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안겨준 기회 수7:1~26 스크랩, 출처
◑서론
▲여호수아 군대의 아이성 전투의 참패는 사실 굉장히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여리고성은,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그 엄청나게 견고한 성을, 가나안 첫 정복전쟁에서 여호수아 군대가 승리한 후에
명성이 자자해 졌습니다.
수1:27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그러고 나서 바로 작은 아이성 전투에서 참패를 당했다는 것은,
뜻밖이요, 충격이었습니다. 그 모든 명성이 하루 아침에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사실 지금 우리가 겪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직후 설교
우리가 88올림픽을 비롯해서, 2002년 한일월드컵, 또한 한류열풍을 타고서
지금 문화, 예술, 체육,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굉장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사회의 여러 분야가 병들었고 썩어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강하고 위대한 민족이었고, 세계를 재패 할만큼 멋진 실력들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작은 한 선박회사가 온 나라를 다 뒤집어놓았고,
국민들의 사기가 아주 비참하게 땅에 떨어졌습니다. 마치 아이성 패배 후의 상황과 흡사합니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요?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인명 피해를 내면서도
이런 커다란 실패, 좌절을 맛보게 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뭘까요?
거기에는 우리의 실패한 실상을 보여주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죠.
그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은 놀라운 새로운 기회를 우리에게 안겨주기를 원하셔서 허락하셨습니다.
이 실패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제공되는 기회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개인의 삶에서 갑작스럽게 겪게 되는 실패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실패를, 완성을 위한 과정으로 간주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실패를 주실 때, 하나의 과정으로 주실 뿐
결론으로 실패를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실패를 겪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뭐냐면
'이게 마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실패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성 전투에서 참패는,
아이성 전투의 실패를 의미하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이스라엘의 미래가 전부 다 끝났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이하게, 어떤 한 가지 일에 실패를 경험하면
놀랍도록 모든 것을 다 포기하려고 하고,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참 무서운 인간의 반응이죠.
일부분의 실패를, 전면적인 실패로 확대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이런 잘못된 습성이 우리에게 있는 거죠.
똑같은 모습이 본문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수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지금 여호수아의 행동을 보십시오.
그렇게 믿음이 좋은 지도자였던 그가, 지금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그 백성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 땅에 엎드렸고..
지금 침묵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완전히 절망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저물어서 밤이 되니까, 속에서 울분을 이렇게 토해냅니다.
수7: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여호수아는 지금 아이성의 실패를, 이스라엘의 전멸로 생각하는 겁니다.
작은 실패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한 가지의 실패가 하나님의 계획까지 좌절시키고 포기하게 만드는 걸까요?
과연 하나님의 꿈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꿈이
아이성 전투의 패배로 인해서, 좌절된 것일까요?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실패속에서 이런 감정적인 유혹에 늘 넘어집니다.
'한 가지 실패하면, 다른 것을 다 포기하는 유혹, 자기 인생의 미래까지 다 던져버리고 싶은 유혹'입니다.
예를 들어, 젊은 청년들은 연애를 하다가
애인에게 버림을 받으면.. 심한 경우 자살까지 생각합니다.
그는 연애만 실패한 것이지, 인생이 다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인간만 나를 버린 것이지, 온 세상이 나를 버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니, 왜 애인과 헤어지고나면, 교회를 안 나옵니까?
왜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하면서, 자꾸 한강에 뛰어내리려 합니까?
그 인간만 나를 떠난 것이지,
이제 이 세상의 절반의 남자들이 다 새롭게 가능성으로 열리게 되었는데,
그 인간한테 실패한 것이, 왜 내 인생 전부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늘 그렇잖아요.
저도 그런 성향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내와 심하게 싸우고 나면, 계속 드는 생각이
'나는 목회 그만 둬야지. 담임목사 내려놓아야지.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아내와 다투는 것은, 그것은 순간적이고 지극히 부분적인 실패인데,
저 역시 그걸 전부로 인식해 버립니다.
