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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 얻을 때와 잃을 때 시85:8 출처
*번역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찰스 스펄전 / Peace: How Gained, How Broken P2
『그가 그의 백성들과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임이라』 시85:8
◑1.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평안
▶첫째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평안"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무리들에게만 평안을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그의 백성들과 그의 성도들』에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겠군요.
‘나는 주님께서 내게 평안을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분은 분명히 우리에게 들을 귀가 있다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귀머거리가 된 자들에게는 아무 음성도 들려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평안의 복음을 듣지 않은 자는, 절대 복음 안의 평안을 알지 못합니다.
죄에 대해 경고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무시하는 자는
용서를 뒤따라오는 평안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의 희생을 통한 화해를 제시하실 때
이를 들으려 하지 않고, 회개하고 믿으라고 하실 때 귀를 막으며,
어린양의 피로 죄를 씻으라고 하시는데,
이를 무시하는 자는 절대로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절대로. 그리스도 바깥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오직 그분이 우리의 평안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 분 대사가 계시며
오직 한분 중보자가 계십니다. 오직 한 분뿐입니다.
속죄제도 하나님의 피를 통한 하나의 속죄제가 있습니다. 그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평안의 언약도 오직 하나이며, 절대 둘 이상일 수가 없습니다.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그 한길 외의 또 다른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죄를 속죄하신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귀를 막는다면,
그런 이의 마음은 절대로 평안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귀를 열어 놓는 것은 그야말로 은혜의 표식과도 같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나는 선한 목자라』(요 10).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음성을 들려주시며, 그분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압니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신론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들은 실상 무신론자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계획, 행동들 그리고 사업과 삶 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 속에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느끼는 자들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행복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서 첫째도 하나님, 둘째도 하나님
그리고 마지막에도 하나님인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들은 모든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홀로 있을 때에도 군중 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위에서 다스리시고, 그의 밑에서 붙드시며, 그의 속에서 그에게 힘을 북돋우고 계십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이라면, 당신이 그의 백성 중에 속해 있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평안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안은 언제나 거룩함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분의 백성이란 말과 그분의 성도들이란 말은 동의어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은 그분이 거룩한 하나님이란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그는 거룩하기 위해 늘 힘을 씁니다.
성도의 지위에 걸맞지 않는 삶을 사는 자는
그분께 평안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어리석고, 조심성 없고, 불경건한 삶을 사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마음에 많은 의심을 품고서 세상 풍조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악인에게는 화평이 없느니라』 (사48:22).
그러나 그분의 백성들에겐,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는 자녀들에게는,
의를 따르는 그분의 백성들에게는,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평안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아, 슬프다! 내가 어찌 감히 성도의 모임에 함부로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으리오!"
이런 사람은 현재 하나님의 백성이고,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한때는 어리석은 데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요? 성경 구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로 다시는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이 구절은 그들이 한때는 어리석음을 쫓는 자들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죄악을 쫓았고, 하나님을 모르며 그분을 섬기지도 않고 살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를 받아 회개를 하고,
죄와 수치 그리고 어리석음에서 돌이킨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현재 하나님께로 왔다면,
과거의 어리석음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지 마십시오.
한때는 어리석은 자였으나, 주님께서 그 어리석음으로부터 돌이키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분께서 당신을 그분의 백성으로, 또 거룩한 자로 계수하셨다면,
주님은 분명 당신에게 평안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어리석음에서 돌이킨 것은 확실한데,
제 마음속에는 자꾸 그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압니다. 저 역시 옛 아담이 저를 옛 길로 돌이키게 하려고
제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에게 이런 경향이 없다면,
주님께서 『그러나 그들로 다시는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라는
말씀을 기록하셨겠습니까? 시85:8
그 말씀을 듣는 대상은 그분의 백성이었으며, 또한 그분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들에게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옛 본성은 그들 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들을 다시 옛 길로 돌이키게 하고자 수시로 그들의 소매를 이끌곤 합니다.
