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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과 감사의 순례자 시22:3, 마26:30 출처
성도가 늘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신앙생활이 늘 쉽게 다운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성도는, 다운을 딛고 일어섭니다.
감사하지 않는 성도는, 한 번 다운되면.. 계속 그게 지속됩니다. 계속 불평, 원망이 나오는 거죠.
그러나 감사는, 불평과 원망을 이기고, 내 마음과 육체에 생기와 생명을 유지시켜 줍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본적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시 22:3).
찬송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주소지가 됩니다.
따라서 그분께 나아가려면 찬송수레를 타고 가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시 100:4).
만물이 창조될 때 합창이 함께 했습니다.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그때에 새벽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을 뜻하는 히브리 관용어) 이 기뻐 노래했습니다"(욥 38:4,7).
찬양은 이 세상이 탄생했을 때 둘렀던 포대기였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인류 역사가 이 땅에서 막을 내릴 때 찬양으로 천지를 마무리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말씀은 찬양과 관계된 아멘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계 22:21).
찬양은 우리를 심각한 죄와 저주에서 구원하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보답입니다.
▲찬양은 치료제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운동이나 약도 찬양만큼 낙담의 병을 고치지 못할 것입니다.
찬양이 없는 곳에서 번식하게 된 무수한 세균을 닿자마자 죽여 버리는 강력한 살균제입니다.
찬양하기로 결단한 사람은, 즉각적으로 활기가 상승하여 기쁨의 샘을 자극합니다.
근심과 찬양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찬양의 유무에 따라 이 땅의 수확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으로 최대의 수확을 내시도록 하는 작용을 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사람들이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모든 백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그러면 이 땅의 수확물이 불어날 것이고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시 67:5,6)
찬양은, 신자의 무기 중에서도 적을 대항 하는데 비상한 무기입니다.
찬양은, 원수들이 뚫을 수 없는 방어책이고 영적전쟁에서 무적의 무기입니다.
"어린이, 젖먹이들이 노래합니다.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시 8:2)
◑예수님의 5대 감사와 찬송
1. 예수님의 찬송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비에 섰을 때 쏘아 올리셨습니다.
치욕과 고통의 저주스런 십자가를 짊어질 전날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멸망을 안타까이 보신 하나님의 해결책으로 보내진
예수님의 마지막 결단으로 세상 구원이 완성되는 찰나이기에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죽음 자체를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서 찬양을 하신 것입니다.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마 26:30).
2. 예수님의 감사는 일상의 감사생활이었습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5천 명을 먹이실 때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고 감사 하셨습니다,
오병이어는 사실 작은 것입니다. 감사할 꺼리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작은 감사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3. 나사로 무덤 앞에서도 내 말을 들어주시니 감사하다(요 11:41)고 하시면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심으로 죽음문제를 종식시키시고 부활의 주(主)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렇게 감사하시며, 사역의 그 모든 공로와 영광을,
자신이 휘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다 돌려드리셨습니다.
4. 그리고 내일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밤에 떡을 떼어 주시고
포도주를 들고서 역시 감사하셨습니다(막 14:22-24).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갈 때
감사보다는 불평이 나오기 쉽습니다만,
예수님은 불평이 아니라,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뒤따르는 모든 신약의 주의 종들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모든 사역에는, 항상 감사가 함께 동반했습니다.
5. 예수님의 5대 감사 중 마지막은 못난이들을 선택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눅 10:2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 상아탑에서 고르지 않으셨습니다.
무학력의 베드로가 제자의 수장이 되고, 뱃사람이 초대교회의 대 설교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이 어린아이같고 비천한 처지에 이르렀다 해도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며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어쩌면 그런 비천한 그릇이 더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혹시, 선교지에서나 목회지에서
아주 사회적으로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역하게 되었을 때도,
어쩌면 신세타령할 일이지만,
그걸 수치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감사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처럼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예상대로 이들을 통해 복음이 온 세상에 줄기차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자란다고 한탄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로 인한 감사
마게도냐 주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 등 세 개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극도의 박해 속에서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빌립보 전도 중에 바울 사도는 귀신 쫓아낸 일을 계기로 옷이 찢기고 심한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있었고 (행 16:22)
결국은 추방당하여 데살로니가로 옮겨갔야 했습니다.
