耶和华尼西 / 劉彤 牧師
출17:8절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더라.”
구약 역사를 보면 아말렉 족속은, 수세대에 걸쳐 이스라엘 민족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부터, 아말렉은 끊임없이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해왔습니다.
사울왕 시대에도, 아각 왕과 전쟁을 했는데, 아각 왕이 바로 아말렉 사람이었죠.
그리고 에스더 시대에도, 하만은 이스라엘 민족을 모두 멸하려 합니다.
하만은 바로 아각 족속, 다시 말하면 그도 아말렉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에스더 때는,
에스더의 순종으로 인해 오히려 모든 아말렉 사람이 멸족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성경에서 나타내는 아말렉 사람은
오늘날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하는 공격과 분쟁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매일 다양한 영적 전쟁을 겪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원수의 모든 권세를 철저하게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단의 지위는 보잘 것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이 아말렉과의 영적전쟁은
크리스천에게 있어 매우 실제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의 눈을 멀게 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마음에 의심이 들게 하고,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낙심하게 만들어 더 이상 주님을 따르지 않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가 마주하는 영적 전쟁에 대한 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겪는 원인은 근본적으로 세 가지입니다.
▶1. 첫 번째는 바로 <인간 내면>에서 오는 시험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시험이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욕심에서 온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욕구는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고, 목이 마르면 마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주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하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성경은 여기서 욕심이 잉태된다고 말씀합니다.
욕심은 자라서 점점 커진다는 말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공격할 때 예외 없이, 가장 먼저 우리의 생각부터 공격합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심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머릿속에 머물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그 생각이 자라고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사단이 하와를 시험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먹으면 안 된다고 명하신 열매를 말이죠.
사단은 하와에게 한 번에 어서 가서 먹으라고 유혹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먼저 하와의 머릿속에 먹고 싶다는 생각을 심습니다.
그리고 하와가 그 먹고 싶다는 생각을 내버려둘 때
자기도 모르게 점점 선악과나무에 다가가게 됩니다.
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보자, 볼수록 먹고 싶고 먹고 싶을수록 탐스러워 보여
결국 손을 내밀어 열매를 따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욕심은 우리 안에서 점점 커지게 마련이고
사단은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시작해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다’고 말씀할 때
이 죄는 반드시 커다란 범죄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단 죄를 범하게 되면 우리는 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바닷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더 마릅니다.
한 번 마시면 멈출 수가 없이 계속 마시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결코 갈증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염분 섭취로 인하여, 오히려 더 목마릅니다.
이것이 바로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영원히 멈출 수도, 영원히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첫 번째 원인입니다.
우리 내면에서,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시험입니다.
▶2. 영적 전쟁의 두 번째 원인은, <외부의 흉악함> 때문입니다.
사단 마귀는 외부의 환경을 통해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마치 세례 요한처럼요.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헤롯왕이 그를 죽이려 합니다.
소식을 듣고 그는 매우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를 예수께 보냈죠.
그리고 예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다시 말하면 이런 뜻이죠. "내가 위험에 처해있는 게 안 보이십니까?"
"내가 감옥에 갇혀 죽게 된 걸 모르십니까?, 나를 구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이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예수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시니라. 마11:4~6
다시 말하면 주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지금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주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단 한 번도 쉬지 않으시고 놀라운 능력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또 주님은 아주 흥미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주로 인해 실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기대한 대로, 주님께서 일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종종 주님 때문에 넘어집니다.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큰 믿음을 가진 그가 아닙니까.
그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첫 번째로 외친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그의 생각대로 일하지 않으시자 그는 약해집니다.
그는 넘어집니다. 그는 낙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의 두 번째 원인인 <외부 환경의 흉악함>입니다.
▶3. 세 번째 원인은 <원수의 속임수와 고자질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전도할 때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첫 마디가 무엇이었습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말합니다. 대단한 말이죠?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마귀가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알고 있었지만 ":만일 네가 맞다면"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속임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아는가 본데 아닐 수도 있어"라는 말이죠.
"너 혼자만의 생각이야"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왜 불쌍하게 여기에 앉아 있겠니?"
