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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길 P2

LNCK 2016. 8. 19. 10:56

뱀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길 P2        계시록34, 출처       

바벨론 포로 시대를 예로 살펴봅시다.

예레미야 33장입니다.

 

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6~9,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여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2절을 보면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어떤 일을 계획하시고 그 일을 여호와께서 성취하신다고 합니다.

쉬운 말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하시느냐 하면,

자기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가, 다시 되찾는 일을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다가 해방시켜준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죽였다가 살려 내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여호와는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도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인도하세요.

 

그러니까 바벨론에 망하게 하는 것도 여호와의 뜻이고,

바벨론에서 해방 시키는 것도 여호와의 뜻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렸어요.

그래서 순순히 바벨론에게 포로 잡혀 가라고 했어요.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예레미야는 완전히 친일파에요.

그러자 거짓 선지자들이 벌떼 같이 달려들어서 예레미야를 이적행위라고 하여서

매질을 가했어요.

 

남쪽 유다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남쪽 유다는 친애굽 정책으로 바벨론을 막고자 하였어요.

애굽과 동맹하여서 막고자 했어요.

 

그러나 여호와께서 남쪽 유다를 망하게 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희락의 성읍인 예루살렘을, 시체가 가득 쌓인 죽음의 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짐승조차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건 남쪽 유다가 완전히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찬송이 울려 퍼져야 할 도시가 애곡의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걸 누가 한다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하신답니다.

 

이건 죄와 사망에 포로 잡혀서 신음하는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포로 잡혀가게 하셨다가, 여호와께서 해방 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쪽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해방 되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는 여호와를 알려주기 위하여

시청각교제로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의 전쟁을 통하여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행하는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여호와의 전쟁이 신약으로 오면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초림 때는, 구약의 율법교회로부터 건져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회사 적으로 보면, 중세 시대에는 타락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종말에는 타락한 교회로부터,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종말의 교회들이 또 다시 가톨릭화 되었어요.

지금은 중세 암흑시대와 같아요.

교회 안에 인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어요.

 

뱀의 말들이 홍수처럼 흘러넘치고 있어요.

육에 속한 거짓 목사들이 세상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육적 신자들도 세상의 떡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에게 신은 돈이에요.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이 돈의 가치로 판단되어요.

돈 많으면 복 받은 것이고, 가난 하면 저주 받은 것이에요.

 

큰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교회이고,

작은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교회로 회자 되고 있어요.

 

교회 큼이 자랑이고, 교회 작음이 수치가 되었어요.

이 모두가 세속적 가치로 교회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복음의 전쟁이에요.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의 전쟁입니다.

 

세상의 떡을 줄 것이냐!

예수그리스도라는 떡을 줄 것이냐! 의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 내시는 분입니다.

 

어떻게 죄에서 구원을 해 내셨나요?

마귀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러면 이 세상은 예수님과 마귀와의 전쟁터가 되는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와 싸우러 오셨습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에요.

이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류 역사가 시작이 된 이래로

전쟁이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 이야기는

여자의 후손뱀의 후손간에 전쟁하는 것을 예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육적 전쟁을 통해서, 영적 전쟁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전쟁이에요.

 

구원과 동시에 전쟁이 시작이 되었어요.

마귀가 그 동안 자기 것이라고 여긴 것을 빼앗겼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요.

 

이를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서 나의 것으로 택함을 입은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일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고난도 없고 원수도 다 사라지고 좋은 날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러한 것은 모두가 마귀의 미혹 때문이에요.

마귀가 신앙을 현세주의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만들어 놓은 현세주의 천국관을 깨트리는 일을 하셨어요.

예수님 초림 당시에 유대인들은 모두가 현세주의 천국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육적 나라의 해방을 꿈 꾼 것입니다.

로마로부터 해방하여 부국강성한 나라를 만들어 줄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마귀가 주는 현세주의 천국관을 깨트리고, 내세의 천국관을 심어주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게 전쟁인 겁니다.

