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로 가라 마28:1~10 11.04.03 출처보기
2004년도에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쓰나미가 발생해 60여만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제가 2007년도에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배를 타고 그 부근을 긴장하며 지난 경험이 있습니다.
아체 지역은 선교사들의 무덤이라고 소문났습니다.
워낙 과격한 회교도들이 사는 곳이라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들어가면 테러를 당하고 심하면 죽습니다. 참 무서운 곳입니다.
그런데 아체에서 쓰나미가 나자, 그들이 그렇게도 박해하고 죽이던 기독교가 들어가서
환자들을 치료해 주고, 음식을 제공하면서 헌신적으로 봉사했습니다.
그동안 형제라며 가까이 했던 아랍의 이슬람 국가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자신들이 박해하고 죽였던 한국의 기독교가 봉사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지금은 선교사들이 마음 놓고 들어가서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선교해도
아무도 방해하거나 박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협력합니다.
선교사들은, 쓰나미가 큰 불행이었지만, 그래도 아체 지역을 복음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대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방사선 오염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죽음의 땅이라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원래 일본은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입니다.
36년 간 강제로 우리나라를 점령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많은 목사님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박해하고 처형했습니다.
지금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어떤 도움도 주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정이 많은 우리 국민들이 모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앞장서서 돕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체 지역처럼, 일본도 이번 일을 계기로 우상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며 정성을 모아야 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3주 후 설교
지금 일본은 큰 재난으로 불행을 당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입니다.
옛날의 감정을 다 잊고, 기도하며 도우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본문 설명 / 갈릴리로 가라
본문을 보면, 안식 후 첫 날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 갔는데,
무덤 문이 열려 있고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놀란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너희가 찾고 있는 예수는 부활하셔서
지금 갈릴리로 가셨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갈릴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여인들은 벅찬 감격으로 제자들에게 와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만나려면 갈릴리로 가라 하셨다”고 알렸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나를 만나려면 갈릴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마28:10
천사도 갈릴리로 가야 예수님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마28:5~7
갈릴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려면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만나시려면 갈릴리로 가셔야 합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이스라엘의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갈릴리는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갈릴리가 어떤 곳입니까?
예루살렘과 갈릴리는 뚜렷하게 구분이 됩니다.
예루살렘에는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 배운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또 한편으로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악의 도성입니다.
그러나 갈릴리는 힘없고 소외되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땅입니다.
마태복음 4장 15절에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라고 합니다.
갈릴리도 분명히 이스라엘 땅이지만 이방 땅이라고 비하합니다.
요한복음 7장 41절에 “갈릴리에서 어찌 그리스도가 나느냐”고 합니다.
7장 52절에서도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갈릴리에서는 위대한 인물이 나올 수 없다고 멸시합니다.
멸시당하는 갈릴리에 예수님은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포로된 자, 억눌린 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들이 사는 곳이 갈릴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셨고, 우리에게도 오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 마음과 몸이 지치고 곤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낙심하며 사는 사람들이 우리가 가야 할 갈릴리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주님의 복음과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갈릴리로 가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사역이 무엇입니까? 도와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부정과 폭력이 난무하면 불의한 사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고아와 과부들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불의한 사회라고 합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의 상징입니다. 이들을 도와주어야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성경은 환란과 절망 중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을
불의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의 토지법에 의하면 땅을 사더라도 50년이 지나면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추수법도 있습니다.
주인이라고 곡식과 과일을 다 거두면 안됩니다.
남겨 두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가져 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신 것은 불쌍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계속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것은 영육간에 가난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도와주라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도 갈릴리와 같은 곳이 있고, 갈릴리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야 합니다. 신앙생활 잘하도록 도와주고,
축복의 삶을 살도록 기도와 격려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오늘 일본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특별헌금을 드리는 것도,
그들이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와주어야 할 갈릴리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위대한 성현이지만,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씨름하다가 간 사람입니다.
