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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하므로

LNCK 2015. 9. 22. 08:45

공모하므로             20:1~6              15.09.13.설교스크랩, 출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부터 사람을 섬기는 청년이었고,

사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사람을 섬기는 시니어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그 바울이 마게도냐와 고린도에서 어떻게 사람을 섬겼는지 숙고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은, 마게도냐를 거쳐서 고린도에서 3달동안 체류한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의 정황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바울은 2차전도여행과 마찬가지로 3차전도여행 역시 고린도에서 마무리하고

자신의 목회 본거지인 수리아의 안디옥(이하 안디옥)으로 귀향하려고 했습니다.

 

안디옥은 오늘날 터키 대륙 남동쪽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대륙 발칸 반도 남쪽에 위치한 고린도에서,

아시아 대륙의 안디옥에 이르는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은,

고린도의 외항인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바울 역시,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배를 타려는 것을 인지한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하였습니다.

 

6년 전, 바울이 2차전도여행 중 처음으로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고린도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바울을 회당에서 축출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히 법정으로 끌고 가서, 갈리오 총독에게 고발했었습니다.

 

그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6년만에 고린도를 다시 찾은 바울을 해하려고 함께 모의하였습니다.

 

본문 6절에 의하면, 본문의 시기는, 무교절 직전이었습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서,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기간을 일컫습니다.

출애굽의 뿌리를 두고 있는 유월절과 무교절은, 날짜와 기원 그리고 의미가 모두 동일하였으므로,

세월이 흐르자 두 명칭에 대한 차이가 없어져서,

22:1절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동일시해서 유월절이라는 무교절이라고 했습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대민족 최고의 명절이었으므로, 유월절이 되면,

지중해 세계에 흩어져 사는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찾았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 가운데서도, 유월절을 맞아

배를 타고 예루살렘을 방문하려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바울도 배를 타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지중해를 건너가는 배 위에서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을 해치기에, 배보다 더 적합한 곳은 없었습니다.

배에서는 바울을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다에 수장시켜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쩔 수 없이 빠르고 편한 선박 편을 포기하고,

육로를 따라서 마게도냐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에게 해를 건너, 터키 대륙의 서쪽 항구인 드로아로 가서

거기에서 안디옥으로 가기 위함 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불편하고도 먼 길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배에서 바울을 해칠 계획이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하였습니다.

 

20:3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공모의 헬라어 에피부레는 음모를 의미합니다.

 

음모를 공개적으로 특히 음모의 대상에게 노출되게 꾸미는 사람은 없습니다.

 

음모는 문자 그대로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꾸미는 흉계입니다.

고린도의 유대인들 역시 지중해를 건너는 배 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바울을 해치기로,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은밀한 음모가, 놀랍게도 바울에게 알려졌습니다.

바울은 요소마다 정보원을 심어둔 배태랑 첩보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의 음모가 어떤 경로를 통해 바울에게 알려졌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단지 유대인들의 음모가 바울에게 밝혀졌다는 사실

그 자체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음모가 누구에 의해, 어떤 경로를 통해 바울에게 전해졌든,

그 배후에서 역사하신 분이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종인 바울을 지키고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음모를 당신의 방법으로 바울에게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본문에서 처음 일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짓밟는 폭도였던 바울이,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마저 체포하여,

연행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부정해오던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이심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간 다메섹에서,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었지만,

다메섹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바울은 유대교를 배교한 배신자에 지나지 않았고,

배교자는 오직 제거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행9:23절이 이렇게 밝혀줍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배교자인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했습니다.

바울을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죽여버리기로 공모한 것입니다.

 

그러나 행9:24a절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우리말 계교로 번역된 헬라어가 본문에 사용된 헬라어 에피부레입니다.

바울을 죽이려는 다메섹 유대인들의 은밀한 음모도 바울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들의 음모를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바울에게 전해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도 주님께서 바울을 지켜주시려,

당신의 방법으로 그들의 음모를 친히 바울에게 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9:24b~25절의 증언입니다.

9:24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리니라.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바울의 행방이 묘연하자,

바울이 다메섹 성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습니다.

