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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에 대한 10가지 고발장 中 (1~2장)
10 indictments against modern churches 영한 자막
◑도입
▲주님께 기도로 나아갑시다.
아버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든 것은 펼쳐진 책과 같이 주님 앞에 있습니다.
누가 당신의 임재하심과 당신의 눈앞에서
자기의 마음을 숨길 수 있습니까?
가장 영리한 사람들의 행동들도 주님 앞에서 다 드러납니다.
당신의 전지하심은 한계가 없으며, 은혜가 아니었다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나는 더욱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있었습니다.
저처럼 가장 약한 자들에게 부어지며, 당신의 영광에 풍성한,
풍부하고 영광스러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당신 되심과 당신의 하신 모든 일들을 인하여
당신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땅 아래에 당신과 같은 분이 없습니다.
당신은 왕이시며 다른 왕은 없습니다.
당신은 구원자시며, 당신은 그 영광을
다른 누구와도 나누어 가지지 않으십니다.
아버지, 오늘밤 당신은 나를 아시며 내가 커다란
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십니다.
당신께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약한 자,
형제들 중에 가장 미천한 자(폴 워셔)를 부르셨고,
당신의 은혜로, 때로는 더 작은 자가 더 큰 자를 가르친다는
사실이 아니라면, 제가 왜 여기에 서 있겠습니까?
그것이 언제나 나의 처지이며, 그래서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을 경배합니다.
아버지, 오늘밤 우리를 도와주소서.
말의 유창함이나 탁월한 지성 따위는 사라지게 하소서.
진리가 앞서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의 교회의 상태가 더 영광스럽게 되도록
내가 변화하게 하소서.
나 자신과 여기에서 듣는 자들을 위해 은혜위에 은혜와,
자비위에 자비를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그러면 우리가 도움을 받을 것이고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그 도우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자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저녁, 제가 이 강단에 선 것은 커다란 특권입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 서서 부흥, 개혁,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 등과 같은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제게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러나 오늘밤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기소장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망의 기소장입니다. *Indictment of hope
이번 집회 가운데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기도하는 동안,
하나의 커다란 결론, 커다란 부담감이 내 마음에 지워졌습니다.
우리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우리가 만든 모든 문제들을 다 청소해 주시기만을
그저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이 하신 일과
그분이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와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교회를 이끌어가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한
분명한 방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적 원칙이 우리 모두 가운데서 위반되고 있으면서
또 다른 성경적 계시를 달라고 외치는 것은 무익합니다.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부흥과 개혁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지 않다면,
마귀는 그런 사람들을 내버려 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진리인 성경이 주어져 있고
피상적으로 보면, 지금 우리의 상태는 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태로는,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부흥에 대한 노력을 축복해주시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볼 때, 모세에게 어떻게 성막을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세부적인 설명들이 주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모세를 위해 주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교회를 위해서 주어진 것일까요? (교회를 위해서죠)
제가 앞으로 말씀드릴 10가지는
여러분 생각에 너무 세밀하다고 여기실지 모르나,
(모세의 성막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중 가장 작은 세부사항이라도 빼서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나 폴 워셔는 연약한 사람이며, 많은 약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10가지 고소장'이란 설교제목을 정했지만
내가 누구관대 다른 이를 기소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감히 이것은 제시하는 이유는,
제가 교회를 둘러보면서 성경과 비교해 볼 때,
마땅히 변화되어져야만 하는 분명한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마르틴 루터가 아닙니다.
이것은 비텐부르그의 문에 못 박힌 95개조의 선언문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마음에 지워진 부담이며
나는 이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반드시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을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말들은 일부 여러분들을 화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건방지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전달한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싫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진리에 대한 대면을 회피하지는 마십시오.
어떤 분은, 전달자인 저를 문제 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문제는 전달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가 말하는 것이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여러분이 듣는 것을 기뻐하며
“아멘” 외치고 싶으며,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싶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젊은 사역자라면,
이 진리들에 사로잡혀서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서
사랑 없이 여러분의 교회에 휘두르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의 제안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종류의 개혁이라도 하기 전에
여러분의 무릎에 피가 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여러 해 동안 섬겨 오신
더 나이든 사역자라면 제발 거만하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늙고 어리석은 왕이 그의 하인들 중
가장 약한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부탁드립니다.
