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레19:9-10, 막6:30-44 16.04.24스크랩, 출처
◑서론
우리는 이 기적의 사건을 ‘오병이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에 보면 마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에는 빠져 있는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사건은 사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큰 감동과 충격을 준 사건이요, 잊지 못할 기적 중에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는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성서의 독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기적은 오병이어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으셨다는 기적,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기적, 바람과 풍랑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다는 기적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소위 자연 질서를 마음대로 하셨다는 자연에 대한 기적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같은 기적이라도 우리가 의심하지 않는 기적이 있습니다.
병을 고쳤다거나, 귀신을 내쫓았다거나 이런 기적에 대해서는 대개 의심을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건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기적은 나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 질서를 깨트리면서 기적을 행한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이런 유형, 자연에 대한 기적이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믿기가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이 기적의 초점은 예수님, 예수님의 마음
우리는 오병이어의 사건을 해석을 할 때, 예수께 초점을 주지 않고, 먹는 것에 그 초점을 두고 해석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기적이 사실일까? 어떤 떡을 먹었을까? 주변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이상한 보류상태 혹은 미결정의 상태로 남겨둡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와 함께 한" 식탁의 교제입니다.
누군가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서 대통령과 함께 저녁 만찬을 같이 했습니다.
이 식탁에 초대받은 사람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함께 먹은 메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대통령과 함께 먹었다는데 사실에 관심을 둡니다.
문민정부 시절에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칼국수로 내빈을 대접했습니다.
이때 대통령과 식탁을 같이 한 사람은 칼국수 먹은 것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4복음서 기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함께 먹었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기록하는 사람마다 이 사건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병이어 이 사건의 핵심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께서 어떤 마음으로 군중들을 대하셨고, 어떤 마음으로 군중들을 먹이셨느냐는 점입니다.
오늘 벳새다 들판에 모인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배만 고픈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목말라 있습니다.
목자를 잃어버리고 유리방황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느라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됩니까?
벳새다 들판에 날이 저물도록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도시락도 싸오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목이 마른 사람들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소외된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셨을까요?
마가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 예수님의 마음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불쌍히 여기사”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마가는 여지없이 “불쌍히 여기사”하는 말이 등장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불쌍히 여기신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기적이 출발한 것입니다.
‘얼마나 배가 고플까?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하였으면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말씀을 들을까?’
마음 깊은 곳에 우러나오는 연민과 사랑이 절절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기 전에 그 아픔과 배고픔을 함께 나눈 것입니다.
기적의 출발점은 능력이 아닙니다. 기적이 출발하는 이름은 긍휼입니다.
▲마가는 아주 어수룩한 듯하지만 아주 치밀하게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마다 “불쌍히 여기사”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일으키는 출발점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진실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것이 곧 기도입니다.
사실 기도 중에 최고의 기도가 “주님, 불쌍히 여겨주옵소서”입니다.
교회의 큰 물줄기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가톨릭과 개신교회가 속한 서방교회와
정교회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가 있습니다.
서방교회는 교회와 제도권 중심으로 발달했고, 동방교회는 수도원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동방교회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기도의 전통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예수기도"는 최고의 기도라고 여겨집니다.
여리고 소경이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었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들숨과 날숨 호흡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런 기도드리고 나면, 언어를 넘어서는 하나님과 합일 된 느낌마저 듭니다.
기도 중에 최고의 기도가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 안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길 때 기도의 응답의 역사가 나타나고,
우리가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을 불쌍히 여길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기적하면 마술하는 사람들 손에 지팡이처럼 순식간에 무엇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기적은 아주 서서히 마음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오병이어, 광야의 식탁을 마련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정말로 이 말씀은 난감한 말씀입니다.
민가와 멀리 떨어진 광야 한복판에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요즘처럼 야식집이나 햄버거 가게가 밤새도록 문을 열어 배달시켜서 먹을 수도 없습니다.
모인 사람들도 남자 성인만 5천 명이 넘습니다.
아이와 여자까지 포함하면 적게 잡아도 만오천 명은 모였을 것입니다.
햄버거가 만오천 개는 있어야 합니다. 만오천 곱하기 5천 하면 칠천오백만 원입니다.
설령 칠천오백만 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음식을 언제 다 만들어서 먹입니까?
