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 2. 예배의 순례자 호7:8 스크랩, 출처
◑설교자의 모습은 있으나 예배자의 모습은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단출하게 부부로 함께 모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예배 끝난 후. 사모는 남편 목사에게 정중히 말을 꺼냈습니다.
“당신에게서 설교자의 모습은 있으나, 예배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영성이 고운 사모님의 지혜로운 충고에,
온유한 남편 목사님은 고요히 수용했습니다.
그 나눔은, 거기 앉은 목회자 부부 모두에게 진동을 일으켰습니다.
각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산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강단용일 뿐이고, 성도는 오로지 예배용 혹은 주일용에 불과하다면
사태는 심각합니다.
목사도 예배드리라는 거친 충고도 감수해야 할 아픔입니다.
'예배는 있으나 예배자는 없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아벨의 순수한 예배를 갈망하여야 합니다.
▲그날 설교가 은혜로우면, 풍성한 예배를 드렸다고 성취감을 가집니다만
그러나 설교만이 예배라는 왜곡된 상식도 역시 시정할 부분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은혜 받으러 나오는 것보다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나옵니다.
그리고 예배는 기도, 찬송, 성경 읽음,
말씀(설교), 성도의 교제, 성찬, 참회, 헌금, 봉사 모두가 예배이고,
이 과정을 통해서 골고루 은혜를 받습니다.
개신교에서 설교가 예배의 꽃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뿌리를 가진 정교회나 가톨릭에서는 예전 중심이고,
정교회는 설교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배/경배를 드리러 나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바치는 제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송가에도 “생명 샘이 흘러 나와 모든 성도 마시니
언제든지 흘러나와 부족함이 없도다”(찬210)란 가사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설교 시간만이 아닙니다.
찬송 부르는 가운데도 생명수가 흘러나와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성도는, 매사에 감사하며 웃고 지내는 할아버지 성도를
교회에서 보는 순간 은혜를 받습니다.
신앙상태를 보려면,
그 사람의 예배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안다고,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했습니다.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으려면, 이렇게 하면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는, 가사를 음미하며 한 구절 한 구절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릅니다.
대표기도 시간에는, 바른 자세로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내 마음속으로 따라서 기도합니다.
설교는 예수님이 하실 것을 설교자에게 위탁한 순간이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심정으로 입속 말로 아멘 아멘 하며 동의합니다.
그러면 어떤 순서든지 죄다 은혜가 됩니다.
▲예배worship의 신약용어 ‘프로스쿠네오’는 입맞춤입니다.
'엎드려 절하며 경외함으로 (예수님 발에) 입 맞추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숭배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예식입니다.
그의 뜻을 하달 받고 나를 주의 뜻에 복종시키는 일입니다.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주님은 거기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18:20
은혜 안에 뛰놀며 주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찬354장
데이빗 흄은 자기 목사 친구의 설교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친구(존 브라운)는 마치 그리스도가 자기 곁 팔 닿는 곳에 있는 것처럼
마냥 외치거든!”
설교를 듣기 시작하면서 은혜를 받아 그때부터 뜨거워지는 단계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122:1
집에서 예배당으로 출발할 때부터 경배 자세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 십자가 중심의 예배여야 합니다.
비신앙적이고 세속적 예배는 그저 모임일 뿐입니다.
리처드 스틸(1629~1692, 영국 청교도 목회자)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시간에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과 생각이 산만해서 예배에 실패를 가져오는 원인을, 사탄의 공작으로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막12:30
예배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엡3:15
◑삶의 예배
예수님은 예배에 모범자이셨습니다. 안식일은 회당에서, 명절은 예루살렘에서,
매일 산에서 새벽기도로, 낮에는 전도와 설교 및 교훈으로
하나님의 일로 하루를 꽉꽉 매우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하시면서,
안식일에도 평소 삶에도, 거룩한 일에는 쉼이 없으셨습니다.
삶의 예배자이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절규도 비슷합니다.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절기를 꼬박꼬박 지키면서도 손에 여전히 더러운 피를 묻히고
마음은 멀리 주님으로부터 떠난 저들은, 주님이 가증히 여기십니다.
성전 예배는 물론이고, 삶의 예배자들도 희귀하여 찾아보기 힘든 현실입니다.
정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을, 제사보다 주님은 더 반기십니다.
▲로마서는 교리(1~11장)과 생활(12~16장)로 나뉩니다.
12장 첫마디는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라고 명합니다.
제물은 원래 죽여 드리는 것입니다.
산 제사는 살아있는 생활 속에서 하루가 기울 때까지 이어서 밤사이 숨 쉬는 내내
예배자로서 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영적인 삶의 예배라 부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삼상15:22
우리가 가는 곳에 예수님의 영도 함께 가시기 때문에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어느 곳이든 예배도 간다는 인식을 품어야 합니다.
