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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데서 1

LNCK 2016. 5. 17. 07:16

https://www.youtube.com/watch?v=fLH3OceY8Xc 

◈깊은데서 1           130:1-8          깊은데서2          08.03.09 스크랩, 출처

 

사람이 살다가 보면 어떤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이 착찹하고 한 숨이 나오고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헤어 나오려고 애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가냘픈 희망의 밧줄하나 발견하지 못할 때의 상황은, 깊은 절망과 좌절로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에서도 깊은데서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시편 1~150편을 보면 깊은데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깊은데서가 시편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고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 만큼 하나님께서 인간의 인생사를 다루시고 계시다는 증거이기도하지요.

 

시편의 시들은 인생의 깊은 것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30편이, 시편 중에 깊은데서의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깊은 데'야 말로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성경에 중요한 장소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전형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바로 깊은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시지만, 그 모든 것의 초점은 우리입니다.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설득하시고 사랑하시고 이끄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느냐하면 '깊은데서' 만나는 것입니다.

 

물론 깊은 데가 아니더라도 만나는 장소는 많습니다.

하지만 '깊은 데'야 말로, 가장 하나님을 잘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깊은 곳'은 좌절과 낙망과 실패와 고난의 깊은 곳입니다.

슬픔과 우울과 눈물의 깊은 곳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것 같고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것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이 깊은 곳에 빠질 때 자살을 생각합니다. 삶의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세상이 다 귀찮습니다. 자식도 남편도 다 귀찮습니다.

 

그 만큼 깊은 수렁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위험한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깊은 심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이런 고통을 당합니다.

깊은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죽음과 같은 곳에서 신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곳에서는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릴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깊은 곳도 시인의 입을 막지 못했습니다.

 

1여호와여, 내가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깊은 곳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고는 살아나지 못하는 곳입니다.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하나님을 붙들어야하는 곳인데

 

그곳에서 하나님과 멀어진 삶을 살아가니까, 고통과 한숨과 눈물의 세월에 허망함으로 허덕이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께 죽어라 부르짖어야하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바울과 실라가 감옥의 깊은 곳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거기서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만났습니까?

그들이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소리를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깊은감옥에서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깊은데서 들리는 기도소리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자녀들이 위급할 때 어머니를 부르면, 어머니는 목숨을 걸고 달러갑니다.

자녀들이 위급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그 일을 멈추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소리를 들으십니다. 절망의 깊은 곳에서 기도를 받으십니다.

  

2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성경은 '들으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은 반드시 응답하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은, 우리를 지켜보고 때를 따라 응답하실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천지를 주장하시는 분이,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우리의 기도를 절대로 외면하실 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깊은데서 부르짖음은 영혼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간절하게 애타게 주님을 찾는 발버둥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절대로 이 속(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없다는 탄식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을 붙드는 계기가 됩니다.

 

그 속에서 기도도 배웁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배웁니다. 믿습니까?

 

인생의 가장 깊은데서 하나님의 소망을 발견합니다.

그 부르짖음이 있기에 축복의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가장 높은 곳에서 사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교만하기 쉽고 나약하기 쉬운 존재라서, 높은 곳에서는 언제나 자기를 드러내게 되어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가 있을 리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시련의 깊은 곳에서 헌신의 깊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속에서 신앙이 단련된다는 것이지요.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은 이 "깊은 곳"을 다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이삭은 그랄지방으로 내려가서 우물을 팠는데

블레셋인들이 시기하여 자꾸 우물을 매웁니다.

우물을 매운다는 것은 광야에서는 죽음을 의미하기도합니다.

이런 깊은 곳을 이삭은 체험하고, 여호와께 단을 쌓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큰 위기를 많이 당했습니까?

결국 그가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간섭하심과 연단과 훈련을 받고

그는 바로 앞에서 당당히 축복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서 감옥에 갔을 때는 그곳이 깊은 곳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갔을 때, 그 때가 깊은 곳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에게 쫓겨 다닐 때, 깊은 곳이었습니다.

모세가 살인자로 도망갈 때도, 깊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깊은 곳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붙들고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 속에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만듭니다. 주님만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로 쳐들어왔습니다. 그기에 우리가 잘 아는 골리앗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모여서 어디에 진을 쳤냐하면 골짜기(깊은 곳)에 진을 쳤습니다. 삼상17:2 

   이스라엘백성들은 깊은 곳에서 블레셋 이방인들에게 조롱을 당하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깊은 골짜기에서 골리앗이 계속 이스라엘백성들을 조롱합니다.

 

   그때 다윗이 물맷돌로 그 골짜기에서 승리하여 골리앗의 머리를 베어 벼렸습니다.

   다윗이 깊은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갔더니 그 깊은 곳이 승리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인생의 깊은 시련의 때는 기도할 때입니다. 깊은 곳에 있을 때는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해야할 깊은 곳에서 기도를 하지 않으면, 두려움과 낙심과 좌절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깊은데서 누가 도와줍니까? 사업에 부도 한 번 나 보세요.

신세진 적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돈을 거두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절대 안 찾아옵니다. 오히려 찾아올까봐 두려워합니다.

