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 교회의 공통점 엡4:11~16 스크랩,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3LM9Dm6NXqw&t=91s
*한글녹음은 '도입'은 생략하고 '본론'부터 녹음했습니다
◑도입
▲제 로버트 하이들러 가 발견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강의를 듣고는
‘오중사역 정말 좋네요. 근데 우리는 그대로 할 수 없어요.’
이렇게 우리가 오중사역에 대해 설교할 때마다
바로 그런 반응을, 제가 가는 곳마다 듣습니다.
‘아 너무 듣기에 좋은 소리인데, 지역교회에 적용할 수는 없어요!’
제가 그런 질문을 염두에 두고, 사도행전을 읽어봤습니다.
만약 이 오중사역이 그렇게 하기 어려우면,
초대교회는 어떻게 그렇게 잘 했던 것일까요?
초대교회는 가는 곳마다 오중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그 비밀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제가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그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이제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이제 오중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도행전을 통해 보여 드리겠습니다.
*바로 ‘사도적 센터’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아래에 설명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가정교회를 인도하고, 구성원이 5명이라도 모였을 때
여러분이 사도, 선지자, 교사, 목사, 복음전도자가 없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오중사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신약에 있는 교회들의 그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의는
“사도적 교회여 일어나라, 사도적 센터(아래에 설명)를 회복하라!” 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가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와그너 박사는, "이제는 교회가 종교개혁보다 더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척 피어스도 ‘지금 교회는 리더십의 혁명 한 가운데 있다!’
신디 제이콥스도 ‘오늘날 교회는 두 번째 종교개혁에 진입했다.
5년 후에 우리는 전통 교회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자 그러면 선지자들이 이런 말을 했는데,
그럼 하나님이 뭘 하고 계시는가요?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하나님은 교회를 회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차원의 권능으로 이 일을 하고,
역사하는 교회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렇게 할 때 지역들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새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되도록,
하나님의 교회를 다시 만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죽부대와 연관지어 설명하면,
새가죽부대는, 포도주가 발휘해서 팽창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죽부대가 오래되면 가죽이 단단해지고 터지기 쉬워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누구도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하면 새포도주가 부대를 터트려 새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새포도주입니다.
그러나 오직 새가죽부대가 그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부대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부흥을 위하여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새 포도주를 주십시오!’
이때 주님은 우리에게 되물으십니다
‘그것을 담을 가죽부대는 어디에 있느냐?
나는 더 이상 새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을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포두주를 담을 새 부대를 필요로 하십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 가죽부대를 만드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우리가 그 일을 하기에 필요한 것들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엡4장에,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에 사람들에게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오른편 자신의 자리에
앉으러 가셨을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주님께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온 우주의 왕으로 다스리시는 그 자리에서
교회에 다섯 개의 열쇠를 은사로 주셨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원하시는 새부대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새부대가 되는데, 우리가 다섯가지 은사들을 보겠습니다.
우리 각자 모두는 다 이 다섯 가지 영역에서 자기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1. 사도
사도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대표로 나타냅니다.
그래서 교회의 질서를 세우도록 은사를 받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2. 선지자
하나님의 비전을 풀어놓습니다. 교회 안에 예언적 계시를 세우고,
하나님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도록 은사를 받은 남자와 여자.
3. 교사
교사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길들에 대한 이해를, 사람들에게 전수하며
부르심을 이루는 일에 교회를 훈련시키도록 은사를 받은 남자와 여자
4. 목사
하나님의 돌봄을 전달합니다. 양무리를 안위하고 양육하고 보호하는 남자와 여자
5. 복음전도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냅니다.
특별히 기적과 표적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은사를 받은 남자와 여자
오중사역이 교회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을 five-fold ministry 오중사역 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공통 목적을 가지고 있는 다섯가지 다른 은사/직임들입니다.
그 목적은, 성도를 준비시켜서 사역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렇게 다섯 가지 영역에서 다 사역을 받지 않으면,
여러분이 온전히 준비되지/세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교회 가운데 잘 준비된 사역자들이 가득하여,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부흥입니다.