'나는 이제 목회를 접고, 산 속에 들어가서 도나 닦아야 되겠다'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성향이 많습니다.
여러분, 연애는 못 해도 직장생활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연애에 실패했다고, 직장까지 그만두려고 합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성 전투의 실패가
가나안 정복전쟁의 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딱 한 군데서 실패한 것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연약함을
즉 실패 한 가지를, 전체적으로 확대시키면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못되게 구는 심성을
치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그들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데요. ↓
수7: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자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지금 돌보고 계십니까?
'일어나라!' 이 말씀은,
'지금 엎드려 있을 상황, 좌절할 상황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 네게 꼭 필요한 경험이고, 네게 의미있는 일인데, 너는 왜 여기서 포기하려고 하느냐?‘
여러분, 꼭 한 가지 잘못하고 실패하면,
사람은 이불 뒤집어쓰고, 방에 쳐박혀 두문불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어나라, 어찌하여 엎드려있느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상한 손길로, 실패 중에도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수7:13a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지금 이스라엘은 '오늘 다 끝났다. 만사가 다 끝났다'며 다 뒤집어 엎을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 '일어나라!' 하신 다음에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주님 나는 오늘로서 다 끝났습니다.' 하는데
하나님은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다시 말해서 내가 실패한 와중에도, 하나님은 내일을 계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좌절해서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고, 낙심해 있는데
놀랍게 하나님은, '나의 내일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내가 네 내일을 준비해 놨는데, 내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인데
너는 왜 지금 그렇게 엎드려 있느냐?'
오늘 이 한 군데서 실패했지만, 내일은 새 날이고, 무한한 가능성의 날이고,
내가 너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준비했는데,
왜 어제의 실패 때문에 내일을 포기하려고 하느냐? 그러므로 일어나라!'
여러분, 실패 중에도 이렇게 내일을 준비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사실 여호수아가 절망한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9절에 보면, 왜 이들이 이렇게 통곡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이성 패배의 소문이 쫙 다 퍼질까봐 두려워한 것입니다.↙
수7: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저들이 우리 이름을 세상에 끊으려 합니다.
주님의 크신 이름이 이제 땅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어찌하려 하십니까?
이런 실패를 경험했는데,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끝났습니다.
우리 이름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소문 다 났습니다. 창피해서 죽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좌절한 그들에게, '내일을 위하여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실패는, 내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성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실패가 결론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아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실패가 있었던 것이다.
그건 꼭 필요한 것이니까 일어나서 다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훌훌 털고 출발하면 된다.
실패가 네게는 놀라운 미래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테헤란 궁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궁 중의 하나입니다.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운 궁입니다.
온 벽과 천장과 창문에, 마치 다이아몬드를 하나 하나 박아놓은 것처럼
햇빛에 찬란하게 빛을 반사하면서, 눈으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테헤란 궁이 지어지게 된 계기는
이 왕궁을 짓기 위해서 최고급 유리를 프랑스에 주문했습니다.
몇 개월에 걸쳐 특별히 제작되고, 또 배를 타고 정말 먼 길을 따라 배달되었습니다.
그런데 테헤란에서 포장을 뜯어서 유리를 설치하려고 보니까, 유리가 다 깨져 있었습니다.
포장을 잘못해서, 운송과정에서 파손이 되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이란은 프랑스 정부에 항의하고, 그 회사에 항의하면서 다시 제작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제작하려면 또 몇 개월이 걸리고, 수송하는데 또 몇 개월 걸리니까
공사기간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분통터지는 상황이었죠.
그러던 중 공사장의 한 견습공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어차피 유리가 다 깨졌으니까 마저 깹시다.
그래서 유리를 거의 가루처럼 잘게 부수어, 벽면과 유리창에 붙였습니다.
한 면을 시험적으로 만들어보았더니, 그 태양빛에 그 유리가루가 반사되면서,
형형색색의 찬란한 빛이 나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제 벽면만 아니라, 창문, 천정, 기둥에 전부 다 유리가루로 시공하자'
깨어진 유리로 부족해서, 유리를 더 사서 깨어서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테헤란 궁'입니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견습공은, 어떻게 해서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요?
