모두가 아주 익숙하게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격언들은 <욥기>에서 인용했어요.

 

무엇보다 <야고보서>에서 욥의 인내를 얘기했는데, 5:11

이 표현은, 영어권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는 관용어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또 다른 관용어 욥의 위로자가 무슨 뜻인지 압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위로하며 말하기를 괜찮다,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다)”

그래서 이런 욥의 위로자도 영어권에서는 이미 관용어가 되었습니다. *부정적 의미

 

선지자 에스겔은, ', 노아, 다니엘' 세 사람을 함께 거론하면서, 14:14

이 세 사람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에 제일 경건한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욥을, 노아, 다니엘과 함께 언급한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욥이 대단한 분이라는 뜻이지요,

 

장례식에도 가보면, 많은 장례예배에서 <욥기>의 성경 구절을 인용하지요.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1;21

 

위 말씀은, 너무 과도하게 남용되지요.

사실 이 말을 하기에는, 아주 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금방 가까운 사람을 잃었는데, 이런 말을 쉽게 하기가 아주 힘들지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에서도 욥기의 구절을 인용했어요.

당신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19:25

*내 주는 살아 계시고, <메시야>45번째 곡. 찬송가에도 있죠.

 

이렇게 우리는 <욥기>의 몇몇 구절에 대해서는 아주 익숙하지만,

그런데 <욥기>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번 읽는 사람은 아주 적어서,

거기에 담긴 온전한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욥기>의 구절을 인용할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잘못하면, 거짓을 인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욥의 친구들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문맥을 무시하고, 한 구절만 빼서 인용하면, 잘못된 말을 인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욥의 친구들의 말을 인용한다면, 잘못된 말을 인용하는(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성경에서 한 구절만 빼내서 인용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진리인양 가르치면 안 됩니다.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긴 하지만, 그 중에는 잘못된 말도 있습니다.

 

제 말이, 아마 여러분의 생각을 뒤흔들었겠지만, 제 말뜻을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왜냐면 성경에는, 잘못된 말도 정직하게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말한 것을 (틀린 말이더라도)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매우 정직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각 권 전체를 다 이해해야 합니다. *한 구절만 빼내지 말고요

 

왜 제가 이 점을 먼저 얘기하는지, 여러분은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제가 어떤 신학교에서 신학 변론에 참석하였는데,

모두들 서로 성경을 인용해서, 자신의 논점이 정확하다고 논증하였어요.

그중 어떤 한 사람이, 직접 욥의 친구들이 한 말을 거침없이 인용했는데,

그가 몇 장 몇 절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 구절이 어디인지 알았습니다. *욥의 친구의 말이었지요.

 

그는 성경구절들을 인용했지만, 그 구절은 맞지도 않고, 진리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성경구절들이, 그의 입장을 지지하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욥기의 어느 구절까지 자기주장을 지지한다고 보여서 인용하였는데,

그는 마치 완전히 성경적인 사람처럼 보였지요. *그러나 사실은 욥의 친구의 말/틀린 말이었지요.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성경의 모든 구절은, 그 성경의 문맥 가운데서 인용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 성경 각 권의 전체 주제가, 그 중 한 구절의 의미와 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책을 전체로 충분히 이해하면,

그 중에서 어느 한 구절을 빼서 인용할 때도, 정확한 의미로 인용해서

그 구절로 자신의 입장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욥기>는 아마 우리가 가진 책들 중에서도 제일 오래된 책일 것입니다.

성경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책 중에서도 제일 오래 된 책일 것이며,

<욥기>는 아마 인류 역사상에서 제일 오래된 책 중의 한 권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더라도, 그 진정한 저작 년대는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족장시대에 쓰여 졌고, 대개 아브라함 시대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왜냐면, 책에서 묘사한 문화가 아브라함 시대의 사회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욥은 아브라함 하나님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즉 그는 '야웨'를 알고 있었고, 욥기에도 야웨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1:6

 

그런데 이 책에는,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 그리고 모세의 율법은

구약 성경의 제일 기초적인 사건들인데, 아무런 언급이 안 나옵니다. *시내산 이전 사건이니까요

 

선지서마다 모두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을 일부라도 언급 안한 책이 없습니다. *모두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욥기>에서는, 그런 내용을 하나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족장 시대의 문화에 부합됩니다.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기>는 족장 시대에 쓰여진 책이라고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책은 이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책 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이 책보다 더 오래된 책이 아직 없다면 말입니다.

 

이러한 책은, 오래도록 아무도 이렇게 자유롭게 쓰지 않았습니다.

*족장 시대에나 이렇게 썼지, 시내산 후로는, 예외 없이 다 율법에 근거해서 써야 했습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 책은 아주 독특합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질문은 이 책이 사실일까, 소설일까?’ 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저는 이 문제에 대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세 가지 가능한 답이 있는데요,

 

첫째, 이 책은 완전한 사실입니다.

