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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6

우리는 영원을 산다 / 오가와 스구미치

LNCK 2016. 7. 29. 20:34

우리는 영원을 산다              19:23~25                   출처

    

永遠きる / 大川 従道 牧師


 

▲먼저 유머를 들려드리죠.

일본의 한 사업가가 바티칸의 로마교황을 찾아갔습니다.

"교황님, 부탁이니 주기도문을 조금만 바꿔주시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해주신다면 10억엔을 헌금하겠습니다."

 

교황은 금액에도 놀랐지만, 주기도문은 2천년간 그대로라서

어느 부분을 바꾸고 싶은지 묻자 영어로는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일본의 사업가는 그 부분을 'daily sushi'로 바꿔달라는 겁니다.

 

로마교황은 그의 무례함에 노해서 어림없다며 당장 돌아가라고 했죠.

하지만 그 사업가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날 또 찾아갑니다.

금액을 20억엔으로 할테니 'sushi'로 바꿔달라는 겁니다.

농담도 적당히 하라며 다시 퇴짜를 맞았지요.

 

불굴의 일본인은 다시 찾아갑니다. "교황님, 제발 부탁입니다.

일본인은 쌀이 주식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게다가 초밥이 유행이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바꿔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50억엔을 헌금하겠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고민 끝에 'daily sushi'로 바꾸기로 했지요.

그리고는 추기경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합니다.

 

교황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듣고 싶은지 물어보자

추기경들은 좋은 소식부터 들려달라고 했어요.

 

"일본의 열성이 대단합니다. 50억엔을 헌금해주었어요."

다들 손뼉을 치며 좋아했지요.

"교황님, 참 좋은 일이네요. 그럼 나쁜 소식은 뭐예요?" 하자

교황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빵 업계에서 더 이상 헌금을 안 내겠답니다."

서양의 유머를 들려드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전세계에서 2000년간 일용할 양식으로 빵을 주시라는 기도를 했으니

제빵 업계에 영향이 컸겠지요.

 

◑요19:23~24을 같이 읽겠습니다.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행운아십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십자가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처참한 십자가의 장면이라 눈을 가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23절에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요세푸스라고 하는 덕망 높은 당시의 역사가는

대사장의 의복인 '에봇'속에는 통으로 짠 옷이었다고 했는데

이 부분이 왜 이렇게 쓰여있는지 원래는 넘어가는 부분입니다만

 

요한복음 17장에 대제사장의 기도가 나오는데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명의 군인이 제비뽑기를 했다고 나옵니다.

옷 한 벌을 제비뽑기해서 찢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집에 가지고 가면 아내가 얘기할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라면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는다던데

온 예루살렘에 소문이 난 그 옷 맞죠?" 라고 하겠지요.

 

 

◑요19:25~27 보겠습니다.

 

25.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4명의 군인과 4명의 여자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포함해서 4명이 십자가 아래에 있습니다.

이 부분은 대비 표현입니다.

 

4명의 군인은 십자가 옆에 있어도, 예수님의 본질을 전혀 모릅니다.

교회에 예배하러 와도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4명의 여자는, 십자가 옆에서 어쩌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아래로 떨어져서 몸에 묻었을 수도 있어요.

 

여기서 등장하는 44의 대비를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28절부터 30절까지 읽겠습니다.

 

28.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 부분은 매우 유명하고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화면을 함께 보시면 유명한 그림이 나옵니다.

가운데 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양쪽에 죄수가 매달려있습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그리스도를 깔보고 비웃었지만

그중 한 명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고 부탁하자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셔서 구원받지만

남은 한 명은 마지막까지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지요.

     

28절에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고 하셨어요.

또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라는 말씀이 쓰여있습니다.

 

앞부분에서도 성경에 적힌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한다고 쓰여있었는데

신약성경에서 '성경'이라 함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것인데요

 

예수가 이윽고 '목마르다'라고 하는데 조금 심오한 뜻의 목마름입니다.

시편 631절의 말씀인데요.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이 표현은 심오한 표현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목이 말라 물이 마시고 싶다는 단순한 얘기가 아니지요.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라는 간절한 표현이예요.