이 견습공은, 건축노동자로 오기 전에 테헤란에서 작은 양복점을 운영했답니다.
그런데 영업이 너무 잘 되지 않아서, 먹고 살 길이 어려워서 타개책으로,
양복을 재단하고 남은 조각천들을 서로 연결해서, 우리나라 옛날의 누비이불처럼
조각천을 막 연결해서 이불도 만들고, 옷도 만들었는데
그게 너무 예뻐서 오히려 원래 양복보다 더 조각천 붙여만든 옷과 이불이 더 잘 팔렸다고 합니다.
그가 깨진 유리를 보는 순간, 예전에 자기가 만들었던 생각이 떠오른 겁니다.
그래서 한 번 제안을 해 보았는데,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왕궁을 만들게 된 것이죠.
한 번 깨어지고 실패했다는 것은, 방법을 잠깐 바꾸라는 것이고
새로운 방향 전환을 하라는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길이, 그 길 가운데 있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놀랍게도 이스라엘/우리에게 굉장한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정말 좌절하고 낙심해있는데,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고 계십니다.
실패는 늘 그 한 가지 항목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정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큰 실수를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용납이 안 돼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도
자기는 제자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거의 인생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요21장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보면, 그런 정황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런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3번이나 당부하셨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저 같으면 절대 그런 식으로 안 합니다.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베드로야, 네 죄는 용서하겠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니?
(예 제가 주님 사랑합니다.)
그래? 그럼 앞으로 조용히 살아라. 내가 용서는 하겠다. 그러나 제발 설치지는 말아라.
네게 일 맡기기가 걱정된다. 그냥 야고보와 요한이 일하도록 하고, 너는 조용히 살아라.
너는 여기서 물고기나 계속 잡고 살아라. 네 죄는 용서해 줄게. 우리 장래에 천국에서 만나자!'
그 실패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은,
다시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위해서 내일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왜냐면 베드로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가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던 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한,
오직 믿음으로만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거든요.
그래서 베드로는, 나중에 바울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 온통 이런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바울을 예로 들면, 바울은 정말 경건하게 살았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헌신한다고 열심히 헌신했습니다.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살인을 행하고,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극악무도한 죄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빛이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자기가 예수님을 오히려 박해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충격이 너무 커서, 평생을 헌신했던 율법,
그리고 목숨을 걸고 사람을 잡아가두었던 그 모든 충성이
하나님을 향한 대적이었습니다. 큰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너무 충격이 커서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런 원인도 일부 있을 것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이방인을 위한 나의 그릇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놀랍게 그 바울의 모든 실패는,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가득차 있어서, 베드로도 야고보도 요한도
이방인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습니다.
메시야는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
개같은 이방인들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상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경우는, 유대인들에게는 배신자가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만나면 누구나 다 바울을 죽이려고만 했습니다.
40명이 금식하면서 바울을 죽이기까지는 먹지도, 자지도 않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유대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니까, 유대인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유대인 크리스천들에게 가면,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너 때문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고, 너 때문에 우리 친척이 지금 감옥에 있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만나냐? 네가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며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는 경험했는데, 갈데가 없습니다.
이 복음을 누구한테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는게 자기의 과거를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바울이 아니면, 그 누구도 유대인중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할 수 있는 어떤 환경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그 바울의 과거의 커다란 실패가, 내일에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과정이었고,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입니다.
우리는 때로 지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실패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위한, 내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과정으로 꼭 필요한, 완성을 위한 하나의 한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실연당했다고 절대로 한강으로 가지 마십시오.
절대로 취직못했다고, 승진시험에 떨어졌다고, 다른 것까지 다 포기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내일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믿으십시오.
