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침묵과 거절을 통해, 부활로 들어간다 마27:46, 욥42:5, 창29:32
11.10.03.열매맺는교회 설교 녹취
◑폐암이 재발되었고, 욥기서를 읽으며 "부활"에 이르게 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2010년 초에 폐암이 재발되었고, *2006년 최초 발견
오른쪽 폐에 다발성으로 암이 시작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의사는 ‘6개월~1년 사실 겁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말기암 통증이라는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잖아요.
그런데다가 이제 폐는 물이 다 차서,
사진을 찍으면 폐가 안 보이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이 설교는 2011년 10월 3일, 암이 재발된 후 한동안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광양자 치료로, 잠시 통증이 없어진 시점의 설교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오라고 하시는가 보다’ 제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 외모가 이렇게 복부인 같이 생겼지만, 하하하
그때는 정말 그 암투병의 고통으로, 아주 뭐 얼룩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말기암 환자에게 하는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그런데 역시 주님은 제 머리털은 하나도 뽑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셨어요.
제가 이제 그러면서 ‘왜 주님께서 제게 이런 암을 허락하셨는가?’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사람들이, 제가 암이 재발되고 나니까
사람들은, 제가 재수가 없다는 식입니다.
'선교사가 축복은 못 받을망정, 저렇게 저주를 받아서 쓰겠는가?’
은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그렇게 수고를 했으면, 축복을 받아야지..
그렇게 죽음에 가면 되겠느냐..’ 그래서 이제 은혜가 안 되가지고
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쳐다보기가 민망한 겁니다.
왜 하나님께 그러한 일(암)을 받았는지,
당최 이해 할래야 할 수 없으니까, 저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여튼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지 않았죠.
지금도 역시 그런 상태이고요.
▲그랬을 때 제가 욥기서를 읽었는데,
2006년도에 암이 시작되면서, 제가 계속해서 욥기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제가 재발하면서, 이제 제 생명이 다 되어간다고 의사가 얘기하셨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제 욥기서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욥을 생각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그 분을, 그가 가진 모든 소유와, 그가 가진 모든 자산, 재산이 아니라 자산,
그것을 다 탈취하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빼앗으셨을까?’
그의 자녀들과, 재산과, 그의 덕과, 그의 명예와, 그의 의와, 그의 수고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이.. 모두 다 무참히 버려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추락한 상태이죠.
그런데 이 자리에 모인 젊은 신학생 여러분들 한테는, 좀 꿈을 키워주는 메시지를 전해야 되는데,
이 세미나에서 이런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해하기에 좀 곤란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재수없는 하나님’ 그래서 저를 떠나갔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제게 실망할 수 있어요.
저도 하나님한테 실망하는 거죠.
많은 목사님들도 제게 실망하셨어요.
'아니 왜 축복은 못 주실망정, 그래 아마존에 가서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아니 축복은 못 부어줄망정, 그런 일을 허락하시다니..
그런 하나님이라면, 반드시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생각한 거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하나님을, 용납하실 수 있겠어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렇죠?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될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 내가 부활로 가는 길목에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어요.
‘아,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삼일동안 무덤에 계시고,
부활하신 그 부활에, 나를 동참시키려고, 일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정말 그 무서운 고통을 겪으면서, 제가 깨달았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
십자가의 예수님을 거절하셨던 그 하나님은,
바로 그 주님을 부활로 다시 일으키게 하시려고 거절하신 거잖아요.
'아마존의 저의 생애의 모든 과정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결단과 같은 기도를, 제가 오래도록 계속 드렸던 것 같아요.
주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가 암을 발견했을 때, ‘야, 네가 겉이 깨어졌지, 속이 깨어졌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했지만, 이제부터 속이 좀 깨져야 되겠다.' 이렇게 얘기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좀 삐졌어요. (회중들 하하하)
‘하나님 그럼 관두세요. 저도 너무 고단하거든요.’
저는 일생동안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제게 암을 주신 주님, 저를 고난을 거쳐 부활에 동참시키시려고, 암의 재발을 허락하셨다면,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10월 달에 아마존으로 돌아가는데, 지금 우리 딸이 먼저 들어가 있어요.
그 모든 순간순간이, 우리 가족에게는 눈물겨운 결단이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나쁜 사람인가 하면,
가을이 오는데, 아마존에 돌아가야 되잖아요. 제가 또 삐지는 겁니다.
금년 4월말에, 제가 아마존에 갔었어요.
두 달 있다가 치료차 한국에 나왔는데, 그때는 꽃피는 봄이었어요.
선교사들한테는 한국의 아름다운 봄 가을을 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가슴에 맺혀있어요.
그런데 이 좋은 가을 날씨에 한국을 떠나야 하니, 진짜 가슴이 짓뭉게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어느 때는 보기 싫은 겁니다.
'주님은 사사건건 내 좋은 것을 간섭하셔야 되나?'
주님이 간섭하시지 않으셨지만, 내 욕심이 그렇게 느낀다는 거죠.
진짜 그 겨울 내내 그 통증에 시달려가지고,
나중에 이제 폐에서 물을 빼는데, 뭐 폐에 관을 꽂아서 또 뺐다가, 더 굵은 관을 또 집어넣으니까,
그때 그 고통이란 것은, 총 맞은 사슴이 죽기 전에 덜덜덜 떠는 것처럼, 저도 짐승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 이 극렬한 고통을, 제가 꼭 겪어야만 제가 변화가 되겠습니까?
주님, 저는 말로는 안 되는 사람입니까?'
'이렇게 주님 나는 이 고통을 가져야 제가, 주님을 조금 뵈올까 말까한 사람입니까?