 

깊은 데서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어있는 것이지요.

당연히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고

시편 시인처럼 나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시인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깊은 데서 건져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원입니다.

꼭 기도한 대로 이루어달라고 간청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해결함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도를 꼭 들어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대로 이루어 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들어주신 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이 깊은 곳에서 소망은 하나님이 들어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농부가 무조건 좋은 날씨만 허락해 달라고 해서 좋은 날씨만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아마도 농부는 수확을 전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곡식은 싸늘한 바람과 적당한 비와 때로는 강렬한 태양이 필요합니다.

어떨 때는 세찬 바람과 궂은 날도 필요합니다. 그 속에 곡식은 뿌리를 내리고 알곡으로 여물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주권을 하나님께 맡길 때 가장 좋은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적당할 때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좋은 하나님을 신뢰해야합니다.

우리는 마음껏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마음의 모든 것, 슬픔, 더러운 죄, 눈물, 상처 등의 모든 것을 다 아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제 맡기면 됩니다.

하나님은 가장 선한 길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깊은 데서 드리는 기도는, 내 소원대로 안 된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더 크신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맡겨 드리는 기도입니다.


▲4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깊은데서 부르짖는 기도는 우리의 죄를 보게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기도하게 되면 그 기도에 성령이 임재하게 되고 성령님이 임재하면 동시에 우리의 죄를 보게 됩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나갈 수 없는 우리의 죄를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고난과 고통 때문에 부르짖었는데, 그 부르짖는 가운에 자기 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깊은 곳으로 가면 갈수록 주님만 집중하게 되고

주님을 집중하는 가운데 보이는 것이 자기의 더러운 죄입니다.

 

이제 깊은데서 건져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바뀌게 됩니다.

자기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 때문에 신음하고 부르짖게 됩니다.

 

사유는 용서입니다. 4절 처음구절에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러나는 축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누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리요 그러나사유하심은 주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그러나때문입니다.

우리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주님의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유하심을 받은 자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주님이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것을 경험할 때 주님 앞에 헌신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5절과 6절입니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 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인의 체험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먼저는 절망의 늪에서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크게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의문제로 시작된 기도가 더 깊은 데로 들어가서 자신의 죄를 발견합니다.

네 번째가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체험하는 단계입니다.

 

다섯 번째가 사랑하고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깊은데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계속 기다리게 되면 헛된 소원이 사라집니다.

세상에서 좌절 때문에 소원하고 기도했는데,

이제는 깊은 기도를 통하면서 마음의 소원에 대치가 일어납니다.

 

내속에 가득한 소원들 때문에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고통 하던 것이

이제는 깊은 기도를 통해, 어느새 주님 한 분만을 소원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인류의 빛이시며 세상의 좋은 것을 뒤로하고 우리의 빈 그릇되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 주셨다는 것을 알고, 오직 예수님의 응답만 기다리는 것이지요.

 

주님은 기다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까지 그 뜻을 이루실 때까지 기다려야합니다.

 

주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기다림 속에서 인내를 배웁니다.

주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주님께 항복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기다리는 성도들입니다. 메시야의 다시오심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모든 성도들의 기다림에 대한 요약입니다.

     

성도들의 기다림의 근거와 원동력은 성경말씀입니다.

성경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기다림이 불타오릅니다.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기다림의 영광이 게시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말씀을 사모하고 오직 주님을 향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기다림 속에 만족이 있습니다.

 

다른 것을 기다리게 되면, 세상 것을 기다리게 되면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삽니다.

주님을 기다릴 때,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 마음에 소망이 무엇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향해 목마르고 주리고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며 바라면

영원한 만족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주님의 재림도 기다리지만, 매일 매일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합니다.

주님과 교제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새벽에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이 멀리 느껴지고 내 영혼이 메마르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영혼을 멸시치 않고 만나주십니다. 나타나셔서 마침내 기름 부어 주시고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에 만족과 기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7, 8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풍성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바라세요. 진심으로 바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바랄 찌라하나님께는 풍성한 구속이 있습니다.

그 구속은 살리는 것이며 생명을 풍성히 주시는 것입니다.

풍성한 구속이 하나님 안에 있고 그 속에 우리의 소망이 있고 인자와 풍성한 구속이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집착되어 있는 것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면 불행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 품에서 안식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을 누려야할 때입니다.

 

자기 보다 자기능력으로 성취한 것에 대한 자부심보다

자기 죄를 통해 그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풍성함을 맛보기 때문에, 그 깊은 곳이 복됩니다.

 

   핸리 포드라는 미국에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기독교단체에서 많은 일들을 한 인물입니다.

   그가 에이즈 보균자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7년 전에 수혈로 감염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에이즈라는 진단을 받고 굉장히 괴로워하며 방황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오열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대학에서, 교회에서, 지역사회에서 헌신하게 만드시고

   손자까지 주셔서 재롱을 보게 하시더니 왜 단 번에 저의 인생에 문을 닫으려 하십니까?'

 

   주님 그러나 제가 주님을 믿는 신자라는 것을 잠시나마 잊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왜 낡고 썩을 몸을 가지고 살면서, 그 몸에 미련을 두었는지, 저의 나약함을 용서하십시오.