즉 목회자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에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가든지 온전하게 주님의 일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새 가죽부대입니다.
이 오중직임/오중은사가 사역 안에서 같이 협력해서 일하는 것을
성경에서, 또한 오늘날의 일부 교회에서 봅니다.
여러분 이것을 제대로 배우셔서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 복음전도자들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2) 목사들은, 그 새신자들을 위로하고 돌보는 역할을 합니다.
3) 선지자는 그들에게 미래 비전을 줍니다
4) 교사들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합니다.
5) 사도는, 사람들을 질서있게 세우고 사역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관장합니다.
그 결과 성도들이 사역자로 세워지고 준비됩니다. 엡4:11
그러면서 교회가 권능의 군대가 됩니다.
▲저는 엡4장에 묘사된 말씀을 좋아합니다.
오중사역의 결과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엡4:12~16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집니다.
-우리는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한/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며,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교회를 보면
‘부흥이 일어났다!’ 라고 감탄합니다.
그래서 모든 크리스천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5가지 사역들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5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많은 교회들에 오중사역이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이런 것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전통적인 아주 피곤하고,
과로한 목사 한 사람을 통한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사람들을 세우는 게 아니라, 모든 사역을 다 혼자 합니다.
또 성도들은 (가만히 있는) 회중으로 되어 있고,
그들은 오중 사역자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와서 헌금도 하고 예배도 드리지만,
자기가 사역할 것은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성숙함으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병을 치유하는 것, 예언하는 것,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
가르치는 것, 격려하는 것, 혹은 귀신들을 내어쫓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그 결과, 교회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 교회의 존립 자체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을 읽으면, 잘 보시면
모든 지도자에게 ‘목사’라는 타이틀을 주면서,
사역을 혼자 다 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을 잘 읽어보시면 어떤 이들은 ‘사도’라 불렸고 행14:14
몇몇은 ‘선지자’로 행11:27
몇몇은 ‘교사’로 행13:1
몇몇은 ‘복음 전도자’로 불렸습니다. 행21:8
그리고 각자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자신들의 은사들이 각각 다른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모든 일(5가지 다)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서로가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지난 30년 동안 오중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을 진행한 교회는 극소수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에 이르러, 오직 소수의 교회들만 오중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일까요?
많은 교회들의 문제는, 오중사역자들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교회들은, 이 다섯 가지 사역자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전환을 하고 싶어도, 그것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건 듣기는 좋은데, 우리가 여기서 시행할 수는 없어!
언젠가 할 수 있게 되겠지!’
그러므로 저는 제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이렇게 오중사역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렵다면,
신약교회, 초대교회는 어떻게 했을까?’
그 교회들은 작은 가정교회들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초대는 모두 오중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균 교회 사이즈가 20~30명이었습니다.
이들 교회 대부분은 회중 가운데,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목사와 교사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스로 물었습니다. ‘어떻게 신약교회는 오중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러다가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중에 제가 그 해답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교회가 오중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성경적인 열쇠는 바로
‘사도적 센터 교회 Apostolic Center Church’입니다.
◑본론 : 사도적 센터/오중사역 센터를 통한 사역
▲사도행전을 공부하면 여러분은 다음의 것을 발견합니다.
매번 교회가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인종이 모인 곳에 가면, 교회는 사도 센터를 세웠습니다.
사도 센터는 그 지역에 복음을 감당하는 본부/교두보였습니다.
그래서 원수의 공격을, 본부 차원에서 의논하고 나아가서 점령했던 겁니다.
-바로 이 본부가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센터였습니다.
-또한 이곳은 축제를 위해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사도적 팀을 파송하는 센터였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센터였습니다.
-심지어 작은 교회(지교회)도 오중 사역에 온전히 접근할 수 있는 본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센터교회에 연결된 결과, 교회는 약하거나 고립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도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3명 밖에 없는 교회조차도, (없으면 본부의) 사도, 선지자, 교사,
목사, 복음 전도자에게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과는 교회가 아주 풍성하게 되었고, 성도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은사들이 풀어졌습니다.