주님 하시겠다 하시면 하시옵소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관을 꽂으면서, 제 몸 속에서 감염된 부위에서, 그냥 썩은 송장 냄새가 나는 겁니다.
폐 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 냄새에 제가 질려버려가지고, 밥을 못 먹는 겁니다.
이제 너무 쇠약해졌으니까, 통증에 몹시 쇠약해졌죠.
그러니까 코가 너무나 예민해져서, 모든 냄새를 다 맡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일반적으로 못 느끼는 것까지 다 냄새를 맡으니까,
도저히 이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그런데다가 몸속에서 송장 썩는 물이 나오는 봉지를 달고 있었죠.
폐에서 물이 나오니, 그걸 또 날마다 물이 얼마나 나오는지, 그것을 또 저울에 재야 되요.
‘인간의 몸속에서 그런 썩은 것이 나오는가!’
그래서 제가 욥이 몸이 다 썩어서, 뼈가 드러날 때쯤 되어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랬으니
'주님이 이제 제게 좀 나타나시려나?' 그런 소망을 가져보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설교하다가 좀 이렇게 곁길로 잘 나가고, 그래서 듣기에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이해해 주세요
항암치료를 심하게 받아서, 잘 기억 못하고 조금 전 상황도 잘 잊어버리는 것을 널리 이해 바랍니다.)
그렇지만 제가 잘 걸을 수도 없었고, 먹을 수도 없었고,
'이제 내가 굶어죽는구나, 먹을 수가 없으니까 주려 죽는구나' 하는 순간이 왔어요.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요청이 오면,
제가 봉지를 치마속에 감추고 살살 저를 데려다가 교회당 안에 어디에 앉혀놓으면,
그때까지는 제 정신이 아니죠, 목소리도 안 나와요.
그런데 강대상에 저를 세워놓으면, 목소리가 또 그렇게 잘 나와요.
그러면 내가 또 주님한테 삐져요.
‘부려잡수시는 데는 아주 뭐가 있으시군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아주 나를 이렇게 큰 고생을 시키시면서라도
자기 친자녀들(회중들)을 유익하게 하시는군요.’ 그랬어요.
▲제가 욥을 생각하면서 깊은 은혜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자기가 무슨 죄가 없는데도,
친구들의 독설에 얼마나 열 받았겠어요? 얼마나 참아야 되겠어요?
그때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창조에 대해서 얘기를 하세요.
‘아니 왜 욥에게 그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
아무 쓸데없는 창조얘기를 그렇게 하고 계시나?’
처음에 제가 그렇게 생각했죠.
‘내가 왜 너한테 왜 그런 일을 허락했는가 하면..'
이렇게 딱 설명을 분명하게 해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은 생뚱맞게 욥에게 창조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악어가 어쩌고 저쩌고'
지금 우리는 아마존에서 악어를 음식으로 잡아먹습니다.
'하마가 어쩌고 저쩌고'
아니 하나님은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만신창이가 된 욥에게 하셨을까?
나중에 제가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결국에 욥도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나중에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는,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부활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친밀히 만나는 자리까지 나아갔다고 하는
그 축복을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숨이 헐떡거릴 때, 가장 묵상했던 것이 누구였냐면 본 회퍼 와 워치만 니였습니다.
워치만 니는 ‘영에 속한 사람’을 쓴 분이죠.
그 분이 20년 동안 감옥에서 공산치하에 계시다가 감옥에서 죽습니다.
화장해서 뼈만 가족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본 회퍼도, 그냥 감옥에 계시다가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잖아요.
죽음앞에 선 사람들의 심정은, 굉장히 달라요.
저도 죽음 앞에 섰었던 사람이잖아요. 언제 죽을는지 헐떡거리고 있었던 사람이니까,
제게는 그 분들의 생애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었죠.
하나님이 10년도 아니고, 20년 동안 그를 감옥에 두셨어요. 그 충성스러운 종 워치만 니를!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풀어주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나님은 안 들어주셨습니다.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하나님한테 거절당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본 회퍼도, 그 유능한 영성가요, 제게는 그 분이 영성가로서의 모델이십니다.
그리고 참으로 유능한 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유능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의 요구를 거절하셨어요.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곧 나치 정권이 무너질 텐데,
그 선한 하나님의 종을, 죽음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마치 세례요한 처럼요
그 사건이 나에게(여러분 각자에게) 일어난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그 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어요.
그때 그 거절감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치욕스런 것이 아니예요.
'내가 버림 받았는가!'
'주께서 나를 잊으셨단 말인가?'
우리 신앙생활에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다는 것을 *주님이 응답 안 하시고 오래 침묵하시는 기간
저는 묵상을 하게 되는데요.
◑"부활"에 이르는 과정의 시련
▲여러분, 씨앗은 어디에 들어가야만 씨앗이 새싹을 틔우겠습니까?
네 어두운 땅속에 묻혀야 됩니다.
찝찝하고, 캄캄하고, 씨앗이 싹을 틔워야만 태양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거죠.
그 찝찝하고 캄캄하고 소망이 없는 그 어둠의 땅 속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가 부활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싹이 어둠 속에 들어갔을 때, 그 씨앗이 비로소 속에서 갈라지죠. *깨어지죠
갈라지면서 그 속에서 싹이 나오죠.
어둠 속에 우리가 들어갈 때에,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이며, 추한 존재이며, 악한 존재이며,
얼마나 스스로 의로운 자인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문제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요.
문제 속에 들어가야만, 내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인간이고,
얼마 만큼 내가 주님께 속해 있는지, 세상에 속해 있는지 볼 수가 있어요.
캄캄한 어둠속에서,
즉 문제와 고난속에, 억울하고 분하고, 외롭고 이런 상황을 만날 때에만
'아, 내가 아직까지도 주님을 소망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내가 세상에 이만큼 속해있는 사람이고,
아 내 속에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아직까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체험이 없구나!'
