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받고서 Glocal 영향력을 미쳐야 겔37:8~10 출처 #48강
*관련글 / Glocal 세상 속에서 세계선교
劉彤 牧師
여러분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주일 머큐리(Mercury) 뉴스에 헤드라인 첫 번째 기사로
'지구는 평평하고, 이곳(실리콘 밸리, 교회 소재지)이 그 중심이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물론 이 문구가 말하는 중심은 경제와 과학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지리적으로 이곳 실리콘밸리는, 유럽이나 아시아와 거의 비슷한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게다가 실리콘밸리는 인재와 자원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글로벌 경제 무역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와중에도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헤드라인 기사를 보고 꽤나 흥분했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 생각이 나서요.
우리 교회야말로 실리콘밸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만약 평평한 세상에서 실리콘밸리가 중심이라면
우리는 바로 그 중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흥분되지 않으십니까? 아니라고요? 흥분할 만한 일입니다!
우리가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로 세계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곳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전 지역적인 영향력(Glocal impact)'이라는 비전을 말입니다.
전 세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이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컬에서 글로벌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Glocal이란 새로운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우리 지역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 여러분 환경은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스타벅스처럼 말입니다.
맨 처음 스타벅스가 설립되었을 때 그들에겐 한 가지 이념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타벅스를 동네의 세 번째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공간은 물론 가정입니다.
두 번째 공간은 직장이고요.
스타벅스는 자신들이 세 번째 공간이 되겠다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가정과 일터를 제외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세 번째 공간이 되겠다고요.
그 당시로 보면 이것은 불가능한 발상이었습니다.
어느 커피 전문점이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새롭게 그러한 환경을 조성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스타벅스가 커피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환경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곳을 찾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환경, 자유롭고 편하게 머물 수 있는 환경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가능할 것만 같던 환경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리하여 정말로 동네에서 머물 수 있는 세 번째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지금의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처한 환경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처한 환경은, 여러분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특히 그러합니다.
왜냐면 환경은 결코 우리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야말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모든 환경을 바꾸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안에서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삶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삶 가운데서 환경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측면에서 삶의 환경을 바꾸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짐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가장 직접적인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어떤 사건이나 사물이 아니라 곧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여러분 삶 속에 있는 가장 직접적인 환경입니다.
하나의 환경을 변화시키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부터 둘러보고 살피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환경에서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과 기쁨으로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아멘?
빌립보서 2장 4절은 '우리가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일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도 살피라는 뜻입니다.
주위를 살피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행동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과 축복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만 매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죠.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만 같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사랑이 우리가 관심 있는 것들에만 머물러 있고
다른 이들이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주님을 믿길 원합니다.
그래서 매일 관심을 갖고 전화도 하고 또 하고 이메일도 여러 번 보내면서
교회에 오라고 끊임없이 초대합니다. 근데 오는 사람이 없어요? 왜일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이 교회에 오는 것’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요즘 태신자들은 모두 똑똑합니다.
모든 것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죠.
우리가 그들의 필요에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들의 영적인 필요라는 뜻이죠.
즉 우리가 관심 갖고 싶은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관심 있는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말이죠.
누군가는 어쩌면 애인을 사귀어서 데이트하느라 바빠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한창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소송에 걸린 사람 많은데 그러면 너무 골치가 아파서
교회에 나올 정신이 없는 것이죠.
여러분은 정말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그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교회에 올 것인가'입니까?
그가 관심 있는 것을 진정으로 살피고 있습니까?
저는 미국의 중국교회에 복음이 잘 전파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영적인 필요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그들의 마음과 육체적인 필요는 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만 보면 두려워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들 두려워합니다. 잡혀서 교회로 끌려갈까봐요.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교회로 끌고 오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일찍부터 사회봉사에 참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중국어학당>에 가서 무료 세차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죠? 세워 놓은 차들을 무료로 닦아주니 얼마나 좋은 생각입니까?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물통을 들고 세차를 하러 갔습니다.
장소에 도착하고 처음에는 모두들 좋아하더군요. 무료 세차니까요.
그런데 교회에서 나왔다고 하자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무료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정말 그랬습니다.
아무 조건도 없다고 강조하고 정말 세차만 하고 갈 거라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더군요. 세차만 한다는 데도요.
분명히 교회에 데려가려는 목적이라고 다들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이미지가 이 정도로 부정적이라니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조건 교회에 끌고 가기만 하고
다른 것엔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거죠.
▲사실 우리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는 만지지 못한 채로요.
중국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교육할 때, 우리가 관심 있는 것들을 자녀에게 요구합니다.
‘말 잘 들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중국 사람이 되어라. 중국어를 배워라.’
우리가 자녀를 꾸중하는 이유는,
우리의 관심 영역을, 아이들이 행하지 않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우리는 아이들이 관심 갖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나요?
아이들에게 무슨 스트레스냐고요?
