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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택하심 눅6:12~16 출처
Choosing Twelve Ordinary Men / 찰스 프라이스
◑평범한 사람을 사도로 택하심
저는 매우 중요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의 결과는 나중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아버지께 돌아간 후 나타났습니다. 바로 열두 명의 제자를 선택하신 일입니다.
눅6:12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시어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롯 유다라
여기서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리십니다.
여러 명의 제자 중 열두 사도라 불릴 자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열두 명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후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그들 중 72명을 파송하십니다.
다음 구절인 17절에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도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그의 제자로 정해진 사람은 매우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제자의 무리 중 예수님은 열두 명을 선택하십니다.
마가복음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뽑혔다고 나옵니다.
그들을 선택하신 첫 번째 이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치고 귀신을 내쫓는 능력을 얻으라고 보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이 두 가지를 위해서입니다.
그와 함께 있기 위해서였으며, 그들은 예수님 사역기간동안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고, 가르치는 능력을 얻게 하기 위해 그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책임을 어떤 사람들에게 주실까요? 누구를 찾으실까요?
어떤 이력서를 원하실까요? 이 사람들을 지정하실 때에 말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책임을 부여 받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에 이들에 대해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지어진다' 엡2:20
그리스도가 모퉁잇돌인 만큼 이것은 핵심적인 역할입니다.
이들을 통해 첫 세대 때에 온 세상이 뒤집히거나
아니면 이들로 인해 부흥 운동이 첫 세대 때에 식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찾고 계셨을까요? 어떤 이력서를 요구하실까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이들은 그가 비범한 사람들을 찾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영적 슈퍼맨 말이죠.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발견한 현실은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평범한 열두 명의 사람들이란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여러분들과 텔레비전으로 보시는 여러분들과 같을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성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여성도 찾으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여행한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는 아니었지만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누가복음 후반에 이 여성들에 대한 목록이 나옵니다.
▶제가 처음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느꼈고
저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적절한 배경, 인격,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없으니까 하나님은 날 사용하지 못하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을 지원하고 기도하고 들어주는 거야"
저는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평범함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기분 좋은 발견입니다.
◑이러한 평범함과 함께 우리 인생의 일부인 실패들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열두 명의 남자들에 대한 목록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목록을 보고 싶습니다.
▶1. 첫 번째가 베드로입니다. 시몬 베드로.
제자의 목록은 전부 네 개입니다. 마태복음에 하나, 마가복음에 하나,
누가복음에 하나, 그리고 사도행전 첫 번째 부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베드로가 항상 목록의 첫 번째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보고 베드로가 목록을 만들었다고 결론짓습니다.
만약 그가 목록을 만들었다면
우리가 베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잘 들어맞습니다.
그는 다혈질이었습니다. 그는 충동적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말하고 행동합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을 합친 것보다 그에 대해 더 많이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했다. 베드로가 나섰다. 베드로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답한 적도 있습니다.
항상 말은 하는데 거의 틀린 말을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그에게 가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베드로야. 너는 방해꾼이다" 심지어는 악마 같다고 묘사합니다. 놀랍습니다.
바리새인을 묘사한 말이라면 모르겠으나 제자 베드로를 묘사한 말입니다.
"너는 하나님적인 관점이 없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어.
너는 인간적인 관점만 갖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어"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체포되신 날 밤, 어느 날 절정에 달합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일 너희 모두는 도망갈 것이다"
베드로는 분노합니다. "죄송합니다, 예수님. 우리 모두라고 하셨습니까?
저는 잊어버리셨군요. 도마라면 모릅니다, 의심하는 도마 말입니다.
그는 최대한 빨리 문밖으로 도망갈 것입니다.
다대오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도 사라질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저는 예수님과 죽음도 함께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3년이나 같이 있었는데 저를 모르시는군요.
예수님과 죽음까지 같이 가겠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하셨습니까?
저 언덕 위에 네 개의 십자가를 세우고 네 번째에 저를 매달아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거기 있겠습니다!"
이 사람을 여러분 팀에 함께 하고 싶지 않습니까? 멋있지 않습니까?