왜냐면 여전히 내 입술에서는 변명하고, 변호하고 싶고, 싸우고 싶고
이런 정욕이 내 속에서 우글우글 거린다는 것을
문제가 일어나야만, 영혼의 캄캄한 어두운 밤을 통과해서만, 체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기도 많이 하셔도, 잘 발견이 안 됩니다.
다만 문제 속에 부딪히고 문제 속에 들어갈 때에, 여러분들은 그제야 쪼개지는 경험을 하는 겁니다.
‘아 내가 세상에 이만큼 많이 속해져 있구나’ 하는 것을요.
어둠 속에서 씨앗이 쪼개지잖아요. 그제야 그 가운데서 싹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싹이 햇볕을 보기 위해서, 땅속에서 흙을 헤치고 나오느라 몇 번을 헤딩을 하는지,
누구 아시는 분 계세요?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잘 알아듣고, 너희가 견딤으로써 구원에 이르라고요.
나도 들은 얘기인데, 땅속에서 헤딩을 1만 번을 한답니다.
그 여린 새싹이, 그 태양을 봐야만 되잖아요. 봐야만 싹이 썩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흙속에서 1만 번을 헤딩해서, 밖으로 나와서 비로소 태양을 만나는 것입니다.
대단한 일이죠?
그 미물 같은 식물도, 그렇게 자기의 주인이며 태양 같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수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둠을
믿음은 마치 어둠속에 불확실하고 갈 바를 모르고 그렇지만
반드시 주님은 우리에게 그 어두운 문제를 통해서
내가 나 됨을 계시하시고 보여주시고 인정하라고 그러십니다.
▲다른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를 주셔서, 우리를 탄로 나게 하시는 것은
‘네가 그런 인간이니까, 인정해라!’
그런데 우리는 율법 속으로 달려가서, 율법 뒤에 싹 숨어버립니다.
‘내가 노력해야지, 더 노력해야지.. (내 의지로) 안 그러기라도 해야지’ 이러는 겁니다.
진짜로 우리는 안 그러기도 해야 되요, 헌신도 해야 되요.
이런 의지적 측면도 일부 필요하죠.
그렇지만 성경적 원리는, 우리는 은혜 쪽으로 가야 됩니다.
‘주님, 제가 이 꼬라지입니다.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주님 나는 싸우고 싶고 아주 들이 받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주님 나에게 새로운 성품을 허락해 주십시오. 당신이 아니면 나는 변화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 저는 인정합니다. 주님, 저는 인정합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합니다.
저도 아주 율법과 은혜사이를 수십년 동안 왔다갔다 하면서 괴로워 했습니다. 그랬어요.
▲제가 요셉을 많이 묵상했어요.
요셉이 하나님 말씀을 잘 지켰더니 어디로 갔어요? 감옥에 갔어요.
(오늘은 재수 없는 얘기만 많이 하게 되었네요.
‘아니, 저 선교사는 기분 나쁜 얘기만 하지?’ .. 라는 생각이 드시죠? 그렇지만 참고 들어보세요.)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충성한, 하나님께 은총을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 사람입니다.
그 결과 어디로 갔어요? 감옥에 갔어요.
여러분들은 묵상해야 됩니다. '주님이 내가 믿음을 잘 지켰는데 감옥에 집어넣으셨다.'
여러분들, 그 하나님을 참아주실 수 있겠어요?
이해를 넘어서, 참아드려야 될 정도입니다.
왜냐면 내 속에서 신경질이 막 올라오니까요.
진짜 신성모독죄를 범하면 안 되고, 그냥 우리의 이해 못하는 감정을 좀 리얼하게 표현한 것이니,
이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를 감옥에 보내셨어요. 물론 끝이 좋았지만,
그가 쇠사슬로 온 몸이 개처럼 묶여져 있고, 그 발이 차꼬에 채여 있었어요.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요?
우리가 항상 묵상해야 될 것은 이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이 오면 예수를 버립니까, 그렇죠?
▲"은혜/은사"와, "진리"의 세계는, 조금 구분해야 됩니다.
은사 또는 은혜는, 내 중심입니다. 나를 유익하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하나님 나 좀 이렇게 잘 되게 해 주시옵소서’ 입니다.
하나님은 다 들어주세요.
은혜는, '나를 유익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나를 존귀하게 해 주십시오.
명예롭게 해 주십시오.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하고, 그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우리가 물귀신처럼 되어버립니다. '진리'로는 가지도 못하고,
'은혜'에만 매달렸는데, 나중에는 주님을 믿고 싶은 마음도 정이 떨어져서 없어져 버립니다.
왜요? 주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는게 별 게 없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속에 분통이 터져가지고...
여러분들은 안 그럴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게 탄로가 났습니다.
그리고 선악과 중에서, '악의 열매'는 우리가 안 따 먹습니다.
그런데 '선의 열매'는 우리가 무지하게 따 먹습니다.
착하게 행동해야 되고, 또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봐 안 하고,
또 이렇게 살 때 죽어도 올바른 소리는 하지 말아야 되요.
왜냐면 저 사람이 나를 나쁘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대화에도 나를 보호하고, 내 유익을 구합니다.
저 사람의 유익을 구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를 권면할 수 있어요. 그것은 사랑이니까요.
사랑은 내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이 내 중심적이기 때문에, 권면도 못합니다.