교회는 초자연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표적과 이적들이 나타났습니다.
◑1. 첫 사도센터는 <예루살렘 교회>이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초대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사도 센터라는 개념을 받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예루살렘은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센터’ 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에 집에서, 회당에서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살았든지
예루살렘이라는 중앙의 허브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를 이 땅에 모시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가르침과 훈련, 모임의 장소였습니다.
일 년에 세 번, 모든 유대인들은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와야 했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의 역할은
유대교인들을 위한 예루살렘의 역할과 아주 비슷했습니다.
우리가 행2장에서 보는 것처럼,
그 장소는 강도 높은 가르침과 훈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모임의 장소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계속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행20:16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세 번째 선교여정을 짧게 단축시켰습니다.
1) 예루살렘은 파송하는 장소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가 복음화 되었습니다.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바나바가 예루살렘에서 파송을 받았습니다.
2) 예루살렘은 집회, 회의를 위한 장소였습니다.
행15장에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을 때
교회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만나 이를 의논, 결정했습니다.
3) 예루살렘은 또한 베푸는 장소, 센터였습니다.
행4:35에 성도들이 헌물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4) 서신서에서, 우리는 다양한 교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위해
헌금을 들고 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자원의 센터 resource center 가 되었습니다.
*영적, 인적, 물적 등 모든 자원의 저수지라는 뜻
모든 흩어진 교회들이 높은 차원의 사역에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역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또 왔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는 오중사역자들을 교회들로 또 파송해서 보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을 때, 예루살렘은 그곳에
오중 사역의 기초를 세우고자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도 센터는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준비시켰습니다.
행8장에 보면, 평범한 크리스천들이 나가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고,
복음을 전파하며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첫 사도적 센터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은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교회의 궁극적인 패턴(모형)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패턴은 안디옥이었습니다.
◑2. 두 번째 사도적/오중복음적인 <안디옥 교회>
안디옥은 지금의 터키 지역인데,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00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이곳은 예루살렘과는 아주 많이 다른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산악 지역에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은 그 당시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고,
중요한 무역의 경로가 겹치는 교차로에 있었습니다.
그 도시는 다양성을 지닌 도시였으며, 그리스인, 로마인, 시리아인, 유대인들이 다 뒤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의 자궁과 같은 곳이었다면,
안디옥은 요람(아기 침대)이었습니다.
▲우리가 초대교회의 성장을 추적해 보면
행2~7장 – 예루살렘에서 교회가 시작됩니다.
행8장 –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시작되어 신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집니다.
행9장에서 보면 –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갈릴리에 걸쳐 아주 건강한 교회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행11장 – 그러나 이 시점에 이르러, 교회는 아주 높이 뛰어오르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의 출현으로
▲그럼 안디옥 교회는 어떤 면이 특별했는가요?
당시 엄청나게 큰 안디옥이라는 도시에서, 중요한 전환이 교회 안에 일어났습니다.
행11장에, 우리는 안디옥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 메시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음을 봅니다.
그러면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시작합니다.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제사장 나라로, 이방인들의 빛으로
(구약의 예언) 그 부르심을 안디옥에서 완전히 성취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믿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한 새 사람으로 함께 나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행2장에 약간 맛보기가 있었지만요
예루살렘은 교회의 자궁으로 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 필요한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방인 신자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믿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한 새 사람으로 함께 나아오는 것이었는데, 이방인들이 없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다양한 인종이 있는 안디옥 도시로 그 센터를 옮기셨습니다.
안디옥은 다양한 인종이 모이는 melting pot 냄비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디옥에서 하나님께서 두 번째 사도 센터를 세우십니다.
▲이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안디옥에서 벌어진 일을 들었을 때,
확인해보기 위해 바나바를 거기로 보냈다고 나옵니다. 행11:22
바나바는 사도였습니다.
원래 12사도 중 하나는 아니었습니다.
‘2세대 사도’인 셈이죠. 2nd generation apostle
행14;14 바울과 바나바 둘 다 사도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 하나님의 역사 임을 그가 봅니다.