만일 당신 속에 옛 누룩이 작용을 해서 죄를 부풀리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 당장 구주 앞에 엎드려서 세리가 했던 것처럼 이렇게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이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눅 18:13).
기억하십시오. 당신에게 죄의 본성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그분의 백성이며, 또 그분께 평안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고, 악을 전혀 혐오스러워 하지 않으며,
의를 간구한 적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인 적도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절대 평안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오히려 우뢰와 같은 소리가, 불같은 음성이,
격노하여 발하시는 말씀이 준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 41).
여러분 중에는 이 분노의 음성을 들을 사람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평안의 음성이 여러분의 혼에 가득할 것으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이 아닌 또 다른 평안을 갈망하는 것은 죄라는 사실입니다.
혹자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우린 악인들이 평안을 누리며,
선한 사람들이 오히려 그리 평화스럽지 못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이해하기 힘든 삶의 단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또 아니죠.
왜 악인들이 평안을 누릴까요?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들의 평안은 어리석음의 소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별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로, 뭘 숙고하거나 자숙하는 일이 좀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주변의 상황이나 한치 앞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눈뜬 소경처럼 살아갑니다.
그들은 절벽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바로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도 모르고 또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절벽의 맨 가장자리에서 앞으로 한 발짝만 더 내디디는 순간
그들의 평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지금은 목을 곧게 하고서, 우리가 아무리 충고를 해 주어도
오히려 그 충고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지금 술잔을 높이 쳐들고 있지만,
그들의 발치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으며,
즐겁고 유쾌하게 지내며 시집가고 또 장가가며,
또 취할 때까지 마시고 흥청대지만,
그 옛날처럼 홍수는 어김없이 닥칠 것이고 그날에는 비상구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양심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머리는 너무도 많은 일로 가득차 있어 양심의 소리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사업에 열중해서 아침저녁으로 그것만 생각합니다.
돈을 세고, 주식 시세를 살피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시킬 뿐입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 몰두해 있었듯이, 이들은 그들의 사업장과 차고,
그리고 선박과 농장, 그리고 시장 상황에 몰두해 있습니다.
그들은 다가올 세상에 대해선 전혀 생각이 없는데,
이는 현세의 세상이 그들을 꿀꺽 삼켜 버린 까닭입니다.
이러한 류의 평안은 얼마 안 가서 깨지고 말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이 굳어 있습니다.
즉, 딱딱하고 무감각하며 냉담해진 상태란 말입니다.
전혀 감각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건강한 양심은 살갗이 벗겨진 피부처럼 예민합니다.
항상 무엇에 닿을 까봐 두려워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의 양심은 굳은살이 코끼리 가죽처럼 덮여 있어서
전혀 감각을 느낄 수 없습니다.
어떤 죄인들의 양심은 마치 인두로 지져 버린 것처럼,
신경이 모두 죽어 버려서 영원한 저주 앞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탄이 지켜 주는 평안 속에 묻혀 사는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강한 사람이 무장을 하고 자신의 관저를 지키면 자기의 소유물이 안전하리라』 (눅11:21)
사탄이 그 사람을 온전히 장악하고 있으면, 그를 어지럽히는 생각은 전혀 틈을 타지 못하고,
그의 죄악된 마음은 늘 만족 가운데 있기 마련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고난에 처하지도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같이 재앙을 당하지도 아니하기 때문이니이다』 (시73:5)
그들은 평안 가운데 죽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들의 힘은 강건하며』 (시73:4)
이는 사탄이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주어 거짓을 믿게 하기 때문입니다(살후 2:11).
그들은 마치 양이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입 다물고서 조용한 가운데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우울함의 평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이 운명이려니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런 절망이 주는 고요함 가운데 평안을 누립니다. 소름끼치는 평안입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잃어버린 바 된 혼이란 걸 알아요. 자비를 얻기엔 제 죄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제가 뭐하러 분투하면서 선한 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마치 사형 선고를 받고서 단두대 앞에 서 있는 죄수 같이 그는 절망감이 휩싸여 있는 상태입니다.
