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직임 중 “전도자” 행8:6, 40 스크랩, 출처
2017 WLI Conference 양결 목사
제가 전도자에 대해 요청 받았습니다 오중직임을 다 할 수는 없고
전도자에 대해서 3가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전도자의 샘플을 말씀드리고
지금 이 시대는, 전도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설명드리고
그 다음에 전도의 방법, 교회가 전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세 번째 나눌 것은 전도의 방법입니다.
순서대로 나눠 보겠습니다.
◑1. 전도자 빌립
여러분, 오중직임 중 하나인 ‘전도자’는 교회 일이 안 땡깁니다.
안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고, 해야되지만 그렇게 안 땡깁니다.
원래 ‘은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마타’인데
‘카라’ Joy에서 온 말입니다.
그래서 은사대로 섬길 때, 기쁨이 있는데
이걸 경상도 말로 ‘땡긴다’고 합니다. 이끄립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교회 일이 그렇게 안 땡깁니다. (끌림니다)
교회 김장, 바자회, 청바지 팔고.. 이런 일에 별 관심 없습니다.
뭐에 관심 있느냐? 김삿갓의 영을 받아서 온 천지를 싸돌아다니면서
사람만나고,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만나 얘기하는데,
그 가운데 사람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합니다.
그 불신자를 교회에 딱 앉혀 놓는 그 일에 땡김이 있고,
거기에 기쁨, 열정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전도자가 빌립 집사입니다.
빌립은 처음부터 전도자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7집사 중에 한 명으로 세움 받았습니다.
원래 초대교회 12사도가 다스리며 행정도 하고 설교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끌고 갔는데,
헬라파 과부들은 구제에서 자꾸 누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헬라파 성도들이 불평했습니다.
‘야, 너네 히브리파 과부들은 꼬박꼬박 잘 챙기고
우리 헬라파 과부들은 왜 구제에서 빼느냐?’
이런 식으로 원망과 불평이 생겼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게 은혜 미쓰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행정적으로 미쓰가 일어난 거잖아요.
그런데 행정 미쓰(착오)로 보지 않고, 은혜가 떨어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왜냐면 교회가 한창 성령이 부어지고 은혜가 될 때는,
자기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고,
그걸 사도들이 임의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게 했지,
뭐 왜 우리는 빠졌나 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3천명 5천명 갑자기 많아지고 부흥하니까,
12사도들이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또 말씀을 전하고 성령과 연결되고..
이런 시간보다 행정하고, 뭐 구제금을 나눠주고.. 이런데 시간을 쓰다 보니까,
구제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문제가 생겼고, 또 은혜도 교회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희한한 데입니다.
망치가 약하면 못이 튄다고
교회는 여러분, 은혜가 되면 설교에 은혜가 되면,
목사의 허물이 웬만하면 다 덮힙니다.
은혜가 안 되면, 만 가지를 잘 하고, 한 가지를 딱 실수하면
그게 말이 되어집니다.
베드로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아, 이게 은혜가 떨어진 거구나!
이게 행정 미쓰가 아니구나, 은혜의 문제구나!’
그래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택하여 세우고
그래서 구제하고 헌금을 관리하고 나눠주는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겠다.. 하고 서재로 들어가고, 기도실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럴려고 세운 사람이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입니다.
그래서 빌립은 원래 교회에 재정을 맡고 그걸 잘 관리하고,
또 때를 따라 나눠주는 이런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스데반 사건이 생기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생기고,
이게 끝인줄 알았더니 이게 핍박의 시작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너무 기독교인들에게 핍박이 심하니까 행8:1~3절에 보면
사도들을 제외하고 전부가 유대, 사마리마 등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때 빌립은 어디로 갔지요?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그곳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본게 무섭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늘 본 게 교회 생활이고 신앙생활이니까,
도망 간 와중에도 사마리아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기적을 행하고, 말씀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기적도 보고, 말씀도 듣고 일심으로 한 마음으로 빌립으로 좇았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저는 여러분 이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이 전도할 때 말씀으로만 하지 않고,
기적을 행하고 그 다음에 말씀과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마음 같이 빌립을 좇았습니다.’ 행8:6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여러분 사마리아인과 유대인들은 지난 7백년 동안 원수로 지내왔습니다.