그날 밤 예수님이 체포되었고 베드로는 멀리서 따라갑니다.
누군가 다가와 그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저 예수의 제자인가요?"
"누구 말입니까?" "방금 체포된 자요"
"누가 체포됐는데요?" "나사렛 예수요"
"어디 예수요?" "나사렛이요"
"아니요. 저는 몰라요"
"당신이 그와 함께 있는 걸 본 것 같아요" "아니요. 제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와 묻습니다.
"당신은 갈릴리 사투리를 쓰는데 저 사람의 제자 아닙니까?"
"같은 질문을 받네요. 방금 누가 같은 질문을 했어요.
아니요, 나는 저 사람 모릅니다"
그러자 소녀가 다가와 묻습니다. "난 당신 알아요, 그의 제자죠?"
저는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성경이 삭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주하고 욕하며 그리스도를 완전히 부인했습니다.
"나는 그에 대해 전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렇습니다. 참고로 이것은 제자가 하는 말입니다.
갑자기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꼬끼오.
베드로는 무너져 슬피 웁니다.
그를 여러분 팀에 합류시켜 함께 하겠습니까?
시끄럽고 말뿐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게 베드로입니다.
▶2. 다음은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동생입니다.
그것이 아마 그의 가장 큰 고민일 것입니다. 그는 가려졌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말했을 때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면 나는 저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위대하다고 할 만한 말과 행동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네 명이 함께 있어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가 함께 불릴 때를 제외하면
그가 언급되는 유일한 사건은
예수님이 5천 명을 가르치실 때 음식이 모자랐습니다.
여자와 아이까지 합치면 2만 명의 큰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음식이 없었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께 소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이 도시락을 들고 제자들을 쳐다보며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다가갈 수 있는 사람, 가장 친절한 사람이 누굴까?"
소년은 안드레에게 갔습니다.
안드레는 그를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이것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귀여운 소년 하나가 점심 도시락을 주려고 합니다. 정말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죠?"
예수님이 그것을 가지고 뭘 하실 지에 대해, 안드레는 전혀 몰랐습니다.
이것이 안드레입니다.
▶3. 그 다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그들은 형제였고 세베대의 아들들이었으므로 같이 보겠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함께 고기잡이를 했었습니다. 네 명이서 말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작은 사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불렀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종종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에게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주었습니다.
요한은 감정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제자입니다.
그의 서신을 읽으면 그가 왜 사랑의 사도인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사복음서에 나온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읽어보면
그들은 전혀 사랑의 사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딱딱하고 교만했으며 자기만족을 좇았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나타납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 도착했습니다.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 질문을 보십시오. 사랑의 사도들입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굉장한 사랑이죠, 안 그래요?
‘주님, 저들이 우리가 여기 있지 못하게 합니다.
하늘에서 불을 명하여 저들을 태워버리라고 할까요?’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이게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불 태워버려!'
또 한 번은 요한이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눅9:49절입니다.
'요한이 여쭈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당신이 누군데 이러느냐? 우리 중 한 사람 아니잖아?"
그를 부인하려고 하자, 예수님은 또 그를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한 번은 두 형제가 예수님에게 엄청난 요구를 합니다.
예수님에게 가서 그들이 말합니다.
"당신의 나라에서 우리 중 한 명을 오른쪽에, 한 명을 왼쪽에 앉히소서"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 권력을 뒤엎고
이스라엘에 왕국을 세울 일을 기대한 것입니다.
"한 명을 오른쪽, 한 명을 왼쪽에 앉게 하시겠습니까?
이 조직에서 우리가 핵심 인물이 되도록 해주시겠습니까?
당신이 세울 왕국에서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고, 내가 세례 받은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야고보와 요한아,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고 있느냐?
내가 경험할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야고보와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마20:20절에 나타납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그들이 예수께 부탁해서 안 되니까 엄마한테 가서 청탁한 것입니다.
"엄마, 그렇게 안 해준대요"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들의 손을 잡고 가서 무릎을 꿇습니다.
