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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안디옥교회로

LNCK 2016. 1. 8. 08:53

◈다시 안디옥교회로!   행11:19-26, 13:1-3    15.12.20. 출처

 

당시 로마제국 내에는 안디옥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지역이 16군데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성경에 기록된 안디옥은, 터어키 중부의 '비시디아 안디옥'과

터어키 동남부에 있는 곧 오늘 본문의 안디옥으로, 수리아주의 수도입니다. *수리아 안디옥

 

이는 로마제국 내의 3대 도시 곧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3대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안디옥 그 이름은 셀레우코스왕조의 아버지 안디오코스를 기념하여 명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디옥에 복음이 들어가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세계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것은 참으로 감격스런 역사입니다.

 

스데반이 유대교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음에 이르게 되고

점점 핍박이 심해지자 성도들이 핍박을 피하여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핍박은 선교의 흐르는 강물을 더욱 거세게 흐르게 하는 폭우가 되었습니다.

 

요즘 IS의 잔혹한 행동에 대하여 오히려 회의를 느끼고 적지 않은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로 돌아서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다메섹이 사울의 개종을 가져오게 했다면, 안디옥은 세계선교의 중심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안디옥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를 찾아보면서 주께서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1. 안디옥교회는 “환난이 낳은 교회”입니다.

 

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박해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이 그곳에서 전도함으로 모이기 시작한 교회로서

특히 이방땅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였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도 수많은 환난의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

특히 일제의 수난과 6,25전쟁의 고통은 한국교회를 쭉정이가 아닌 알곡으로서의

신앙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무신론자에게 환난은 절망과 비탄을 가져오지만,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우리가 지체하여 보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문이 열리는 터널과 같은 통로인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없었다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울타리를 쌓는 신앙으로 굳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깨뜨리십니다.

 

 

2. 안디옥교회는 ‘그리스도인’을 낳은 교회입니다.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교회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낳게 되었습니다.

 

“크리스티아누스” 이 말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곧 그들은 “주께 붙어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23절의 말씀에서 보듯,

“주와 함께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앞서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22~24절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낳는 일에 바나바와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

 

바나바 그는 착한 사람이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그를 열린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인종들이 머물고 있는 국제적인 도시 안디옥으로 보내셨습니다.

그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4절

 

그리고 바나바는 아직 다소에 머물러 있는 사울 곧 바울을 찾으러 갑니다.

그를 데리고 와서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사역을 돕도록 했습니다.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여기 ‘찾으러’ - 이 말의 원문 ajnazhtevw 는 “한 집 한 집 물어서 찾는다”, “샅샅이 조사하다”,

“열심히 찾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께서 몇 년 전에 다메섹에서 부르신 일꾼이었는데, 여전히 다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바나바는 때를 알고, 때를 놓치지 않고, 때에 열심을 품고 헌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샅샅이 뒤져서 함께 헌신할 바울을 찾아냈습니다.

다같이 “열린 마음으로 헌신하여, 더함이 있게 하자”

그들의 헌신으로 안디옥에 주님께 속한 자들 곧 그리스도인을 낳게 했던 것입니다.

 

3. 안디옥교회는 “열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에 임하신 은혜와 성령의 역사는 소중한 일꾼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예루살렘교회에서 파송한 일꾼 바나바

니게르라 하는 니그로 검다 곧 흑인 시므온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의 수도 구레네 사람 루기오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젖동생 마나엔

 

헤롯은 갈릴리, 베레아지역의 분봉왕으로 세례요한의 목을 베게 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동생이 안디옥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핍박했던 사울

 

여기에는 인종과 사회적 지위가 다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되었습니다.

 

실로 열린 사람 “바나바와 바울”의 양육을 받았던 안디옥교회는

열린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한예수교장로회 100회 총회시, 수요일저녁 총회100회 기념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증경총회장 림인식목사님은 설교에서 이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에는 진보신학과 보수신학이 있는데,

   진보는 교회를 세속화로 흐르게 하였고, 보수는 근본주의에 빠져서 교회의 분열을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저항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시는 극보수자로 오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는 죄인 세리의 집에도, 창기의 집에도 들어가시는

   매우 진보적인 분이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당시 종들이 너무 많은 시대였지만, 노예해방을 거론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신분의 문제는 지협적인 문제였습니다. 사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그 주인 밑에서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은 오히려 모든 염려 내려놓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면 종이 되어도 좋다는 겁니다.

   실제로 사랑하면 종이 하는 일을 즐거이 합니다.

 

지협적인 문제로 신음하고 다투는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큰 문이 열리면 작은 문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열린 세계입니다. 자기중심으로 닫혔던 인간이 열려서 다른 사람에게로 나아가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열린 교회였고, 이 세상에 더 큰 문 하나님나라의 문을 여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4. 안디옥교회는 기도의 자리에 엎드려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존 낙스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 안하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역사의 선행지수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의 시작이 내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짚어보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오늘 안디옥교회도 자기를 비우며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맡기십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신 역사를 보이셨습니다.

 

기도는 교회의 문을 열게 합니다.

기도는 교회로 하여금 닫힌 세상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결국 안디옥교회는 선교의 일꾼을 보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1. 안디옥교회는 “환난이 낳은 교회”였습니다.

2. 안디옥교회는 ‘그리스도인’을 낳은 교회였습니다.

3. 안디옥교회는 “열린 교회”였습니다.

4. 안디옥교회는 “기도의 자리에 엎드려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환난은 새로운 문을 열게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열린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중심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중심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이 될 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 비로소 하지 않았던, 할 수 없었던,

생각지 않았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에 임하면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예수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따라 복음의 열정으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환난은 새로운 문을 열게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열린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중심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중심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심에 순종할 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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