말도 서로 안 섞었습니다. 어느 정도 원수냐면 말도 안 섞었습니다.
여러분, 수가 성 기억나지요?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여자여 물 좀 다오’ 하니까,
여자가 ‘어머, 왜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섞지?’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말도 서로 안 섞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사람이 유대인을 좋아했겠습니까?
서로 서로 재수없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런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유대인이 전도했는데 ‘한 마음으로 좇았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말로만 복음을 전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기적이 있으니까 한 마음으로 좇은 것입니다.
사람도 모였고, 물세례는 집사 자기가 줬습니다. 8:12
▲그런데 자기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본 게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교회를 끌고 가시는 것을 자기가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 가운데,
‘오순절에 예루살렘 교회에 부어졌던 그 성령이, 이곳에도 부어졌으면!’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희한한 일이죠. 아무리 자기가 기도해도,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님이, 사마리아에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베드로, 요한 사도를 보내달라고,
그래서 사마리아 교회가 성령 받기를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와서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안수하매
그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이제 빌립 집사에게는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딱 이 말이 들어 맞습니다.
이제 빌립은 ‘불행 끝, 행복 시작’
여기 와서 고생해 가지고 말도 안 섞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전도해서
교회도 세워졌습니다. 사람도 모여듭니다.
물세례도 줬지요, 이제 성령세례도 받았습니다.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빌립은 그냥 쭈욱 그대로 안주해서 가면 됩니다.
▲그렇게 편하게 살면 되는데, 기도하는데 무슨 음성이 들려서
천사가 나타나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로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그 황량한 광야에 뭐가 있다고 광야로 가라고 하시지?
안 가려고 하다가 천사의 지시니까, 따라서 갔습니다.
가보니까 에티오피아 국고 맡은 내시(재무장관)가
예루살렘에 절기 지키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마차 안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 때 당시에 사막이니까 길이 어디 있습니까.
마차가 다닐 만한 길은 있었겠지요. 제대로 된 잘 닦인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차에는 쇼바(충격흡수기)도 없고, 가죽 시트도 아니었습니다.
그 털털거리는 마차에 앉아서 두루마리로 된 성경을 펴서, 읽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아스팔트 깔렸죠, 차에 쇼바도 좋고, 푹신한 가죽 시트인데도
멀미난다고 차에서 성경 읽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에티오피아 내시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내시가 절기 지키는 것도..
여러분 성전에 대해서 좀 들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성전은 성막하고 다릅니다.
먼저 ‘이방인의 뜰’이 있고,
두 계단 정도 올라가면 ‘여자의 뜰’
또 두 계단 더 올라가면 ‘남자의 뜰’이 있고
그걸 지나야 두 계단 더 올라가면 ‘제사장의 뜰’이 나옵니다.
그 안에 물두멍, 번제단, 놋바다가 있고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헌금함은 어디 있느냐면
여자의 뜰에 있습니다.
여자의 뜰에 나팔같이 생긴 관 여섯 개가 한 쪽에 있고, 저쪽에도 있어서
12개 헌금함이 있습니다.
여러분 개 같이 번 돈과 창기의 돈은 하나님이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돈도 안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헌금함이 여자의 뜰에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들어오지도 못함)
이방인은 여자의 뜰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전에 가봤자, 제일 먼 마당까지만 갈 수 있었고,
헌금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성전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마당만 밟을 뿐인데도
멀찍이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3대 절기에 참석했다,
내려가는 길에 성경을 읽는다..
내시는 진짜 열정이 있었고, 하나님이 괜히 빌립을 붙여주신게 아닙니다.
그때 마차 안에서 읽었던 성경이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안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성경을 읽고 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빌립이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
내시는 ‘지도하는 자가 없으니, 어찌 깨달으리요?’
성경은 참 희한합니다.