오늘이 당신의 삶의 마지막 날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바꿀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후에 이 세상을 떠날 때,
적어도 당신이 성경적인 개혁을 시도했다는 것을 기억하며
영광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제 말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지금 이 나라 미국안에 커다란 각성이 일어나고 있고,
미국뿐만 아니라 내가 다녀왔던 유럽과 남미
그리고 많은 다른 장소에서도 나는
젊은이들이 그들이 떨어져나왔던 반석(그리스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펄전과 휫필드의 설교를 읽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레이븐힐, 마틴 로이드-존스,
토저 그리고 웨슬리의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지금 훌륭하고 놀라운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지 인기 있는 대중매체와 저명한 기독 잡지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발견해서 알리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여러분께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15년 전에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영적 각성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제가 세계 여러 곳에 다니면서 보니까
우리 미니스트리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세계 도처해서 일하시고 계시는 일들을 봅니다.
네덜란드에서도 수 천명의 젊은이들이
“기독교는, 우리는 변화되어야 한다” 하며 선포하며,
그래서 밤새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성경적 진리의 회복을 간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미에서는, 미국으로부터 건너 온 심리학적 기독교,
각종 얄팍한 전도의 기술들에 의해 너무나 많이
남미의 교회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 울면서 상한 심령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도심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때때로 새벽 두세 시 까지,
머리에 두건을 쓴 젊은 흑인 신자들과 성경과 신학을 진지하게 논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그들 젊은이들을 일으켜 쓰실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각성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부드럽게 말하고자 합니다.
40세 이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영적 각성에 대해 아무런 생각조차 없겠습니다만.
지난 교회 역사를 보면, 시대마다 영적 각성과 부흥을 가져왔던 세대는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은 옛 사람들과 옛날 방식들에서 돌아서서
영적 각성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에게 가서 말합니다.
“이것 좀 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거요.
웨일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세요.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세요.
이것 좀 보세요. 저것 좀 보세요. 그리고 이 가르침을 좀 보세요. 이건 정말로 놀랍습니다.”
그러면 그들 대부분은 그것을 외면하거나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내가 지난 25년간 설교해온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그들이 25년간 설교해 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마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흥은, 열심히 기도할 때 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흥은 네가 기도하든/안하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올 것이다.'
나는 이 두 진영 중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압니다.
지금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부흥과 영적 각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볼 때,
지금 부흥의 첫 열매들이 이미 태동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첫 열매들을 주신 분께서
모든 추수를 가져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제 10 가지의 고발들은,
제 폴 워셔가 믿기로, 우리의 교회가 변해야 할 것들입니다.
◐1. 첫 번째 고발은
<성경의 충분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sufficiency of the Bible
지금 일부 교단에서는, 성경이 충분하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부인하고 있는데요.
디모데후서 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지난 몇 십년간 '성경의 영감설'에 관한
강력한 전투가 있어 왔습니다. 자유주의 신학때문이었죠.
그런데 '성경적 유기적 영감설'만 믿는다면
그것은 전투의 반밖에 싸우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성경이 영감을 받은 것인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경이 오류가 없는가 하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반드시 응답되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성경의 충분성'까지 믿는 것입니다.
<성경의 영감설> *Bible inspiration
-<성경의 무오설>과 더불어 *Inerrancy of the Bible
-<성경의 충분성>까지 믿어야 한다는 것이죠. *Sufficiency of the Bible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
▲교회를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지 알려면,
'성경 한 권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소위 말하는
'모든 사회과학과 문화연구를 들여와야 하는가?' 입니다.
성경의 충분성을 믿는 사람은,
성경 한 권만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다른 사회과학적 학문을, 목회나 기독교에 도입하지 않습니다. *참고는 할 수 있겠죠.
그것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 의견에는, 지금 기독교계에는
여러 사회과학이, 우리들 대다수가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교회와 전도와 선교학에
살금살금 기어 들어와서
이제 더 이상 우리가 하는 일이
더 이상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이 교회에 주요 영향력이 되었습니다.
성경보다요!
여러해 전에,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
한 교수가 들어와서 칠판에 사람 발자국들을 그리기 시작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칠판을 가로질러 발자국을 그린 후,
우리 모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학교의 복도들을 누비고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이 발자국 소리가 사도 바울이나 심지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또한 교회가
어떤 일이 정말 힘들어지면
(기도와 말씀으로 가는게 아니라)
사회적 전문가들에게로 갈 필요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거짓말입니다.