왜냐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에 모든 중심이 가 있어요. 기도도, 모든 것이요.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거짓된 내가 참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진리로 돌아선다고 하는 것은, 내가 변화가 되어야 하고 깨어져야 되고,
내 속에 있는 모든 더러움이 해결되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진리로 간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어떠한 고난을 받더라도,
이 고난받는 것이 그에게 영광이고, 내가 버림을 받는 것이 그에게 영광이고,
남들에게 조롱과 핍박을 받는 것이 그의 거룩하심에 마땅히 돌려야 될 영광을,
그 분의 자존심을 세워드린다고 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이제는 장성한 자로 우리는 돌아서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주께서 내 소원의 기도를 전혀 안 들어주실 때는
내가 주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활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절하셨어요.
주님의 기도도, 또 본 회퍼도 또 많은 순교자들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은,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면,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심판 받은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은 아직 젊어서 죽음이 멀리 있으니까 아무런 생각이 안 들겠지만,
사실 죽음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어요?
죽음처럼 고독하고, 슬프고, 외롭고, 가족과 헤어져야 되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되는..
죽음은, 가장 끔찍한 고통이며, 아픔이며, 슬픔입니다.
아직 여러분은 젊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청년/신학생 여러분들은,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심장을 우리가 가질 수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진실한 크리스천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남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남의 마음을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죄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참 무서운 얘기입니다. 그렇죠?
구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이 같이 내려가 줄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제가 투병으로 헐떡거리고 있을 때, 말씀하셨어요.
‘얘야,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 무엇인지 아느냐? 내 심장을 너희들이 가져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전하는 자는 많지만, 내 마음을 가진 자는 적다. 그렇게 브로큰 된 사람은 적다.’
내 마음을 품을 때에, 너희는 그 사람의 입장에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그가 나를 느낄 것이며,
내 임재를 너를 통해서 그가 느낌으로써, 내 사랑을 느끼게 되며, 그가 회복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저도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죽음을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요.
사람들이 요즈음 '아휴 허선교사님이 돌아가신다더니, 왜 저렇게 살아 계시는거야?
저 양반이 왜 안죽고 생생거리고 다니는거야?'
저는 주님한테 감히 살려달라는 말도 못했어요.
왜냐면 내가 살아야 주님한테 유익한지, 내가 죽어야 유익한지 나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살아서, 또 혹시 이상한 짓 하고 다니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면 주님한테 어떻게 얘기하겠어요?
주님께 내를 살려달라고 기도해서, 그래서 주님이 살려주셨는데,
주님한테 합당한 자가 되지 않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설치고 다니면,
주님이 얼마나 괴로우시겠어요?
주님이 천국에서 얼굴을 제 때문에 못 드실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살려달라고 해야 되는지, 죽여달라고 해야 되는지 저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몸이 극심하게 아프면, 하나님의 은혜가 안 느껴지는 겁니다.
저는 젊었을 때, 성인들의 책을 참 많이 읽었어요. 그것이 도움이 되었는데,
그 분들이 돌아가실 때 굉장히 고민을 하십니다. 너무나 통증이 심하니까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임재가 잘 안 느껴집니다.
‘주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어떻게 된 것일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 이렇게 깊은 성인들이, 아니 그렇게 주님과 깊은 교제를 했는데,
아니 죽을 때 그렇게 은혜가 없이 죽는게 말이되는가, 이분들이 헛것을 믿었나?'
그렇게 제가 젊었을 때 생각했어요.
그러나 제가 이제 말기암 통증을 느낄 때에
주님이 은혜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말씀도 생각이 안 나요.
단 두 가지만 생각이 나요.
-고통, 지옥같은 고통.
-그리고 외마디로 부르는 "주님!".
계속 그것만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아요.
그냥 칠흑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의식적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것도 잘 안 외워지니까 벽에 붙은 말씀을 보며, 새벽에 일어나서 읽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렇게 막 나 자신한테 주입하는 겁니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제게 잔잔한 평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시비를 붙는다던가, "왜 그러세요? 저를 살려주세요!"
어떤 그러한 악다구니 같은 것이 제게 없는 것을 보면서,
'아 이 잔잔한 평안이 나를 이끌어가는구나..'
그래서 주님께 여쭈어보았어요.
‘주님, 주님은 분명히 나를 살려주실수도 있으실 텐데, 이 고통에서 건져주실 수도 있으실 텐데,
왜 주님은 침묵하십니까?’
그때 주님이 이런 느낌을 제게 주셨어요.
‘너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니다. 생명의 능력으로 일어나거라!’
'주님 제가 일어나져야지, 일어나죠. 제 힘으로 일어나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어나는 것이 벌떡 일어나는게 아니라, 생명의 능력으로 라는 것은,
천천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다.’
'아 그래도 주님께서 저를, 확 일으켜주시면, 제가 할렐루야! 로 영광 돌리지 않겠어요?’
그랬더니 주님이 이렇게 얘기하세요.
‘아니, 너를 순식간에 일으켜주면, 네가 얼굴을 빳빳이 들고
나는 기도를 열심히 하고, 헌신을 많이 해서 이렇게 주님께서 나를 고쳐주셨지!'
하면서 다른 형제들을 업신여긴대요.
그러니까 '너는 할 수 없다. 교만한 너는, 철저히 겸손하게 낮아져서,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 속에는 악이, 교만이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있는지 몰라요.
왜냐면 우리 조상이 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반역했기 때문에,
우리 속에 하나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남한테 절대 굽히고 싶지 않아요. 반드시 그 사람 앞에서 고개를 쳐들고 싶어요.
이게 뭐예요? 그 사람한테 내가 신이 되고 싶은 거예요
‘나는 너보다 나아!’
이게 다 하나님을 반역했던,
하나님이 되고 싶은 인간의 폐부 속에 너무나도 깊이 박힌 죄악이죠.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아마존에서 살면서, 진짜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너무나 울어서. 그냥 눈물이 그냥 줄줄줄 흘렀습니다.
