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핑 복음 2014.05.17 스크랩, 출처
※제목인 ‘덤핑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덤핑으로 원가 이하로 팔 듯이, 값싸게 팔아치우면,
나중에 결국 해를 당하게 된다는 그런 주제인데요, 어느 지역교회 목회자의 칼럼을 스크랩했습니다.
▶테레사 수녀와 함께 막사이상을 수상하고
사후에는 금관문화 훈장을 받은 강직한 언론이 있었습니다.
공화당 군사 독재 시절 강력한 비판 정신으로
민중과 지식인들을 깨우는 잡지를 만들어 팔았는데
당연히 정권자들의 미움을 받아 갖가지 압박과 위협
그리고 회유에 시달리는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그 잡지를 진열하는 서점마저 들볶아
이제는 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채워진 잡지를 만들어도
팔수 조차 없게 되는 궁지에까지 몰리게 됩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잡지의 내용과 성격을 고집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적당하게 타협하여 살길을 찾자는 식의 제안을 하는 사람들 마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그의 태도는, 조금도 굴함이 없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잡지를 폐간하면 하였지, 내용과 성격을 변질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태도 때문에, 결국 10여년간 우리나라 민중과 지식인들에게
바른 의식을 심어주고 민주주의 발전에 유익한 역할을 하던 그 잡지는
폐간되는 수모를 당하지만
후에 그는 진정한 언론인의 표상으로 존경을 받고
그 잡지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잡지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미국에서 래리 리 라는 젊은 목사가,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문제가 많은 한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부임하자마자 그를 찾아온 교인들과 교회 청년들의 요구는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지 말고,
주말마다 벌어지는 댄스 파티 같은 오락 행사를 묵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허락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목회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충만하고 의욕적인 이 젊은 목사는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열정적인 설교와 기도 그리고 회개 운동으로 교회를 이끌어 갔는데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며 불평하던 교인들이
도리어 은혜를 받고 바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교회를 좋아하며
충성하는 이들이 되더랍니다.
▶필자가 오랜 목회를 하다 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겪게 되는데
그 중에는 자기의 취향과 생각에 맞지 않으면
복음이나 교회의 전통 또는 목회자의 지도에 대해 거부하거나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해 부활절 두 사람의 새 신자에게, 세례를 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비록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으나
한 사람의 태도는 분명하여 은혜 받기를 사모하고
교회 일에도 빠짐 없이 충성스러워서
세례를 베풀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었습니다.
비록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교회 출석이나 봉사 활동같은 외적인 조건뿐 아니라
진정 마음의 감화와 은혜를 받아, 자기를 부인하고 주의 뜻을 따르려는
그런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똑같은 시기에 교회에 나온 사람인데
누구에게는 세례를 베풀고, 누구에게는 베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세례를 베풀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을 듣고서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고 주변의 사람들이 팔짝 뛰었고
한편으로 나는 ‘세례 받은 후에라도 마음에 은혜를 받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베푼 일이 있었습니다.
비록 이 일로 말미암아 시험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성도님은, 물세례를 받은 후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요?
제 바램대로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잠시 그때뿐, 마음은 전혀 바뀐 게 없고
교회생활마저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불성실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하여 나는 ‘세례 교인의 생활은 이런 것입니다’ 하며
책망 비슷한 소리를 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반성하며 받아들이기 보다는
‘칭찬을 받아도 서운할 판에, 그런 소리까지 듣느냐’는 식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여기 아니면 다른 교회가 없느냐’는 식의 마음을 품는 것이었습니다.
제 책망에 마음에 그런 시험이 든 후
그 여성 성도님은, 교회에 나오는 둥 마는 둥 아주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다가
급기야 말도 없이 이웃의 큰 교회로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목회자의 가슴은, 깊이 후벼 파지는 상처를 입습니다.
더군다나 평소 목회자에게 불만이 있던 일부 사람들은
목사가 잘못해서 교인을 놓쳤다는 식의 구설을 늘어놓고,
심지어 그를 받아들인 이웃의 큰 교회 신자들은
‘목사가 무능해서 교인을 놓치는 게 아니냐?’며
도리어 흉을 본다하니.. 이런 사태 앞에 어찌해야 할까, 저는 난처했습니다.
이에 덧붙여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당신에게도 잘못이 있노라’며
사모마저 저를 힐난할 때, 정말 나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나는 ‘그래 두 번 다시 교인들 시험 들게 하지 말고,
그저 듣기 좋고 기분 좋게 위로나 해주고, 비위나 맞추어주고 그래야 한다’고
속 좁은 자신을 탓하며, 새 결심을 해야 하는가요?
▶복음의 정신과 기독교 신앙의 변질에 대한 압력은
세속적 정신이 판을 치고 득세하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찾아오는 하나의 위협이자 유혹입니다.
다른 케이스인데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의 상태는 물론이고
복음이나 성경에 대한 이해, 또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나
음주 흡연 같은 기초적인 행실에도 변화가 없는 사람이
이웃의 교회에서 남자 권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에게 권사라는 교회의 주요 직책을 맡긴 이유는
그가 의회 의원으로 지역 사회 속에서 영향력이 있고
잘만하면 장차 활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계산 때문일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외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결과가 이렇다고 합니다.
선거 때 외에는 목회자들에게 눈곱만큼의 존중심도 없고
목사 앞에서 담배를 뻑뻑 빨아대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분을 ‘권사’로 불러야 한다니요...
권사로 임명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자기 제품에 자신감을 가진 유명 회사는
비록 판매가 부진하다 하더라도, 회사의 자존심 때문에
절대로 자기 제품을 덤핑으로, 즉 헐값에 처리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 때 좀 어려움을 각오하고서라도
필자가 그녀에게 세례를 덤핑으로 팔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이 이렇게 참담하지는 않을 것을...
또 그런 사람을 받아, 성장의 잔치판을 벌이고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보고 교회의 임직자를 세워
공생의 축제를 즐길 때
지금 당장은 잠시 즐거울 지라도
머지않아 삼풍백화점 무너지듯 부실 공사의 수치와 비극이 클 것을
왜 잊으려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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