여기서 복음의 길이 열렸으나 유대인의 선동으로 폭동이 일어나
겨우 3주 만의 복음전파를 접고 또 다시 베뢰아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행 17:10).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옮겨가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서럽고
인간적으로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기쁨도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데살로니가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이 무리를 선동하여(행 17:13)
바울은 또 다시 아덴으로 밀려갔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즉,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들이
후에 바울이 극도로 칭찬한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를 이렇게 칭찬합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
"시련 중에도..넘치는 기쁨",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풍성한 연보"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읽어보십시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아주 높이 들어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살전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만약 바울이, 거기서 쫓겨다닐 때
주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래서 전도여행을 중단하거나, 하나님께 반항만 하고 있었더라면,
마게도냐에서 아무런 열매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은 비록 감사할 처지가 아니었지만,
꿋꿋이 인내하며, 참고, 자기 사명을 계속 감당했을 때,
나중에 바울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살전1:2
도무지 공식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실패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성공이었습니다.
웰빙 중에서도 불평이 하늘을 찌르고
풍요 속에서도 이기심만이 가득한 오늘날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그런 바울의 모습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일까요?
고후8:3절에 더 진한 장면이 나옵니다.
"힘대로" 할 뿐 아니라(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그들은 자원해서 동료 크리스천들을 도왔습니다.
극성스러울 정도입니다. 누가 하라 해서 함이 아닌 "자원하여"입니다.
이것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꿋꿋이 참고 인내했던 바울이.. 받은 위로였습니다.
◑시편에 나타난 감격적인 다윗의 찬양
다윗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는, 주님께 매혹된 열정파입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 119:164)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다고 강조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 147:1).
다윗은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할 결심을 가졌습니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시146:2)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자라고 비밀을 알립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시편은 춤추며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찬양하라며 벌떡 일어나 함께 춤추라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찌어다 (149:3)
손바닥을 치고 외치라고 정열적인 감사를 유도합니다(시 47:1).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시 113:3)며
온 세계가 함께 동참하는 찬양을 드릴 것을, 성경은 선포합니다.
우리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시 50:23) 최선의 길임을 터득해야 합니다.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 감격하면서
찬양을 더 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시편 136편은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일러줍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분이기에,
땅을 물 위에 펴신 이,
큰 빛들을 지으신 이,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
홍해를 가르신 이,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분,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
큰 왕들을 치신 이,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분이므로 감사하라고 부탁합니다.
그 인자하심이 끊임없이 영원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감사의 충분한 이유를 거침없이 듭니다(시 136).
◑찬양의 힘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심한 매를 맞고 깊은 옥에 짐승처럼 갇혔을 때
그들은 모든 죄수들이 듣도록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행 16:25).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갑자기 큰 지진이 나고 옥 터가 요란하게 흔들렸습니다(자연 만물의 변화).
이어지는 현상으로 옥문이 열리는가 하면 묶고 있는 포승줄이 줄줄이 풀려집니다(환경의 변화).
간수는 겁에 질려 바울 앞에 엎드려 그날 밤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적으로 이어집니다(심령의 변화).
단 기도와 찬송으로 기적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이튿날은 자유의 몸까지 되었습니다.
찬송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요!
우리 찬송 듣고 지옥 떨리니(찬송가 351) 가사 그대로입니다.
▲다니엘도 똑같은 경우를 경험했다. 조서에 왕의 인이 찍혀
하나님께 경배하면 사자 밥이 될 줄 뻔히 알았음에도
과감히 그 시험을 이겼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하루 세 차례씩 기도하고 감사하는 당돌함은 기적을 몰고 온 것입니다.