한글로 되어 있어서 다 읽을 수 있는데도, 지도하는 자가 없으면,
다 엉뚱한 소리, 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자기 마음대로 깨닫는 책이 성경입니다.
‘지도하는 자가 없으니, 어찌 깨달으리요?’
그래서 빌립은 내시 옆에 앉아서 성경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묻습니다.
장관이니까 머리가 좋았겠죠.
딱 복음의 진수를 묻습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이 사람이 누구를 가리킵니까?
이사야 자기를 가리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이야기합니까?’
그러면서 메시야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몇 십 년 전에 (예수님 돌아가신지가 몇 십년 안 됐잖아요)
예수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죽었던 사실을 아십니까?’
그게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건이니까요
그때 돌아가신 분이 이사야 53장의 이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대속 제물로 죽으신 것입니다.
화목제물로 죽으신 것입니다..’ 하고 복음을 쭈욱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죠. 광야에.. 광야니까 물이 없습니다.
딱 그 복음을 전하고, 듣고 아멘 할 즈음에 거기에 물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내시가 물어봅니다.
‘여기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 받기에 부족한 게 뭡니까?’
그래서 둘은 물에 내려가서 세례를 베풀고, 받고,
내시는 기쁨으로 자기 길을 갔고,
그러면 빌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이 몸밖으로 빠져나간 경우는 성경에 꽤 나옵니다.
예를 들어 겔8장에 에스겔은 그때 장로들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장로들이 예루살렘의 운명에 관해 물으러 찾아왔습니다.
에스겔 자기는 2차포로 때 잡혀왔는데,
1차포로는 다니엘 때 605년에
2차포로는 597년에 잡혀왔는데
3차포로가 장차 있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다. 우리가 금방 고국에 돌아갈 것이다.’
70년 동안 못 돌아간다는 사람, 금방 돌아간다는 사람
그래서 장로들이 백성들을 끌고 가야 되니까
유명한 에스겔 선지자에게 물으러 왔습니다.
‘우리가 금방 돌아갑니까, 아니면 70년 동안 여기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 뜻이 뭡니까?’
그랬더니 그 장로들 앞에 앉아 있는데, 주의 손이 에스겔의 머리를 붙잡고,
천지 사이로 그 영을 뽑아서 1천 킬로나 떨어진 예루살렘에 데리고 가서,
사람들의 죄를 보여줍니다.
두 번이나 포로로 잡혀가는 징계를 받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거기서 일월성신을 섬기고 성전에서 담무스를 섬기고,
하여튼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죄를 짓는 모습을,
그 영이 가서 실시간으로 보게 됩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계4:1
영이 빠져나가서 보는 경우,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경우는
성경에 이렇게 종종 나옵니다.
그러나 몸이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는 경우는, 성경에 빌립이 전무후무합니다.
빌립의 몸이 들려서, ‘아소도로 갔다’고 그랬습니다. 행8:40
아소도는 블레셋 땅입니다.
여러분, 블레셋에 가드, 가사, 에글론, 아스돗, 아스글론.. 구약에 이런 지명이 나옵니다.
구약 히브리음으로 아스돗이 신약의 헬라어로 ‘아소도’입니다. 같은 지역입니다.
성령님이 빌립을 거기로 몸을 딱 옮겨 놓았습니다.
왜 빌립을 거기로 옮기셨을까요?
만약에 빌립을 아소도로 옮기지 않으셨다면
거기에 가만 두셨다면
빌립은 다시 사마리아로 갔을 것입니다.
왜요? 사마리아 교회에 이제까지 자기가 가서 고생하고, 개척하고,
물세례 주고 사람들 모여들어
‘불행 끝 행복시작’ 인데, 돌아가면 편하게 살 건데
누가 엉뚱한 데로 가겠습니까. 사마리아로 가서 거기서 지내겠지요.
그런데 희한합니다. 전도자로 부름 받는 사람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받을수록
성령이 그를 자꾸 전도자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그를 끌고 가십니다.
성령이 그를 들어서 빌립을 블레셋 땅 에 갖다 놓은 것입니다.