구약 성경은 욥이라는 사람이 진짜로 있었다고 하였고, 신약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14:14, 5:11

그래서 욥이라는 사람은 진짜로 실재했던 사람이고, 우리도 그가 어디에서 살았는지 주소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거기로 편지를 부치면, 우체국은 수취인 불명으로 해서

그 편지가 되돌아올 것입니다. *주소는 동방의 우스로 되어있지만, 현재는 정확히 찾기 어려움

 

우스 땅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떤 특정한 지역에 분명히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 그 곳은, 메소보다미아 분지에 있는, 다메섹 너머의 힛데겔 강이나, 유브라데 강 근처일 것입니다.

 

욥기 시대의 문화는, 낙타와 양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단히 우리 인간과 똑같은 면을 보여줍니다. *신이나 영이 아니라요

슬픈 소식을 들은 후 그의 반응을 보십시오. 특히 그의 아내의 반응을 보십시오.

우리와 똑같은 사람 맞습니다.

 

우리는 그들 부부의 싸움도 듣게 되는데, 그의 아내가 그의 형편을 비평한 것을 들어보십시오.

욥의 친구들의 말도 매우 사실적입니다. *소설이 아닙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감정이 아주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팩트입니다.

 

그럼 혹자는, 왜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이 책의 내용 중에, 픽션 같은 특색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느껴지는 내용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진실된 인생의 모습과는 거리와 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잇따라 발생하는 그 4가지 재난인데,

매번마다 한 사람씩만 살아서 돌아와 소식을 전하면서 하는 말이

저 혼자만 살아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인지 의심됩니다.

 

또 우리가 우직하게 믿어야 하는 내용은

어떻게 4가지 재난이, 그것도 연속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인지 약간 의심이 갑니다.

매 재난마다 단 한 사람만 살아서 돌아와 보고를 합니다.

 

그 점에 인위적으로 쓴 부분이 약간 가미된 것 같아요. 여러분, 제 말뜻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즐거운 결말이지요.

 

아시다시피 욥의 자녀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욥이 다른 자녀들을 낳았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도 죽은 자녀들이 그립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전체 이야기의 구조가 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꾸며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그들의 대화는 모두 시 형식인데, 제가 앞에서 말했지요.

시는 인위적인 형식의 언어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할 때 시의 형식으로 대화하지 않지요.

시는 반드시 먼저 잘 생각하고, 시는 꾸며서 쓰는 것입니다.

 

<욥기>의 내용 대부분은 시이며, *그래서 시가서이지요, 시편처럼.

욥의 친구들이 말한 것도, 모두 멋진 시 들입니다.

 

그의 세 친구는, 모두 뛰어난 시인인 것 같습니다.

이는 <욥기> 진실 같지 않고, 진실이라고 보기에는 말이 너무 깔끔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모두 누가 기록하였을까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마다, 페이지에 페이지를 연속해서 모두 순전히 시였어요.

이 시들을 그렇게 그대로 기록하였을까요? *팩트를 근거로, 편집이 들어간 것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성경의 욥기 같은 부분은 팩션으로 봅니다. fact+fiction,

*faction실화소설로 번역하나, 여기서 소설이란 뜻은 아님. 실화에 무게를 둔 편집.

 

욥기에, 한 실재 인물이 재난을 만난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재난을 발생하도록 허락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중동 지방에 욥에 관한 비슷한 다른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성경에서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그는 중동 지방에서도 두루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대면했지만, 그가 고난을 대하는 방식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문화에서도, 욥의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았지만, 이스라엘 밖에 사람들에게도 욥이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진짜입니다. *욥은 실재하는 인물이요,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믿기로는, 누군가가 그의 실제 이야기를 기록하고,

거기에 편집을 덧붙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faction

 

이런 상황이 셰익스피어가 기록한 역사극, 예를 들면 <헨리5>와 너무 비슷합니다.

<헨리5> 역사극은, 역사의 실제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즉 헨리5세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가 군대를 거느리고 아쟁쿠르 전투를 하였는데, *1415

 

셰익스피어가 그 이야기를 훌륭한 시로 만들었으며,

그 아름다운 시로 그 역사적 사건에 나오는 인물들의 깊은 의미를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제 말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누가 욥의 이야기도 <헨리V>처럼 이렇게 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이 경건한 사람의 실재 이야기를 취했습니다.

그는 고난가운데,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인내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이야기를 시로 만들었습니다.

그 시에, 그가 고난을 대면한 놀라운 처신(믿음)을 잘 담았습니다.

 

지난 주에 로버트 볼트 라는 극작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4계절의 사나이>, 토마스 모어 경의 삶을 그린 작품이지요.

<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극본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이 바로 팩션이었지요. 로버트 볼트는 가급적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그 주인공들이 어떤 일을 대면했으며,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런 사실들의 핵심내용을 토대로, 극본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의 작품은 뛰어납니다. 다른 극본들을 보면 그렇지 않지요.