"제발 그들이 당신의 나라에서 좌우에 앉게 해주세요"
예수님은 이 두 형제에게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막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란 이름을 더하였으며'
'우레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이 두 형제는 교만하고 자만하며
"사마리아인들을 멸망시키소서!"라고 합니다. 우레의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놀랍지 않습니까?
나중에 요한이 사랑의 사도가 된 사실이 말입니다.
본성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4.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주님이 받은 세례를 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열두 명 중 가장 먼저 순교당한 것이 야고보입니다. 행12:2
그는 겪어야 할 세례가 있었습니다. 헤롯이 그를 처형했습니다.
초기교회 시절에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과 보낸 3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5. 그 다음으로 나열된 것은 빌립입니다.
빌립은 아마도 예수님의 가장 첫 제자일 것입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벳세다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그들을 예수님에게 소개했을 때
빌립은 안드레와 함께 예수님에게 갔습니다.
사복음서에서 빌립은 두 번밖에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다소 단순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저는 그를 좋아합니다.
상황 파악이 좀 느립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작은 시험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들은 물론 5천 명의 무리였습니다. 저는 다음 구절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다른 말로 하자면 이렇습니다. "빌립아, 너에게 작은 시험을 하나 주겠다.
저기 5천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배고픈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음식이 어디서 올지 궁금해 한다.
빌립아, 5천 명을 어떻게 먹일 것이냐? 한 번 생각해 보거라"
빌립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누구 돈 있는 사람 없나?
유다, 가방 안에 얼마 있지? 200 데나리온? 그게 다야?"
그는 예수님께 가서 말합니다.
"2백 데나리온을 가지고서는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같은 시험을 무신론자에게 했다고 가정합시다.
"무리 중 무신론자가 있느냐? 여기로 오시겠습니까, 무신론자씨?
저기 5천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가 고픕니다.
저들은 음식이 어디서 올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저들을 어떻게 먹일까요?"
무신론자가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빌립이 한 대로 할 것입니다.
"당신 이름 뭐죠? 유다? 가방 안에 얼마가 있죠? 200 데나리온?
충분치 않아요. 200 데나리온을 가지고서는 모든 사람이 한 입도 먹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빌립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고백으로는 제자이지만, 행동으로는 무신론자였습니다.
빌립이 상황에 대처한 방법은 완전히 인간적이었습니다.
무신론자가 그 상황에 대처한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셨고
그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굉장히 고무적이죠?
이 시점에서 그는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절반을 함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그러자 빌립이 말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신학은 다 집어치우고 그냥 보여주십시오, 그림을 주십시오"
이게 빌립입니다. 저는 그를 좋아합니다.
그는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고,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6. 그 다음은 바돌로매입니다.
목록에서 순서로 그 다음입니다.
바돌로매라는 이름은 제자들 이름이 목록으로 나올 때만 나옵니다.
우리는 바돌로매가 무엇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이 요한복음에서 나다나엘이라고 부르는 제자가
바로 바돌로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신학자들이 그렇게 봅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이 예수님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어 했던 제자입니다.
그를 예수님께 데려와서 말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그러자 나다나엘은 대답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친구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주는 방법은 아닙니다.
"나사렛? 이름만 들어도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그게 나다나엘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는 편견에 사로잡혔습니다. 단지 출신을 가지고 그 사람을 분류합니다.
그는 부활 후에 한 번 더 언급됩니다.
7명의 제자들이 갈릴리에 있었고, 나다나엘이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가 아마도 바돌로매였을 것입니다.
기록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7. 그 다음은 마태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로서 그는 가장 낮은 자로 대우를 받았죠.
그들은 유대인이었지만 민족을 배반한 자들이었습니다.
점령국 로마를 위해 일했죠.
그들은 로마 정부를 위해 많은 세금을 걷어야 했고
필요 이상으로 걷은 세금은 자신의 돈이 되었습니다.
타락한 자로 악명도 높았죠. 세리들은 특별히 분류되었습니다.