그래서 그가 사도로서 가서, 교회 질서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사도적 센터, 기반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죠?
하나님은 ‘첫째는 사도요’ 고전12:28
하지만 바나바는, 자신의 사도적 은사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왜냐면 그가 안디옥 교회를 보니까, 많은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
그들은 토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보니까,
이 이방인들이 진짜 필요한 게 뭐냐면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가르치는 교사로 이끄십니다. 나중에 바울로 알려진 인물이죠.
행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안디옥에 가르치고 훈련하는 센터가 된 것입니다.
행11:27~28,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요?
안디옥 교회에는 사도가 있었고, 교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적인 면에서는 아직 강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예언자들을 보내어 안디옥에서 사역하게 했습니다.
자, 사도적 센터에 대해서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사도적 센터는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상호의존적입니다.
한 곳의 부족한 점을, 다른 곳이 채워줍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온 예언자들 중 한 명인 아가보는
큰 흉년이 온 로마제국을 휩쓸 것을 예언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이에 어떻게 반응했든지 보십시다.
행11:29~30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이렇게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부조를 보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사도적 센터로부터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자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행13장에 이르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행13;1
보십시오. 선지자들, 교사들,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즉 여러 명의 오중사역자들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오중 사역이 세워져 있었다는 겁니다.
고전12장에 보면, 사도, 선지자 그리고 교사가 제 위치에 있을 때
다른 모든 은사들이 기능하기 시작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2
‘이에 그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3
그러므로 안디옥교회는, 사도적 센터로서 이제 “파송”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이 거기서 열방으로 나가는 본부, 베이스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는, 온전한 사도적 센터로 세워집니다.
◑3. 행19장에, 또 다른 사도적 센터가 나오는데 <에베소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안디옥에서의 패턴이 반복됩니다
행19장에, 바울은 에베소로 가서 교회를 시작하고,
거기서 회심한 자들을 대상으로 2년 동안 머물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에베소는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사도적 센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전 도시와 주위 지역으로 소아시아 모든 도시에
복음이 이르렀습니다.
계2~3장은,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7교회들을 묘사합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교회가 에베소
이어서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에베소에 있는 사도적 센터는 훈련시키고
준비시키는 센터 이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아웃리치(파송) 센터였습니다.
그래서 소아지아 모든 지역은
에베소 교회로부터 세워진 교회였던 것입니다.
◑4. 또 다른 사도적 센터는 <고린도 교회>입니다.
안디옥에 있었던 패턴이 고린도에서 반복됩니다.
고린도에 있는 사도적 센터는 바울의 두 번째 선교 여행 중에 세워졌습니다.
바울은 안디옥으로부터 나가서, 아시아 지역에서 사역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드로아(아시아)에 도착했을 때,
성령께서 마게도냐(유럽)로 건너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배 타고, 바울은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경계선을 건넜습니다.
그가 유럽의 빌립보 도시에 처음으로 도착합니다.
빌립보에서 – 데살로니가 – 뵈레아 로
갈 때마다 그 도시에 (작은)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유럽 지역에 가서 고린도교회를 세웠는데
안디옥교회 아시아 지역의 사도적 센터교회였고
고린도교회는 유럽 지역의 사도적 센터교회가 되었죠
센터교회의 역할을 하려면 지리적으로 가까워야 됩니다
가까워야 서로 교류가 되며 주고 받고 하게 되는데
소아시아 지역 교회들은 고린도교회로부터 (멀어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없는 거죠
마게도냐, 유럽, 그리스 지역의 교회들은
고린도교회가 그들의 사도적 센터교회였어요
또 당시에 고린도가 가장 거기서 대도시였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3개월 만에 새로운 교회를 3도시에, 세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세울 수 있었던 걸까요?
회당이 있었기 때문에, 회당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구약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식사시간 때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고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바울이 예수님을 소개했을 때
그러면서 같이 모여서 ‘우리가 이 성령의 은사를 활성화하자’
그렇게 한 다음에 바울이 다음 도시로 간 것입니다.