그의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 극본을 보면,

마치 당신이 그 극중 인물들을 잘 아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리얼하게 알게 됩니다. 이는 로버트 볼트가 썼기 때문이지요.

 

팩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실화 소설이라고 번역하나 소설이란 표현이 마음에 안 듦

 

1) 한 가지는, 그 실재 인물의 삶을 너무 왜곡합니다.

저는 요즘 그런 팩션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존 오스본의 연극 <마르틴 루터>가 바로 그 전형적인 예인데,

여러분이 그 연극을 보시면, 마틴 루터가 아닌, 존 오스본에 대해 알게 합니다.

 

어떤 팩션은, 자기 생각/주장들을 전달하기 위해서, 역사적 인물을 끌어들여서 이용하기까지 합니다.

 

2) 하지만 어떤 팩션은, 역사적 사실을 더욱 사실적으로,

더욱 강력하게, 더욱 이해 잘 되게, 한 사람의 생애를 나타냅니다.

 

저는, <욥기>가 바로 이러한 팩션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견해를 가시셨다면, 강의가 끝난 후에 제게 말해 주세요.

 

제가 <욥기>를 볼 때, 이것은 매우 훌륭한 시이며,

전체적으로 거의 천재적인 시라고, 확실히 도장을 찍어도 되겠습니다.

 

저는 확신하는데, 당시 욥의 세 위로자들이, 절대로 시적으로 욥과 대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모두 시로 기록되었는데, 모두가 아주 훌륭한 시 들입니다.

그래서 계속되는 대화를 더욱 욥에게 도전적으로 표현합니다.

 

누가 이 책을 기록했든지 간에, 이 책을 기록한 저자는 아주 천재일 것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이 책은 매우 고상하며, 모든 남자가 읽어야 할 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테니슨은 말했습니다. “욥기는 고대의 가장 위대한 시이며, 현대에도 그러하다

이 말은, 알프레드 테니슨 경의 정말 찬사이지요.

 

루터도 "욥기는 성경 66중에서 제일 놀랍고, 가장 아름다운 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욥기>문학성으로 따지더라도 호머, 버질, 단테, 밀턴의 작품과도,

심지어는 모든 시대에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여겨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도 견줄할 만하며,

실제로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시와 문학을 좋아한다면, 무려 4천년 전에 기록한 이 <욥기> 책이,

이제까지 쓰여진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 중 하나입니다. 라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연히 문학작품 그 이상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히브리 시이며, 그래서 이것은 소리보다 느낌으로 우리가 느껴야 하며,

느낌이 중복이 대귀 형식으로 나타나 있는데,

우리는 이 점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Hebrew Poetry라는 강의가 따로 있습니다. 나중에 번역합니다.

 

이 책은 사실상 <철학>을 논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사고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왜 이 세상에 왔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죄악은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보다도 질문하는 것은 왜 선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가?’

철학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연극 시 형식으로 기록한 이 <욥기>,

이런 인생에서의 제일 중요한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왜 인생에 고통과 고난이 있는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경험들을 하게 되는가?’

왜 선한 사람이 고난을 참아내야 하는가?’

왜 나쁜 사람은 고난을 안 당하는가?’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우리가 고생 하는 것에 관심 가지시는가?’

우리 고난을 과연 돌보시는가?’

 

이 모든 것은 <욥기>에서 거론하는 깊은 질문들이지요.

그래서 욥기는, 세상 모든 문화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씀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공감을 일으키는 정말 놀라운 책이지요!

 

이 책은 <신학>도 논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추상적인 방식으로이런 문제들에 대답하지만,

신학은 반드시 하나님과 관련하여대답을 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당신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개념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 하면,

만약 당신이 하나님은 나쁘시다라고 믿으시면, 고난이 닥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쁘신 하나님, 고난을 주시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언제 문제가 생깁니까?

당신은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믿고 있는데, 당신이 문제를 만날 때입니다.

 

더 나아가, 만약 당신이 하나님은 약하시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시다라고 믿으면,

그게 당신이 고난을 당할 때,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께 대해 당신은 아무 문제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단지 당신을 동정하실 뿐, 그 고난에 대해 아무 조치도 할 수 없으시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또한 선하시다고 믿으면, 그때 당신은 문제에 봉착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능력 있고, 사랑해 주시는 분으로, 지금 믿고 있는데,

고난을 당하게 되면, 당신은 딜레마에 휩싸이게 되는 거죠.

 

그래서 현대 신학은, ‘고난의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의 두 속성 중에, 적어도 한 가지를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나쁜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가지고 놀며, 암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데리고 장난하는 증거이며,

이와 같은 하나님은 나쁜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현대 많은 소설이 이러한 관념으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을 큰 능력이 있는, 나쁜 하나님으로 묘사하지요.

