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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에 대한 10가지 고발장 (5장) 마7:23 출처
◑5. 다섯 번째 고발: 중생의 교리에 대한 무지
Ignorance of the doctrine of Regeneration
여러분, 이것을 직설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나는 여기에 칼빈주의자도 있고, 알미니안도 있고
그 중간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는 저 스스로 철저히 ‘스펄전주의자’ 입니다만,
칼빈주의가 문제가 아닙니다. 스펄전주의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고요, 누구의 신학을 두고서 논쟁할 필요는 없고요,
핵심적 문제가 뭔지 말씀드리죠.
중생 Regeneration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웨슬리와 레이븐힐과 토저와
(‘극단적 회심론’을 주장하는)
나머지 다른 분들과도 교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세밀한 문제들에 대해 그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중생이요, 구원입니다.
그들은 모두
중생, 구원은 설교자에 의해 조작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심령을 변화시켜 주셔야.. 그게 중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폴 워셔 역시
웨슬리, 스펄전 휫필드 등 그들과 함께
‘중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 라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즉, 하나님이 그의 내면을 변화시켜 주신 사람만, 진정 중생한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주를 창조하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지만,
‘성령의 중생하게 하시는 사역’에는
그 보다 더 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 죽은 심령을 살리고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중생’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새사람으로 재창조하는 일은,
이 세상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과 같은,
‘놀라운 창조’의 역사입니다.
또 다르게 비유하자면
중생은
우리 구세주가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똑같이 새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까요!
설교자들도 있고 강해자도 있고, 교사도 있는데,
그들 모두가 다 교회의 건강을 위해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하셔야 합니다.
캠벨 몰건처럼, 그분이
그 위엄 있는 자기 강대상으로 설교하러 올라갈 때
이렇게 스스로 인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자들 앞의 양같이.”
나는 그렇게 설교단에 올라갑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는 ‘죄인을 중생시키시는 성령의 나타남’이 없이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죽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죄인을 중생시키시는 성령의 나타남’이 있으려면,
자신은 강대상에 ‘죽으러,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설교자는, 자신을 선지자로 여기고서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말합니다.
설교자는 언제나, 아주 메마를 뼈들이 가득 있는 골짜기에
서 있는 에스겔과 같다고요.
그 뼈들은 아주 메말라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예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바람이
이 죽어서 뼈만 남은 이들 위에 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 이 사망을 당한 자들에게 불어 살게 하라’
그 생기, 성령의 바람이 없으면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죽은 영혼이 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설교자의 사명이라고 굳게 붙잡는다면,
이 나라에서 ‘전도’의 이름으로 너무나 많이 행해지고 있는
조작에
더 이상 자신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중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교리’에 대해, 웨슬리를, 휫필드를 살펴보십시오.
당시에 그들이 직면했던 현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현실이 어떠했습니까?
당시 18세기에, 영국과 미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유아세례를 받았고요.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확신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악마처럼 살았습니다.
성경적 중생의 교리는 사라지고,
당시 신자들은 신조, 교리문답 등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쉽게 말해서, 교리를 정확히 믿고 고백하면, 구원 받은 줄로 여겼습니다.
이때 웨슬리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외치기를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 의롭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생활의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믿음 안에 있는지 자신을 확증해 보십시오.
당신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함을 받은 것을 확실히 하십시오.
여러분은 거듭나야 합니다.”
▲여기 미국에서는 지난 몇 십 년간에 유행한
인스턴트 식의 전도 때문에,
‘거듭남, 중생’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단지 여러분이 어떤 집회에 참석해서, 그때 한번 믿기로 결단한 적이 있고
그것이 진지했었다면.. 중생한 것으로, 거듭난 것으로 뜻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삶에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재창조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지적 동의’이지, 진정한 ‘성경적 중생’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변화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까?
그걸 확신할 수 없다면, 그건 ‘결단주의’이지, 거듭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직면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직면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죠.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유아세례였습니다.
사람들은 유아세례만 받으면, 자기가 신자가 되었다고 착각했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천주교회에 등록신자만 되면,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했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접 기도’입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내가 전쟁을 선포하는 대상이
바로 ‘영접 기도’이며, 그 폐해성입니다.
바로 이것을 말씀드리기 위해, 제가 여기에 섰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의견에는
종교개혁 때는 ‘유아세례’가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냈다면,
오늘날 개신교와 복음주의에는
그 ‘영접 기도’가
이 지구상의 어떤 것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경을 열어서, 성경 속에서 누가 그렇게 전도했었다는 것이
어디에 나오는지 나한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어디서, 인스턴트로 전도하고, 영접기도 따라하게 해서 결신시켰습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는 가깝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러셨지,
‘자 이제 나를 자신의 마음으로 초대할 사람이 누구냐? 손 들어보세요!’