아무리 생각하고 계산해 봐도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저 배고픈 사람을 너희가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 굶주리는 사람들을 자기와 상관없다고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의 배고픔을 외면하면 주님이 우리를 외면하십니다.
우리가 배고픈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
지난 주중 <북한 어린이 돕기>를 담당하는 국장과 간사가 찾아왔습니다.
4월 12일 밀가루 10톤이 우리가 돕고 있는 함경북도 ㅇㅇ군 애육원 등
여러 곳에 전달되었다는 사진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스크린 사전으로 보는 이 장면입니다.
중간에 전달한 사람과 북한 해외동포위원회 이름은 가렸습니다. 북한의 감시의 능력은 세계 최고입니다.
피해가 없기 위해서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이번에 전달 된 물품은 보시는 바와 같이 중국산 밀가루가 아니라 러시아산 밀가루입니다.
중국이 인도주의적 물품마저 반출하는 것을 꺼리기도하고, 높은 가격을 요구해서
러시아산 밀가루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북한은 러시아산 밀가루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 밀가루로 국수나 만두, 기름떡, 북한에서는 도너츠를 기름떡이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 밀가루로 우리가 5백명의 아이를 먹이고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남북관계와 경제봉쇄조치로 인해 북한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북한 당국에서 인도주의적 물품을 전보다 더 간절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교하기 어려운 집단이 북한입니다.
우리가 정성껏 준비한 물품이지만 잘 받았다는 감사 편지 한 장 받을 수 없고,
실컷 받아먹고 자존심 건드린다고 칼 들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북한은 우리의 한 형제이기도 하지만 동족 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입니다.
이뿐 아니라 아직도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주적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해 밥을 공급하는 일은 넘어야 하는 산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제가 선교회 총무 일을 10년 동안 하면서 <그린닥터스>와 조인하여
개성의 북한 노동자를 위한 병원을 운영한 일이 있습니다.
핏줄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전 세계에서 선교하기 가장 힘든 나라가 북한입니다.
거리로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사상과 정서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 나라가 북한입니다.
우리와 가장 철저하게 닫쳐진 나라가 북한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북한에 대한 정치적 견해 때문에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보수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북한에 밥을 전해주면
그 사람은 하루아침에 종북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입니다.
지난 주중 한국교회협의회 목사님들이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실무자를 만났다고
정부에서 1명당 2백만원씩 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이 정부의 인도주의에 관한 철학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비유가 적절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결혼한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습니다.
싸움을 했다기보다는 제가 일방적으로 원인제공을 해서 제 아내가 소위 머리끝까지 열을 받은 것인지요.
저녁을 먹고 제가 아내에게 “미향씨 커피 한잔 합시다.” 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미향이 아니라 미옥입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 이름이 미향이였습니다.
무심코 옛날 애인이 이름이 나왔다는 것은 마음에 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라 추궁했습니다.
방이 하나 밖에 없으니 다른데 갈 방도 없어서, 한방에 불편한 3일 보냈습니다.
물론 부엌도 파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3일째 되는 날 저녁 아내에게
“여보, 노사분규를 하더라도 식당은 돌아간다. 밥 먹고 싸우자.” 했습니다.
이것으로 기나긴 3일 간의 전쟁은 밥 먹고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 남북 간이 대치해 있더라도 식당은 돌아가야 합니다. 밥은 먹어야 합니다.
그것도 함께 먹고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보수도 먹어야 하고, 진보도 먹어야 하고,
남한도 밥 먹어야 하고, 북한도 밥 먹어야 합니다. 부자도 밥 먹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밥 먹어야 합니다.
밥 함께 먹어야 막힌 담이 무너집니다. 밥은 이념도 정치도 아닙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밥을 나누는 것은 하늘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을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내리치듯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와 똑같이 생긴 아이들인데 우리의 아이들인데, 단지 북한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피골이 상접해 있습니다.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날 나도 오병이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통해서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됩니다.
5천 명의 군중에 비하면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는 아무 쓸데도 없을 만큼 적은 것입니다.
한 소년의 배를 채우기에도 모자라는 지극히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데 드려졌을 때, 그것은 진실로 크고 값진 것이 되었습니다.
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삶의 축소판입니다.
나라는 한 인간, 우리의 사소한 물건, 이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거나 그 분의 손에 들려졌을 때에
5천 명에 해당하는 값어치로 쓰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나눔을 통해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게 됩니다.