◑축복과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뚜껑을 열어보니 "암"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당신이 울었다는 얘기를 하시잖아요.
그분이 그 말을 기록하지 않았으면, 제가 위로받을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포기되어지고,
정말 자지러질 듯한 그런 고생과 굶주림과 고통들,
그리고 인디오 형제들의 그런 배반과
그리고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투병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래도 정말 제가 50세가 되었을 때,
'아 나는 이미 죽음이 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말라리아에 걸리고, 벌써 이미 몸은 병들어서 이제 나는 다 소멸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님께서 제게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너는 성경속에 한 인물처럼 살아가고 있단다.'
그래서 ‘제가 잘못들었겠지. 또 마귀가 속삭였구나’
그렇게 깜짝놀라서, 어떻게 인간이 그런 소리를 듣겠어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죠.
그러면서도 '주님이 제게 축복을 대단히 주시려나 보다..'
또 그런 느낌도 많이 있었어요.
뭔가 막 열리는 것 같고, 뭐가 막 홍수가 밀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아 내가 이제 큰 능력을 받아가지고,
으싸싸싸 그러면 귀신도 떠나가고, 야 인제 대단한 능력자가 되어서, 나도 좀 뽐내며 살게 되겠다.'
그렇게 한껏 우쭐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제는 내가 오랜 세월을 진짜 연단이라는 연단은 안 받아본 것이 없이 다 받았으니까,
이제부터 내게는 황금시대가 열리나 보다.
신통, 물통, 인통, 선교비도 팍팍 보내주셔서 더 이상 나를 괴롭게 안 하시겠지.'
이런 기대하는 마음이 너무 충만했어요.
▲그랬는데 한국에 왔어요. 한국에 오기전에 주님이 속에서 내적음성으로 말씀하셨어요.
'네가 이 땅에서 상을 받겠느냐, 저 위에서 받겠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너는 이미 이 땅에서 상을 다 받은 것이니라.'
이런 내적 음성을 주셨습니다.
'참 재수없는 소리만 하신다. 꼭 주님은 내게 보탬이 안 되는 말씀만 계속하시는구나.
그렇지만 주님, 제가 하도 멸시를 받았고, 하도 학대를 받았으니까!'
'주님, 이제 존경 받는 선교사가 되어도 괜찮죠?' 하며 씨익 웃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그게 아니지..' 이런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여튼간에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꽤나 이제 나는 은총을 받은 자구나.
자 이제는 내게 행복만 남아있을 것이다!' 하며 군침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왔는데 암을 발견한 거죠.
그러니까 주님한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거죠.
꼭 이렇게 잘될 줄 알았는데, 영 딴 길로 인도하시는 거죠.
그래서 제가 '주님은 참 엄청나시다. 하나님도. 진짜 주님은 웬수다.
아니 축복을 주시면 어때서, 왜 제게 암을 주셨을까?'
그렇지만 이것은 사랑의 대화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도, 주님은 안 삐지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내적 음성으로 제게 얘기하시기를 ‘그래 네가 얌전한 사람과 살려면,
너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니까, 너는 네가 생긴 대로 살아라’ 그러셔서
너무 제가 고마워하죠.
주님은 속이 넓으셔서, 나같은 사람도 포용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얌전한 사람만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이렇게 나같이 제멋대로 생긴 사람도 주님은 다 품으시고, 좋아하신다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저 같은 사람 있으면, (주님이 품어주신 것처럼) 용서하시고 품어주세요.
일반적으로 우리의 모델은 성실하고 얌전한 사람이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얌전하고 성실한 사람뿐만 아니라, 나 같이 흠 많고, 부족하고, 진짜 쓸데 없는 사람도,
주님은 좋아하시더라고요. 그게 우리하고 하나님과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성경속의 인물처럼 산다고 그래서
아휴 참 제가 이해가 안 되었어요.
‘왜 그런 얘기를 하실까? 그들은 우리하고 틀린 사람들이지,
그 사람은 세인트(성자) 들이고, 나는 그냥 밑바닥 인생인데,
아이고 나를 끌어다가 그분들에게 붙이면 어떻게 되는 건가?' 그렇게 제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지나고, 암을 그치고, 죽음을 거치고, 거치고 보니까
제가 깜짝 놀라는 겁니다.
‘아 주님, 나도 그들과 함께 당신의 유업을 이을 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조차 거절감을 우리가 느낄 그때에,
하나님의 진정한 거룩하심에 우리가 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제가 알았어요.
여러분이 지금은 젊어서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이다음에 여러분들이 제 나이 정도 되면,
'아 그때 허 선교사님이 왜 그런 소리를 하셨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놀라운 것은, 요즘 제가 몰입하고 있는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야곱과 제 삶이 야곱처럼 환도뼈가 부러진 상태이죠. 불구자로 절고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사기꾼이고, 도둑놈이라는 것은 제가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저는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현실을 살아내야 되니까, 눈치가 잽싸게 빨라야되요.
아마존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많이 했느냐면, 우리 목사님은 생전에 선교비 모금을 안 하세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없이, 헌금을 요청하는 역할을 떠맡았지요...
◑설교 도중에 삽입된 결혼 스토리
옛날에 우리가 신학교 다닐 때 결혼했는데요,
지금도 여기 교회로 오는 길에 서로 말했어요.
'(사랑스럽게 놀리듯이) 당신이 참 믿음이 좋았어요,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결혼했죠.'
차 안에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니,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으면서, 카튜사에서 복무했는데,
그때 너무 돈이 없으니까, 제대 후에 자기 군화를 팔아서 제게 돈을 갖다 주었습니다.
아니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가지고
'저 노처녀를 구해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저를 따라다니셨어요.
