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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을 얻기까지 싸우라

LNCK 2017. 2. 18. 07:27

 2017.01.29 쉼을 얻기까지 싸우라(신 3:12~20)  - YouTube

 

쉼을 얻기까지 싸우라                     히4:8~10                      17.01,29

    

음악에서 없는 쉼표 없는 노래가 노래일 수 없듯이

쉼 없는 인생은 인생일 수 없습니다.

지친 하루의 피로가 쉬는 쉼도 필요하고

긴 인생에서 일정기간 쉬어야 하는 쉼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육체가 편하게 쉬어도

우리 마음의 쉼영혼의 쉼더 깊이 말하면 양심의 쉼,

또 관계의 쉼이 없으면 진정한 쉼이 될 수 없습니다.

 

쉼은 삶의 목표입니다살기 위해서 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쉬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 쉼의 삶이 목표인 것은우리가 창조된 목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고백록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오 주님당신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우리가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우리의 영혼에는 쉼이 없나이다."

 

어거스틴이 고백한 쉼은 단순한 육체적 쉼이 아니죠.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쉼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다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 말씀하신 쉼이것이 바로 성 어거스틴이 갈망했던 쉼이요,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는 쉼입니다.

 

단순한 육체적 쉼이 아니라

성경은 쉼을 가리켜 안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여년 유랑한 뼈아픈 실패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대들은 이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모세가 경험한 것은 가나안 정복 이전에 요단 동편을 정복하기까지만

그가 경험했죠.

그래서 신명기에는 가나안 정복 역사의 모든 것이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광야를 유랑하던 시절과 가나안 동편을 점령하기까지만

그의 회고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유랑 시절과 요단 동편을 정복했던 그 시기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후대 백성들은 그런 실패를,

조상들의 실패를 다시 반복되지 않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죠.

 

히브리서를 보면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유랑했던 것을 해석하면서

그것을 안식을 얻는 일에 실패했다’ 라는 해석을 합니다.

 

히브리서 3:17~ 4:1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오.

 

17. 또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누구에게 진노하셨습니까?

죄를 저지르고 시체가 돼 광야에 쓰러진 사람들에게 아닙니까?

 

18. 또한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그분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맹세하셨습니까? 불순종한 사람들이 아니고 누구입니까?

 

19. 이로써 우리는 그들이 불신앙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을 봅니다.

 

1. 그러므로 그분의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남아 있을 동안에

여러분 가운데 혹 누구라도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워합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 여정을 안식을 얻는 여정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불신앙으로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그 일에 실패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죠.

 

다윗도 시편을 보면그 시대 사람들이 안식을 얻는 일에

그 시대 역사 속에서 실패할까,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을 유랑했던

그 과거의 역사를 다윗도 회고하면서

 

그 역사의 교훈을 받아서 그 시대 사람들도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경고하고 있습니다시편 95:10~11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내가 40년 동안 그 세대를 노여워하며 말했다.

"그들은 마음이 비뚤어진 백성들이어서 내 길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진노하며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맹세했던 것이다.

 

다윗 또한 그 조상의 실패를 다시 되돌아보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 여정을 안식을 얻는 여정이다’ 라고

후대들은 해석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역사의 우연처럼 돌아다니다가

어떻게 찾게 된 그런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지정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땅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애굽에 내려가

4대 동안 그들의 자손을 번성케 하셨고

그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출국시키셨고

그리고 그 땅에 들어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럼 그 땅에 왜 들어가게 하는가?’

그 목적이 바로 안식을 주시기 위함이다’ 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 땅은 선물로 약속이 주어진 땅이지만

싸워서 정복해야 하는 땅입니다.

 

<선물로 주어진 땅이라면 그냥 들어가서 편하게 얻도록 해야 하지

왜 싸워 굳이 정복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 싸움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바로 안식을 얻기 위한 싸움이다라는 것이죠.

 

소중한 선물일수록 그것을 지키는데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소중한 선물일수록 조건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선물로 주신다고 하면서 싸우라고정복하라고 하는 것이 모순으로 보이지만

그 싸움을 앞서 싸워주시고

또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온전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게 하셨다면

그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가나안을 정복하는 여정에서 원주민을 진멸하는 부분에서 많은 의문을 품게 되죠.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께서 원주민들을 멸하라고 하실 수 있는가?’

사회 윤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많은 질문이 발생하죠.

 

그 질문들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첫째로 이스라엘이 원주민이 있는 지역을 정복하는 것은 침략의 역사 아닌가?’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고 주권자이시며 통치자시고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에게

어느 영토를 주실 수도 있고 또한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이죠.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떤 영토든지 마음대로 침범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지역만침략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신명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외에는 결코 싸우지 마라,

절대 자극하여 싸우지 말라 라고 언급하시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에돔모압압몬그 자손들의 땅을 지날 때에는 절대 싸우지 마라.

 

신명기 2:9절을 보십시오.

