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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의 심판 P2 계20:12, 마12:36, 고전6:2~3 영어 출처
Life after Death: Judgment by David Pawson *데이빗 파슨 설교 모음
▲3. 심판의 ‘증거’ (P1에서 계속)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또 성경에 보면, “거기 책들이 펴져 있더라”고 했습니다.
생명책 말고도, 다른 책들이 있는 것입니다. 무슨 책들입니까?
우리의 모든 행위를 기록한 책들입니다.
※30년 전에는, ‘과연 내 모든 행위를 담은 책’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게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마 1기가 정도면, 수십만 페이지도 저장 가능합니다.
그리고 검색기능도 있어서, 1초만에 다 찾아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가진 컴퓨터로도, 그게 다 가능한데,
하물며 하나님이실까요?
우리 일생을 기록한 책이, 충분히 가능하고도 주리가 남습니다.
여기서 “행위”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계20:12
이건 우리의 선행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한 일들과 언어를 통해 나타난, 우리 인격의 열매들을 의미합니다.
교회 나와서 보여지는, 겉 포장된 우리 모습이 아니라,
우리 직장에서, 또한 가정에서 나타나 보여지는, 우리 참 모습을 기록한 행위요, 그 책들입니다.
두려운 것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 없이 내 뱉는 말’까지 심판 받는 것입니다.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내 생각에는 ‘무익한 말,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은, 아무 소용없는
가치 없는 말 같아서, 뭘 그걸 다 심판하실까? ..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무익한 말,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은,
그 속에 내 인격의 진면목/실상을 담고 있습니다.
내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최후의 심판정에서 증거가 제시될 것인데, ‘내 무익한 말’도
그 증거에 포함될 것이고, 그게 ‘책들’에 기록되어져 있을 것입니다.
‘네가 침실에서 은밀하게 나눈 대화도, 지붕위에서 외쳐지리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눅12:3
마지막 심판의 날에, 거기 전 세계 성도들을 깜짝 놀래키기 싫으면,
평소에 자기 집 침실에서도, 말을 조심하고 비방과 분노의 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무익한 말까지, 다 심판을 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서 살아야 합니다.
음모를 꾸미고, 비밀리에 교사, 사주하는 말(지시)을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 날에 다 드러나고 심판 받을 것입니다.
▲4. 그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이 증거들은, 어떤 기준에 의해 심사될까요? 채택되거나 기각될까요?
이 심판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무사통과할 수 있을까요?
저 파슨은, 군대 군목으로 지냈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1)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눅12: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들은 복음의 말씀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믿음이, 그저 지적 동의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믿은 대로 살았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겠죠.
그러면 복음을 안 들은 것이, 성경을 안 배운 것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믿지 않은 것은, 복음을 듣지 못해서 그랬다고요.
그러나 영국이나 한국 같은 기독교 나라에서는, 그런 변명이 안 통합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거의 대부분 장례식을 기독교 식으로 치릅니다.
평소에 믿음으로 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장례를 기독교 식으로 치르는 것을 보면,
기독교가 뭔지는 어렴풋이 다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학교도 기독교 학교를 다녔던 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학교에서도 복음을 듣고, 성경을 배웠을 것이고
영국에는 교회도 거의 모든 동네 곳곳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나라에 살면서 ‘나는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변명은 안 통할 것입니다.
그럼 진짜 미전도종족,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심판받을까요?
로마서에, 그들도 2가지로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 자연세계, 피조물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하나는 내적으로, 자기 양심의 법을 따라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들에겐 본성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름을 아는, 양심의 법이 있죠.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복음을 들은 사람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은 사람, 믿지 않은 사람에겐
심판이 따르니까요. ☞복음 들은 사람의 책임 P1/ 찰스 스펄전 P2
그래서 미전도종족처럼 차라리 복음을 듣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
복음을 듣지 않으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차라리 선교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자연세계와 양심의 법에 따라 심판을 받겠는데,
그건 굉장히 까다롭고, 어렵다고 봅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사실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방식이 훨씬 더 쉬우므로,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5장에 벨사살 왕의 무게가 달아졌습니다.
27절에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복음을 못 들은 미전도종족 같은 사람입니다.
그의 양심의 법에 따라,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불신자들이 비슷하게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양심의 법에 따라 심판받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믿음으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법이 훨씬 더 낫습니다.