   제 영혼을 풍성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좌절에서 심음하며 깊은 부르짖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내 소원을 구하기 때문에 내 마음의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영광의 몸을 약속하신 구속의 은혜로 기뻐하셔야합니다. 그것은 깊은 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녹음 여기까지 .........................

 

 

◑또 한 곳을 더 찾아봅시다. 46:1-5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도 깊은데서 기도하며 깊은 데서 체험한 하나님의 고백입니다.

엄청난 재난과 혹독한 재난을 통과하면서 쓴 것인데 이 내용은 자연의 재앙입니다.

지진, 가뭄, 태풍 등의 환란을 통해 하나님의 견고한 확신을 가집니다.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혹독한 고난의 깊은 곳을 통과하면서 피난처에 대한확신이 있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영화를 보셨지요? 유대인들이 어디에 피난처가 있었습니까?

독일 군이 집안 구석 구석을 수색합니다. 그들은 피아노에서부터 변기통까지 숨어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수색을 끝낸 독일군이 나가고 난 후, 그 집에 몇 명의 독일 군이 숨어 있었습니다.

다 간 줄 알고, 숨어있던 자들이 나오자마자, 남아있던 독일군의 총에 다 죽고 맙니다.

지진이 일어나거나 태풍이 강타할 때 피난처가 어디 있습니까?

 

 

이 땅에는 안전한 피난처는 없습니다.

그 어디에 가도 위험과 사고와 병이 쫓아오고 죽음의 사자가 쫓아옵니다.

아무리 행복하게 살고 평탄케 산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사자가 찾아오면 꼼짝 없이 끌어가야합니다.

 

이 세상은 절대로 안전지대가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산들도 뒤흔들리고 땅도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노아홍수의 시대에 엄청나게 비를 펴 부으니까 그들은 피난처가 없었습니다.

산이 그들에게 피난처가 되지못했고 숲이 그들에게 피난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대 자연 앞에 나약하고 연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로 피난처와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통해 만유의 주제이신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무디는 세상을 떠나면서

이 땅은 물러가고 나에게 하늘 문이 열려온다그랬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이 땅에서 삶을 끝내고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구속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그곳이 영원한 피난처이지요.

고난과 질병과 그리고 어려움과 죽음이 닥쳐와도 성도들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하며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합니다. 세상이 요동 처도 안식하세요.

 

▲시련과 고통의 깊은 곳을 통과하면서, 두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힘이십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며 전능하시며 능력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시편기자는 만났습니다. 우리도 만나야합니다.

깊은데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고 험한 세상에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21세기는 적자생존의 경쟁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살벌합니다.

힘이 없으면, 뒤로 조금만 처진듯하면 도태되고 맙니다.

 

세계적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고 물가도 한국은행에서 이자를 동결할 정도로 심상치 않습니다.

실업자가 생기고 기업이 문을 닫거나 중국으로 외국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40이 되어서도 고시 공부할 정도로 취업이 안 됩니다. 사오정이란 단어아시지요.

45세가 되면 그만두라는 말입니다.

 

50에서 60대가 그냥 있으면 도둑놈이랍니다. 오륙도가 그런 말 아닙니까?

20대가 이태백이라고 합니다. 20대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이지요.

경제적으로 불안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격변을 두려워하고 뒤로 물러가서는 안 됩니다.

몰아치는 태풍을 도전으로 삼아야 됩니다.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룰 기회로 삼으시면 그 사람에게 반드시 기회는 옵니다.

언제나 훌륭한 문화는 도전을 받습니다. 도전하고 응징할 때 훌륭한 문화를 꽃피우게 되어 있지요.

 

   베토벤은 28살 때 청각이 세약해 져가고 있다고 하면서

   더 이상 양치기 목자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런 고난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 귀머거리의 목을 졸라서 반드시 이룰 것이다

 

그는 이런 환경과 조건에서 운명의 곡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교향곡 55번이지요.

운명의 고난은 베토벤을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고난은 새로운 운명을 창조하는 기회가 됩니다.

 

이 시대의 가혹한 시련과 문제를 도피하지 말고 환영합시다. 이것이 기회입니다.

받아 들여야하며 새로운 도전으로 삼아야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5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새벽에 도우시는 일들이 많습니다. 홍해도 그랬고, 여리고성도 그랬습니다.

새벽에 깊은데서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장소로 삼으시길 축복합니다.

 

어려운 시대, 어려운 환경, 어려운 경제, 어려운 인간관계, 어려운 부부관계,

어려운 직장, 어려운 사업 이 모든 것을 새벽에 쏟아 놓아야합니다.

깊은데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어려움을 놓고 기도했는데 우리의 더럽고 추악한 죄를 봅니다.

어려움 때문에 기도했는데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때문에 기도했는데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어려움 때문에 기도했는데 사랑으로 기다리게 하셔서 더 큰 것으로 주십니다.

 

어려울 때 기도해야합니다. 새벽을 깨우고 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 될 것입니다.

깊은데서 우리가 할 일은 기도요 그 기도를 통해서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