정신차려 보니까 분명히 내시에게 세례주고 광야에 있었는데,
블레셋 도시 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어~ 내가 왜 여기 있지?’
성령이 말했을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전도하라’
그래서 여러분, 아소도와 여러 도시로 돌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행21:8절에, ‘가이사랴로, (해변길 따라서 쭉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나중에 가이사랴에 갔고, 거기에 ‘전도자’
전에는 일곱 집사 중 한명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전도자 빌립’이라고 자기 칭호가 바뀌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7일곱집사 빌립 이렇게 알려졌는데,
행21:8절에는 ‘전도자 빌립’이라고 칭호가 바뀌어있습니다.
확장하면, 처음부터 사도가 되는게 아닙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도’적인 부르심이 있는 사람은, 자꾸 사도적인 일을 할려고 합니다.
‘선지자’들은 자꾸 기도하는 데 이끌리고, 음성듣는데 이끌립니다.
‘전도자’들은 돌아다닌데 이끌립니다.
‘목사’들은 또 우리 안에 있는 양떼에게 이끌립니다. 이 사람들은 안 돌아다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양떼에 늘 관심 가집니다.
‘교사’는 아무도 안 끌리고 늘 성경에 이끌립니다.
그래서 죽으라고 성경 읽고 가르치고, 성경 읽고 가르치고
누가 자기 강의 듣고 울면
그게 밤에 생각해 보면, 감동이 되어서
그 힘으로 (밥심으로 사는게 아니라) 인생을 삽니다.
◑2.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빌립 같은 전도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오중직임 중 하나인 복음전하는 자
여러분, 모든 사람이 다 전도자는 아니지만
모든 성도가 다 전도에 헌신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진짜 전도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니면서 신구약 성경을 백 번 정도 읽었습니다.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백번 읽었다고 얘기해야, 제 말에 집중하더라고요.
성경을 한 60~70번쯤 읽었을 때, ‘아, 이 이야기 하려고 성경을 썼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 졌습니다. 그래서 막 노트에 적었습니다.
적어서 간호사 둘에게 전도해서 제가 가르쳐 보았습니다.
간호사가 우는 것입니다.
‘왜 웁니까?’
‘모르겠습니다. 안 슬픈데 그냥 눈물이 납니다.’
제가 알기로 성경의 핵심은, 창3:15절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 더 든다면 창12:1~9절입니다.
이 구절이 성경 전체로 들어가는, 또 성경 전체가 창12:1~9절
이 말씀에 의해서 풀어집니다. 그러므로 키절, 열쇠절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가면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세 가지 공적인 복이 뭐냐면
1)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 창12:2
2) 가나안 땅을 너와 제 자손에게 주겠다 창12:7
그런데 ‘자손들’이 아니라,
옛날 성경에는 씨 라고 되어 있는데
씨들이 아니라 씨 단수입니다.
자손들 이 아니라, ‘자손’에게 즉 단수로 쓴 것은
갈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말씀하면서
자손들 이라 하지 않고, 자손 이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이라’
하고 딱 써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너와 네 자손(단수)
(네 자손들이 물론 나겠지만)
자손들이 나다가
누가 올 때까지?
‘예수가 올때까지 이땅을 주겠다..’ 이게 두 번째 약속입니다. 창12:7
3) 세 번째 약속은 너와 네 자손 이 예수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데로 돌아오는 것, 창12:3
땅의 모든 족속이 그 예수로 말미암아
아담이 범죄함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회복하는 거기로 돌아오는 것,
에베소서 표현으로 보면
‘함께 후손이 되고,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는 이 복을 받는 것’ 엡3:6
그 복을 받는데로 돌아오게 해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중략)
이 세 가지 복 중에서
1)과 2)는 구약과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는데
3)은 아직 성취 중, 진행 중입니다.
3)은 신약의 대위임령과 연결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이 약속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막16장에는 ‘너희는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요? 안 이루어지고 남은 말씀이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 데로 돌아오는 것,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아브라함 언약)이 지상명령하고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상명령이란 .. 명령중의 최고 명령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용서하라고도 명하셨고, 사랑하라고도 명하셨고
기도하라고도 명하셨고, 여러 가지 명령을 주셨지만
명령 중의 명령, 가르침 중의 가르침은
‘땅끝까지 전도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안 하셨습니다.