▲십여 년 전에 <기적의 100달러>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미국 캘리포니아 코스트힐 커뮤니티 교회(Coasthills Community Church)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일명 ‘하늘나라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상한 제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데니 벨레시 목사는 하늘나라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원자 100명에게
각각 100달러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100달러씩을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다음의 세 가지 조건만은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라 주님의 돈, 곧 하나님의 돈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둘째, 이 돈이 어디에 쓰이든지 관계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만 사용할 것.
셋째, 그 날로부터 90일이 되는 날, 결과를 전 교인에게 보고해야 할 것.
이 이상하고 부담스런 프로젝트에 나서는 사람이 처음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를 통해서 1만 달러는 모두 교인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받아간 사람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는데
그 돈이 자기 돈이 아니고 하나님의 돈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쓸 수가 없었고
이 100달러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만져본 돈 가운데 가장 쓰기 곤란한 돈이었습니다.
90일이 지나고 미국의 NBC 방송은 이 장면을 ‘데이트라인’(Dateline)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미국 전역에 방송하기 위해 녹화했고, 2000명이 넘는 교인이 모여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아주 놀라웠습니다.
지원자들이 간증하는 동안 교회는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감동의 물결이 넘쳤습니다.
그 100달러들은 여러 곳에서 기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불치병 어린이 환자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일을 시작한 교우는 창고에 하나 가득 아동 도서를 모으게 되었고,
-어떤 이는 노숙자에게 담요를 사주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는 데 사용되기도 했고,
-어떤 100달러는 '예수 영화'를 상영하는 일에 쓰였고,
열 명의 친구들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면서 금액은 6000달러로 불어났습니다.
-또 어떤 이는 아기를 유산하거나 어린 아기를 잃은 가정에 꽃을 보내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100불은 미혼모의 보조금으로, 혹은 교도소 사역을 위한 헌금으로,
-멕시코의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 기금으로,
-중국의 신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에게 간 100달러는 90일만에 1만3000불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결국 1만 달러는 미국 전역과 전 세계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90일이 지난 후에는 15만 달러가 넘는 돈으로 불어났던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첫째, 처음에는 교회에서 받은 100달러만 하나님의 돈인 줄 알았는데,
차츰 자기들의 모든 돈, 재능과 시간까지도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그 분의 청지기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동안 교회는 ‘폐쇄된 공동체’, ‘교인들만의 거룩한 집합소’라고 인식되었던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참가자 스스로가 많은 것을 깨달았고, 영적 성숙의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깨달은 것을 ‘여섯 가지 비밀’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첫째,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 더 많았음을 알았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넷째, 적은 돈으로도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섯째, 섬길 기회는 우리 주변에 매일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여섯째,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자들을 보고 저들을 도와주라고 권면하지 않습니다.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가난한 자를 위한 사회복지 확대해야 된다고 목소리 높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를 향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셨습니다.
벳새다 들판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섬기면 그것은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북녘 땅에 배고픈 아들 딸 두 명 있다는 마음으로 우리의 식탁에 초청하면
주님이 우리 식탁 한 가운데 함께 앉으실 것입니다.
식탁 의자에 보이지 않은 북녘 땅 아이가 앉고 예수님이 식탁 중앙에 앉는 신비한 식탁이 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Theresa effect, 테레사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1990년대 초반 하버드 의대에서 직접실험을 했고, 임상 결과로도 나타난 것입니다.
의대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그룹은 돈을 받는 노동에,
다른 그룹은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연구진은 노동과 봉사활동을 마친 학생들의 체내 면역기능 변화를 조사했습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에게서 나쁜 병균을 물리치는 항생체가 나타났고 면역기능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특히 엔돌핀이 노동을 한 학생들보다 3배 이상 분비되어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쳤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 학생들에게 마더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가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고 난 뒤에 검사한 결과
인체의 생명능력은 크게 향상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섬긴다거나 봉사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면역능력이 향상 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이 결과를 '테레사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봉사와 섬김은 남을 위한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기쁨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은 나를 사랑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마치는 말
세상 사람들의 식탁은 무엇을 먹느냐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식탁은 예수와 함께하는 식사,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는 식탁에 그 초점을 맞추어져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음성을 듣고, 북녘 땅에 배고픈 아이를 매일 식탁으로 초청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매일 식탁에 함께 앉으실 것입니다.
이 광야의 식탁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만들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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