"아닐 수도 있다니까" 이런 식의 속임수입니다.
속임수일 뿐 아니라 이것은 고자질이기도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럴 리가 있나!"
"이렇게 무능한 모습으로 빵 한 조각도 못 먹는데!"
"네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렇게 예수님께 고자질하는 것입니다.
속임수와 고자질은, 마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법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우리에게도 많은 속임수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는 걸까?’ 우리로 하여금 내적 갈등을 하게 만듭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걸까? 이런 식으로 마귀는 의심하게 만듭니다.
나를 사랑하시는지에 대해서도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권능을 의심하게 합니다.
‘주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주님이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나를 정말로 도우실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속임수에 넘어가 이런 의심과 고민을 반복합니까?
‘하나님은 존재하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가 나를 사랑하실까?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나를 도우실 수는 있을까?’
이러한 마귀의 공격이 우리를 얼마나 심각한 고민에 빠뜨리는지 모릅니다.
속임수를 쓸 수 없으면 우리에게 고자질을 합니다. "꼴좋다! 그것 봐라!"
"그게 무슨 크리스천이냐? 그래놓고도 크리스천인 게 부끄럽지 않느냐?"
때로는 마귀 대신에, 남편이나 아내가 이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수많은 적들의 속임수와 고자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의심이 생기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에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가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수많은 영적 전쟁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때로는 거친 풍랑을 만난 듯 끊임없이 파도가 칩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 전쟁에서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우리도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삶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 날을 맞이해야 할까요?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모세는, 우리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줍니다.
◑여호와닛시
출17:9절에서, 모세는 믿음의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우선 모세는 <내일>에 대해 말합니다. 할렐루야.
어제가 어땠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내일이 주님께 있으니까요. 아멘!
우리의 지난날이 어땠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새로운 날들이 주님 손에 있으니까요. 아멘!
저는 종종 믿음의 가장 큰 장애물은,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흘려보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특히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과거의 내 모습을 잡고 싶어서 안달하진 않으십니까?
옛날과 별로 차이가 없는 걸? 기를 쓰고 과거의 나를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과거의 그림자에 갇혀 살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어릴 적 모습을 자꾸 떠올리죠.
그거 아세요? 아이들은 하루 빨리 미래를 향해 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다르죠. 아이들을 과거의 기억 속에 가둬 놓으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아이와 부모 사이에 벽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왜냐면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과거의 추억 속에 살고 있는 부모는, 아이의 현재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렇게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있고
아이들은 하루빨리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기억에만 머문다면, 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용납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씁쓸해하고 원망만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고, ‘주님, 이러시면 안 돼요’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허락하신 미래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의 지난날이 어떠하든, 우리는 반드시 과거를 떠나야 합니다.
영적인 삶에서 가장 먼저 헤쳐 나가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를 떠나는 일입니다.
과거가 성공적이었든 실패였든 간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바탕으로, 내일을 외쳐야 합니다. 할렐루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왜냐하면 우리의 내일이, 주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내일에 주님이 허락한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내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뭐라고 했습니까?
▶2.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세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는 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어떤 장애나 어려움에도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죠.
모세는 어떻게 바로 왕의 권력에 맞설 수 있었을까요?
바로 왕처럼 강한 권력의 소유자 앞에서
모세는 어떻게 "내 백성을 보내라"는 명령을 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는 순간, 주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알았고
승리의 권세가 그의 편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사단의 권세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모세가 붙든 하나님의 지팡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언약을 손에 꼭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수의 계략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아멘?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예수님은 어떻게 마귀를 대적했습니까?
매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에게 응수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만이 우리의 권세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있어야만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믿음의 뿌리이며, 하나님의 언약만이 우리의 권세입니다.
절대 우리에게 권세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주셨다고요?
권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영접하셨다면
이 말씀처럼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다고요? 네, 권세입니다. 할렐루야.
요한일서 4장 4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어떻다고요? "크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할렐루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이보다 어떻다고요? 더 큰 분이십니다.
로마서 8장 31절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저는 이 구절이 너무 좋습니다. ‘그런즉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할렐루야.
