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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LNCK 2015. 10. 21. 15:27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20:7                  출처보기

 

 

 

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름의 가치

 

기업도 이름이 다 있고, 그 이름에 따른 가치가 있습니다.

어느 기업의 이름(브랜드 가치)이 최고인지 검색을 해 보면,

 

1위는 애플, 최근 5년간 부동의 1위입니다.

2위는 구글, 모든 젊은이들의 꿈의 직장이죠.

3위는 코카콜라, 아직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죠.

4위는 IBM

 

세계 기업 100위 안에, 우리나라 기업도 서너 개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어마어마하고, 몇 십 조 ~ 몇 백 조입니다.

그런데 그래봐야 100년이 넘어가는 기업이 없습니다. 길면 50년입니다.

다 쇠망하고 맙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름(브랜드 가치로 견주면) 얼마나 지속될까요?

백 년이 뭡니까? 수 백 년, 수 천 년, 아니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늘 설교의 주제는, 십계명 제3계명,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인데,

일단 그 이름의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국 신자들이 갖고 있는 기도에 대한 이해는, 굉장히 단선적이고, 단편적입니다.

기도를 해서, 문제를 해결받거나 응답이라는 열매를 받음으로써 기도가 완성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기도의 가장 결정체라고 이해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E. M. 바운즈가 말한 것처럼, 기도는 하나님만큼이나 광대하고 넓습니다.

기도의 제일 중요한 요소는, 뭔가 하면

어떤 절실한 필요 때문에, 어떤 위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서 부르짖다가

응답을 받는 것도 기도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그런 기도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부요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소득입니다.

이것이 기도가 갖는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를 여러 가지 이름(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등)에 담아

그 속성을 계시하시는 것은,

제일 중요한 게 뭐냐면,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를 그 이름으로 만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이 말이 갖는 오해가 뭐냐 하면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야 되겠다.. 라며

부르지 말라에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번 캄보디아 선교 때, 왕궁에 들어가서 국왕을 뵐 일이 있었어요.

그 왕실까지 운전해주는 캄보디아 청년에게, 가는 길에 제가 물었어요.

당신 나라 국왕의 이름이 뭡니까?’

 

그 운전수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가 국왕 이름을 몰라서, 대답을 안 하는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그 존엄한 상징인 국왕의 이름을, 평민인 자신들이 함부로 입에 거론하는 것을

꺼려해서 이름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살아있는 왕도, 사람들이 그 정도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히브리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할 때, ‘여호와의 이름이 나오면,

붓을 빨아서 새 붓으로 여호와란 이름을 씁니다.

 

또한 목욕을 새로 하고 와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쓸 정도로,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가치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보니까 신앙적으로 어떤 실수가 일어났는가 하면,

그 본체이신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고, 이름만 가지고 주술적 개념으로 쓰는 이해를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3계명이 주어진 배경에도, 그런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3계명이 십계명에 들어간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주술적으로 부르지 말라

 

첫째, 당시 주변 많은 이방 나라 가운데는, 각기 자기 우상 신들을 만들어 놓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계속 인간의 정성과 열심과 최선을 다해서 계속 반복적으로 부르면,

그 행위가 뭔가 신령한 효험을 가져다주고, 소원에 응답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열왕기상에, 엘리야가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노라

 

부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것은 이방 선지자/제사장들이 갖고 있는 이방종교 개념 때문입니다.

 

그들은, 본체인 대상은 상관없이 주술적/마술적 개념으로 이름만 계속 반복해서 부르면,

뭔가 효력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한국의 불자들도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이런 표현을 계속 반복해서 부릅니다.

인간이 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면, 그 치성(정성)이 쌓아져서,

그 계속 반복되는 이름을 외침으로써,

자기들이 바라는 어떤 복을 내려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흉내를 하나님의 백성들도,

주변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대로 흉내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이 십계명을 재정하는 당시에, 히브리 공동체가 갖고 있었던

신앙의 중요한 오류였어요.

혼합종교가 되어가고 있었죠.