저는 이번 세월호 사건이, 너무나 큰 희생이었고,
정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정도로 너무나 분하고 아프지만,
그들의 고귀한 희생 때문에, 이 민족이 모두 새로워지고,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지고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리라 봅니다.
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주어진 시련이라 봅니다.
그러므로 결코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아서, 이 민족이 완성되고 위대해지는데,
밑거름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실패를 거룩함의 기회로 삼으라
여러분, 본문 수7:11~13절에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실패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등과 같습니다.
어떤 일이 실패했다 라는 것은, 내 삶에 아주 중요한 측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아주 소중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실패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거룩해지고 경건해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수7:13a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자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다시 말해서 아이 성의 참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진을 멈추게 하시고
지금 아주 중요한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은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입니다.
스스로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는,
거룩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결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이 뭐냐면
지금 아이성의 참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거룩의 개념을 수정하고 계십니다.
무엇이 거룩하고 성결한 삶인지를, 완전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롭게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우리 자신이 지금 거룩에 대한 개념을 대단히 잘못된,
유교적/불교적/무속신앙적 의미의 거룩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정한 의미의 거룩과 경건이 뭔지를
실패를 통해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려고 작정하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습니까?
본문 11~15절에, 또 1절에도 반복해서 나오는 아주 중요한 단어가
"온전히 바친 물건을 누가 취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죠.
'온전히 바친 물건'이란,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 은금동철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진 것인데,
거기에 있는 의복 등 모든 물건은 완전히 불살라서 거룩하게 정화해서
하나님의 성전에 바쳐야 되는, 아주 소중한 것인데
그 온전히 바쳐야 될 것을, 너희 욕심을 위해서 탐욕을 위해서
하나님의 것을 너희가 갈취해서, 너희의 소유로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아주 중요한 거룩의 개념이 달라지는데, 우리는 '거룩'을,
-경건한 의식을 제대로 구별되게 행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는 해야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잘 구별해서 행하는 것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 이들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를 당할 정도로 심각한 이유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될 것을, 그 바치는 그 사건과 일을 이용해서
자기의 소유물로, 자기 것으로 취했다는 것입니다.
뭘 의미하느냐면, 좀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가나안 전쟁 전체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전쟁이었습니다.
이 노예들이 나와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복이지만,
가나안 땅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엄청난 죄악, 자기 자녀들을 불살라 태워서 제물로 드리고,
성전에서 혼음하고 간음을 행하는 것이 그들의 제사 의식이 되어 있고,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하게 대하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가 쌓을 대로 쌓여서, 마지막 심판만 진행되는 것이 가나안 정복전쟁의 본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나안 정복전쟁은, 성전이었습니다. holy war
그것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었어요.
이스라엘은 그 땅을 차지하게 되는 약속의 선물을 받는 것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건은 동시에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대단히 거룩한 성전이지, 약탈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 택함받을 때부터 레위기에 계속 나오지만,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그들은 노예로서 세상에 희망이 없던 사람들을, 값으로 구원해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은 것은,
이제는 그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일상 모든 것이, 축복으로 받는 사건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일상과 거룩이 구별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모델케이스가 여리고성 점령입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는, 그것은 거룩한 일이니까
이것을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도 네 소유로 욕심으로 채우지 말고, 갖지 말고, 전부를 다 불살라서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라.
그러면 가나안 땅 남은 성을 점령해 들어갈 때, 너희들이 취해도,
여리고성에서 그렇게 한 것이 예표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가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여기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어요.
우리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죽을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그 분의 생명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는 것은,
고후5장의 말씀대로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분을 위해서 사는,
그 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게 거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직장생활 하는 것, 대단히 거룩한 일입니다.
왜냐면 직장에서 우리는, 돈을 벌고 자아성취의 기쁨을 맛보지만,
그 모든 것은 거룩한 일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나라를, 직장 가운데서 그 공의를 실현하고,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될 때,
그 직장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될 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동시에 세속적인 일을 직업의 일인 것 같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명입니다.