떠나면서 그럽니다. ‘내가 서신을 보낼게요!’
이렇게 그가 3개월 안에, 3개의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러다가 그가 남쪽으로 그리스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까지 내려갑니다.
하지만 고린도에서 바울은 교회를 세우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합니다.
그는 안디옥 패턴을 고린도에서 반복합니다.
바울은 그냥 고린도에서 교회를 세우고, 다음 도시로 옮겨가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3년을) 머물면서 거기서 가르치고 훈련하는 센터를 세웁니다.
바울이 처음 1년 반동안 새로운 신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했습니다.
고린도는 가르침과 훈련을 하는 "사도적 센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다른 교회들에게 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 작은 교회들이 오중사역에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적 팀을 내보내는 센터가 됩니다.
▲사도적 센터의 결과
이처럼 초대교회는 작거나 (영적, 인적 등 모든) 자원이 거의 없는 상태로
고립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원수의 공격을 받고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배가시키고 확장시키는 자원과 훈련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변화되었습니다!
◑정리합니다.
첫 사도적 센터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사역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훈련시키고
성도들은 거기서 온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다음 사도적 센터는 안디옥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들어왔고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을 1년동안 가르쳤습니다. 팀을 이루어 열방에 파송했습니다.
그 다음 사도적 센터는 에베소였습니다.
거기에 훈련센터가 세워지고, 그 소아시아 지역들을 점령해 나갔습니다.
그 다음 사도적 센터는 고린도였습니다.
여러분이 초대교회 역사 4백년을 보면, 이처럼 나라에서 나라로 퍼집니다.
이렇게 초대교회 전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패턴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암흑시대 중세교회 시대에
교회는 하나님의 이런 계획을 버렸습니다.
그 가운데 좋은 소식은, 사도적 교회가 지금 회복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추수를 경험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가 교회들이 이렇게 연결되어서, 모든 교회들이 오중사역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교회가 이러한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2001년 우리는 두 번째 사도적 시대로 들어갔습니다. *첫번째는 사도행전 시대
그때부터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사도가 교회에 일부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안디옥과 같은 사도적 센터가 등장하는 것을
지난 5년 동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태국에서도, 사도적 센터를 통해 사역합니다.
일본에서도, 두 곳에 사도적 센터가 있습니다.
브라질에도, 놀라운 사도적 센터가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지금 오중사역이 샘솟듯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텍사스에 있는 Global Spirit Center가 바로 또한 사도적 센터입니다.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 사도적 센터입니다.
사람들이 거기 모이는 것은 오중사역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사도, 선지자, 교사 등 팀을 만들어, 거기서 온 세계로 파송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바울 시대에 없었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교사,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수천 개의 교회들, 가정 교회들이 오중사역과 연결되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정교회에 성도 3명만 있어도, 여기 연결되어 오중사역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은사가 활성화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팀으로 알래스카가 있습니다.
그 북극 지역은 엄청 추웠고, 작은 에스키모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성령님과 은사들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그곳에서도 오중사역을 가르쳤습니다.
텍사스의 Global Spirit Center와 같은 그런 그룹들이
세계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적 센터를 한국에서도 세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여러분은
‘오중 사역 듣기는 좋지만 우리는 할 수 없어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중사역으로 기능할 수 있는 열쇠가 무엇이냐?
사도적으로 정렬align 되는 (내가 함께 거기와 열을 맞추는) 겁니다.
*그 질서에 들어가서, 나도 열을 맞추어 옆에 나란히 서는 것.
사도적 센터를 통해서 연결되므로요. 바로 이것이 신약의 패턴입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사도적 센터가 돌아왔습니다.
교회들이 사도적 센터와 함께 정렬되고, 관계를 계발해 나갈 때
오중사역은 계속 풀어지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성도들은 사역할 수 있도록 세워집니다. '구비'됩니다. 엡4:11~12 equipped
그결과 새 부대가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새 부대를 만들 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새포도주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새 포도주를 받을 준비를 하십시오! 아멘!
사도적 센터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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