 

그 전쟁이 이제는 성도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싸움꾼으로 부르셨어요.

그래서 성도를 일컬어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합니다.

 

군사란? 싸우는 자들이에요.

성도는 싸움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린 가만히 있고자 하여도, 마귀가 가만있지 않아요.

싸움을 걸어 와요.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이러한 것을 실감하잖아요.

 

용이 누구랑 싸우는지 봅시다.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고 하지요.

여자의 남은 자손이 누구인가요?

 

이 여자는, 하늘로 올라간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입니다.

이는 구약 교회라고 했습니다.

 

구약교회는, 전체적으로 타락했지만,

그 속에 소수 남은 자가 있어서,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을 일컬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오실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았다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을 일컬어 율법과 선지자의 마침이라고 하지요.

이는 구약의 마지막이란 말입니다.

 

구약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세례요한이 뭘 했나요?

물 세례를 주었지요.

 

물 세례는 죽음을 상징해요.

그러니까 세례요한은 죽이는 일을 한 것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전부 죽였어요.

이걸 주의 길을 예비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7장을 보면 해골골짜기가 나옵니다.

골짜기에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을 상징해요.

 

그런데 그 위에 생기가 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러자 죽었던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룹니다.

이렇게 살아난 군대들 위에 다윗이 왕 노릇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윗은, 육적인 다윗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진짜 이스라엘의 왕을 말합니다.

 

그가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여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와서 보니 자기 백성들이 다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살려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 들어가셔서

무덤 속에 갇혀 있던 구약의 이스라엘을 몽땅 살려내셨어요.

 

그리고 부활하셔서 이들을 하늘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에스겔 37장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죽었던 해골들이 다 살아난 것입니다.

 

이게 종말에 또 다시 재현이 됩니다.

신약의 교회도 종말에 가면 또 다시 해골처럼 되어요.

영적으로 다 죽어 있단 말입니다.

 

이러한 곳에 예수님은 자기의 분신인 두 증인들에게

작은 책을 먹이시고, 귀신의 처소가 된 타락한 교회로 보냅니다.

 

거기서 예수님처럼 죽임 당하면서, 자기 백성들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 복음을 듣는 자들은 다 살아나게 되어요.

 

마치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살아났듯이

종말에도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셔서,

다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용이 누구랑 싸운다고 합니까?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운다고 하지요.

 

이들이 누구인고 하니 두 증인들이고, 그들의 말을 듣는 성도들이에요.

 

종말에 두 증인들에게 뭘 줍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을 주신다는 것은, 그때 말씀이 타락한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08~11절을 봅시다.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작은 책을 먹이지요.

그리고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고 하지요.

 

여기서 사도요한은, 주의 종을 대표하고 있어요.

이들이 11장에 두 증인들로 나타나요.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예언한다는 것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행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예수님 초림 때 모습과 같아요.

예수님이 먼저 12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들려주시지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사도들이 일제히 천국 복음을 외칩니다.

사도들이 어디에서 천국 복음을 외쳤나요?

구약 교회에요. 율법 교회에요.

 

사도 바울도 어디든지 가면, 제일 먼저 유대인들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어요.

유대인들의 회당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있었어요.

 

율법은 죽이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이 유대인들 회당에 들어간 것은, 무덤 속에 들어간 것과 같아요.

 

거기서 천국 복음을 전한 겁니다.

이게 종말에도 그대로 재현이 되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 되면 교회가 다시 구약교회처럼 죽었어요.

복음이 사라졌단 말입니다.

 

교회마다 뱀의 말이 홍수가 되어서 흘러넘쳐요.

이름하여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살아야 한다는 떡의 복음이에요.

 

마귀가 육적 목사들을 통해서, 교인들을 전부 땅에 묶어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사는 것이 마치 복음인냥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두 증인들이, 종말에 천국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증인들을 누가 핍박하는가요?

땅에 거하는 자들이에요.

 

이는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살아야 한다는 자들이에요.