거룩함과 세속을 너무 따로 구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One Thing 오직 한 가지 일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One Thing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오늘 ‘원 씽, 오직 한 가지 일’을 구하는 목사님을 잠시 만나 뵈었습니다.
그 분은 매주 수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10시간씩 (식사시간 두 시간 제외)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 한 가지만 하십니다.
오늘도 수요일이라 원씽 타임(오전 9시~오후 9시)에는,
그 분을 못 뵈고, 오후 9시가 지나서야 잠시 만나 담소하였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바라라’고 되어 있어서,
그 분은 매주 수요일은,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만 묵상하고, 하나님의 얼굴만 구하신답니다.
오직 그 일 한 가지만 하신 답니다.
몇 년을 하셨냐고 물어보니
그렇게 한지 4~5년 되었답니다.
수요예배는 원씽 타임 중에 있고, 성도들은
예배 전후에 자유롭게 "원씽"에 참여한답니다.
다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아도 그게 잘 안 되는데
그 분은, 그래도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오직 그 일 한 가지를
지난 4~5년 계속 해 오면서, 영적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피곤하면 예배당에서 잠시 누워있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고,
목회적 사역이나, 만남, 심방, 이런 것 일절 하지 않고,
오직 주님과 독대하는 일에만, 그 시간을 할애해서 쓰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밤에 뵌 그 분의 얼굴이 환했습니다.
주님의 존전 앞에서 받은 은혜를 반사하는 것인지..
아무 설교를 못 들었지만,
"원씽"을 마치고 나오신 그 분의 환한 표정에서, 제가 벌써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분은 주일에도, 성도가 누가 나오고, 안 나오는지
일절 신경을 안 쓴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예배자로 나아가는 일에 신경 쓰다 보니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목사인 자신이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라서
성도들 출석에는, 아예 쳐다보지를 않는답니다.
그리고 예배가 마쳐도
한 남자 집사님은,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자기 혼자 두 시간 정도 계속 찬양과 연주를 한다고 합니다.
주님께 드리는 예배요, 경배이기 때문에
남들이 따라 하든지 말든지, 남들이 쳐다보든지 말든지
자기는 혼자서 두 시간 정도, 찬양과 연주로
하나님께 예배와 경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마귀에게 박수치는 시간을 주지 마라 (이기풍 목사의 삶과 신앙)
조선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7명의 목사를 배출한 조선교회는 (1907년)
그중 이기풍 목사를 당시 외국 땅으로 취급되는 제주도에 최초로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그는 10여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가장 힘든 사역을 감명있게 감수했습니다.
황해도 윤진사의 딸인 윤함애는 세례 받고 핍박을 못 이겨
평양으로 피신했다가 이기풍 목사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사모는 지긋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기초 든든한 신앙으로
자녀교육을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성공적으로 실천했습니다.
그의 막내딸 이사례 권사가 어머니에 대한 사연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평정심이 쌓여진 어머니는 흠모할만한 신앙인의 흔적을
자녀들에게 조각해 놓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예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다니라고 똑똑하게 심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딸 사례는 길을 걸을 때
오른손에 가방이 들려지지 않는 한, 예수님의 손을 잡고 다니는데 익숙했습니다.
조용한 오솔길을 거닐 때는,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습관이 몸에 박혔습니다.
“예수님!”하고 부르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전율을 느낍니다.
딸에게 지침처럼 심어준 어머니의 교훈이 있습니다.
“마귀에게 박수치는 시간을 주지 말라”
마귀는 항상 두 손을 벌리고 내 옆을 따라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성이 났다하면 마귀가 흥이 나서 박수를 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 성령님께서는 섭섭하게도 옆에서 울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딸 이사례는 결혼해서 많은 자녀를 키우다보니 때때로 복잡한 일이 공격해 올 때
신경질이 나오려는 순간 사탄을 향해 종종 이렇게 호통을 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사탄아 물러가라.
내가 이런 일을 가지고 성을 낼 줄 아느냐?”
큰 소리로 사탄을 대적하고 나면, 사탄은 비실비실 물러났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마귀는 시비를 걸게 하여
서로 싸움을 붙여놓고 좋아서 박수를 칩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박수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불같은 성령체험을 하고 은혜를 넘치게 받고 와서도
사소한 문제로 이성을 잃어버리고 신경질을 부리고 나면
그동안 주님과 속삭였던 모든 일이 삽시간에 와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기도하라고 열나게 외치지만 자신은 기도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고,
삶의 예배로 녹아지지 않는 한쪽만 익은 전병처럼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호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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