 

그러나 숨은 뜻은 은혜로우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말씀입니다.

쉽게 해석한 리빙바이블로 보죠. 1982년 발간한 성경인데요

 

시63:1. , 하나님!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황무지에서

정신을 잃을 듯이 나는 하나님을 그리워합니다.

2. 하나님의 성소에서 주의 힘과 영광 보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3. 저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목숨보다 소중합니다.

 

'목숨보다도 소중하다'고 시편 63:3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목마름을 체험할 수 있을까 싶은데요.

 

이 시편 63편은 '다윗의 노래'라고도 합니다.

다윗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황야로 도망가서 숨어 지낼 때

삶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에 만든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시 속에는 괴로움의 정점에서 '나는 목마르다.'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인데요. 물론 심한 갈증을 느낄 상황입니다.

습도가 전혀 없는 상태이니 목이 마른 것도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시편 632절에서

'하나님의 성소에서 주의 힘과 영광을 보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목숨보다 소중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 영원 전에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성소에서

누릴 수 있었던 힘과 영광을 보기를 원한 것입니다.

 

고통의 순간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목숨보다 소중합니다.'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독창해 주신 분이 호시노 도미히로 씨의 시를 찬양 CD로도 발매하셨는데요

   '목숨보다 소중한 것' 이라는 시에 전국에서 문의가 있었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도대체 어디 있냐는 질문에, 호시노 도미히로 씨는

   ‘여러분 스스로가 꼭 찾으시길 바란다는 대답을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만끽할 주의 힘과 영광을 보는 세계를

이 지상에 내려오시기 전에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누리셨어요.

 

인간 세상에 오시기 전의 세계에 목말라 애타게 그리워하며

'정신을 잃을 정도'라는 표현이 시편에 쓰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예수께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적이 없었던 분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을 때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인간들의 죄로 인해, 생명의 관계가 끊긴 후,

예수님은 처음으로 느끼는 목마름일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종교적인 목마름이 있지요.

그 무엇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란 것이 있습니다.

영원을 생각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죠.

 

돈에서도 연애에서도 세상의 어떤 물질을 소유하고

아무리 맛있는 식사를 하고 어떠한 환경에 있다고 해도

그 내면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세계가 있고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이는 하나님밖에는 없다는

그런 세계를 우리가 체험한다는 말씀입니다.

 

   버니 마쉬 목사님은 미국에서 오신 나이가 있으신 멋진 여성분인데요.

   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돌아와서 신주쿠의 조금 위험한 장소인 가부키초에서 전도를 하고 있을 때

   마쉬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도쿄성서학원에서 공부하고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신학부를 나와

   미국 침례교에서 공부한 목사입니다만

   제가 과거에 경험한 적이 없는 다른 세계를 이분이 갖고 계셨어요.

 

   아름답고 우아한 분이신데 그런 인간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에

   저는 매우 강한 목마름을 느꼈습니다.

   저는 큰 목마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모두 깨어나서 깊이있는 말씀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말코슈 퍼블리케이션'이라는 기독교 출판 회사가 있는데요.

대표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사모님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번 주가 남편분의 승천기념일이기도 한데요. 사모님의 글을 읽어드릴게요.

 

   '남편이 죽기 전 이익을 등한시하는 그의 행동을 비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고 이론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고 도저히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부간에도 이해 못하는 세계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헌신자와 전도자의 삶이 그렇죠.


저는 심장 수술을 여러 번 받고 스텐트를 4개나 삽입했습니다만

끊임없이 전도하고 싶고 영혼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도쿄 개척을 시작했는데

심장에 다시 통증을 느껴서 오늘은 1부와 2부 예배를 쉬고 지금 여러분 앞에 서있습니다.

 

이론과 합리성을 초월한 세계에 이 사모님은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좋은 헌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제가 공기와 같은 존재인 남편을 보내고 난 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상실감과 절망감으로 인해 망연자실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채우고 남을 만한 하늘의 희망에 가슴이 고동쳤고

   보이는 것을 방해했던 눈의 비늘이 벗겨졌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행하실 때 하나님의 목소리인 줄을 깨닫고

   말씀을 전하며 행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습니다.’