이것이 바로 그들이 가진, 고난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바깥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견해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새로운 신학이 나타났는데,

하나님은 연약하고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바깥: 하나님은 능력이 크시지만, 악하시다.

교회 안 : 하나님은 선하시지만, 능력이 없으시다.

 

한번은 저와 아내와 같이 TV를 보고 있는데,

한 주교가 나와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물같이 연약하다고 그는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그는, ‘영국교회 교리 수정 위원회의장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새롭게 발견된 이론인데, 하나님은 연약해서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방송 진행자가 물어보기를 "그런 견해가,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교가 답하기를 물론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을 때, 그들은 교회로 나올 것입니다.”

 

진행자가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교님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주교는 대답하기를 "글쎄요, 하나님은 마치 큰 대가족의 할머니 같아서,

할머니는 집안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시지요,

그의 사랑이 모두를 결속되게 하지만, 일은 가족들이 집밖에 나가서 각자가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씀드린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또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내 마음속의 하나님입니다". 기자가 아주 놀라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이 할머니가 아닌 아버지인줄 알았습니다"라고 하였어요.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억지로 인생의 고난 문제를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무능하며, 인간의 고난에 대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으며, 아예 인간 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받아 들여야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게 답이며,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고, 늘 친절하시고,

그러면서 동시에 능력이 크시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모든 일을 다 하실 수 있다고 믿으신다면,

그때 당신은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욥기>같은 책은, 그 밑바탕에, 이러한 신학적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한분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그분이 선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며, 세상 사람들을 돌보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욥이 갈등하는 거죠. 이런 전제를 안 믿으면, 하나님께 대해 갈등 안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그래서 하나님께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만약 당신이 고난의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면,

이는 당신이 이미 하나님에 대해 3/4이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75%,

*하나님이 선하시고 능력 있으심을 믿기 때문에, 갈등하는 거니까, 믿음이 상당한 셈이지요.

 

그러면서도 나머지 1/4, 아직 다 모르니까 갈등하는 것입니다. *25%

만약 그분이 선하시고 전능하신다면, 내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였을까?’

 

이것이 <욥기>에서 다루는 문제인데, 여러분께 서론으로 설명해 드렸습니다.

 

<욥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민감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을 앞에서 강의했던 <시편>에서 이미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시편을 다음에 봅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죽은 이후의 삶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사람들은 생명과 죽지 않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이미 알고 있어서 미래에 대해 소망이 있고,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눈앞의 고난의 문제에 그다지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장차 일어날 일과 비교해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8:18

이렇게 부활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현재의 고난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하는데, 이해가 되시죠?

 

고난의 문제를, 우리는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만약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 똑똑히 모른다면,

그리고 여기서 통과하는 고난에 대해, 천국의 보상을 모른다면,

그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는 죽은 후의 생명에 대해 조금 암시했는데,

죽은 후에 반드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몇 차례 보여준 순간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죽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19:26

*그런데 이 구절은 내가 죽은 후에, 내가 육체 가운데 하나님을 보리라부활을 뜻한다고 번역하는 게 더 정학합니다. 1)

 

이 작은 부활의 소망이 가끔씩 수면위로 떠오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게 크리스천이 고난당하는 이유를, 다 명확히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요.

 

<욥기>는 구약성경이고, 만약 부활이 순전히 저자의 추측이든지,

아니면 진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계시이지요

 

<욥기>의 저자는, 한 사람의 입에만 말을 넣어 준 게 아니라,

저자는, 여러 사람들의 입에도 말을 넣어 주었는데, (말하게 했는데)

욥 뿐만 아니라,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지요.

 

그리고 저자는 또한 감히 하나님 입에도 말을 두어서, 말씀하게 하였어요.

만약 욥기가, 순전한 추측이 아니라면, 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 책 전체의 관건이, 하나님이 사탄과 내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도박사 또는 사탄과 내기 거는 분으로 묘사한 것은, 아주 저자가 담대한 일이지요.

판돈은 욥의 몸입니다.

 

만약 진짜로 이런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 줄거리를 구상하는 것은, 진짜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지요.

물론 이 책에서 보면, 욥이 그 도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결코 알 수가 없었지요.

 

그에게, 자기가 고난을 당하는 배후(내기),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이 고난을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사탄과 내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순전히 추측이라면, *저자가 상상으로 지어내서 썼다면

이것은 유대인에게는 아주 엄중한,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형 언도를 받을 일이며,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말하는 것은, 거짓 예언이며

그것은 죽음의 벌을 받아야 될 중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계시를 받았다는 뜻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욥기>는 어떤 출중한 시인이, 진짜 사실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

그걸 의미와 교훈을 담은 시로 묘사하여, 후대들을 위해 썼으리라고 믿습니다. *그저 저자의 상상, 추측이 아닙니다.