9. 그때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모압 사람들을 건드리지 말고

그들을 자극해 싸우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들의 땅은 내가 너희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내가 아르를 롯 자손들에게 주어 갖게 했기 때문이다.'

 

에서와 그 후손들에돈모압압몬 족속들의 땅에는

절대 너희들이 싸워서는 안 된다내가 너희들에게 준 땅은 그 땅이 아니다.

요단강 건너 그 가나안 지역만 너희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이든지 다 침범할 수 있는 게 아니죠.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약속의 땅만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질문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서

왜 그 원주민들을 무참히 진멸하도록 하시는가?’

 

가나안 원주민들을 진멸하는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선 이미 창세기에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실 때부터

그들이 왜 애굽에 내려가서 4백 년이 훨씬 지난 후에 와야 되는가를 설명하면서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첫째는 그 땅에 가서 너희가 번성해야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무리 족속그 가나안 땅에 사는 원주민들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아직 관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기간이에요은혜로 허용하시는 기간입니다.

아직 심판의 때가 차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때부터 이미 가나안 민족에 대한 심판을 저울질하고 계신 거예요.

심판에 이르기 전까지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단지 그들에게

너희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 가나안 민족보다 더 좋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니 너희에게 이 땅을 주겠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인 거예요.

 

역사상 수많은 지역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 가나안 민족악한하나님이 더 허용할 수 없는 악에 이른

가나안 민족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그 공의로운 무서운 심판이 임하는 통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심판의 여정에서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죠.

예를 들어 여리고 성벽을 점령할 때

그 가운데 있던 라압의 가족을 구원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진멸하시는 게 아니라

그 가운데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은

기꺼이 구원하시는 은혜도 베푸셨습니다.

 

3) 세 번째 질문은 이런 정복의 기록이 어떤 역사 일반적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죠.

 

하나님은 결코 전쟁을 기뻐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더디하시는 분입니다.

 

이 약속의 땅을 얻는 정복의 역사는 아주 특수한 목적을 가진 역사입니다.

이 세속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여주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에서 약속의 땅을 얻는 과정을 안식을 얻는 전쟁이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약속의 땅은 제 2의 에덴동산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표현할 때 약속의 땅이다여러 표현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표현이 뭡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여러분 이스라엘 가나안 땅을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젖과 꿀이 흐릅니까?

대게 보면 어릴 때부터 가나안 땅 그러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러나 거기에 가서 보면 어디에서 대체 젖과 꿀이 흐른다고 그럴까요?

 

가보면 광야가 더 많고요평야는 우리나라보다도 더 못합니다.

그런데 뭘 봐서 젖과 꿀이 흐른다 그럴까요과장된 표현이 아닌가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것은

이것은 그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통해 에덴 동산이 회복될 것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는 거예요.

 

에덴을 상징하는 에덴을 표현하는 에덴 동산의 풍요와 안식과

하나님과 가졌던 그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는 땅.

그런 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죠.

제 2의 에덴동산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기 위한 하나의 표현 방식이죠.

 

에덴에서 일어났던 반역타락으로 잃어버린 안식.

그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었죠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두셔서 누리고자 했던 창조의 목적이었던 안식을

다시 회복시키는 그런 땅안식은 천지창조의 목적이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안식을 누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창세기 2:2절의 말씀을 보시죠.

하나님께서는 그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다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시던 모든 일을 마치고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쉬셨다는 말은 안식이죠.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느라 피곤하셔서 쉬신 것이 아니죠.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시는 분이에요.

6일 간의 창조가 너무 힘드셔서 쉬신 게 아닙니다.

 

이 쉼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완성이요 목표입니다.

왜 6일간의 창조가 있는가우주만물은 왜 있는가 인간을 왜 창조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쉼을 모든 피조물과 함께 누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쉬셨다하나님의 안식입니다.

 

유대인 신학자인 아브라함 허쉘이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안식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에 마지막 작품이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첫 번째 작품이다."

 

창조에 있어선 제일 마지막이지만 하나님의 의도에 있어선 제일 첫 번째다.

Last in creation, First in intention!

 

하나님의 창조에선 제일 마지막에 나오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가장 첫 번째다.

천지창조의 목적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안식은 삶의 쉼표가 아니라 삶의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얻게 되는 것을

안식을 위한 싸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 신3:20절에서도 나옵니다.

 

신명기 3:20. 여호와께서 너희와 같이 너희 형제들에게도 쉼을 주실 때까지 말이다.

그들 또한 요단 강 건너편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한 후에 너희는 너희가 소유하게 된 땅으로 돌아가라

 

이 말씀에서 쉼은 단지 전쟁을 그치고 쉬는 그런 육체적 쉼이 아니죠.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것과 동일한 단어로 쓰인 겁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모세를 다시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모세는 요단 강을 건너지 못했죠요단 동편의 싸움까지 모세가 이끌었어요.