      

저는 일찍 소천한 주의 종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글에서 소개한 사사이 씨.

52세에 소천하신 에노모토 야스로 목사님.

한국의 하용조 목사님과 같이 너무 이른 죽음의 배후에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에 전율하며, 그들의 몫까지 일하고자 합니다.

 

'보답을 바라지 말고 베풀라'는 찬양처럼

모두가 사심 없이 나를 버리고 철저한 헌신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 성도들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죽음을 허락하시는가요?

물론 인간은 죄를 지은 이유로 영광을 받을 수 없으며

인간은 죽는 것이 정해진 이치입니다만

왜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지.. 이것은 영원한 수수께끼입니다.

 

남편이 왜 죽고 아내가 왜 젊은 나이에 죽어 버리는지.. 어디에도 설명이 없습니다.

하물며 어린 자녀의 죽음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면 나이 들어 죽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많이 살아주기를 바랄 겁니다.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죽음이 존재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잃은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크다.'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것 같다고 사사이 부인도 말씀했습니다.

고차원의 신학적인 일입니다만 이 지상에서 왜 병이 허락되는가?’

 

죄의 결과 우리 인간 안에 질병과 죽음이 들어왔다고 쉽게 설명하지만

더 깊은 뜻은 없는 걸까요? 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가요?

지금도 몸이 불편하신 분이 계신데 그러한 존재를 왜 허락하는가요?

 

요한복음 9장에서는 선천적으로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죄를 지어서입니까 부모가 죄를 지어서입니까.' 하자 예수께서

'그 사람이나 그 부모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놀라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미우라 아야코 씨의 해석에서는 병이 나아야 영광이 나타나고

병이 낫지 않으면 영광이 안 나타나는 게 아니랍니다.

 

병 많은 존재지만 하나님을 접하고 호시노 도미히로 씨도 그렇지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내용이었습니다만 11장에서는 나사로가 죽습니다.

죽기 전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죽으려 하니

빨리 와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이는 죽을 병이 아니라

곧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부조리 투성이입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어떤 학자도 어떤 종교가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고 구마모토 지진도 마찬가지죠.

우리 앞에는 이해 못할 일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일들을 통해서, 사사이 부인이 말한 것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고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폴 투르니에의 책에 세 가지 내용이 쓰여있습니다.

1) 첫 번째는 고통 없이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고통을 부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런 사람에게 영원의 세계는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실연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도를 경험한 사람도 있습니다.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입시에 실패하는 경험도 하고, 죽음을 경험하는 등 고통을 통해 열리는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말한 것처럼 죽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죽음 또한 아름답다고 한 것은 정말 놀라운 말씀이 아닐까요?

 

2) 두 번째로 고통은 물론 누구나 싫겠지만

고통을 당하는 자와 그 고통을 나누지 않고서는

슬퍼하는 자와 그 슬픔을 나누지 않고서는

영원의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는 심오한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3) 세 번째는 고통당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 세계를 체험 않고서는 절대로 영원의 세계는 열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은혜로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교회에는 이치카와 씨라는 자매님이 계신데요.

아드님이 다운증후군인데 참 귀엽답니다.

그런데 나이도 들고 조금 위험한 상태라 외출이 힘들어요.

 

예전에 제가 아드님 간병하기 힘드시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얘기하시길

'저는 아들 덕분에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들이 힘들게 해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아들의 존재로 인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언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지 모를 존재지만

아들 덕분에 사는 보람을 느끼고 생명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경제적 풍요와 건강, 의식주의 문제와 명예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행복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안도 세이라는 분이 우리 교회에 수십년 전에 오셨는데요.

훌륭한 초등학교 교사셨어요. 전쟁 후에 갑작스럽게 자녀가 세상을 떠났어요.

사랑하는 아이를 제대로 양육 못한 엄마로서의 무능함을 고통스러워했죠.

 

모든 종교의 문을 두드렸지만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아드님이 도쿄대학의 학생이었는데 정문 근처에 교회가 있었답니다.