 

이미 그들은 애굽에서 4백년동안, 애굽의 그런 우상 문화를 보고, 세뇌되어 생활해 왔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접근할 것을 염려해서,

이 말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데 강조점이 있지 않고,

오용하지 말고, 남용하지 말라는데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2. 이름을 부르되,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말라

 

십계명이란 명령은, 두 돌판에다 각기 다른 내용이 아니라, 똑같은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 시대에,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 후에 승패가 나면,

양자가 주종의 관계를 맺는 하나의 계약 체결서였습니다. *종주권 계약

 

그래서 똑같은 내용의 문건을 만들어서, 양자가 나누어 보관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십계명도 그런 형식이었죠.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당시 문화인 종주권 계약형식을 빌려온 것입니다.

 

거기에 맨 서두에 전쟁에 승리한 당신만 주군으로 섬기겠습니다.’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종주권 계약의 첫 번째 항목으로 들어갑니다.

십계명의 1계명에 여기에 해당합니다. *너희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그리고 종주권 계약의 두 번째 항목은

봉신국가인 패전국이, 다른 외부의 침략에 처했을 때는

주군의 국가가, 계약상, 봉신국가를 위해 대신 싸워주게 되어있습니다.’

이때부터 이 전쟁의 전선이 바뀝니다. 이제는 봉신국과 침략국의 전쟁이 아니라,

왕의 이름을 부르면서 도움을 청하는 순간,

주군은 병력을 동원해서, 이제 이 침략자와 직접 싸웁니다.

 

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이 3계명은, 이런 뜻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데 초점이 있는 게 아니고,

부르되,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전쟁이 일어나고, 무슨 삶의 문제가 터지면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죠. 그러면 전선이 바뀌어져서,

하나님이 자기 봉신국 국민을 위해서, 대신 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신약으로 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얻으리라고하셨죠.

이 계명을 그런 고대 시대의 조약법에 근거해서 이해를 가지면, 금방 이해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이름만 가지고

주술적 개념으로 그 분을 만나서는 안 되고,

그 이름 너머, 본체요 실체인 여호와께 우리의 도움을 구하고,

우리의 사정을 아뢰어야 된다는 것이, 3계명이 갖는 중요한 취지입니다.

 

다만 자기 사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오용/남용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을 수 있습니다.

 

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입술로는 부르나

뒤돌아서서 그들의 실제 삶으로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장난 삼아 부른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고,

거기에 망령되이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개념보다는 헛되이 부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이런 저런 사정을 말씀드리지만,

돌아서서 삶으로 들어가면, 전혀 그분의 백성답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무슨 이름을 달고 삽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을 달고 삽니다. 그런데 오늘날만큼,

교회 다닌다는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데, 혼란스럽고,

조롱을 겪는 시대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땅에 소망을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통해 두셨다는데, 우리의 삶의 과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말은,

내 전 존재와 내 모든 삶과, 삶의 목적과 방향이

전부 그렇게 살아내기가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그래서 3계명을 한 줄 다른 말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라입니다.

 

여러분, 엘리야는 구약성경에 그가 살던 시대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요즘 시대와 방불한, 가장 가치 혼란한 종교혼합 시대에 그는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란 이름은

.. 하나님이

.. 나의

.. 여호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이것이 엘리야가 살던 그 캄캄하고 칠흑같던 영적인 도탄의 시대에,

종교혼합주의 시대에 던져진 엘리야의 사명과 운명의 이름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사명과 운명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엘리야 처럼요!

 

여러분, 알렉산더 왕에 관한 유명한 일화를 다 아시죠?

그가 한 번은, 병영을 암행 시찰을 했습니다.

밤은 어두운데, 막사는 쭉 줄을 이어 늘어서 있고,

일정한 거리로 병사들이 중무장을 한 채,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 고요한 밤에, 어느 막사 뒤쪽에서 사람의 소곤거리는 대화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았더니 보초서는 병사 2병이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좋지 않았어요. 아주 흉을 보고, 비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좀 더 자세히 들어보니까,

자기가 아니라, 동명이인인 알렉산더라는 어떤 병사의 행패에 대해서,

동료 군인들이 흉을 보고,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알렉산더 대왕은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아침이 밝자, 대왕은 사병 알렉산더를 호출했습니다.