남편 김철기 목사는 제보다 세 살이 어립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그게(연상 결혼) 한국 사회에서, 쉽게 이해가 안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웬 남자가 저를 그렇게 따라다니는 거예요. 제가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연하남이죠. 그때는 사회적 통념상 그걸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너무너무 괴로워서, 주님께 3년이나 기도했어요.
그 당시 어느 날 남편이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가 카튜사로 가게 기도해 달라'는 겁니다.
자기가 영어를 잘 해야 장차 해외선교사로 나가니까, 카튜사로 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그래서 제가 열심히 기도해 줬어요.
그런데 자꾸 나를 따라다니니까, 제가 기도를 다르게 했습니다.
‘하나님 저 형제를 강원도 최전방으로 보내서, 나를 따라다니지도 못하게 하시고,
고생을 직싸게 해서, 막내 티를 좀 벗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런데 하나님이 제 기도를 안 들어주셨어요.
남편은 카튜사로 입대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한남동에 미8군 종교수양관이 있어요.
카튜사의 종교 군종들이 거기에 와서 훈련을 받았는데,
입대 후 3개월 만에 휴가를 나왔어요. 저를 보더니 너무나 좋아하는 거예요.
한남동으로 자기를 만나러 오라 그래서,
'오케이 오늘은 만나서 끝장을 내야지!' 그래서 만나러 갔습니다.
가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제 진짜 단념하라!’고 말하러 나갔는데,
그런데 남편이 카튜사 군복을 입었는데, 제가 좀 안목의 정욕이 있는 사람인지, 하하하
한국군인들이 군복 입은 것보다, 인물이 더 괜찮은 겁니다.
옷이 날개라더니, 당시 미군의 모자도 멋있었습니다.
저를 만나러 나왔는데, 생긴 모습이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그러지 말고 제발 단념하시라'고 그랬더니
남편은 자기 손으로 모자를 쪼글쪼글 하게 접으면서
'왜 자기가 그렇게 싫은지?'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보니까, 너무나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습니다. 너무 불쌍하게 보이는 겁니다.
왜 자기가 그렇게 싫냐고 하는데, 제가 그만 동정심이 발동했습니다. 이게 첫 번째 이유고요,
‘어머 이 사람이 그렇게 슬프게 느꼈나?’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결혼한 두 번째 이유는,
‘자기가 나하고 결혼을 안 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답니다.’
‘아니, 누구 맘대로? 자기 독단적으로 나와 결혼을 하겠다는 건지?'
그래서 제가 가서 너무 황당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그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마음이 약한 것이 참 문제죠.
그래서 집에 와서 고민하면서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러면서 막 고민하며 기도하는데,
주님이 이러시는 겁니다. ‘내가 너를 여자로 창조했느니라.’
그래서 ‘아니 주님, 제가 당연히 여자잖아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랬더니 ‘성경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만든 그 여자가 누구인지 네가 알아야 된다.’
그래서 ‘아, 시집을 가라시는가 보다.’ 또 그렇게 해석을 해가지고
제가 김밥을 싸서, 저기 용산 미8군에 시집가겠다는 말을 하려고 면회를 갔습니다.
남자들이 도둑놈입니다. 갔더니 나는 너무 반가워할줄 알았더니
보고 씨익 웃고 그냥 가더라고요. 그러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결혼했는데, 남편이 신학생이니까 생활비를 줄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 얼마나 믿음이 좋으신지, 밥걱정은 안 하시고, 가방들고 학교만 가시는 겁니다.
요즘 그때 일을 회상하며, 제가 남편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당신은 믿음이 참 좋았어요!” (사랑스런 놀림)
왜냐면 적어도 가장이라면, 집의 밥걱정은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 둘은 너무나 믿음이 순수해가지고, 일용할 양식을 주실 줄 믿고 사는 겁니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믿음이 생겼을까?'
그러니까 아주 너무 자연적이고 순수한 믿음이었습니다.
‘주시면 먹고 안 주시면 안 먹고! 아니, 이렇게 세상에 순진한 믿음이 있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요즘 우리 목사님보고 그럽니다.
‘여보, 우리가 그런 사위 얻는다면 용납하겠어요?’
‘그건 절대 안 되지!’
▲그리고 저는, 여자가 무엇인지, 남자를 섬겨야 되는 존재임을,
제가 박혜원 교수님을 너무 사랑하고, 반한 게 있어요.
저 분의 강의를 듣다가 제가 깨닫게 되었어요.
저분이 그거 전문가잖아요. “가정과 여성.”
제가 박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너무너무 기뻤어요.
강의 속에 나오는 "거룩한 믿음의 여인들",
정말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로 섬겼잖아요.
반드시 여인들은 그렇게 해야 됩니다.
성령님이 어느 날, 내가 복종을 익히고, 복종을 하게 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내려놓고 깨트릴 때,
남편의 유익을 위해서, 내가 복종을 훈련할 때,
성령께서 오셔서, 남편이 주님인 것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는 길이더라고요.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란, 그런 거예요. 여인들은 그렇더라고요.
◑제가 야곱과 레아와 라헬을 요즘 깊이 묵상하고 있어요.
레아는 십자가를 상징하는.., 십자가로 부르심을 받고,
그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도우심으로 자기 자아의 처리함을 받고,
예수님의 생명의 계보 속에 들어간 여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낳은 믿음의 조상, 그 여인의 계보가 되셨습니다.
라헬을 통해서 주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 레아를 통해서 오셨습니다.
글쎄 그 여인의 눈은 사시斜視인가요? 하여간 눈이 못생겼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정이 떨어졌겠어요? 만약에 여자의 눈이 그렇게 생겼다면.
아내를 쳐다보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요!