 

저자는 땅에서 일어난 고난에 대해 썼지만, 하나님은 하늘의 진짜 상황을 그에게 계시하여 주셨어요.

왜냐하면 땅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종종 이미 하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결과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 하늘에서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욥이 그랬죠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늘의 전쟁이 끝난 후에, 땅에서 전쟁이 발생했다고 말씀하지요. *동시로 보는 견해도 있음. 그게 그거

하늘의 전쟁이 있고, 그 결과로 땅의 전쟁을 초래한 것입니다.

하늘의 상황이, 땅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늘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땅의 상황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하늘과 땅 양쪽의 상황을 둘 다 그려냈는데, 이는 참으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먼저 하늘에서 진행된 회의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회의를 가지셨는데,

하나님은 어떤 때는 관련 있는 천사들을 모집하여 함께 회의를 하시는데요,

여러분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계시입니다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고, *하나님의 아들들’, 히브리 관용어로 마귀를 뜻함.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직업은 사람들의 죄를 보고하는 것인데,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쉽게 냉소적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크리스천으로서 경찰관이 되는 일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들은 본문의 마귀처럼 인간 본성의 악한 부분만 많이 보게 되는데요.

그런 가운데서 냉소적이 되지 않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나쁘게만 보기 쉽다는 뜻

 

그래서 마귀는 아주 냉소적이 되어서, 사람이 선하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지요.

그래서 사탄이 더욱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고소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대항해서 반역했습니다만,

그는 그저 고소하는 일을 하였어요. *다른 일은 못하고요, 쫓겨나서

 

그는 땅을 이리 저리 다니며,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보고, 하나님의 회의에 와서 고소했습니다.

그래서 <욥기>가 쓰여질 시절에, 사탄은 이미 분개하고 증오하는 사탄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게 자기에게 이득이 되니까 그런다고 생각했지요.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좋은 것을 얻었기에,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이 책의 배후에 있는 비밀입니다.

이 내용이 만약 저자의 순전한 상상/추측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진짜 계시가 있었습니다.

 

<욥기>지혜서에 분류되는데요, 유대 성경에는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성문서란, 선지서도 아니고, 율법서에도 속하지 않는, 그 외 모든 책들은 다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욥기>는 선지자의 직접 예언이 아니지만, 여기엔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있습니다.

*예언서는 아니지만, 계시가 들어있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운 방식으로 교훈을 배웁니다. 23:43~

 

지혜를 배우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한 길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배우는 쉬운 길이고, *간접경험

또 한 길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면서 배우는 어려운 길입니다. *직접경험

 

슬프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직접 경험의 학교를 통과하고, ‘검고 푸른색의 학교

다녀보고 나서야 비로소 지혜를 배웁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멍 색깔

부모님이 당신에게 어떤 일은 하지 말라고 경고하면, 그 일은 당신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며,

당신이 부모의 지혜를 받아들이면, 당신은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직접 경험할 필요 없지요

 

<잠언> 전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달하는 지혜입니다.

그 아버지는, 전에 자기 아버지의 경고를 듣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소녀가, 바로 제 앞에서, 자기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마가 젊었을 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나를 이렇게 걱정합니까?”

 

우리가 종종 <잠언>서의 솔로몬과 같을까봐, 제가 염려합니다.

아들아, 여자를 조심해라

이렇게 훈계하는 그는, 자기가 젊었을 때 여자를 조심했을까요? (아니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서 지혜를 보십시오.

아들아, 너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지혜를 배우거라. 그들은 뭘 알고 말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어렵게 네가 직접 체험해서 배우게 될 것이다.’ *멍이 좀 들겠죠

 

욥은 아마 모든 고생을 다 겪고, 지혜를 배웠을 것입니다. *직접 경험

그는 아주 불행한 일에 부딪혔지요. 아주 큰 고난을 경험했지만, 이로써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욥기 스토리를 후대를 위해 남겼습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는데, 지혜 문서의 모든 말씀이 모두 맞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어떻게 지혜를 얻었는지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생각을 갖기까지, 어떻게 잘못된 생각과 힘들게 씨름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서 구절을 인용할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 씨름하는 동안에 했던 말, 아직 결론에 이르지 않은 말을 인용할까봐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여러분에게 성경 한 구절을 읽으면,

여러분이 이 말씀에 동의하시는지, 한 번 보십시오.

 

천명되는 남자 중에서 정직한 사람 한명을 찾았지만, 여자들 중에는 한 명도 못 찾았다.’ 7:28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한 명? 두 명? 여러분, 동의한다고 손을 드신 두 분은 모두 남성이네요.

 

이 말씀은 선입견, (남성)국수주의인데, 이 집회에도 있네요.

 

그런데 누가 이 말씀을 설교하시겠습니까?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성경말씀이고, <전도서>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그 말한 당사자에게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솔로몬입니다.