뱀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잘 보세요.

작은 책의 말씀을 먹이시고 어디로 보냅니까?

 

교회로 보냅니다. 11:8

이는 종말의 교회가 말씀이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10:11

 

초림 때 사도들이 외쳤던 그 복음을 다시 외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의 전쟁은, 교회 안에서, ‘육에 속한 자들영에 속한 자들간의 전쟁인 것입니다.

복음의 전쟁이에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남은 여자의 후손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나요?

광야이지요. 12:6

 

독수리 날개로 받아서 자기의 곳으로 데리고 가지요.

그리고 거기서 1260일 동안 양육을 하십니다.

 

이건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여 광야로 빼내시는 것을

독수리 두 날개로 업어서 옮겼다고 합니다.

 

광야에서 어떻게 했나요?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했어요.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으로 양육했어요.

 

광야에서 율법을 주신 것은, 작은 책을 먹인 것과 같아요.

모세는 율법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했어요.

 

애굽적인 사람을 죽이고, 가나안에서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걸 양육이라고 합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40년이란? 인생 전체를 말합니다.

 

이게 신약에서는 1260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260일은 신약의 전 기간을 말해요.

우리 인생 전체를 말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신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천국에서 살아갈 사람으로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말이 양육이지 이건 전쟁이에요.

옛 사람이 죽임당하는 전쟁이에요.

 

떡에 가치로 살던 사람이 죽임 당하고

하나님 언약의 가치로 사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들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보세요.

옛 사람을 죽이라고 하지요.

너희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니까, 세상의 가치로 살지 말라고 하지요.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광야와 같아요.

떡의 사람이 죽고,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고

하늘에 산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날마다 죽임 당하는 전쟁을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가나안 전쟁을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어요.

우리 옛사람입니다.

 

이 놈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임 당하는 일들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는 우리 옛 사람과 전쟁을 하고, 외부에서는 거짓 종들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광야란? 세상과 격리된 곳을 말합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로 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출애굽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애굽에서 난 자를 죽이고, 애굽적 가치관을 빼내는 것이잖아요.

 

애굽은 떡의 가치로 사는 곳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말씀에 가치로 사는 곳입니다.

 

광야는 광야에서 먹을 양식이 있습니다.

그게 만나였어요.

 

만나는 육을 위한 떡이 아니에요.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양식이었어요.

 

결국 성도의 신앙 싸움은 떡에 가치로 사느냐?

아니면 말씀의 가치로 사느냐? 의 싸움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하여 사느냐?

하늘을 위하여 사느냐? 입니다.

      

용이 하늘에 전쟁에서 패하고 난 후,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이 용이 어떤 놈인가요?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천하를 꾄다는 것은 미혹한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무엇으로 미혹하는가요?

이는 뱀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로 하와를 미혹한 것과 같아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으로 말이에요.

그게 뭔가요? 떡이에요.

 

이 떡으로 어디서 누구를 미혹하는가요?

교회 안에서, 육에 속한 자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치 마귀가 사십일을 주리신 예수님을 찾아 와서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세상에서 성공하여서 증명해 보이라고

미혹한 것과 같이 미혹해요.

 

이건 마치 당신이 전하는 복음이

교회를 부흥시켜서 증명해 보이라는 것과 같아요.

 

사람들은 교회의 숫적 부흥이, 곧 복음인 것처럼 말해요.

교회가 부흥이 되면 그 목사가 전하는 말씀이 곧 진리라고 생각해요.

이게 전형적인 마귀의 논리에요.

 

그러니까 그 속에 진리가 없는 교인들은

큰 교회 목사들은 다 진리를 전하는 자들이라고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힘으로 과시했어요.

물량적인 것으로 제시했어요.

땅에 속한 사람들은 다 속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성도는 그 말씀이 어디를 지향하게 하는지를 보아요.

하늘의 소리인지, 땅의 소리인지로 분별해요.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는지, 인간의 삶에 관심을 두는지 분별해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