 

야나이바라 타다오라는 도쿄대학 총장이 쓴 책인데

'기독교 입문'이라는 책을 드리며 어머니에게 교회에 나가라고 했대요.

 

고통을 치유 받기 위해 그녀는 교회에 갔습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죽은 의미와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

그로 인해 살고 있다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보여준 그녀의 활약은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높이며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노인, 병자, 장애인을 말살했습니다.

살 가치가 없는 식충이는 죽인다며 크나큰 과오를 범했습니다.

 

얼마 전 신문 칼럼 중에 호시노 도미히로 씨의 시화집

'그 날부터 하늘이 변했다'에 관한 글을 읽고 감명 받았습니다.

 

학교 체육 선생님이셨는데 공중회전으로 목을 다쳤는데요,

경추손상으로 인해 전신마비가 왔습니다.

그는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는데요,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모든 꿈이 좌절된 고독한 청년의 마음에 살며시 다가와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호시노 씨는 '나는 나 자신의 일로 고통 받고 괴로워하지만

크리스천들은 남의 일로 괴로워하며 그들의 행복을 빈다.'

 

호시노 씨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연약함이라는 은사를 받은 호시노." 대단한 표현이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장애 또한 가족과 본인에게 엄청난 연약함이죠.

'연약함의 은사를 받은 호시노 씨.

연약함에서 나오는 선함과 생명력은 교회와 관계가 없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치유해줄 것이 분명하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죠. 오늘은 뭔가 조금 다르지요? 매우 중요한 얘기를 드립니다.


◑요한복음 19:30절입니다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입니다.

가상칠언 중 마지막 말씀 '다 이루었다'입니다.


이 말씀은 28절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다.'와 같은 헬라어입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라는 표현도 세 번이나 쓰였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다 완성되었다.'라는 표현이 쓰여있습니다.

'완료했다','다 갚았다','성취했다' 이러한 뜻을 가진 표현입니다.

 

수십 년간 성경을 연구해도 아직까지 모르는 것이 있어요.

이것을 누가 정했냐는 겁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완료했다. 테텔레스타이'라고 외치셨습니다.

이에 마침표를 찍은 이는 과연 누구인가.

       

히브리서 5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고

그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 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목숨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값을 치러주셨는데

6시간 동안 고통 받으셨는지 그것이 저를 고민하게 하는데요.

 

전 세계 수백 개의 주석서를 찾아봐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당했습니다.


죽는 것에 의미가 있으니, 십자가에 매달려서 바로 죽으면

거기서 고통받고 치욕을 당할 필요도 없는데

벌거벗은 몸으로 채찍에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욕을 듣고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이나 모욕을 당한 이유가 뭘까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수많은 고통을 통해 순종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는 그에 따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본보기로서 그렇게 하신 것인데요.

고통을 통해 순종을 배우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진정으로 순종할지 아닐지도 문제입니다만


어떤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순종한다는 것은

주권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주권이 내게 있을 대는 내 갈 길을 갑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인생이죠.


우리의 생살여탈의 권리를 주 하나님의 손 안에 두는 것은

모든 고난과 외로움과 슬픔, 수많은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순종을 배우는 겁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순종하는가. 뜻을 이루시는 주체인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심오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지요. 더 오랜 시간이 걸려 아침 6시부터일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으로 시험을 받고 구원을 이루신 것이지요.

 

'구원은 성취되었다.' 누구나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다 이루었다','완성되었다','테텔레스타이','이것으로 종료되었다.' '더 이상의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매달 1번씩 금식기도회가 있습니다.

아침 9시부터 3시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동안

모두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6시간이나 고통을 받으셨을까요?

시간과 세월에 대한 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죽는 것에 의미가 있다면 침뱉음과 못박힘을 당하지 않아도

채찍으로 40대를 맞으면 죽으니 그렇게 하면 되었겠지요.

그리스도의 최후는 패배로 보이지만 그야말로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실은 지난주 금식기도회의 시간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제 손녀가

전날 혀에 뭐가 생겨서 애 엄마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설암' 증상 같다면서 걱정되어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제가 열심히 기도했는데 혼자서 하기에는 역부족이여서

그곳에 나와주신 수십 명의 성도 특히 금요일 금식기도를 하시던 성도님들께 말씀드렸더니

같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니노미야 씨의 소천 기념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를 드렸지요.