그런데 라헬은 너무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자기를 드러낼 수 있고,
그 여인으로 인해서 자기가 조금 높아지기도 하고, 으쓱해지고 그렇겠죠?
예쁜 여자랑 다니면, 남자들이 스스로 조금 으쓱해지겠지요?
야곱은 그 자기 자랑, 우쭐함을
어여쁜 아내를 통해 좀 채워보려고 했던,
그러니까 라헬의 인간적인 매력에 매료되었던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세상을 사랑하는 야곱을 봅니다.
그가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알았더라면, 레아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고,
레아를 그렇게 학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레아는 그냥 벼락 맞은 여자잖아요.
자기 아버지한테 벼락 맞고, 남편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하는 여인이죠.
그러나 이 여인도, 오늘날 우리와 똑같이
얻고자하는, 성취하고자 하는 열심히 대단했던 여자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의 사랑을 받아내고 싶어서 몸부림쳤던..
그래서 그 여인은 더 비참해지고, 고통 받았던 여인이었어요.
그래서 레아는 자녀를 낳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제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것이다.’
창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보라, 아들이로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수고해요. 그래서 주님한테
‘이 정도 헌신하면 이제 축복을 내게 주시겠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축복대신에 그리스도를 주시려고
자꾸 엉뚱한 데로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날마다 막 삐지고 시험에 들고, 신경질나고
주님을 안 믿고 싶고, ‘주님, 왜 이러십니까?’ 합니다.
우리 마음이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왜 내가 원하는 기도제목은 안 들어주시는 건지..
우리 부모님도 좀 회개하게 해주시고..’
여러분들 기도제목 중에, 부모님이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게,
첫 번째 기도제목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와 같이 강퍅한 그 부모님의 마음은,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여러분이 변화되는 것 만큼,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해하시죠?
그러니까 때로는 우리는 지치잖아요.
'왜 주님이 그냥 확 불을 내리셔가지고, 부모님을 예수 믿게 해 주시지,
아이,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시는 건지.. 정말!’
여러분이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속으로 주님께 속상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낙심하고 있는게, 다 주님한테 대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교회 성도님들 중에 늘 삐져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주님..' 하며 원망을 하는데요,
뭐냐면 내 욕망을 안 이루어주신다고, 사실은 주님께 속으로 화를 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바로 '가인'이잖아요.
주님이 뭐 내 하인, 내 비서도 아니시고,
주님께 막 명령을 했는데도 안 들어주시니까, 막 미워서 멀리 밀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우리 속에는, 그런 패역한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품까지 계속 성숙되어져야 하지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대들고 있고, 화가 날 뿐만 아니라
나중에 여러분들이 뭐 율법적으로 막 참고, 막 저지르고 싶어도,
'자기 체면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 있으시죠?
그러면서 우리가 무슨 착각을 하느냐 하면,
'나는 너하고 틀려. 너는 참지 않았지만, 나는 참았어.' 하면서,
또 자기 의에 사로잡혀서 자기가 한껏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웃기잖아요.
나 자신이 무슨 요물단지인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우리가 선악과의 '선의 열매'를 너무 따먹는거에요.
'예수님을 믿으니까 이렇게 해야지' 하고,
너무너무 우리가 막 이렇게 겉으로, 율법적인 의를 행할 때가 많아요.
그것 때문에, 나중에 스스로 의로워져서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올라가는데요,
그것 때문에, 그 자기 의를 부쉬기 위해서, 나같은 사람은 죽음을 경험했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아마존에서 선한 일을 너무나 많이 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저를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이제는,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기뻐하고,
이게 아주 무시무시한 독이죠.
선악과의 '선의 열매'를 다 따 먹고,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그리고 어디서든지 자기 고개를 쳐드는 교만, 자기 의... 이게 대단히 무서운 일이죠.
▲그래서 레아가 예수님의 조상 할머니가 되어서 유다를 낳잖아요.
그러면서 그가 '자유함'이라고 하는 것을 비로소 누립니다.
셋째 레위를 낳고 '연합함'으로 지었고, 하나님과 연합에 들어갔다는 뜻이고,
넷째 유다를 낳고 '찬송'으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유함을 비로소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구주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에 대해서,
그가 영으로 이미 하나님의 영과 연합되어서, 그가 이미 자유로워지는,
남편의 사랑을 더 기다리지도 않는, 자식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
이제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자리에 아주 부요한 자리에 올라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저는 "이제 생명의 계보, 명문가문을 일으키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가
자꾸 제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말이나, 여인들이 룻이나 에스더나 이 여인들을 통해서 보세요.
그들은 하나님 앞에 죽음을 드렸던 여인들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요.
다말도 죽을 뻔 했잖아요. 시아버지 유다가 불에 태워서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룻도 십자가의 체험을 합니다. 여자가 남의 남자의 발치에 가서 눕는 일이 보통 일이겠어요?
이 모든 사건을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부활"로 이끄시기 위해서, ←설교제목
자기 자아의 죽음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 "부활'이 무엇이냐면,
정말로 내가 원치 않는 모욕과 거절감을 통해서, 이 땅에 있을 때 우리가 많이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 나라에 속한 권세가 내게 오며,
그리고 예수님과 연합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옛사람을 자아를 소멸시키시고, 그 옛사람을 처리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둠 속에 넣어시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묻혀지는, 그 어둠을 경험하면서, 쪼개지면서 그가 새싹이 튀어올라오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무응답과 거절을 통해서, 깊은 좌절을 경험하면서,
레아처럼요,
세상 것들을 점점 다 버리고, 부활에, 즉 보다 깊은 차원의 주님과의 연합에 들어가고,
다른 표현으로는 '생명의 계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레아, 룻, 에스더,
모두 자기 죽음을 통해서, 그 자리로 나아갔던 것이며,
제가 그것을 오늘날 겪고 있다는 깨달음이.. 제게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암을 겪지 않고, 건강한 상태에서 '생명의 계보'로 나아가시는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계보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 가문
여호수아와 갈렙 가문이, 두 가문이 가나안에 들어갔어요.