 

고후11:32절에 의하면, 이때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다메섹의 문을 지키기 위해서

고위 관리까지 동원했습니다. 바울은 마치 독안에 갇힌 쥐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울로부터 복음을 영접한 다메섹이 그리스도인들이,

한 밤 중에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 위에서 달아내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다메섹 유대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또한 주님의 섭리였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처럼 바울을 죽이고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은밀한 음모는,

주님 안에 있는 바울에게는 전혀 음모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중해를 횡단하는 배 위에서, 바울을 해치려는 고린도 유대인들의 음모도

고스란히 바울에게 알려졌고, 바울은 선박을 이용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변경해서,

고린도에서 육로를 따라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또 다른 질문이 재기됩니다. 발칸반도 남쪽의 고린도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에게 해를 건너 터키 대륙의 서쪽 항구 드로아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마게도냐의 네압볼리에서 배를 타야만 하는데,

그 거리가 고린도에서부터 약 6백킬로에 달했습니다.

 

그 먼 거리를 평균수명이 40세에도 미치지 못하던 당시에,

이미 50세전후의 나이에 접어든 바울이,

지병을 지닌 병약한 몸으로 걸어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빠르고도 편하게 지중해를 건너가는 것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험란하기 짝이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배 위에서 바울을 해치려는 고린도 유대인들의 음모를,

주님께서 바울에게 알려주셨다고 해서,

바울로 하여금 너무나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치려는 음모를

처음부터 아예 꾸미지도 못하게 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들이 음모를 꾸몄더라도, 바울과 같은 배를 타지 못하도록 막아주셨더라면

노쇠하고 병약한 바울은, 선박을 이용하여

편하고도 빠르게 안디옥으로 귀향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그렇듯 일차원적이고도 표피적으로 재단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견지할 수 없습니다.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바울은 흉년을 당한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해서,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교인들로 하여금,

구제헌금을 하게 했습니다.

위 명단은, 2차전도여행 때부터 바울과 동행한 디모데를 제외하고는,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헌금을 전달할, 각 지역교회의 대표들의 명단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구제헌금을 전달할 각 지역교회의 대표들은, 먼저 에게 해를 건너

드로아로 가서 바울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지낸 후에, 드로아로 가서 그들과 합류했습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우리가 주목해야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울 일행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가, “우리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는, 그 속에 말하는 화자인 자신이 포함되어 있을 때에만 사용가능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의사 누가입니다.

의사 누가가 본문을 기록하면서, 5절에서 우리를

그리고 6절에서 우리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 속에 자신도 포함되어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시작한 이래, 바울 일생이 사도행전에서

우리라고 표기된 최초의 사례는 행16:10절에 나타납니다.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2차전도여행 중, 드로아에 도착한 날 밤에

도움을 요청하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을 마게도냐로 향한 주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인 바울은,

자신의 일행과 함께 난생처음으로 유럽 대륙의 마게도냐로 진출했습니다.

 

그때부터 바울 일행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가 우리라고 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드로아에서 바울과 합류한 의사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바울, 실라, 디모데를 우리라고 기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럽 대륙의 마게도냐로 건너간 바울 일행이,

첫 방문지인 빌립보를 떠나면서,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는 사라집니다.

 

바울이 누가로 하여금, 빌립보에서 계속 머물면서,

유럽대륙에서 복음을 처음 영접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을

지속적으로 보살펴 주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5절에서 바울 일행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가

다시 우리로 표기되고 있는 것은,

마게도냐로 돌아가는 바울을 재차 만난 누가도,

빌립보 사역을 매듭짓고 바울과 또 다시 동행하기 시작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이후 사도행전이 끝나기까지 바울 일행은 일관되게

우리라고 표기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가,

바울이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울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무 일 없이, 선박으로 지중해를 건넜더라면

누가는 바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시기를 바울과 함께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본문 3절의 증언처럼,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매듭짓고,

자신의 목회 본거지인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귀향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먼저 들린 예루살렘에서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난동과 고발로 투옥되었고,

가이사랴의 감옥으로 이송되어, 2년동안 거기에 갇혀 있다가

수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압송되어, 수리아의 안디옥 재방문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에서 선박을 이용하여, 팔레스타인으로 직행했더라면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있던 누가가 바울을 다시 만날 기회를 갖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요,