‘야, 천하만민이 복 받는데로 돌아온는.. 세 번째 약속이 이루어져야 될 시대다.
가라, 가서 전도해라!’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한 것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두나미스, 파워)을 받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어라 가 아닙니다.
되리라 ‘되어집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행하는데, 안 될 수가 있나요. 되리라! (되어지리라)
그래서 1:8절은, 전도하라는 명령이기도 하지만, 전도하는 방법, 전략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주신 전략이 뭐냐,
성령, 권능, 증인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전략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첫번째 약속도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두 번째 약속도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세 번째 약속 천하만민이 복 받는데로 돌아오는 일은 아직 진행중인데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3 성경적인 전도방법 – 능력전도
Power Evangelism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령’을 머리로만 이해합니다.
관념과 이념 속에서 성령이 갇혀있습니다.
머리로만 성령을, ‘성령님!’ 부릅니다.
그렇지만 머리로 성령님을 알고 인정할 뿐이지, 능력은 없습니다.
그리고 ‘증인’은 되어야 되고, 교회는 부흥해야 되니까
그래서 성령, 머리로만 알고, 권능, 없어져 버렸고
그 권능의 자리에 뭘 대치했느냐면, ‘섬김’으로
그래서 성령님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섬겨서 증인되어라’
‘성령 받아 증인되어라’가 아니라요
한국교회에 앞서가는 시스템이 셀, 가정교회,
셀은 교회시스템적으로, 외국 셀은 G12. 아니면 가정교회
이것들이 한국교회들이 잘 나가는,
발 빠른 목사들은 좇아가서 그것 배워서 교회에 접목시킵니다.
그런데 저는 셀도 해 봤고, 가정교회도 해 봤는데
셀에 갔더니 ‘섬겨라, 섬겨라’ 첫째 주에는 뭐해서 섬기고, 둘째 주에는 뭐해서 섬기고...
가정교회가 뭔지도 모르고 또 가정교회에 갔더니
거기는 셀보다 더 섬기라고 했습니다. 셀은 섬기라 이랬으면
‘썸기라, 더 썸기라(강조)’
그래서 열심히 제 노트에 적으며 배웠습니다.
그때 성령의 음성이 제게 들렸습니다.
저는 성령의 음성도 가물에 콩 나듯이 들리는데,
그 날이 마침 콩 나는 날이었습니다.
성령이 뭐라시냐면 ‘속았어, 속은 것이야 (그게 아냐)’
그래서 제가 ‘마귀야, 물러가라’
그랬더니 ‘너는 목자의 음성도 못 알아듣느냐?’
(언제 자주 들려주셨어야 알아듣지요)
가끔 들려주셔놓고, 못 알아듣는다고.. 못 알아듣는 게 더 정상이겠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신 증거를 대십시오.
제가 왜 속았는지. 증거를 대 보십시오.
저를 납득시켜주시면 제가 속았는지 알겠습니다.’
그랬더니 섬김을 전도하는 인력으로 전도하는
그렇게 인간의 힘으로 하면, 섬기는 사람이 뻗는다(지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섬김으로 (성령의 힘 아닌, 인간의 힘으로) 전도해서
몇 명 전도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몇 사람 전도한다 치더라도,
얼마나 섬겨야 몇 사람이 교회에 오겠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몇 년 가겠습니까?
‘나 지쳤습니다’ 이런 소리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저도 가정교회 해 봤고, 셀 해 봤는데
셀 5년 했는데 계속 남아 있는 셀리더는 진짜 용사입니다.
셀 하면서 목자, 목녀 하면서, 셀리더 하면서
‘목사님, 나도 지쳐서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목사도 더 이상 계속 해라 소리 못합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지칩니다.
두 번째, 섬김으로 전도하면, 영혼육이 원 바디가 아닙니다.
영혼육이 있는데, 섬김으로 전도하면
혼과 육이 감동 받아서 교회로 끌려옵니다.