"난 이미 결판이 났어. 모든 끝난 거라구!"
‘그러나 친구여, 절대 그렇지 않다네. 사탄이 자네를 속이는 거야.
죽기 직전까지는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는 걸세.
아직 복음을 들은 일이 없다면, 이제 오게, 그리고 주님께 영생을 얻으시게.’
무심한 마음과 우울, 그리고 완고함은 그들의 가장 큰 적이죠.
하나님을 대적하는 강물은 종종 소리 없이 다가오는데,
이는 그 물이 너무도 깊고 도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서는 영원한 심판을 비웃고
하나님을 무시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도 구원해 주시길!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아닌 다른 모든 평안들에서
어서 빨리 빠져나오십시오. 지금 하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자신이 죄인임을 느끼고 다가올 진노에 떨고 있다면,
그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밖에 없습니다.
사역자들도 그들에게 평안을 주지는 못합니다.
저도 종종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려고 노력해 본 일이 있습니다만,
대부분 실패했죠. 책을 많이 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우아한 말이 담긴 책이래도 말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영만이 그에게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의식들, 즉 침례와 주의 만찬,
혹은 기도회나 선교 활동도, 만일 주님의 음성과 동떨어져 행해지고 있는 행사들이라면,
그것들도 다 부질없는 짓에 불과합니다.
저는 여러분들 중에 확신이 없어 헤매고 있는 분이 단 한명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보십시오, 헤매는 자들의 눈앞에 물결치고 있는 노도를!
그리고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아, 베드로여, 일어나시오! 파도에게 잠잠 하라고 명하시오!
요한 일어나시오, 그리고 저 파도에 기름을 부으시오!
그러나 보십시오. 사도들 자신들마저도 가라앉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보다 더 위대하신 이가 나서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아마 영영 가라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키 옆에서 잠들어 계셨던 그분만이 그들에게 화평을 명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그분은 또한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죄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자들에게 『평안하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 흘려진 그리스도의 피가 그대들에게
『모든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빌 4:7).
성경을 보십시오. 폭풍이 소동하던 바다는 『아주 조용해』졌습니다(마 8: 27).
속죄의 능력을 알고 느낀 사람들의 혼에 임하는 것과 같은
위대한 고요가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앞서 오직 하나님만이 평안을 말씀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나온 한 마디는 모든 문제를 끝냅니다. 어떤 행위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말씀 하나면 됩니다.
평안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을 만드는 작업은 2천년 전 십자가에서 끝이 났습니다.
우리의 평안의 근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나무에 매달리심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놓여 있던 불화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셨습니다.
거기서 다툼을 끝내신 것입니다.
성경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사 53:5).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평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길이 열린 것입니다.
『다 이루었도다』(요 19:30). 의와 화평은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분의 희생을 통한 화해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렇게 화평은 완성되었고, 그 이후로 이 화평은 오직 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면
그 즉시 인간의 마음과 양심 속으로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음성은 전능한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암흑에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왕의 음성이 있는 곳에 능력이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면 즉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 평안을 말씀하시는데,
누가 감히 분란을 일으키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죄지은 혼들을 위한 거룩한 평안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
지극한 고통과 번민이 있을 지라도 주님께서 한 말씀만 하시면
그 즉시로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분의 백성이기만 하다면 주님께서는 조금 늦어지더라도
당신에게 반드시 평안을 말씀하십니다.
『그가 그의 백성들과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임이라』
당신은 그리스도께로 왔고, 또 그분을 신뢰하고 있으나,
지금 바라는 만큼의 평안을 누리고 있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조만 간에 그분은 당신에게 평안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투쟁과 분투의 시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몇 달 동안이나 전쟁으로 인한 소란이 온 마음을 휘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국 『그의 백성들과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것입니다.
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몇 해 동안이나 몹시 지친 채로
살아가는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
야만인들의 해안에 난파한 채로 해도 달도 떠오르지 않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죠.