그가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기록하는 데도, 많은 제약이 뒤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에서 배를 타지 않고, 육로를 따라서 마게도냐로 올라가야만 했기에,

빌립보에서 바울과 재회한 누가는, 바울과 다시 동행하면서,

바울이 그의 인생 마지막 시기를 주님 안에서 어떻게 마무리 짓는지를,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누가는 밀레도에서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 땅에서 남기는 마지막 고별설교를 직접 들었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투옥될 것이라는 아가보의 예언을 들은

가이사랴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눈물로 만류했을 때,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의연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지, 직접 목격했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예루살렘 유대인들 앞에서 행한 설교도,

가이사랴의 감옥에 투옥되었던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행하였던 설교도,

벨릭스 총독의 후임자인 베스도 총독과 분봉왕 아그립바 앞에서 행한 설교도,

전문을 직접 들었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수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압송될 때도,

바울과 동행하여 지중해를 건너면서

유라굴로 태풍으로 배에 승선한 사람이 모두 죽게 되었을 때,

그 죽음의 광풍 속에서 바울이 어떻게 처신했는지,

선장도 아닌 바울이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해서 배에 타고 있던 276명 전원을

어떻게 구해내었는지, 모두 똑똑하게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을 본문 5절부터 사도행전 28장 마지막까지,

생생하게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사도바울이 얼마나 위대한 사도였는지,

그가 자신의 생을 어떻게 주님 안에서 섬기는 시니어로 매듭지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믿음의 자세와 깊이가,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바울이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기라도 했습니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의지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선박을 이용하여,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가려던 바울을,

배 위에서 해치기로 음모를 꾸몄기 때문입니다.

 

그 유대인들의 음모로부터 바울을 지켜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선박을 이용하는 대신에, 육로를 따라 마게도냐를 거치는 먼 길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당시의 평균 수명으로 이미 인생 말년에 접어든 노쇠하고 병약한 바울이,

6백킬로의 거리를 매일 밤마다 노숙하면서 걸어간다는 것은,

마치 형극의 길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형극의 길은, 주님께서 누가를 통해

당신의 말씀인 사도행전 속에 사도바울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삶을

생생하고도 영원토록 남기시려는 주님의 신비로운 섭리였습니다.

 

노쇠한 바울이 병약한 몸으로 고린도에서부터

누가가 있는 빌립보까지 걸어가야만 했던 그 길이야말로,

주님께서 바울을 위해 예배해두신 최상의 길이요, 신묘막측한 영원한 은혜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은혜의 길은, 역설적이게도 고린도 유대인들의 음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주님의 섭리는 우리의 상상을 언제나 초월합니다.

 

바울은 살전5:18절을 통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어떤 상황을 맞이하던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해치려는 누군가의 모함으로, 우리가 빠르고 편한 길을 접고,

형극의 길을 걸어야 하더라도, 바로 그 길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섭리하신 최상의 길,

신묘막측한 은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은, 신약성경에 수록된 그의 서신서에서,

우리 말 평안, 평강, 화평, 평화라고 번역되는 헬라어 에이네레 라는 단어를,

무려 42번이나 사용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바울의 삶은,

한 마디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그의 편지에서 주님의 평강을 42번이나 언급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주님께서 주시는 에이레네,

이 세상 그 무엇에 의해서도 깨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평강이 충만하였음을 의미합니다.

 

형극의 길도 신묘막측한 은혜의 길로 승화시켜주시는 주님께서,

자기 안에 계시고, 자신을 품고 계심을 믿은 결과였습니다.

 

여러분, 그 주님께서 이미 영으로 우리 안에 임해 계시고,

벌써부터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품고 계심을 알고 계십니까?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

편안한 길을 빼앗기고, 형극의 길을 걸어도 두렵지 않고,

죽음의 광풍 속에서도, 이 세상 그 무엇도 뒤흔들 수 없는

주님의 절대적인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형극의 길을 눈물로 걷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도리어 주님께 감사하십시다.

위로부터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절대적인 평강 속에서

그 길을 주님과 함께 꿋꿋하게 걸어가십시다.

 

그 형극의 길은, 신묘막측한 은혜의 길로 이어지는, 최상의 지름길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