네 이름이 알렉산더냐?

지금부터 너는, 네 행동을 바꾸든지, 네 이름을 바꾸든지

양자택일 하도록 하여라.’며 아주 준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깜짝 놀란 병사 알렉산더는 그 후로 자기 행실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가 일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캠퍼스에서든지, 직장이든지, 가정이든지

우리는 성도로, 성도라는 이름만큼 아름다운 이름이 없습니다.

 

훗날 묘비에 목사 누구, 다 필요 없어요. “성도 OOO” 이게 최고입니다.

이 땅에서 가졌던 일시적인 직함이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러나 성도, 거룩한 자라는 뜻입니까

그것만큼 아름답고 명예스러운 이름이 또 있을까요?

 

우리가 가장 칠흑같고 암흑스런 이 땅에 지금 그렇게 던져진 존재들입니다.

여러분, 또 한 주간이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이 땅에 곤두박질 쳐진 교회의 명예와, 하나님의 영광을

누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까요? 바로 우리입니다.

 

이 한 주간 또한 그렇게, 거창한 구호보다도, 한 걸음 한 걸음,

그리스도인으로서, 선명하게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위해서,

다시 한 번 깃발을 들 수 있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이름은 명예                                -아래 설교 출처-

 

영어 표현에는 하나님의 이름인 ‘God’을 넣어

놀람이나 저주들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놀라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는 ‘Oh my God!’이라고 합니다.

저주나 욕으로 ‘God damn!’ 이라 합니다.

 

요즘은 God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살짝 바꾸어

“Oh my Goodness”라 합니다. ‘오 마이 가쉬 Oh my gosh’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대단하다는 뜻으로 성 대신 을 붙여 갓영민’, ‘갓종철합니다.

또는 ‘O느님이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 이름이 되어버린 을 이렇게 남발하는 것은

십계명의 제3계명을 정면으로 어기는 행동입니까? 물론 언어 사용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3계명을 주신 이유는 단순히 말조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를까요?

이름이라는 것은 그 존재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의 이름을 알면

그 신의 신적인 능력을 이용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신적인 능력을 이용해서 축복과 저주를 하고

심지어 귀신축출이나 마법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처럼 함부로 오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여 망령된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은 맹세와 서원을 할 때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레위기 1912절에서는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대에서는 사람들이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진실을 주장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진실하면 무방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한 결과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이고, 이에 대해서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시는 분,

자신의 명예에 매우 민감한 분이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도 합니다.

 

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여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라.. 이게 여기에 담긴 본래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이유도 하나님의 명예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9:16절입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대제국 애굽의 바로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사술이나 마법을 행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는 것은 오히려 작은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언제 더 더럽혀집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뜻에 거부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14:11)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가진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하나님은 화를 내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예가 걸린 민족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특별히 아끼시는 민족이,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은 망하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수치스런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포로가 되어 부끄럽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수치가 됩니다.

역사를 주관한다는 신의 능력이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지 못할 정도냐는 조롱을

하나님은 견디지 못합니다.

 

에스겔 3620절입니다.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된 땅에서 해방된 것 또한,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에스겔 36:21~22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언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집니까?

그냥 그 이름을 함부로 말로 발설했다고 해서 더럽혀지는 경우는 오히려 작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사술이나 마법을 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라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면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대교리문답십계명 부분에서 제3계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거나 오용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면 이렇게 간단히 답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한다는 뜻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주님으로 부르면서

거짓과 악한 습관을 일삼는 것을 말합니다.’”(51)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봅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들이 엉터리로 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부르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와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29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선포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신앙인이 예수쟁이라 불리면서도 거짓과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이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이름의 능력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 이름을 찬양하라는 뜻에서입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69:30)

 

우리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입으로 행동으로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우리는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신 이유는

우리로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낙성식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왕상8:29)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주시라는 간구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상7:14)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14:13)

 

예수의 이름의 기도는 얼마나 위대하며 능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있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6)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마무리에 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는 말에는 얼마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