여기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딤후3:17
성경 한 권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충분성
예루살렘이 로마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모든 현대 사회과학 modern social science 과, 우리 기독교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왜 전도와, 선교와, 소위 말하는 교회 성장이
인류학자, 사회학자, 경제학도들에 의해 많이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왜 그 이론들을 기독교에 접목시키고 있습니까?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그런가요?
우리 교회의 모든 활동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야 합니다.
선교의 모든 활동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 활동과 교회 활동,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성경을 펴고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오, 하나님?’ 이라는 한 가지 질문만 하는
신학자와 성경학자로부터 흘러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떤 교회에 참석할 것인지를 알아보려고
설문지를 보내서는 안 됩니다. 세상 마케팅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는 찾는 자에게 친절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오직 한분, 주님을 더욱 찾아야 합니다. 전도와 교회 성장에 관해서요!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며
그들을 세밀히 살펴야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도외시한 채, 세상 과학으로, 그들에게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독교 제국을 건설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부름 받았습니다.
잠시 이사야가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 사8:19.
이 구절은 오늘날 사회과학과 교회성장학파에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물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삼사년마다 한 번씩
그들의 모든 이론들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삼사년마다 여러분의 교회를
세상이 볼 때 최고로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한
다른 유행이 찾아옵니다. 다른 이론과 다른 세미나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가장 잘 알려진 교회 성장 전문가가
자신의 모든 이론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상한 심령과 눈물로 무릎을 꿇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는 또 다른 이론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기 이사야서에서 말합니다.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사8:19
교인으로서, 설교자로서,
목회자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나가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상담을 해야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두 번째 고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 Ignorance of God
때때로 사람들이 이렇게 요청합니다.
“폴 형제님, 와서 하나님의 속성 Attribute of God 에 대해
일주일간 시리즈를 해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 경우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형제님, 그것에 대해 잘 생각해 보셨나요?”
“잘 생각해 봤냐니 무슨 뜻입니까?”
나는 말합니다.
“목사님, 제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지고함, 하나님의 영광 등에 대해,
즉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해
당신의 교인들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교인 중 가장 훌륭하고 오래된 신자의 일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런 말을 할 텐데요.
‘그건 내가 아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은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마음에 스스로 만든 하나님이 있고
그들은 자신이 만든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9:23-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 인줄 깨닫는 것이라.”
시편 50편.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시50:21, 22
자, 여기서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의 속성이나 신학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적용할 데가 없는, 고상한 이론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실제적으로 적용할 데가 없다.’
라고 말하는 자신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왜 모든 기독서점들이 자기 도움에 관한 책들과
‘그것을 하는 다섯 가지 방법’과
‘독실해지는 여섯 가지 방법’과
‘넘어지지 않는 열 가지’에 대한
책들로 가득한지 아십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의 삶에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는
얄팍한 깊이의 책들을 찾는 것입니다.
또한 출판사들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조차 죄악이 만연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집회에,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것이 언제입니까?
목사로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적이 언제입니까?
미국에서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가르침 중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관계된 것이 얼마나 됩니까?
“나는 누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가르친 적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라고
대부분 말합니다.
남들 하는대로, 흐름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런 미성숙한 모습의 신자들이 된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것이 모든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영생은 여러분이 영광의 문들을 지나갈 때
시작되지 않습니다.
영생은, 현재의 회심 conversion 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장래에 천국에 가서, 진주 문을 여닫고
황금 길을 걸어가는 것에 대해
여러분이 정말로 황홀해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정말 놀랄 일은
거기에는 영광이 무한하신 분이 계시고
여러분은 그분을 좇아가는데 영원의 영원을 보내게 될 것이며
그래도 결코 그분의 산기슭 주변에조차
여러분의 팔이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은 크시고, 높으시고, 영광스런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분을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혹은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하나님 속성'을 연구하기를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이 읽고 싶어하고,
알기 원하는 많은 많은 책들이 있겠지만,
'하나님을 아는데' 대한 책을 꺼내십시오.
바로 이 책(
성경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속성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공부하십시오.
▲저는 주일 아침이 되면, 이런 문제들 때문에,
차라리 주일 아침이 없는 것이 더 낫겠다고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일요일 아침은 미국에서 일주일 가운데
우상숭배가 가장 심하게 행해지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대다수의 군중들은 그들 자신의 육신에 의해,
자기 마음대로 만든 하나님,
또는 세상적 지성이 설명하는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하나님을 만들었고
그는 여호와보다는 산타클로스를 더 닮았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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