사자굴 속으로 던졌으나 사자들이 모두 다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종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기도와 찬송이 사자의 입을 틀어막는 자물쇠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감사
없는 것에 불평하지 않고 있는 것에는 세밀한 것 까지도 감사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됩시다.
우리는 구원의 찬송을 부르며 큰 대열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고로 한편손이 잘라진 청년이 있었습니다.
신앙 좋은 어머니는 아들을 격려하려고 성경을 들자
아들은 낚아채 떨어뜨리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런 불행을 줄 수 있느냐는 깊은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나직한 소리로 아들을 위로합니다.
잃은 것에 낙망 말고 남은 것에 감사하라는 승리의 비밀을 일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팔을 가져가신 것이 아니고, 한 팔을 남겨 놓으신 것이란 교훈을 주었습니다.
아들은 놀랍게도 감사와 찬송을 친구로 삼아서
불행의 환경 속에서 행복을 풍성히 누리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다. 따라서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유대격언에. 사람은 죽어서 벌레가 갉아먹고 살아서는 염려가 사람을 갉아 먹는다..는 말이 있죠.
랍비시몬은. "평생 동안 나는 한 번도 사슴이 무화과열매를 말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사자가 물건을 운반하고 여우가 장사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염려 없이 먹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풍족한 것을 구하기 때문에 늘 괴로운 것이지,
사슴이나 사자처럼, 일용할 양식만 구한다면.. 지금같은 그리 큰 염려는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인간들을 섬기기 위해 창조된 동식물들이 걱정 없이 먹고 산다면
창조주를 섬기기 위해 창조된 우리 인간은, 얼마나 더 걱정 없이 먹이시겠는가요.
그러나 나는 염려함으로 내 영혼을 부패시키지 말고,
감사함으로 오히여 내 영혼을 날마다 살려야 하겠습니다.
미국 부흥사 토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감사 충만입니다. 성령으로 이룩된 교회에 감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노래는 부를 때 까지는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 까지는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 까지는 사랑이 아니며, 은혜와 복은 감사할 때 까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세 살 키에 해당하는 신장 70㎝ 여성이 있었습니다.
세 살 때 성장이 멈추는 구루병에 걸려, 3세 아이의 체형으로 일생 살아가는 비운의 신세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지만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부모에 대한 짜증으로,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1급 장애인으로
18세까지 불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찬송가의 말씀 속에 거듭남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원망과 저주를 날려 보내면서 감사와 찬양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자기보다 더 불행 속에 사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신학교를 나오고 최명숙 목사라는 장애인교회의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 한 분 모심으로 그는 그저 기쁘기만 했습니다.
감사와 찬송이 강물처럼 쉼 없이 흘렀습니다.
방긋 방긋 웃는 이 처녀목사의 광채가 170㎝의 황반석 전도사를 매료시켰습니다.
얼굴에 솟아 피어나는 웃음과 매력이 보석이 되어, 자기 키의 반절도 훨씬 못 미치는
꼬마처녀에게 장엄한 프로포즈가 있었고
결혼하여 부부가 되는 행복까지 얻어냈습니다.
냅다 감사. 그냥 감사. 무조건 감사. 범사감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코넬리언스 라이언(문학가)는
"너무나 먼 다리", "가장 길었던 날" 등 제2차 대전 때 활약하면서 좋은 작품을 남긴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는 암투병 중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고 투병 중에도 "가장 긴 밤"을 걸작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아침이 되면 반복된 말을 한다. "하나님! 또 하루 좋은날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내가 지켜보면서 "무엇이 그리 좋아요. 무서운 암 투병중인데"하고 물으면
"아내인 당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 가족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병들어 눕기 전 마지막 작품, 가장 길었던 작품을 탈고했기 때문이고,
병과 싸울 의지의 힘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기 때문이고,
주님이 언제나 저기에(가까운 바로 앞에)계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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