 

만약 당신에게 700명의 아내가 있으면, 아마 당신도 여자를 보는 관점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것은 솔로몬에게는 맞는 말입니다. 왜냐면 그가 많은 여자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비록 이 말씀이 성경 속에 들어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이 말을 설교하지는 못합니다. 이해되시죠? *아직 지혜를 깨달아가는 과정 속에서 한 말

 

지혜문서는, 남자가 이런 문제로 씨름하는 과정을,

그들이 그 과정에서 했던 말을, 모두 정직하게 다 말씀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말들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하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비록 이 말씀이 성경 속에 들어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신학의 개념입니다.

 

26:34~

 

둘째, 지혜문서의 지혜는, 일반적 원칙에 속합니다. 특수한(또는 예외적) 케이스의 지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혜 문서의 지혜를, 모든 상황에 항상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외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는 모두 적용되지만, 항상 맞는 적용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They are generally true but not always true!

 

<잠언>을 예로 들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잠언을 인용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언약)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약속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잠언’(지혜로운 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일반적으로 진리이지만, 항상 진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약속/언약은 영원히 진리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파슨 박사는 지혜문서를 (히브리 식으로) 율법이나 선지서와 차등하게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언을 자주 인용하는데요.

.. ‘네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 그러면 주님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는 말씀이 어떻게 시작하죠?

네 맞습니다. 잠언 3:6절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지하라,

그러면 그가 네 길을 곧게 지도하시리라3:5~5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진리이지만, 늘 언제나 항상 진리는 아닙니다.

이 말씀은 잠언서이고, 약속/언약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당신이 이 구절을 모든 상황에 적용하면, 반드시 실망하실 것입니다.

잠언과 지혜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진리(맞는 말)이고,

그래서 우리는 잠언을 간단한 형식으로, 보통 시 형식으로 만들어서, 기억하기 쉽게 합니다.

 

예를 들면,

1) 서두르면, 더 늦는다.

2) 망설이는 자는, 길을 잃는다.

 

이 두 마디는 서로 모순입니다. 그렇죠?

당신이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당신은 위 둘 중에 어느 것을 따르겠습니까?

*잠언과 지혜문서는 일반적 진리이지, 항상 진리는 아님을 설명하는 중

 

지혜란, 그 처한 상황에서 어느 길이 올바른지를 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상황에는 1)이 되었다가, 다른 상황에서는 2)가 되지요.

 

잠언 하나를, 모든 상황에 똑같이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어리석은 자는, 천사도 가기 무서워하는 곳으로 뛰어든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뜻

 

4) ‘요리사가 많으면, 죽이 엉망 된다’ *사람이 많으면 일을 망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에 올라간다.

 

5) ‘조언자가 많을수록 안전하다’ *세 사람이 한 제갈량보다 낫다’ - 중국속담

 

어느 말씀이 맞을까요? *4)5)도 서로 모순입니다.

여러분, 제 말 뜻을 아시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맞지만, 항상 맞지는 않습니다.

 

지혜는, 일반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정직은 최선의 전략이다이 말도 항상 맞는 말이라고 볼 수 없어요.

어떤 때는 당신이 정직하면, 사업을 망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이러한 예가 성경에 아주 많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같은 것인데, 6:7

모든 경우에 맞는 말은 아니지만, 일반적/전체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고, 대가를 지불하라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불을 가지고 놀면, 반드시 불에 타게 된다6:28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8:7

 

부당하게 얻은 재물로는, 잘 되지 못한다

네 침실을 만들고, 거기에 누워라” *남의 침실에 눕지 말라

네 죄를 아뢰라. 네 죄가 너를 찾아내기 전에


이 모든 것은 지혜이고, 하나님의 약속/언약은 아닙니다.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혜 문서를 읽을 때,

도덕성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 표현을 유의해서 들으십시오.

*대체로 맞다고 하느냐 하면, 욥기 때문입니다. 잠언이 항상 맞는 절대 진리가 아닌 것은 <욥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선한 삶을 살면, 당신은 더 행복해지고, 더 건강해집니다.

만약 당신이 악한 삶을 살면, 당신은 더 불행해지고, 몸도 아프게 됩니다.

 

이런 논지는,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항상 맞지 않는 것은, 이 논지에 예외가 있는데

욥이 바로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악하게 살면 고통을 겪게 된다는 논지는, 일반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항상 맞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대체로 말하기를 선하게 살면 악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되며, 더 건강하게 된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오직 일반적으로만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 그것이 항상 진리라고 말합니다.

<욥기>도 전체적으로 그 배후에 깔려있는 논리가 바로 그런 일반적인 진리입니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너는 고난을 당한다는 논리이지요.

만약 그런 논리가 항상 맞는 진리라면,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죄를 지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해되셨죠?

 

생각이 경직된 사람들은, 이런 논리를 공식처럼 적용하여,

고난당하는 사람을 보고 당신은 반드시 죄를 지었다라고 단정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자기가 스스로 완고한 신앙인임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욥기>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30:40~

 

구조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피기 전에, 먼저 샌드위치구조임을 기억하십시오.