 

그래서 루벤 문앞에 두 지파 반이요단 동편의 땅을 할당 받았습니다.

그래서 헤스본과 그 지역에 있는 옥그 두 나라를 점령하고

그때까지만 모세가 쓰임 받았죠.

 

땅을 먼저 분할 받았으니 그 백성들은 그 두 지파 반 사람들은

그 땅에 머물러서 쉬고 쉽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거죠. ‘모든 형제들이여,

모든 민족들이 다 쉼을 얻기까지 너희 가운데 싸울 수 있는 자들은

함께 앞서 싸우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너희들만의 쉼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함께 건너가서 요단강을 건너서 함께 가나안 정복에 참여하고 다시 돌아오자.’

 

그래서 처자식을 다 요단 동편에 두고 싸울 수 있는 남성들은

다시 요단 강 건너편에 가서 함께 싸우고 다시 돌아오게 되죠.

 

이걸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나만 누리는 안식에 머무르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전체의 안식모든 열방의 안식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싸우기를 원하시는 거죠.

 

나는 구원 받았으니 내 영혼의 평안에 끝나서는 안 된다.

모든 영혼의 안식이 임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도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죠.

이 거룩한 전쟁에 너희도 힘써 싸워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40년의 광야 시대 이후에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히브리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을 얻었다고 기록해야 하는데

히브리서 4장 8절에 보면 흥미로운 말씀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4:8~10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하나님께서 나중에 다른 날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이 남아 있습니다.

 

10. 이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쉬셨던 것처럼 그 자신도 자기의 일을 쉬기 때문입니다.

 

이 한 구절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압축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때 쉬셨던 것처럼안식을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구원은 안식을 회복하는 거죠.

 

하나님 천지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것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일하시고

그것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고

 

그것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정복했으면 안식이 이루어졌는가?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했다면

그것은 하나의 그림자하나의 모형이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성공담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너희들도 다른 민족을 이렇게 침략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예로 보여준 것이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을 통해 지정된 장소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장차 우리에게 올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안식을 얻는 그 과정이 영적인 싸움이요전쟁이요.

거룩한 전쟁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여호수아는 신약의 헬라어로 정확하게 예수스입니다.

여호수와는 예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택하신 의미가 거기 있습니다.

그 이름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였지만

그것은 장차 오실 여호수아예수스.

그 예수께서 지도자가 되셔서 인도하신 안식의 하나의 그림자모형이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면성경의 안식이 언급된 다섯 가지 시점이 있습니다.

우리 횃불트리니티신학과 교수이신 조재천 교수님이

이것을 표로 아주 잘 정리해서 제가 잠시 말씀드립니다.

 

1) 창세기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의 안식이 나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셔서 출애굽 세대가 가나안으로 가는 안식이 나옵니다.

 

3) 다윗이 바라봤던 그 동시대 사람들이

그 시대에 바라봤던 안식이 있었습니다.

 

4) 이제 우리들이믿는 우리들이 이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야 하는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우리의 현재입니다.

 

50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종말이 있습니다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안식.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안식을 회복하게 될 종말.

바로 그 종말은 창조주로서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심판이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안식이 회복되는 날이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믿음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런 싸우는,

안식을 위해 싸우는 그런 상황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안식을 맛보았습니다믿음으로 얻는 안식.

그러나 이것은 완성된 안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싸우는 자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며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대상이 된 이들과 싸우면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승리를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안식을 향한 싸움에서 우리는 순종함으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전쟁의 법칙은 간단합니다말씀에 순종하면 승리요불순종하면 패배입니다.

불순종하면 광야를 유리하는 것이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예배하신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왜 우리 마음 속에몸은 잘 쉬어도 진정한 쉼이 없는 것일까요.

오히려 우리는 쉬면서도 싸우잖아요연휴 때 가족 간의 다툼이 급증한다 그러죠.

 

몸은 쉬었는데 관계의 쉼이 없는 거예요영혼의 쉼이 없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쉼은 단순한 육체적 쉼이 아니죠.

그것도 중요하지만 마음과 영혼의 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주시는 이 안식을 향하여 우리는 싸우며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빼앗는 자들과 싸워서 우리 안식을 얻기까지.

쉼을 얻기까지 싸우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거룩한 전쟁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우리가 이 싸움을 계속 싸워가는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우리에게 잃어버린 안식을 이 쉼을 약속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가며 싸우듯

형제들의 이 쉼을 위하여 함께 싸웠듯이

 

오늘 이 시대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축복을 안식을 이 쉼을

우리만이 아니라 이 나라 민족이 열방이 우리 다음 세대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힘써 싸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이 싸움에서 승리하길 원하며 순종함으로 승리하게 되길 원합니다.

주님 우리 모두에게 참된 쉼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게 되길 원합니다.

장차 누릴 종말에 누릴 요한계시록에 약속된 쉼을

날마다 누려가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안식이 전달되기를 원하며

이 나라 민족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안식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타자 J.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