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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한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LNCK 2016. 12. 6. 18:46

◈양보한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창14:23     편집자 큐티


오늘 성경을 읽다가.. 3개의 스토리에 어떤 공통점이 연결되길래.. 한 번 정리해 봅니다.




◑1. 조카에게 양보한 뒤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양보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창13:9


아브라함이 세상 물정이 어두워서, 바보 같은 제안을 한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는 한 친족이니.. 서로 다투지 말자는 peacemaker였다.  창13:8


▲조카 롯이 떠나간 뒤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2:14~17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1을 양보했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100을 약속해 주셨다.

더 ‘넓은 땅’을 주시는가 하면, 덤으로 ‘티끌 같은 자손’의 복도 주셨다.


계속 살펴보겠지만, 이렇게 양보한 뒤에는 <어김없이>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라는 구절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실 복을, 등 뒤에 감추고 계셨다.

그러나 ‘조카 롯과의 다툼을 어떻게 처리하나?’ 한 번 눈 여겨 보셨던 것 같다.


아브라함은, <사람>과 싸워서 ‘복’을 쟁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복’을 바랬기 때문에, 바보처럼 너그러웠다.

합격이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즉시 하나님은 등 뒤에 감추어 두셨던 복의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다.


◑2. 소돔 왕에게 양보한 뒤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이 가신 318인을 통솔해서 전쟁에서 이기고,

조카 롯과 친척들을 구출하고, 재물도 다 찾아왔다.


그 때 소돔 왕이, 사람은 내게 돌려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져도 좋다고 말한다. 14:21

그러나 아브라함은, 또 바보 같은 선택을 한다.

나와 동행한 아넬, 에스골, 마므레는 그렇게 하더라도, 나는 안 갖겠다는 것이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14:23

그 이유는, ‘나는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부자 되게 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부모 유산 분배 문제로, 집집마다 형제간에 분쟁이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부모 형제가 나를 부자 되게 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하나님이 나를 복 주셨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세상에 살 때 부자가 편리하고 좋은 것이지만

‘저 사람 부모 잘 만나서 부자 되었어!’ ... 글쎄,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닐 것이다.

‘저 사람 하나님 잘 믿어서 복 받았어!’ ... 이런 칭송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이 또 양보하자, 하나님이 또다시 그에게 나타나주셨다.

성경기록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양보한 후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4:23~15:1


이 후에 After these things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5:1


이 후에 After these things 라는 말이, 문맥상, ‘소돔 왕에게 양보 후’라는 뜻이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우연히,

랜덤random하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 같지만,

적어도 위 두 사건을 놓고 보면, 아브라함이 큰 양보를 한 다음에

항상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더 큰 복을 주신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들 이삭에게도 마찬가지였다.


◑3. 우물을 양보한 뒤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이삭이 백 배의 소출을 얻자, 그 땅 원주민들이 시기하여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흙으로 매워버리며, 떠나가라고 밀어냈다. 26:15

첫 번째 양보였다.


그래서 이삭 가족은 그랄로 이사왔다.

거기서 우물(에섹)을 팠으나, 그랄 목자들이 우겨서, 그들에게 줘 버렸다. 26:20


또 우물(싯나)을 팠는데, 또 우겨서 또 줘버렸다. 26:21

그러니까 세 번이나 양보한 셈이다.


이삭은 또 옮겨 장막을 치고, 거기서 우물(르호봇)을 팠는데, 거기서는 다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넓은 블루오션으로 나오게 되었다. 26:22


▲이삭이 양보하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주셨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6:23~24



▲마치는 말

위 3개의 에피소드 중에 공통된 것은

①다투지 않고 양보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복을 약속해 주셨다.


②아브라함, 이삭은 ‘인간이 주는 복’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옹다옹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기대했다.

영 바보/겁쟁이처럼 보였지만, 정말 ‘현명한 내면’을 가졌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했던 말은 명문장 중에 명문장이다.

‘내가 나중에 부자 되더라도, 네가 보태줘서 부자 되었다는 말은 듣기 싫다.

나는 오직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약간 상상 첨가) 

그는 하나님 자녀로서 정말 당당한 사람이었다.


내가 최근에 무슨 이권 다툼으로 누구와 아옹다옹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돌이키는 시간을 가집시다.

그래야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주십니다. <편집자


...........................


◈삼손 같은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삿16:6~9        스크랩 글, 출처 하단


삼손의 괴력에 여러 번 괴롭힘을 당한 블레셋 족속은, 그를 제거하려 혈안이 되었습니다.

삼손이 사랑하는 들릴라에게 상당한 보상을 약속하며, 그 힘의 근거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진 들릴라는, 삼손에게  큰 힘의 비결을 이야기해달라고 보챘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삿16:6)


(중략)


삼손이 들릴라에게서 받았던 채근을,

오늘날 우리가 세상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삼손 같은 괴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육체적 괴력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겨내는 영적인 괴력입니다.


그래서 주위 불신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지금 같은 극심한 불경기에, 어떻게 그리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느냐?

내가 보기엔 당신만큼 형편이 딱한 자도 없는 것 같은데

대체 평안과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뭐야?”

“당신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도무지 힘을 잃는 법이 없으니 신기해.

당신을 낙망시킬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우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가 우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 동행해 주시니까

영적 괴력이 우리 속에서 결코 마르는 법이 없이, 샘솟듯이 솟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나타난 ‘삼손과 같은 괴력’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전4:6-9)


삼손이, 우리 눈에는 천하의 망나니요 난봉꾼 같습니다.

또 마지막에는 여자에게 속아서, 사실은 알고도 정에 약해져서 일생일대의 실수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꼭 배울 것은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입니다.


그는 그래도 마지막까지 자기 머리에, 스스로 삭도를 대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검은 머리카락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자기 괴력이 어디서 오는지 확실히 알기에,

절대로 그 근거가 훼방 받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자기를, 블레셋에서 자기 민족을 보호하는 자로 세우셨다는 사실도

절대 잊지 않았고 기회만 닿으면 그 일에 충성했습니다. 


바꿔 말해 자기 속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그분께로 온다는 사실만은, 죽어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그 사실을 최고 자랑으로 여긴 것입니다.


결코 예수님을 스스로 불신 혹은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도무지 신실한 것 같지 않은 신자인데도

어떤 군급한 일을 당해도 주님이 주시는 힘에 모자라는 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내 질그릇 속에 예수님의 괴력을 소유한, 우리가 삼손임을 확신하십니까?

우리가 힘이 빠져도, 내 속에 계신 주님은 결코 그렇지 않음을 믿습니까?

우리에게 그런 은혜와 믿음을 주신 까닭이

미혹한 영들을 주께로 인도하라는 뜻인 줄 절감하고, 그렇게 실천하십니까?


요컨대 주위 사람들이

도대체 지금 같이 어려운 때에도

당신이 평강과 기쁨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하다는 질문을 계속 받고 있습니까?


‘그 형편에 도리어 남을 도울 수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라는 반응을 접합니까?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그 힘의 근본은 여전히 알지 못하니라”(9절)는 반응을 얻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03/04/2010   박신 목회자님 글 스크랩      nosuchjes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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