죄인과 세리로 나누어지는데요. 자신들만의 분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레위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름이 두 가지입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레위로 불립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목록에서는 마태라고 불립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인데요.
예수님께서 아마도 이 이름을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이름을 주셨습니다.
시몬은 베드로라고도 했습니다.
레위는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주신 이름일 것입니다.
그가 입은 옷과는 상관없습니다. "레위야,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안다,
너의 배경도 안다. 자존감과 명예를 박탈당했고 이리 저리 치인다는 것도 안다"
그의 동료 삭개오도 그런 식으로 이리 저리 치였죠.
"네게 새 이름을 주겠다. 이것이 네 이름이노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네가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이제는 선물이 되었다.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마태는 우리를 위해 복음서 하나를 썼습니다.
누가 썼는지 복음서 자체에는 자기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1세기 때부터 마태가 쓴 것으로 전해 믿어져 왔습니다.
세리로서 글쓰기의 기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자들 중 어떤 이들은 그런 능력이 없었을 텐데요.
▶8. 다음은 도마입니다.
도마에 대한 유일한 언급은 요한복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부활을 의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마가 돌아오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도마야, 정말 믿을 수 없겠지만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고 나타나셨어"
그러자 도마가 말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내가 봤어"
그러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도마야, 그분은 살아나셨어"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는 이상,
나는 믿지 않을 거야"라고 도마가 말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을 때 그는 즉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여"
그는 그 이후로 ‘의심하는 도마’라고 불립니다.
그는 비관주의자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도마가 말합니다.
"우리 모두 가서 그와 함께 죽자"
그렇게 밝은 제안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가서 죽자" 비관적인 관점입니다.
혹시 공감하는 사람 있습니까?
비관주의자인 당신도, 도마와 같이 좋은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9. 다음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알패오였다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그는 또한 젊은 야고보라고도 불립니다. 또는 어린 야고보입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매우 어렸을 것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직 가족과 살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90세에 요한계시록을 썼다는 사실을 압니다. 80~90세 때였습니다.
가족과 살던 야고보와 요한은 젊은 청년들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어린 야고보는 아직 십 대 중반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말하거나 행동한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아무 존재감이 없는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희망을 가지십시오. ‘나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소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10. 목록에서 다음 인물은 열심당원 시몬입니다.
열심당원들은 당시 중요한 운동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AD 6년에 시작되어 갈릴리인 유다가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반역이라는 근거를 가지고
로마 당국에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하나님께만 충성하기 때문에
세금 납부를 중지하고 로마에서 독립해 살려고 했습니다.
로마는 이들을 금방 박살냈지만 그들은 정신은 오래 유지되었습니다.
열심당원 시몬은 오늘날, 정치 운동가로 불릴 것입니다.
그는 정치적 문제 인식을 갖고 예수님과 합류한 것입니다.
누군지는 불확실하지만, 아마 이 질문은 시몬이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전입니다.
"주님, 이번에는 이 나라를 이스라엘에게 회복하실 것입니까?"
제자 중 한 명이 이 질문을 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누구인진 모르나 시몬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관심과 맞아 떨어지니까요.
"언제 이 왕국을 세우고 로마인들을 쫓아낼 겁니까?"
이것이 그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열심당원과 세리는 서로 싫어했을 것입니다.
열심당원이 세리를 싫어한 것은 확실합니다.
둘은 스펙트럼의 반대 극단이었습니다.
하나는 민족주의자였고 다른 하나는 배반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야, 네가 내 팀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열심당원 시몬, 와서 마태 옆에 앉거라" 폭발적인 조화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둘 다 제자입니다.
▶11. 열한 번째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입니다.
이 목록과 마태복음에서 그는 다대오라고 불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제자 중 하나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그를 성이 다대오인 레비우스라고 부릅니다.
그의 실명은 레비우스 다대오입니다.
다대오는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제자입니다.
모든 제자 중에서 그가 가장 많은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그는 가룟인 아닌 유다라 불립니다.
그가 ‘누가 아닌’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존재감이 없다는 뜻이죠)
▶12. 마지막은 가롯 유다입니다.