여러분들이 ♬이 산지를 내게 주시옵소서♪ 라고 찬양을 하죠?
그런데 그 헤브론에는 예수님의 생명의 씨인,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헤브론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면 메시야가 누구를 통해서 오세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갈렙이 얼마나 용기를 냈겠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 믿음의 조상이 거기 헤브론에 있었어요. 창23:19
그래서 갈렙은, 자기 죽음을 앞둔 그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한 것입니다. 생명의 계보를 읽는 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산지를 얻는 것'이란,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부활의 신앙으로 가는 그러한 모습인 것을,
이렇게 제가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저 산지를 내가 얻어야 하는데’
그건 장대한 아낙 자손 등, 강건한 가나안 7족속을 물리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아낙 자손, 이것이 무너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되죠?
하나님, 문제를 통해서 나 됨의 실상을 보여주실 때,
'하나님, 이 잔을 피하지 말게 하시고, 인정하게 하소서.
내 악랄함, 세상에 속한 욕심, 그리고 당신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이 야망들,
이 모든 것들 주님 제가 인정합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저를 변화시켜 주소서!'
그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죄성을 인정할 때에, 당신의 임재가 나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그런 놈입니다. 저는 정말로 도적놈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고..'
여러분 신학생들은 지금 심을 때죠. 거둘 때는 아직 아닙니다.
그리고 물질도, 여러분들은 주님 때문에 가난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참 사랑스러워요. 내 형제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본 회퍼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따르라>는 그의 책에 보면,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그 분이 누구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분은 무시받던 목수가 아니었더냐? 그럼 우리는 무엇을 결심해야 되겠느냐?"
우리에게 가난과 멸시와 천대를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멋진 도전입니까!
우리가 따르고자 했던 그 분은 멸시받던 목수였습니다.
우리도 멸시 받을 것을 각오하고, 그것이 우리의 양식이요, 음료요 받아들이십시오.
여기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그만 하려고 합니다.
나는 설교를 계속하고 싶은데, 내 머리되신 남편께서 그만하라고 자꾸 싸인을 내시니까요.
▲그런데 여러분께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어요.
제가 아마존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었어요.
제가 위대한 사람이 아니예요. 혈기도 많고, 성질도 급하고, 아주 그냥 못된 것만 잔뜩 있는 사람입니다.
정말 주님이 아니시고는 감당할 수 없어서,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 사람은 아무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천방지축에다가, 제가 봐도 머리가 스스로 아픈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저를 구원해 주셨어요. 나는 그 분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훈련시키신 게 있어요.
제가 머리는 나쁜데, 한 가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게 있었어요.
어떤 사람이 내 옆에서 나를 괴롭히거나 슬프게 하거나 낙심시킬 때마다,
'주님 저 사람 때문에 제가 못 살겠어요. 주님 나 진짜 못 견디겠어요. 아주 그냥 진짜..'
이때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주님은 이러시는 겁니다.
"그 사람은 육신으로/겉으로 하고, 너는 마음속에서 나한테 그렇게 하잖아!
네가 하도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내가 그 사람을 보내서,
네가 내 앞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네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를 통해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주님을 이겨본 적이 없는 거에요.
저를 꿰뚫어서 해석을 하시는데, 어떻게 주님을 이길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날마다 핏대를 올리다가, 콧김을 날리다가, 금방 풀이 죽어서,
"그렇군요, 주님. 죄송해요."
더군다나 우리 자식들이, 나를 속상하게 할 때도 있죠.
"주님, 정말 저 자식이, 하나님 앞에서 제 모습 같습니까?
주님 앞에서 제 모습이 저 모습입니까?"
그러면 "너는 더했어!"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내 곁에서 무슨 짓을 할 때에,
나는 더 나쁜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인디오 목사님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덩어리입니다.
신학교 돈을 훔쳤어요.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맨날 낙심만 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내쫓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는 언제든지 자기 잘못을 인정합니다.
아 자기 죄를 인정하는 사람을 어떻게 내쫓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똑똑하고 잘 생기고 일을 잘해도,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임신시키고, 이번에는 돈을 훔치고, 그래도 날마다 자기 죄를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그를 못 내쫓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보면서, 나를 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하나님, 저를 그렇게 오래 참아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도난 사건으로, 우리 신학교가 뒤집어졌어요. 난리가 났어요.
다 낙심했어요. 그래서 제가 신학생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여러분, 여러분도 다 속에서 훔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왜 그 사람에게만 정죄합니까?
여러분은 아직 행동에 옮기지 않았고, 그는 먼저 행동에 옮긴 것뿐입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회개의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은 겉으로 훔쳤고, 다른 사람들은 용기가 없어서 못 훔쳤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마음에 훔치는 도적질 하는 죄악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도 똑같이 훔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보여주시고, 회개케 하시고, 용서해 주소서!'
주님이 제게 그런 감동을 주셔서, 그들에게 메시지를 주었고요,
그래서 신학교에서 일어난 도적질 사건을, 잘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여러분도 집에서 부모나 형제들이나, 지독하게 꼴뵈기 싫은 그사람을 볼 때
‘아 그 사람이 납니다. 하나님 제가 인정합니다,
그 사람속에 있는 것이 내 속에도 있사오니, 주여 나를 변화시켜 주소서’
그럴 때 주님이 너무 기뻐하시고, 우리는 겸손의 지혜로 가서,
우리가 남을 섬기고, 함께 더불어 가는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이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남편 김철기 선교사의 설교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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