먹을 것, 놀 것, 없는 게 없는데.. 그래서 스트레스가 없으리라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아주 조숙합니다.
어리다고만 생각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겁니다.
여러분 부모님들이여, 아이들의 친구가 누군지 아십니까?
아이들에게 있어 친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친구를 받아들여야만 자신이 진정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의 필요에 진정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한 인간으로서의 아이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우리가 관심 있는 분야에만, 아이들에게 신경 씁니다.
이 작은 사람, 인간으로서의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무시합니다.
▲빌 윌슨은 주님께 크게 쓰임 받는 목사님입니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의 한 교회에서 아이들을 위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 주 버스를 운전해 브루클린 빈민가를 돌며, 거리의 아이들을 모두 불러들입니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게 매 주 수만 명의 아이들을 섬긴다고 합니다.
어린이 사역에 크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14살 때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였습니다.
엄마와 함께 플로리다의 한 공원에 간 그는
어느 벤치 위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엄마는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라고 했죠.
하지만 어린 빌은, 그 후로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공원에 있던 데이비니 루트니라는 사람이
늦게까지 공원에 앉아 있는 어린 빌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 상황을 파악한 다음, 먼저 돈을 내주며
어린 빌이 청소년 여름 성경 캠프에 참가하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빌 목사는 바로 그 캠프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지금처럼 크게 쓰임 받는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너의 삶이다>라는 한 TV프로그램이
나중에 빌 윌슨 목사를 취재했는데
그때 이 취재팀이 몰래 데이비드 루트니를 찾아
그날 이 후 처음으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줍니다. 정말 큰 서프라이즈였죠.
취재팀이 데이비드 루트니에게, 당시 어린 빌 윌슨을 도울 때
그가 오늘날처럼 크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줄 알았느냐고 묻자
그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만약 자신이 다시 그때로 되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주변 사람과 환경을 살필 때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관심을 가지면, 환경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장 첫 번째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 두 번째는 환경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럴 때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서 37장 8절에서 10절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어느 골짜기로 이끈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마른 뼈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뼈들에게 명하여 힘줄과 뼈가 자라나게 하라 하였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뼈를 향해 대언하였더니
정말로 힘줄과 뼈가 연결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겔37:8-10
어쨌다고요? 그 속에 생기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다 갖추고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생명이 없었다는 것이죠.
여전히 죽음의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고 부족한 것 없어 보이지만
생명의 기운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활기, 생기’ 말입니다.
교회 팀 모임을 보면, 없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부족한 것 없이, 있어야 할 것은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들 팀 안에서 활기/생기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은 거죠.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가정이 없는 것 없이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의 활기가 없고, 사망의 기운만이 집안에 가득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환경이 마치 이러한 골짜기 같습니다.
마른 뼈가 가득하고 아무런 소망이 없죠.
▲저는 항상 에스겔서의 골짜기 마른 뼈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어쩌면 이 골짜기가 바로 실리콘밸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라는 겁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바쁘게 살아갑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곳에 드리워진 사망의 기운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도저히 살아나지 않는 기운 말입니다. 생명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9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겔37:8-10
여기서 감사해야 할 것은 주님은 그들을 살게 하셨을 뿐 아니라
10절에서 이르기를 그들로 하여금 극히 큰 군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멘.
다시 말해 오늘날 여러분이 직면한 환경이 어떠하든지
끊임없이 자신의 환경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도록 말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로 불어오고 우리 가정 가운데 불어오도록
그리고 우리 팀 모임과 우리 환경 가운데 불어오도록 말입니다.
그리하면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다시 살고 내가 속한 팀이 살아납니다.
뿐만 아니라 살아나서 극히 큰 주님의 군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허락하시면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약속하신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입니다.
지난 11월 중순 경에 특별 집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은 척 형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토요일 저녁 집회가 끝날 무렵, 척 형제가 교회에 대한 예언을 남겼어요.
내년 초 90일이 우리 교회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요.
이 90일 동안 주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고 새 기름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는 그 예언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아멘'을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집회 전 대예배실에 앉아있을 때
저도 똑같은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죠.
주님께서 동일한 깨달음을 저에게도 주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날 예언을 들을 때 마음속에 정말 '아멘'이 충만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언약대로 놀라운 일이 곧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멘.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앉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면
반드시 지속적인 기도로써, 주님이 그 일을 이루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셨으니, 이제 어떻게 하시는지 두고 보자’ 하는
잘못된 자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기억하시죠?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한 관리가 있었죠.
이 악한 관리는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부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관리에게 애걸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악한 관리는 매우 귀찮아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유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하나님이 이 비유 속의 악한 관리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절대 그렇게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은혜와 자비가 충만한 분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악한 관리보다 과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악한 관리 같은 사람도 과부의 끊임없는 요청에 응답을 하였는데
하물며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우리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때문에 주님은 이 비유가 끝날 즈음에 물으십니다.