하고 말했다고 쓰여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 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그들의 삶속에 적어도 한번은 영접기도를 했고,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그들이 그 순간에는 진지했기 때문에
‘당신은 이제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한 사실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라고 물으면,
그들은 “그럼요, 나는 지금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고
나에게 거듭났음의 확신을 주는, 변화의 강력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에 나는 한번 영접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귀처럼 삽니다.
결단주의, decisionism,
자기가 믿기로 한 때 결심만 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결심이 진지했기 때문에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그는 그들에게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여러분의 결신의 순간으로 되돌아가서
그 결신이 진지했었는지 한번 점검해 봅시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을 시험하십시오.
자신을 살펴서 여러분이 믿음가운데 있는지 확증해 보십시오.”
▲여러분, 나는 구원이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것은 은혜위에 은혜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증거는
여러분이 거듭나던 순간의 진지함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이후 여러분 삶에 “계속해서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여러분, 신자라는 우리가 한 행위들을 좀 보십시오.
나무는 열매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60~70%의 미국인들이 자기들은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에 몇 천 명의 아기들을 죽입니까? *낙태
우리는 우리의 비윤리성 때문에 전 세계에서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여깁니다.
나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정면으로 설교자들에게 돌립니다.
‘중생에 대한 교리’를 오해했기 때문이라고요!
▲비성경적인 복음으로의 초대
Unbiblical Gospel Invitation
우리는 이것에 대해 이미 조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더 깊게 들여다보기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삶에 대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미국인에게 말하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선생님,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삶에 대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뭐라고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구요?
와, 굉장한데요. 나도 나를 사랑하거든요!
와, 이거 놀랍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세요?
나도 내 삶에 대해 놀라운 계획이 있는데요.
그러므로 만약 내가 그를 내 삶에 받아들이면
내가 가장 멋진 삶을 지금 갖게 될 거네요.
이거 완전 놀라운데요...”
여러분, 이것은 성경적인 전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멋진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것이
그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와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과 진리가 풍성하시도다.
그는 수천 명에게 인자를 보이시며,
허물과 죄악을 용서하신다.
하지만 그는 형벌 받을 자에게, 결코 그 형벌을 면치 않으실 것이다.”
모세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모세는 (두려워)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시작합니다. *Attribute of God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사람이 진리의 기준이 없다면, 즉 하나님이 없다면,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떤 것이라도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공의와 두려우심,
그러면서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을 전파할 때,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회개할 마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소한 인간적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라고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하나님의 속성을 알려주는 설교로
전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부터 그에게
거듭남과 구원은,
그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줘야 합니다.
▲물론 설교자, 전도자가 이런 질문은 합니다.
“이봐요, 당신은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죄에 대해서, 아주 피상적인 질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몇 년 전에 제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와 같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의사가 들어와서
“이봐요, 바바라, 당신은 암으로 죽는다 라는 것을 아시죠?”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표면적으로 대합니다.
무게도 없고 엄숙함도 없습니다.
“선생님, 당신에게 끔찍한 병폐가 있고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진지하고 무게있게 전도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단지
“선생님,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라고 한다면,
“예,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건 압니다.”
이렇게 피상적으로 묻고, 피상적으로 답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성령이,
여러분의 복음 설교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에 천지창조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서,
그들이 한때 사랑했던 죄가 지금은 미워지고,
한때는 사랑했던 그 죄로부터
지금은 마치 용을 피해 도망가는 것처럼
피해 도망가고 싶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는 질문은 “천국에 가기 원하십니까?” 입니다.
이것이 내가 우리 아이들을 소위 복음주의 교회의
주일학교와 여름성경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관한 영화를 보여준 다음에,
어떤 사람들이 서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너무 훌륭하지 않니?” 라고 말합니다.
“너희들 중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니?” 라고 말합니다.
“오, 저요.”
“누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기 원하니?”
“오, 저요.”
그리고 그들은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종의 기독교 문화, 적어도 교회 문화 속에
자라고 있기 때문에 얼마 동안은 잘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15~16세,
자기 의지가 생기는 때가 되면
매였던 줄을 끊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죄악가운데 살기 시작하고,
우리는 그들을 뒤좇아 다니며
“너는 크리스챤이야. 너는 단지 크리스챤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을 뿐이야.
타락하지 마라.” 라고 말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너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었다.
너는 심지어 세례도 받았고, 그때 그분을 믿는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까 너는 그분에게서 떠나간 것 같구나.
자신의 믿음을 살펴봐라. 자신을 신앙을 확증해 보아라.
네가 정말로 중생했다는 증거가 거의 없구나.”
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너는 거듭나야 한다’고요!
‘너는 아직 회심 conversion하지 않았다!’고요.