그 누구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한다고요?
아무도,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만한 권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러니 내일, 우리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3. 세 번째는, <산꼭대기에 서리라>입니다.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물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골짜기를 걷게 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골짜기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골짜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가 산꼭대기에 서길 원하십니다. 아멘이시죠?
지난날 아무리 많은 좌절을 겪었을지라도 생활에서,
신앙 문제에서 또는 사업이나 가정 안에서 무너지고 바닥을 헤매는 것 같을지라도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아멘!
지금 그 골짜기를 벗어나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 골짜기에서 나오십시오. 그리고 이제 산꼭대기로 올라가십시오.
여러분,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내일 나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쥐고! 산꼭대기에 서리라’고요!
할렐루야. 옆 사람에게 말하십시오.
‘내일 나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쥐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내일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제가 이 구절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갑자기 "내년"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내년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산꼭대기에 서십시오. 할렐루야.
▶4. 하지만 승리는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선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를 더 해야 합니다.
바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승리를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옆 사람에게 말합시다. ‘기도로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합시다!’
모세, 아론과 훌이 모두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다고 한 것은
바로 첫 번째, 기도야말로 승리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의 선포를 하고 산꼭대기에 올라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끊임없이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꾸준히 기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손을 들어 힘을 다해 기도할 때
그의 기도로 인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그가 손을 내려 기도를 멈추면 아말렉이 승리한다고 하신 것이죠.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고요.
영화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승리로 기뻐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손을 내리면 졌다고 웅성거리다가
다시 모세가 손을 들고 이겼다는 함성이.
다시 손을 내리면 졌다는 야유가.
이런 식으로 영화는 함성과 절망 사이를 정신없이 오갈 것입니다.
그러다 모세의 팔이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으면
DVD가 렉에 걸린 것처럼 달그락거리면서 말이죠...
저는 요즘 교회의 모습이 딱 이렇다고 생각됩니다.
교회에 기도의 불씨가 타오를 때, 모두 함께 주님을 부르짖을 때
교회는 역동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의 불씨가 식으면, 우리 눈에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지 않게 되죠.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안에 있는 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건강한 기도의 팔도 내려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손을 내리는데 소수의 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강한 팔을 가진 리더도 지쳐서 그 팔을 내릴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 제 아내가 크게 아팠습니다.
어깨와 등에 통증이 심해서 어떤 때는 잘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아내가 아플 때 저는 아내를 돌보면서 마음속에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아주 큰 깨달음이었는데요.
누군가가 아플 때 가장 먼저 기도해주고 기도 부탁하는 사람이 제 아내였는데
제 아내가 아프니까 마음에 많은 생각이 들었죠.
기도하는 소수의 사람만을 의지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나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가 지쳐서 손을 내릴 때 아론과 훌이 그의 팔을 잡아줬듯이
우리도 결코 모세의 기도, 즉 소수의 기도만을 의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함께 일어나 불붙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불씨를 붙여달라고 기도합시다.
개인의 삶을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이 속한 팀을 위해 기도합시다.
교회에 기도의 불씨가 타오르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교회의 여러 모임과 기도회의 기도가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일회성 부흥이 있었습니까.
그 순간에만 불타올라서 구원의 기쁨에 가득 차 기도하다가 점점 식어버리고
또 다시 일회성 부흥을 바라곤 하죠..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계속되는 부흥의 불씨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함께 일어나 교회를 위해, 삶을 위해, 가정을 위해, 팀을 위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은혜와 축복을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언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닛시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리라.’ 출17:15
무슨 뜻이냐면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승리의 깃발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멜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16
다시 말하면, 이 전쟁은 더 이상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과 아말렉의 전쟁이라 생각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했지만, 그게 아닙니다.
이제부터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라
나 하나님과 아말렉과의 전쟁이라고 말씀하고 게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동안 너는 이것이 네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네가 해결해야 하는 네가 직면해야 하는 싸움이라 생각했지만
네 가정과, 네 자신과, 네가 속한 팀과, 네가 섬기는 것에 대한 너의 싸움’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은 그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부터 이것은 네 싸움이 아니라 나의 싸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원수와 싸우겠다. 내가 너를 위해 싸우겠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당신이 직접 승리의 깃발을 세우겠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어쩌면 과거에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체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나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을 말입니다.