‘인자가 이 땅에 왔을 때, 이 과부 같은 믿음을 지닌 자가 세상에 있겠느냐?’고요.
키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야말로 진정한 믿음을 품고 주님의 언약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과거에 우리는 주님이 약속하셨으니
그냥 가만히 앉아 주님이 일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믿음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주님이 주신 언약을 붙들고
주님이 이루어주시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멘?
지금 제가 하는 말을 반드시 머릿속에 입력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진정한 믿음은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언약을 붙들고 주님이 이뤄주시는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진정한 기도란 'PUSH'라고 합니다.
'무언가 일어날 때까지 기도하라(Pray Until Something Happen)'는 의미입니다.
무언가 일어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주님이 교회에 무언가 언약을 내려주셨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일원이라면 이 언약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이 내년 초에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할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PUSH'란 생각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전 교회가 일어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팀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PUSH'의 마음가짐으로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이 속한 팀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주님이 우리 환경을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주님이 우리 공동체를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주님의 풍성한 부으심을 경험하게 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때문에 두 번째로, 우리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3. 세 번째로는 내가 가진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21세기에 주님은 새로운 방법으로 새 일을 행하십니다.
21세기는 주님이 성도를 드러내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사실상 21세기는 목사가 여러분을 부러워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성도가 앞에 드러나고 목회자가 뒤로 물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는 주님이 성도 한 명 한 명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진정한 영향을 미칠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우리가 아니라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여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같은 목회자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 여기지 않아요.
하지만 여러분은 다릅니다.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여러분이 그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평신도를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말입니다.
또 한 가지 21세기에 이루어질 일이 있습니다.
21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중국의 교회 또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왜 중국이 부강해져야 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중국의 교회를 사용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중국인 그리스도인임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두 가지 기준에 다 부합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하나님께서 21세기에는 평신도를 사용하겠다 하였는데, 그에 부합하였고
두 번째로, 21세기에 중국 교회를 사용하실 텐데 거기에도 부합합니다. 할렐루야.
기쁘지 않으십니까?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자원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을 실어야 합니다.
저는 심판의 그날 하나님이 우리와 중국 교회의 성도를 통해
성대한 열매를 거두시리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자원을 한데 모아야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 지역적인 영향력(Glocal impact)'이라는 새 전략과 사명을 주신만큼 *Glocal : global+local
우리는 계속해서 전 세계에 선교사를 심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보유중인 설비를 사용해 가정의 사역을 확장시키고
청소년 사역과 어린이 사역 사회봉사 등의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인도의 한 신학원 원장이신 코시 박사가 방문 때마다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도 많이 들어 외울 지경인데, 자신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딱 두 가지 언약이 있다고 합니다.
평생 이 두 가지 언약을 믿는다고 하셨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는 반드시 내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언약의 말씀은 바로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입니다.
‘여호와께서 왕의 마음을 다스리시며 그 생각의 방향을 도랑물처럼 마음대로 바꾸신다’ (현대인, 잠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는데,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우리를 돕게 만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그 손의 능숙함으로 우리를 친히 이끌고 채우는 분입니다.
때문에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진 것을 모두 바쳐 주님 나라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기꺼이 내어놓을 때 주님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현실적인 환경만 놓고 본다면 낙담할 수도 있습니다. .
내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 이 세상의 문제를 보면 저것이 바뀔 수 있을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목회 중인 리처드 목사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도 하나님 앞에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고요. "주님, 그럴 리가요?"
"우리가 어떻게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밤 바닷가를 걷는데 주님께서 그에게
"저 시커먼 망망대해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가 바라보자 주님은 그에게 무엇이 보이냐고 물으셨죠.
그러자 그는 암흑과 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저 멀리서 작은 등불이 보인다"고 다시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또 그에게 더 자세히 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가 더 자세히 바라볼 때 작은 등불 한 점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등불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제야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둠은 늘어날 수 없지만 불빛은 점점 늘어날 수 있다"라고요.
주님은 그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둠은 늘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 우리가 서로 협력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위해 일어나 함께 한다면 우리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멘?
우리가 협력한다면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협력할 때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협력할 때 세상이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에 놓여있든지 간에
오늘 이 메시지를 마음 속 깊이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확신하십시오.
여러분이 처한 환경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요. 다 함께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와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힘이요 삶의 소망이십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눈을 열어주셔서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환경을 바꾸시는 주님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 이곳에서 우리 한 명 한 명을 이끌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중 마음이 어렵고 힘든 이가 있습니다.
처한 상황에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주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진정한 믿음이 우리 가운데 생겨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눈이 환경을 보며 의기소침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환경을 주관하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만 바라보고 주만 의지하길 원합니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 이름 부르짖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의 헌신과 모든 사랑을 주님께 드리길 원합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기꺼이 주님 앞에 내어놓을 때
다 같이 합심하여 협력할 때 우리를 통해
이 땅에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보길 소망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모든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돌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다 함께 일어나 찬양합시다.
타자 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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