▲그래서 진정 회개하고 용서 받은 사람은, 지옥 형벌 받는 심판을 면하게 되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성경에
‘그들이 주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고전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주님이 재판장 석에 앉으셔서 심판하실 때,
참 성도는, 그 재판을 도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성경에 참으로 기이한 구절이 나옵니다.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시는데, 거기엔 ‘함께 심판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다른 책들’에는,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다 적혀 있다면,
‘어린양의 생명책’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거기에 적혀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앞서 심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자기의 죄가 처리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심판대(보좌)에 함께 앉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십자가 없이 그 일을 하셨다면,
그분은 정의로우신 분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 죄를 봐주시고, 슬쩍 눈감아 주신다면,
나이스한 하나님은 될 수 있어도, 선하신 하나님은 결코 되실 수 없으시죠.
하나님은 의로우시면서(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며), 동시에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신데,
이 모순을 둘 다 만족시키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가 행한 모든 죄와, 또 앞으로 범할 죄까지도
지금, 이 세상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최후 심판을 면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면
최후의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의 값을 다 치르신 것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진정성 있는 회개를 하면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게’되어야 하는데, 이 말 justified 은 로마의 법정 용어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는 심판의 날이 올 것입니다.
심판장이신 주님 앞에, 또한 온 세계 만민 앞에!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회개하고 죄용서 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날에 심판 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심판을 받으셨으니까요.
예수님이 나를 대신 죽으심으로써, 나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그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크리스천들은 결코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네, ‘형벌의 심판’이란 뜻으로, 그건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롬8:1
그러나 크리스천에게는, 징벌로서가 아니라
보상으로서의 심판은 받을 것입니다.
재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얼마나 헌신/봉사했는지를
심판하시고,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위해서 세월을 아껴서 헌신했는지를 결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천국에 보내셔서, 그 상급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저 파슨은, 우리 각자가 천국에서 차등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신실하게 살았는지에 따라, 그게 결정될 것입니다.
그런 천국의 보상이, 신약성경에 여러 곳에 나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당신들은 지옥으로 가고 있지만, 나는 아니에요’ 하며
춤추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신에 진정한 크리스천은 그러지 않고서, 자신이 구원 받음을 감사하면서
이 세상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섬김과 헌신에 최선을 다합니다.
최후의 심판을 항상 생각하니까요. 쉽게 말해서, 영생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사는 게, 자기 인생 목적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을 믿으므로, 그 심판대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서두에, 모든 사람은 두 가지 약속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첫 번째는 ‘죽음’이요, 두 번째 약속은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하되, 마냥 두려워해서만은 안 되는 것입니다.
마치 시험 준비를 잘 한 모범생처럼, 심판 날이 상 받는 날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게 처리(회개)되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회개한 사람은,
최후의 심판에서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20;12 나는 또 죽은 사람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다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들을 펴놓고, 또 다른 책 하나를 펴놓았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
주1)
저 파슨은, 군대 군목으로 지냈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병들이 오면, 제가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여기 감리교인, 손들어 보세요. 침례교인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그들 중 일부는, 별 부담 없이 손을 들지요.
그러다가 제가 이렇게 물어봅니다.
‘여기 자기가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신병들이, 좀 미적거립니다.
주위 사방을 살피며, 누가 손을 들었나.. 두리번거리기만 하지요.
물론 당당하고 확신에 찬 얼굴로, 손을 드는 군인도 한 두 명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도리어 이렇게 질문하지요.
“당신이 말한 ‘크리스천’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면 제가 되묻죠.
“여러분이 말하는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입니까?”
혹자는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제가 ‘좋아요. 크리스천은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여기에 십계명을 지키는 크리스천은 손들어 보세요!’
여전히 군인들은 망설이기만 하며, 선뜻 손을 들지 못합니다.
그때 혹자는 ‘군목님, 십계명을 다 지키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제가 ‘좋습니다. 그러면 십계명 중에, 몇 개 정도 지켜야 크리스천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군인들은 서로 의논하며, 대부분 10개 중에 6개 정도는 지켜야
될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제가 ‘좋습니다. 6개 이상 지키면 크리스천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여기 크리스천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냥 우스갯소리를 하신 듯. 별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그 구별 기준과 표준이 무엇이냐?’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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