그럼 그의 영은요?
그의 영이 노래방에 있는지, 캐디하고 노는지 알 수 없어요.
영에 영향을 못 끼칩니다. 그러면 이게 함수처럼 영혼육이 함께 물려 있는데
여러분, 혼을 통해서 지식적으로 설교를 듣고, 영이 변하려면 5, 10년 걸립니다.
거기에 일꾼 되는데 또 5~10년 걸린다고 합니다.
합치면 빨리 일꾼 되는데 10년, 늦으면 20년 걸립니다.
혼과 육으로 하는 방식은 너무 깁니다.
(영의 방식으로 해야 됩니다)
처음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면
예수 믿는데 하루!
일꾼 되는데 일년이면 충분합니다.
왜 처음부터 섬김으로 전도하십니까?
▲그래서 우리교회는 어떻게 하느냐면 능력전도 power evangelism로 합니다.
우리교회는 출석성도가 5백명, 재적은 7백명인데
그 중 3~4백명이 눈이 열렸습니다.
그 3백명 외 4백명은 치료(신유)훈련을 시킵니다.
전도하는데 5중직임 필요 없습니다.
전도하는 데는 치료 잘 하고, 예언 잘하면 됩니다.
둘을 짝 지워 보냈습니다. 모든 목장을 이렇게 보내고,
교회 25인승 버스를 사서, 카페로 개조했습니다.
커피를 아주 뜨겁게 만들어서, 전도자가 다 마실 때까지
병 낫는다 허리 아프다 무릎 아프다
네가 커피 마실 때까지 병 낫는다
나으면 예수 믿고, 안 나으면 그냥 가도 좋다
그래서 여러분, 커피 마실 동안에, 문제 있는 사람에게는 예언해 주고
그 다음에 아픈 사람은 치료해 주는 겁니다. (이런 식의 능력전도)
그럼 눈 열린 은사자는.. 전도자가 무슨 병인지 은사로 알아냅니다.
그 사람이 알아서 말을 하면,
손에 기름이 있는 축사 훈련 받은 사람은, 그를 치료하고 축사해 줍니다.
마치고 나면, 시어가 예언해 줍니다. 예언 은사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예언에 걸리든지, 치료/축사에 걸리든지
우리 교회는 모든 전도팀들이, 이렇게 (능력)전도합니다.
이렇게 세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예언할 줄 모르고, 치유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섬김으로 전도할까요? 제가 하나님께 물어봤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안 바뀐다 하셨습니다.
그럼 계속 그 방법으로 가지 안 바뀐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섬김으로 전도, 아예 못 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예언으로 전도하고 치료로 전도하고 안 하는 사람은, 훈련 받도록 합니다.
훈련되면 1년 동안 교회 안에서 보조사역자로 사역하다가
본사역자로 교회에서 섬기고,
절반은 예언해주고, 치료해주고, 축사해주고
주일날 교회에서 한 50명이 이 일을 하고 또 50명은 밖에 나가서 전도하고, 월요일 팀, 목요일 팀까지 만들어졌는데,
2017년 목표는 월화수목금토일 다 전도팀이 전도하도록 목표를 잡았습니다.
그러고 밴드에 올립니다. 아무개 영접 기도 했습니다. 밴드에 올리면
중보팀이 그 이름을 보고 중보합니다.
그 사람들이 전화번호 받아서, 전화하는 팀들이 또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주일날 모시고 오는 사람이 또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전도를, 예언과 치료/축사로 능력전도로 합니다.
그 다음에 영접한 사람한테는 카페 이용권을,
5~6사람이 와서 마실 수 있는 티켓을 줍니다. 저희 교회에 카페가 있으니까요.
거기서 마시고 오면, 카페에서 늘 예언하는 사람, 치료하는 사람이
대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외부 사람이 딱 들어오면 그들이 딱 붙어서,
거기서 또 예언, 치료/축사사역 해 줍니다.
그래서 믿을 수밖에 없도록 끌고 갑니다.
여러분께도 능력전도가 풀어주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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