욥기는 산문 산문의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서론의) 산문에서는, 이야기와 전체 배경을 묘사했는데,

늙고 가련한 욥이, 만난 불행의 자초지종을 묘사했습니다.

 

샌드위치의 중간 부분은, 먼저 아주 긴 대화가 나오는데, 이는 욥과 소위 말하는 세 친구사이의 대화입니다.

하지만 이 세 친구는, 일부러 적을 만들어 싸우려는 사람들입니다.

 

욥은 엘리바스, 빌닷, 소발과 아주 긴 변론을 하였습니다.

이 세 친구가 다 얘기한 후 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가 엘리후입니다.

그도 할 말이 있는데, 욥은 침묵을 지키고 그와 변론하지 않습니다.

조금 후에 왜 그랬는지 보겠습니다.

 

그래서 B단락은, 불쌍한 욥에 관한 사람들의 논쟁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생각은 죄를 지으면, 고통을 당한다혹은

네가 고통당하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라는 논리지요. 아주 간단합니다.

하지만 이 논리를, 모든 상황에 적용시키면,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이러한 경직된 생각을, 현대적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볼게요.

만약 당신의 질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당신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이 말이 맞습니다. 성경 몇 곳에 기록하기를

사람들이 믿지 않으므로, 예수님께서 큰 권능을 행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치료 받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는 말은,

때때로 맞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논리(잠언)’를 마치 약속(언약)’으로 여겨서

모든 사람에게 엄격하게 적용시키면, 당신은 아주 깊은 상처를 주게 됩니다. 이해하시죠?

 

이게 바로 욥에게 일어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친절하게 욥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치료받지 못한 것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욥은 이런 압력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욥은 그 말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맞다고 생각하니 말하는 것이지요.

당신이 고난을 당하면,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죄를 고백하면, 이런 고난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이런 말은 사실 좀 잔인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항상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았습니다. *1:1

 

그는 의로운 사람인데, 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무자비하지요.

그런데 자꾸 욥에게 자기 양심을 더 파내라고 말했지요. *회개하라고

거기엔 더 파낼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욥의 위로자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일반적 진리절대적 진리로 바꾸어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 시킵니다.

*일반적인 논리를, 특수한 상황에 죄다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진정한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합니다.

만약 이런 경직된 논리를,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적용하면, 타인을 상처 주게 되는데,

마치 세 친구가 욥을 상처 준 것처럼 하게 됩니다.

 

다음은 하나님이 욥과 변론하십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당신은 하나님과 논쟁해서,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불쌍한 욥이, 하나님과 변론한 후 상황이 더욱 비참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후에 그가 문득 크게 깨달았는데, 이는 그가 자기 질문에, 해답을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의 마음에 비로소 평안을 얻게 되었어요.

중점은, 의문에 해답을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지,

당신이 해답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현대적 예를 한 가지 들어볼게요.

제가 항상 질문을 받는데, ‘아기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그 죽은 아기를, 절대로 좋게 대우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더욱 깊은 답을 얻고 싶어 하지요.

그들은 죽은 아기가 천국에 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모릅니다), 저도 그렇게 말하도록 배우지 않았습니다.

 

저의 목적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있게 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시든지 모두 옳다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기에게 행하신 일을, 그 부모들이 겪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옳으십니다!’ 라고 믿도록, 제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해하시죠?

*어디에 갔다는 성경에 안 나오니까 잘 모르겠고, 다만 하나님은 옳으시다를 믿어야 합니다.

 

핵심은, 질문에 해답을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항상 옳다고 믿는 것이며,

하나님이 어떻게 옳게 행하실지 다 알고 행하신다.’ 그걸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어떤 때 당신이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왜입니까, 왜 이렇게 우리에게 대하시는 것입니까?”

하지만 평안은, 당신이 이렇게 말할 때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유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합니다.’ *다 알아서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욥기>는 놀라운 책입니다.

 

그래서 마치 샌드위치 같다고 살펴보았고요.

중간에 변론은 모두 시의 형식으로 나타나 있으며, 그래서 잘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문장입니다.

그렇지만 서론은 산문체이고, 결말도 산문체입니다.

이 산문체는 우리에게 전체 이야기의 경과를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 함께 욥기의 플롯 plot 을 살펴봅시다. 35:33~

 

<욥기>에는 두 개의 플롯이 함께 짜여져 있는데,

바로 하늘의 플롯땅의 플롯입니다.

두 플롯이 서로 엉켜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때는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는 하늘의 플롯으로 시작하는데, 하늘에서 한차례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한 천사였던 사탄과 변론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변론입니다.

지금 도표에서 파트A를 설명 중입니다.

 

사실 서문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두 번 변론하였어요.