인도 카필라 성의 태자로 태어난 석가모니는
하루는 동쪽 문으로 궁궐을 나서는데, 중병에 걸려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자신도 괴로워서 외출을 포기하고 들어왔습니다.
다음 날 서쪽문으로 나갔는데, 이번에는 허리가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걸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생각되어 또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남문으로 나갔는데, 이번에는 죽은 사람의 장례행렬을 보았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죽겠구나’ 생각하니 슬퍼서 그냥 들어왔습니다.
다음날에는 북문으로 나갔는데, 이번에는 도인을 만났습니다.
도인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도 생로병사를 초월하려고 출가해서 도를 닦았다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오로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 도를 닦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하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온 인류가 안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인류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도 바치셨습니다.
석가모니의 죽음으로는 한 생명도 구원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온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셨던, 주님의 삶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37편 25,26절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합니다.
의인은 종일토록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의 자손이 대대로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항상 배려하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만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꿈이나 환상에서 예수님을 보아도 감격하며 행복해 합니다.
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은 낙심하고 힘들게 사는 그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히틀러는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유태인 600만명을 독가스로 무참히 죽였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굉장한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이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입니다.
몰트만은 “유태인 600만명이 죽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
그런 비극을 당한 유태인들은 왜 아직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믿고 있나?”
이 두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문은 엘리위젤의 『밤』을 읽고 풀렸습니다.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엘리 위젤이 쓴 『밤』이라는 책에 보면,
유태인 어른 두 사람과 한 아이가 수용소에서 나무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두 어른은 이미 죽었고, 한 아이는 매달려서 계속 버둥거리고 있습니다.
그때 여기저기서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하나님은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며 흐느꼈습니다.
그때 엘리 위젤에게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나는 지금 저 교수대에 아이와 함께 매달려 있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몰트만은 이 부분을 읽고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런 후에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고난당하고 괴로워하는 자들과 함께 계신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도와주는 것이 곧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양과 염소의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 편에 있는 양과 같은 사람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은 그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렇게 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곧 주님을 위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역이 갈릴리입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모두 갈릴리로 가셔서 갈릴리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고
도와주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소외된 갈릴리는 기적과 능력이 있는 축복의 땅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지는 유대 땅 베들레헴이지만, 성장하고 사셨던 곳은 북쪽의 갈릴리의 나사렛입니다.
공생애의 대부분도 갈릴리 지역에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도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다 갈릴리 출신입니다.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세계로 뻗어갔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에게서 능력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도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집이었습니다.
잔치집에 예상보다 많은 손님이 와서 준비한 포도주가 다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배운 사람도 많고 부자도 많고, 권력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곳에 계시지 않고, 갈릴리에 계셨습니까?
거기에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예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갈릴리 사람들에게서 기적과 능력이 나왔습니까?
이들은 가진 것도 없고, 세상적으로 의지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의지할 대상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많았던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 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을 더 의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도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에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갔습니다.
그런데 늘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 거지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달라며 구걸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면서 손을 붙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서 뛰고 걸었습니다. 대단한 기적입니다.
어떻게 베드로에게 이런 기적이 있습니까? 베드로는 은과 금이 없다고 했습니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다 버렸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의지했습니다.
거기에서 능력을 받았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외에 의지하는 것이 많으면, 능력과 기적이 없습니다.
예수 위해 버릴 때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위해 버리면 버릴수록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고 능력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버리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바울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다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렸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있었고,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갈릴리 사람들도 가진 것, 소망하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많은 능력과 기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기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을 가지지 못한 대신,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기적과 능력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세상 것을 많이 가지면, 그것을 의지하고 삽니다.
그러나 세상 것을 버리면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고 삽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능력을 받고 진정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곳은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나를 만나려면 갈릴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갈릴리로 가셔서 갈릴리 사람이 되십시오.
갈릴리 사람들은 세상의 화려한 것을 많이 가지진 못했지만,
생명의 주님, 보화이신 예수님을 소유했습니다. 진정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모두 갈릴리 사람들처럼 나의 생명과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보화이신
예수님을 소유하고, 그 분 안에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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