여호와 샬롬의 은혜를 체험해 보셨습니까? 나의 평안이 되시는 하나님을요.
여호와 라파의 은혜를 체험해 보셨습니까? 나의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요.
그렇다면, 여호와 닛시의 은혜를 체험해 본 적 있습니까?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요. 할렐루야!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나를 위해 승리의 깃발을 세워주실 하나님 말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쉬지 않는 기도로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앞으로의 날들에서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하십시오.
주님께 기도하기로 약속하십시오.
일회성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을 통해 앞으로 있을 날들에 대해 주님께 나를 바치십시오.
시간을 투자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자리를 지키십시오.
어떤 기도회든지 상관없습니다. 수요 기도회든, 아니면 각자 모임에서 기도하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도하겠다고 ㅎ나님 앞에 약속한다면
주님은 반드시 영적인 성장을 체험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조금 있으면 새해가 시작됩니다. 기대되십니까?
새해에 대한 기대로 설레십니까? 설레는 것이 마땅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더 설레야 합니다.
저는 지난 몇 달간 우리 교회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체험하지 못한 일들을 주님이 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일에 우리를 준비시키는 주님을 느낍니다.
주님은 다가올 새 날에 우리에게 새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지난 날 우리가 무엇을 겪었든지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가 새롭게 다시 한 번 믿음의 선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내일,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산꼭대기에 올라서겠다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선포와 지속적인 기도가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할 것입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가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주님.
오늘 우리가 배운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를 격려하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습니다. 골짜기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승리의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 과거에 얽매어 살지 않고 과거의 잘못에 갇혀 있지 않게 하셔서
주님이 예비하신 내일로 향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주신 권세, 손에 꼭 붙들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자녀된 권세, 주님의 언약을 꼭 붙들길 원합니다.
지금 이 골짜기에서 벗어나길 원하오니, 우리로 하여금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가게 해 주옵소서.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곳이 우리가 속한 곳입니다.
그곳이 우리가 마땅히 서야 할 곳입니다. 우리는 골짜기 바닥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산꼭대기에 서길 원합니다. 그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거기서 손을 들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면 여호와 닛시의 은혜를 보게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앞으로의 날들 가운데 여호와 닛시의 은혜가 각 사람에게 임하길 원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다 함께 일어나 찬양하겠습니다. 주께 기도로 나아갑시다. ......녹음은 여기까지.....
(찬송)
주께 기도로 나아갑니다
나 주께 기도해
무너진 성벽 중에 서서
나 주께 기도하리
나의 기도로 주가 일하시네
기도가 하는 일 나는 못하네
나의 기도로 산이 들리고
길이 열리네 열방을 다 주께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나
주님만이 나의 힘
친절한 그 팔이 날 이끌 때
나 승리하겠네
나의 기도로 주가 일하시네
기도가 하는 일 나는 못하네
나의 기도로 산이 들리고
길이 열리네 열방을 다 주께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
주님만이 나의 힘
친절한 그 팔이 날 이끌 때
나 승리하겠네
나의 기도로 주가 일하시네
기도가 하는 일 나는 못하네
나의 기도로 산이 들리고
길이 열리네 열방을 다 주께
나의 기도로 주가 일하시네
기도가 하는 일 나는 못하네
나의 기도로 산이 들리고
길이 열리네 열방을 다 주께
저는 항상 이 찬송을 부를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약한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일하게 만들겠냐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찬송을 들을 때마다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합니다.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나를 부르시는 주님을 느낍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시는 주님을 느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준비된 팔이 여기 있다. 내가 너를 도울 준비가 되었다.
내가 너를 위해 승기의 깃발을 꽂을 준비가 되었다. 내가 준비되었다.’
주님이 우리에게 외치고 계십니다. 내게 오라. 내게 와서 기도하라.
기도를 통해 나와 함께 일하자. 내가 다 준비하였다.