모든 목록에서 베드로가 첫째, 유다가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가 배반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실은 회계였습니다. 돈을 관리한 사람입니다.
사복음서에 유다가 나올 때는 대부분 돈과 관련됩니다.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을 때
유다는 분노하고 반대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몇 년의 봉급에 상당하는 돈이었습니다. 꽤나 명예로워 보이죠?'
하지만 요한은 그 다음에 작은 노트를 남깁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어라'
사람들이 유다를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최후의 만찬 등, 그림에 가룟 유다는 범인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유다가 그런 모습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를 회계로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다는 신뢰할 만하고, 자신감 있어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 한 명이 나를 배반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 이런 유다일 것이야"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주님, 저입니까?" 이렇게 유다를 아무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자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내가 너희 열두 명을 선택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너희 중 한 명은 마귀다."
제자들은 이 말에 한참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지?"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일치했습니다.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렀거라"
꽤 유력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자신의 팀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한 여성들도 있습니다. (이 단락 녹음 안 함)
어떠한 때는 예수님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지정된 사도들은 아니었지만 물질적 필요를 지원했습니다.
대부분은 마리아라고 불린 것 같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있고, 야고보와 유다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고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젊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마르다의 누이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이들 모두 예수님과 가끔 함께 했습니다.
눅8:1~3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이러한 사람과 같은 팀이라면 멋지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구사라는 사람의 아내이고 헤롯의 참모장입니다.
이름은 요안나였고 함께 여행했던 한 명입니다.
그리고 수산나도 있습니다.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른 여러 여자'가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이들은 돈을 버는 여자들이었습니다.
요안나는 부유했을 것입니다. 헤롯의 참모장과 결혼했으니까요.
수산나도 부유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여성들 사이에서도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을 만나기 전 빈민굴에 살았던 여인이 이제는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함께 하게 됩니다.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입니까?
◑마치는 말, 예수님은 우리 같은 사람을 부르십니다
▶베드로와 같은 시끄럽고 다혈질적인 사람으로부터
존재감 없는 다대오와
가룟인 아닌 유다도 존재감이 없었지만, 사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적을 파괴하고 싶어 하는 교만한 야고보와 요한과
너무 순하고 온순해서 대부분 복음서 기자들이 잊어버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애국자이며 민족주의자인 가나안인 시몬과
민족을 배반한 세리 마태와 증거를 원했던 날카로운 도마와
그리고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빌립,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예수님은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여자로서는
귀신 들렸었던 막달라 마리아까지.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입니까?
오늘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과 같을 것입니다.
이 목록 중 적어도 한 명은
어느 부분에서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평범한 사람들을 데리고
‘무슨 목적으로?’ 라는 것입니다.
비범한 일을 하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권능과 힘을 주셨다고 합니다.
평범함을 비범하게 만드는 그 특별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이십니다. 그가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다고 나옵니다.
그가 그들을 당신에게 부르셨습니다.
그가 그들을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라고 보내셨습니다.
특별함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여러분과 제 인생에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말합니다.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참고로 아예 없다는 게 아니라, 많지 않다고 나옵니다.
능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지만 들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과 저는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어리석고 약하며 멸시받고 없는 것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요!
이 평범한 사람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을 어부들,
이웃들이 멸시했을 세리, 청소년이었던 젊은 야고보,
그리고 함께 여행한 여인들, 이들이 예수님께서 일을 맡기고
세상을 뒤엎게 하실 사람들이었죠.
그들이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님, 여기 제 이력서와 스펙이 있습니다. 보시고 놀라시길 바랍니다"
대신에 "저에 대해 수많은 약한 것들을 보십시오"
하지만 제 약함을 당신의 힘으로 바꾸소서.
저의 어리석음을 당신의 지혜로 바꾸시옵소서.
아무도 주 안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오늘 여기에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 예수님께 가기에 충분치 않아"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절대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약함과 죄의 인정 말고, 주님이 찾으시는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 옵니다"
"저를 선택하셔서 사용하소서.”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타자 J. H.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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