그런데 미국에서 팩스가 왔어요. 우리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는 마츠이 씨가 계신데요

월튼 씨라고 하는 사위분이 뇌출혈로 구급차에 실려갔답니다.

기도해달라고 팩스를 주셔서 함께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마츠이 씨의 남편분 앤디 씨를 위해서도 기도했지요.

여러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으세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모두가 작정하고 기도해준답니다.


교회에서 당신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나요?

사랑과 선함과 배려와 온기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6시간의 고통 속에서 바로 앞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10대 소녀였는데 수태고지를 받았어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게 하시도다.' 하자

마리아는 깜짝 놀랍니다. "너는 이제 곧 아기를 낳을 것이다."


"잠깐만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아기가 태어나요?" 하자

천사가 "너에게 잉태되는 아기는 성령으로 임하시느니라."

과거에 한번도 없었던 일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일어났는데 그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여기서부터가 고통의 시작이었겠지요.


그리고 오늘 일어난 일은 예수의 십자가 밑에서 피가 묻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때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통 어머니라면 분명히 "누가 우리 아들 좀 내려줘요. 서른셋의 나이에 죽으면 안 돼요.

제발 조금 더 살아줘. 나는 네가 죽는 걸 원하지 않아. 누가 못 좀 빼줘요.

우리 예수에게 왜 이러는 거예요!" 평범한 어머니라면 이렇게 외치겠죠.


하지만 마리아는 어릴 때부터

'나는 주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주의 여종이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했어요.


여기서의 6시간은 그녀에게는 크나큰 시련이었을 겁니다.

내 인생에서 어떠한 사건과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나도 주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마음이었겠지요.


저는 크리스천이 된지 61년째인데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된 게 있어요.

에베소서 13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인데요. 놀라운 말씀이 쓰여있어요.

 

엡1: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복 받은 존재임을 꼭 기억하세요.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했습니다.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저라는 사람이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고 생명이 그곳에 잉태되었는데

그때부터 오카와 스구미치는 이 세상에 존재했어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죽어도 영원히 살겠지만

시작은 임신한 때라는 것이 가장 알기 쉬운 얘기인데

그렇게 되면 여기의 말씀이 도무지 해석이 안 됩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인즉슨

우리의 존재가 형상으로 만들어져 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하나님의 창조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목사들은 이 말을 믿지만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했지요.

여러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 짧은 시간밖에 살 수 없지만

아기는 엄마가 키울 때보다 더 좋은 곳에서 영원히 키워진다는 말씀을 장례 때 전해 드립니다.

유산되었더라도 사산이라도 마찬가집니다.


성도가 1500명이면 여러 경험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한없는 은혜 속에서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을 여러분도 이해하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젊은 나이 40, 50, 60대의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영원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세상이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이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영원한 세계를 걸어갈 것입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은 '우리는 영원을 산다.' 입니다.

여기서 영원이란 언제일까요? 영원은 그야말로 영원입니다.

이 세상이 출발점이고 그때부터 영원이 시작된다고 생각되겠지만

오늘 열린 세계는 영원 이전부터 하나님의 손안에 있던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21세기를 살고 있으며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도

이 세상이 끝났다고 울지 말고, 때로는 울어도 좋지만, 괴로워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우리는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부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해도 한 알의 밀알로서 소명을 다하고

그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게 되었을 겁니다.


아침 9시부터 3시까지의 시간에 대한 하나의 해석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이렇습니다.


9시부터 3시까지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시간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어린양과 소를 제물로 바친 시간. 번제로 바쳐지는 그 시간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죄 사함 받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once for all'

오직 한 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역사하심으로 '다 이루었다','성취되었다','완료되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마침표를 찍었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해하셨나요?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시는 분은 큰 목소리로 아멘 하십시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진리가 임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저의 주이십니다. 제 마음 한가운데에 받아들이겠습니다. 믿고 따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타자 K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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