욥이 친구들과 변론하기 전에, 먼저 있었던 변론이었어요.

하나님과 사탄의 변론의 주제는,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이때 사탄은 이때 이미 냉소적이어서, 세상에 까닭 없이 선한 사람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제 말뜻을 아시죠?

 

그는 사람마다 모두 숨겨진 동기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말하기를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그들을 돌보기 때문이고,

인간이 당신에게 속하는 것은, 당신이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믿으면, 뭔가 되돌아오는 게 있기 때문에, 그들이 당신을 믿는 것이며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들을 돌보시지 않으면, 그들은 당신을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냉소적인 사람들이 똑같이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이 크리스천이 된 것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좋은 것들을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말뜻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가 아니고,

자기 자신의 유익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교회에 가는 이유이고,

그래야 자신이 더욱 건강해 지고, 더욱 부유하게 되며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만약 하나님이 그들을 복 주지 않으시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날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그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죠.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변호하여 사탄에게 말하기를

네가 사방을 다닐 때,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이 말씀은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사탄은 동시에 서로 다른 곳에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 점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탄에게 아주 심하게 방해 당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아주 놀랍습니다.

어떤 사람이 화요일 기도모임에 와서 말하기를

저는 오늘 사탄에게 당했습니다. 제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급히 아침밥을 먹었는데,

결국 소화불량에 걸렸어요. 늦어서 기차를 타러 달려갔는데, 기차가 금방 떠났습니다.

결국 아주 중요한 약속을 놓쳤어요. 오늘 사탄이 저를 공격했습니다.”

 

제가 말했어요. “그것은 사탄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요. 당신이 왜 늦게 일어났지요?”

그가 말하기를 제가 어젯밤에 알람을 설정하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그는 사탄에게 핑계를 댔습니다. 제가 알려 드릴게요.

만약 사탄이 당신을 공격하면, 당신은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면 사탄은, 동시에 서로 다른 곳에서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탄의 수많은 졸개들은, 어느 곳에나 다 있습니다.

하지만 사탄 자신은 이리 저리 다닙니다. *편재는 못합니다.

 

그가 예수님께 와서 시험한 후에, 한동안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떠날 때도 있습니다.

사탄은 항상 세상 이 곳 저 곳을 떠돌아다닙니다. 그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항상 헬라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자연과 초자연을 구분해서 보지요.

만약 당신이 자연과 초자연을 분리해서 본다면, 사탄은 그 어느 쪽에 속한다고 봅니까?

사탄이, 하나님과 똑같이 초자연에 속합니까? *이렇게 나누지 마시고

 

하지만 만약 당신이 헬라식이 아니라 성경이 나누는 방식으로

, 피조물과 창조주, 둘로 나눈다면,

그러면 사탄은 어느 쪽에 속할까요?

 

사탄은 우리와 똑같이 피조물의 영역에 속하고,

물론 아마 그는 피조물 중에서 가장 미묘한 생물일 것입니다. *creature피조물또는 생물로 번역됨

하지만 그는 필경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를 절대로 하나님처럼 대우하면 안 됩니다.

사탄은 전능하지 않고, 전지 하지도 않고, 무소부재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그런 속성을 하나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피조물 중의 하나이며, 다만 천사처럼 일을 할 뿐입니다. *나쁜 방향으로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께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말씀하기를 네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확실히 네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다.

하지만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바로 나의 종 욥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런 동기가 없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자 사탄이 말하기를 그럼 우리 내기를 해 봅시다. 당신이 그에게 주신 복을 모두 가져가시면,

그는 당신의 면전에서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음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좋다. 네가 그를 공격해 보아라

여기서 우리는 사탄에 대해 한 가지 점을 알 수 있는데,

만약 하나님의 허락하시지 않으면, 사탄은 사람을 맘대로 손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요.

 

이렇게 때문에 우리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면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당신을 시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제일 엄격한 징계는, 신자를 사탄의 손에 넘기는일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일 엄격한 징계 방식입니다.

*보호의 장막을 걷어버린다는 뜻인 듯

 

만약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사탄은 하나님께 속한 자녀를 해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이 모든 성도에게 약속하기를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당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고전10:13

하나님이 그 시험하는 자를 통제하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고,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분부대로 해야 하며, 하나님께 전혀 사탄은 상대가 안 되는 존재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괴롭히지만, 하나님께는 꼼짝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였습니다.

 

다음 강의에서, 우리는 누가 이겼는지를 논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기셨을까요? 사탄이 이겼을까요?

욥에 대한 누구의 견해가 맞을까요?

 

....................

 

1)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6

영어 성경은 대부분 다 육체 밖에서가 아니라, ‘육체로, 육체로부터’ in flesh, from flesh로 번역.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from the flesh인데, 그걸 육체 밖에서, 육체를 떠나서로 번역한 모양이나

‘(부활한) 육체로부터또는 육체 안에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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