그 의식을 잃어버리고, 거기서 무엇을 취할까, 이득을 취할까 많이 쌓아둘까
더 권력을 누릴까에 목적을 두게 되면, 그것이 바로 죄악입니다.
그것이 온전히 바칠 물건을 (내가 아간처럼) 취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죽임을 당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세상에서 어떤 소유를 가지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이 되면,
그게 세속화된 사람입니다. 아간입니다.
그 어떤 것이든, 어떤 자리에 앉든, 무슨 일을 하든지
이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거룩한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은,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헌신하면,
그게 거룩한 삶이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직업이 뭐든지 그것은 성스러운 일입니다.
직업소명설에 입각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 12b절을 보면,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무슨 뜻입니까?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내가 소유하고 있으면, 내 삶 전체를 바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곳이고, 마지막 날에 불로 다 심판을 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을 취해도, 그것은 어차피 멸망당할 것입니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없어질, 하나님께 바쳐질,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대상을, 내가 품고 있으면,
나도 내 자신도 바쳐지는 격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어차피 이 세상에 어떤 소유나, 어떤 자리나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땅에 살아가면서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바쳐질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는게 아니라,
이 세상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소유가 문제가 아니라 사명이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바친 일을 위해서 하는 게 중요한 거지,
얼마나 많이 쌓느냐, 얼마나 높이 승진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어차피 다 심판을 받고 없어질 것이니까요.
로마제국이 영원합니까?
세상에 어떤 나라가 영원합니까?
다 멸망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그것을 바라보며, 소명의식으로 사명감으로 사는 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어떤 식으로 예배드리냐, 어떤 교리를 믿느냐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전방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삶. 내 삶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첫 전쟁을 통해 각인시키신 것은
'너희들은 하나님께 거룩한 사명감으로 나머지 인생을 사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시대가 왜 재앙이 가득하냐면, 이 의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계, 경제계, 문화계, 체육계 등 모든 영역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거룩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없이
내가 거기서 무슨 이득을 취할까, 더 많이 소유할까, 더 떵떵거릴까 가 목표가 되는 순간
재앙이 임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재앙이 임합니다.
어떤 바쳐진 물건을 탐욕스럽게 취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대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시대에 이 큰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십니다.
자녀도 네 소유가 아니라는 거죠.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바르게 살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것이
거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재앙을 통해서 '스스로 성결케 하라'
너희가 무엇을 위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지 다시 생각해라.
겨우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일을 위해서 스스로 성결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3. 실패를 회개의 기회로 삼으라
하나님께서 이 실패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교훈을 하나 주시는데,
그것은 회개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그 기회는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5:24~ 이하 길어서 요약했습니다.)
하나님은 범인이 아간인지 벌써 알고 계셨습니다. 7:1
그러면 이스라엘이 참패하고, 하나님 앞에서 울 적에
범인은 아간이라고 빨리 밝히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행동을 하시는데
자꾸 제비를 뽑게 하십니다.
제비도 지파, 족속, 가족, 남자 순으로 여러 번 제비를 뽑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간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아간이 간이 서늘해지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겠지만
빨리 회개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는 점점 더 숨습니다.
자꾸 제비가 좁혀질 때, 아간이 빨리 회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기회를 주시는데, 아간은 끝까지 회개를 안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실패를 주시는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당장 "아간 이놈!"하시지 않는 것은, 나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줄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종 사고를 통해서, 이 민족이 회개하라고 계속 경고를 하십니다.
더 큰 재앙이 오기 전에, 회개하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많은 회개의 경고와 싸인과 기회를 주셨으면,
우리는 그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구원하는 위대한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영원한 멸망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기회로 바뀌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실패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그런 주님의 섭리를 깨닫고, 내가 다시 거룩한 나라로 변화뒤는
귀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분류 없음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사람 (0) | 2016.05.03 |
---|---|
설교 만이 아닙니다 (0) | 2016.04.03 |
성장이 비결이다 (0) | 2016.03.04 |
덤핑 복음 (0) | 2016.01.21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0) | 2016.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