내가 너를 위해 승리의 깃발을 꽂을 준비를 다 하였으니 내게 와서 기도하라.
나와 함께 기도하자 하십니다. 그 승리를 함께 체험하길 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어려운 일을 겪고 있습니까?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려 하지 마십시오.
과거에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였다면 자신의 방법을 의지하였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께로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새롭게 나아가야 합니다. 내일을 말하고 있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내일이 바로 주님 손 안에 있습니다.
과거가 어떻든, 우리의 내일이 주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일 우리는 주님의 언약을 손에 들고,
주님이 주님 권세를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는 산꼭대기에 서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골짜기 밑바닥은 없을 것입니다.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나는 산꼭대기에 올라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인생의 바닥을 치고 올라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하나님께 우리 교회를 이끌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일회성에 그치는 불씨는 필요 없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회성 부흥을 겪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한 번 한 번 그렇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일회성 부흥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에 중보자가 얼마나 자주 뜨거웠다 식어지고, 뜨거웠다 식어지기를 반복했습니까.
앞으로는 기도의 불씨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계속해서 불타게 해달라고 그리고 모두 이 자리에서 주님께 약속하십시오.
기도를 통해 주님의 승리를 체험하겠노라고. 식지 않겠다고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주님께 기도하겠다고 서약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앞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승리를 체험할 줄 믿습니다.
(찬송)
내가 기도하면, 큰 산도 움직여
주 향한 그 길 열리겠네
내가 기도하면, 주님 일 하시네
기도가 하는 일, 나는 못해요
내가 기도하면, 큰 산도 움직여
주 향한 그 길 열리겠네
할렐루야. 오늘 특별히 감동이 있는 것은
우리 가운데 분명 낙담하고 있는 지체가 있을 줄 압니다.
하나님이 나와 너무 멀리 있다 여기고 기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하는 분들은
오늘 말씀은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시간,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다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기도해드리겠습니다. 손을 들어주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주님. 손을 든 지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과 이들이 겪은 일까지 모두 잘 아시는 주님.
이들을 사랑하시고, 이들에게서 단 한 번도 눈을 떼신 적 없는 주님이심을 압니다.
주님의 변함없는 날개를 압니다. 이 시간, 이들에게 성령의 말씀으로
마음의 안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 가운데 권세가 있음을 믿습니다.
원수를 물리칠 권세가 그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이들이 골짜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주님이 예비한 곳은 골짜기가 아닙니다. 산꼭대기가 주님이 예비한 곳입니다.
이제 이들로 하여금 골짜기를 벗어나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와 마귀의 방해를 뛰어넘어
사탄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과거의 잘못을 끊어버리고 나서
오늘 아침, 바로 이 순간, 그들의 손을 붙들고 골짜기를 벗어나주시옵소서.
골짜기를 벗어나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산꼭대기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할렐루야.
이들에게 뜨거운 마음부터 주셔서 뜨거운 불씨가
이들 마음속에 자라나 사랑을 회복하고, 믿음을 회복하고 소망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지속적인 기도로 말미암아 달라질 줄 믿습니다. 전과 같지 않을 줄 압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 새로운 날개에 산꼭대기에 서게 될 줄 믿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여호와 닛시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여호와 닛시! 승리케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할렐루야.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무언가 달라질 것입니다.
큰 산이 제 아무리 크다 한들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고
아무 길도 없는 것 같은 사람에게도 길이 열릴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갈급함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합시다.
기도를 통해서만이 승리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많은 시간동안 우리의 영적인 삶은 부침을 거듭했습니다.
교회도 부침을 반복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속하지 않아서입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몰라서입니다.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도움을 구합시다. 사랑하는 주님, 다시 한 번 성령의 부으심을 내려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기도의 불씨를 내려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겠노라 서약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교회를 주님께 맡깁니다. 여러 형제자매의 가정, 일, 삶이 모두를 주님께 맡기길 원합니다.
어제와 내일의 삶 가운데, 더 큰 기대 품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새 일을 행할 주님을 믿습니다.
나 자신을 뛰어넘는 성장의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타자 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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