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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쉬츠
우리는 균형이라 불리는 바로 이것을 신중히 다뤄야 한다.
균형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균형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신에게는 아닐 수 있다.
현재 우리 교회에 필요한 것이 당신 교회에는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미국교회에는 필요한 것이 아르헨티나에는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나의 결혼생활에 필요한 것이 당신에게는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모순되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균형을 잡으시기 위해’ 우리로 잠시 동안
'균형을 벗어나게' 하셔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균형을 모색하다가
오히려 균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건실한 교리의 중요성을 굳게 믿는다.
그것은 교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균형은 교리나 신조 혹은 신앙체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나는 교회의 기본적인 교리에 정통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교리의 세부적인 것까지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영적 생활은 균형 잡혀 있지 않다.
그들은 하루 종일 공부할 수는 있겠지만,
두 시간 동안 조용히 경배하거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앉아 있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지겨워할 것이다.
부탁하건대, 당신이 교리적으로 건전하다고 해서 영적으로 균형 잡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도 바리새인들처럼 " 성경을 상고" (요5:39) 하고 잘 배우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모를 수 있다.
세례 요한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의 절반도 알지 못했고
그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 더 균형 잡혀 있었다. 왜 그랬는가?
그의 "균형 잡히지 못한" 삶이 그에게는 하나님의 "균형" 이었다.
'균형이란 얼마나 정상적인가라는 잣대로 측정되지 않는다.'
균형에 대한 욕구는 자칫 점잖게 보이려는 욕구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세상에 정상적인 존재로 여겨진다면
아마도 성경적으로는 균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교회와 관련되어 있는 세계의 대부분이 그렇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20퍼센트 이하만이 십일조를 한다.
날마다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금식하는 사람은 훨씬 더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거의 나누지 않는다.
삼가 조심하여 아무나 당신에게 균형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라.
균형의 뿌리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이다.
우리가 그분께 보다 더 과격하게 헌신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된다.
혹자가 언젠가 말하기를, 과격한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보통사람보다 더 큰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그분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당신에게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결정하시게 하라. 그것이 우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라.
웃음이라면 또 그렇게 하라.
우리는 현상들을 추구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서도 안된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의 집회에서 나타난 이상한 현상들과 관련하여
그에게 주어진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비슷한 현상들이 휫필드의 집회들에서 일어나기 시작할 때,
그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거나 아니면 그들을
물리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휫필드가 대단히 존경했던 헌팅던 여사(Lady Huntingdon)는
상황을 다르게 보았다.
그녀는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당신은 실수하고 있군요.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지 마세요. 그들로 부르짓게 하세요.
그것이 당신의 설교보다 훨씬 더 많은 유익을 끼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우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그분께서 그분의 일을 그분의 방법으로 성취하실 것을 신뢰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균형에 대해 언급해야만 하는가?
그것이 부흥의 시기에는 항상 주된 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넘어지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성령의 영향력 아래
진동하기도 하고 몇몇 사람들은 성령의 술에 취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울부짖는 사람도 있다.
많은 이들이 기뻐 뛰여 춤을 춘다. 거기에는 별로 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시던 집회들에서 사람들은 지붕을 뜯기도 하고
나무에 기어오르기도 했다.
혹은 군중들 사이를 뚫고 나아가기도 하고
부르짖음을 통해 설교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분의 발에 눈물을 흘리며 그분 위에
향유를 쏟아 부은 사람도 있었다.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모임들은 여러 날 지속되었다.
거기에는 별로 균형이 존재하지 않았다.
부흥이 시작될 때, 균형의 열쇠는 지겨운 전통적 예배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다.
열쇠는 성령께서 친히 원하시는 바를 행하시며
그분이 원하시는 진리들을 강조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더치 쉬츠의 신간 <하나님의 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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