▲그런 다음에 우리 자녀들은
대학 졸업 후 24, 25세, 또는 30세가 되었을 때,
그들은 교회로 돌아와서
그들의 삶을 재헌신하고 다시 교회생활을 시작하고,
기독교적 사회 운동에도 참여하는 자녀가 있는데요,
재헌신이 아니라, 거듭나야 합니다.
회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성령의 재창조역사로
그의 내면이 변화되어야 하고,
그 이후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헌신은 하더라도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고 맙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것입니다.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여러분은 말합니다.
“폴 형제, 당신은 너무 화를 내는군요.”
누군가는 심령의 부흥을 위해서 외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초도 바로 세워놓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중생, 거듭남의 교리조차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흥이 오면, 우리의 잘못된 기초를 바로 세워주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멀쩡한 눈과 귀를 가지고 있고
성경이 우리 앞에 있는데도
이런 문제들을 고치지 않아야 합니까?
▲천국에 가고 싶으십니까?
친구 여러분들,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천국에 가고 싶은가가 아니라 이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하나님을 원하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을 변경해야 합니다.
‘천국에 가기를 원하십니까?’를 묻지 말고,
‘당신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을 멈추셨습니까?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죄보다 더 소중해졌습니까?
당신은 세상보다 그분을 더 간절히 갈망하십니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있으면서도, 그걸 원합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이, 내가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여러분이 더 이상 상처받지도 않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곳(천국)으로 가기 원하는가 ..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거야 다 원하죠.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단락의 제목입니다.
.
문제는 이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진정 원하십니까? 거룩하기를 원하십니까?
세상의 좋은 것보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더 소중하게 되었습니까?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천국에 가기 원하십니까?”
“음, 네.”
“음,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으로 들어오시도록 기도하시겠습니까?”
그 방법을 사용해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방법 때문이 아닙니다.
그 방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선생님, 당신은 예수님을 갈망하십니까?
당신의 죄를 알겠습니까?”
“오, 그럼요. 예, 그렇습니다.”
“선생님, 회개가 어떤 것인지, 당신의 삶에 이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성령의 증거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여기 몇 구절의 성경을 봅시다.
당신은 상한 심령을 가지셨습니까?
당신이 싸워왔던 모든 것들이 붕괴된 것과
지금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과, 새로운 거룩한 열망들과
새로운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십니까?”
“예, 그것이 보입니다.”
“선생님, 그것이 회개의 첫 열매들 일 수 있습니다.
자, 당신을 그리스도께 던지십시오. 헌신하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제가 또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당신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구원받는지 말할 수 있고
당신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에 대한 성경적인 원칙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제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할 권세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구원의 확신을 남발하지 마십시오.
결단주의로, ‘값싼 은혜’로 전도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거기에다 ‘구원의 확신’까지 주지는 마십시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진심이었고, 그분은 당신이 그분을 초청하면
들어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이렇게 함부로 선포하지 마십시오!
만약 그들이, 계속적인 세속적 습관 가운데 살면서
그런 죄악된 삶에 대해 두려움이 없고
신앙 성장이 없이 몇 년째 계속 살고 있다면,
그는 애당초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결단주의로 예수 믿은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개인적 ‘제자도’의 부족의 탓으로 돌리고
그것을 ‘세속적 그리스도인’의 교리로 치부해 버립니다.
세속적 그리스도인의 교리가 더 많은 생명을 파괴시켰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냈습니다.
*세속적으로 살더라도, 그는 예수를 믿으므로
그가 구원받은 크리스천으로
자타가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만
저 폴 워셔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씨름합니까? 예.
그리스도인이 죄에 빠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빨리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죄 가운데 계속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평생을 열매 없이 계속적으로
세속적인 삶을 살면서도
진짜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 육적인 크리스천이 carnal Christian 진정 구원받은 성도라면,
신약의 언약에 대한 모든 약속들은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히브리서에서
말씀하신 모든 것들이 거짓말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세속적인 열매를 맺고 산다면
그는 ‘육적인 크리스천’이 아니라,
아예 크리스천이 안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변화의 역사를, 그 심령가운데 아직 일으키지 않으신 것입니다.
*물론 거듭난 신자가, 거듭난 직후에
막바로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합니다.
신앙의 성숙이 아주 느리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죄의 권능’을 깨닫고 있습니까?
회개하는 삶을 꾸준히 살고 있습니까?
현실 생활 중심이 아니라, 영생 중심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지속적인 기도생활,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까?
이런 열매들을 보고서, 거듭난 여부를 판단할 수는 있지만,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부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정확히 아십니다.
다섯 번째 고발을 요약하면,
중생의 교리에 대한 무지로 인해
비성경적인 질문을 통해, 영접을 유도하는 일을 중지해야 합니다.
(*알래스카 간증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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