저는 그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힘이 빠져 있는데 더더욱 낙담할까 봐 그랬습니다.
그에겐 분명 무슨 잘못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빛으로 나아와 사람들에게 힘을 돋우어 주는 간증을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었습니다.
만일 그들 앞에 평안을 예비해 두지 않으셨더라면,
주님은 결코 『온전한 사람을 살펴보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그 사람의 마지막은 화평이니라』(시 37:37)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자녀를 어두운 침상에 방치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아이의 곁에 양초를 켜실 것이고,
그 아이는 마치 죽음과도 같은 달콤한 잠을 이룰 것입니다.
몸의 쇠약함이나 마음의 피로, 그리고 여러 다른 사연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얼마 동안 즐거움을 앗아갈 수도 있겠지만, 주님은 결국에는
『그가 그의 백성들과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것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낙망 중에 죽어 가게 하실 분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고통의 심연 가운데 가라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팔이 당신 아래에 있음을 아십시오.
그 팔이 당신을 다시 끌어올리실 것입니다.
많은 여인들이 슬픈 영을 지닌 채로 어려운 세월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팔이 당신을 다시 끌어올리실 것입니다.
많은 여인들이 슬픈 영을 지닌 채로 어려운 세월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께서 언젠가는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오! 사로잡힌 딸들이여, 당신의 사슬이 영원하리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소망을 붙드십시오. 밤이 아무리 깊고 어두워도,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빛은 어둠을 물리치러 나아오기 마련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침의 찬란한 빛과도 같이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그분의 자녀들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주께서 주시는 평안은 얼마나 고귀한 것입니까?
그 평안은 안전하고 건전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자녀가 원하는 만큼 평안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안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가식이 없는 거룩한 것입니다.
이 평안은 얻으면 얻을수록, 당신은 주님과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이 평안은 우리의 마음과 지성에 내려앉는 것이며,
단순히 혀와 얼굴에 찾아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 평안은 모든 상황을 초월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일지라도, 평안이 있으면 그의 마음은 언제나 풍요롭습니다.
당신이 외롭다면 주님은 당신의 친구가 되어 주실 것이며,
당신이 몸에 병을 얻는다 해도 주님은 불평없이 고통을 참을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당신이 고통스러운 영을 지녔다 할지라도
당신에게 하나님의 평안이 찾아든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시편 42:5).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면, 마귀는 이를 앗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불어넣으시면, 이 세상 그 어떤 풍조도 당신 속의 평안을 날려 보내지 못합니다.
이 평안을 누려본 사람들은 이 평안을 천상의 여명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빛 안에서 걷는 순간만큼은 사람은 낙원을 걷는 왕과도 같습니다.
완전한 평안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천상에는 불협화음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 이 세 분이 모두 우리와 화해하신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도 다툼이 없습니다.
양심은 깨끗하게 되었고, 마음은 안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평안 속에는 지하의 왕 마귀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는 우리를 향해 이를 갈지만, 우릴 어떻게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자연과도 화평을 누립니다.
『이는 네가 들의 돌들과 제휴하게 될 것이며 들의 짐승들이 너희와 화목하게 될 것임이라』(욥 5:2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 깊고 높은, 그리고 넓고도 끝이 없는 평안이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누가 혐의를 씌우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누가 정죄하리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시라.
그분은 또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롬 8:33,3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갖느니라』(롬 5:1).
좋으시죠? 그리스도인들이여,
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하지 못한 삶에 만족하거나
거기에 안주해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평안을 간구하십시오. 당신은 그 평안을 얻어야만 합니다.
이 평안은 당신을 왕보다 더 위대하게, 재벌보다 더 부유하게 해 줄 것입니다.
이 평안은 그리스도인이 복종과 헌신으로 나아갈 때 발에 신는 신발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2. "우리는 왜 평안을 잃어버리는가?" (계속)
원출처: http://www.lloydjones.org/technote3/read.cgi?board=C307&y_number=4&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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