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의 교훈 신33:26~29 설교녹취, 정리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33:29
(성도는 행복의 근거를 하나님께만 찾아야지, 세상적인 우상에게서 찾으면 안 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
당신에게 힘과 권력이 있습니까?
거기에 온갖 악이 따라다니므로 절대로 조심하십시오!
호빗족 프로도에게서 교훈을 얻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힘과 권력 때문에... 결국 당신은 악으로 변해서 망할 것입니다!
아마 ‘벤허’가 지나가고 오늘날까지 최고의 영화는 ‘반지의 제왕’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 영국의 크리스천 톨킨이 지은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영화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
이 영화는 성서적입니다. 성서를 모르면 ‘반지의 제왕’의 참 의미를 모릅니다.
이 ‘반지’라고 하는 것은 ‘절대 권력’입니다. 거기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반지만 끼면, 이 반지만 가지면
전 세계를 무엇이든지 다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권력과,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지의 제왕’이라고 하는 말을 여기에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반지는, 권력과 능력과 부귀와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반지를 낀 사람에게 세상의 모든 악이 반지 속에 같이 있습니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같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지를 낀 사람이나 통치자는 누구든지
결국에는 불행해지고 망하며, 다 비참해 집니다.
악의 집합체니까 별의별 저주를 100% 다 받습니다.
그러니까 이 반지에는 한편으로는 어마어마한 영광과 권력이 있는가 하면,
그 배후에는 어두움 속에 감춰져있는 말할 수 없는 저주가 함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의미가 깊은 말인지 모릅니다!>
반지는 결국 싸움을 통해서 인간에게 넘어와
어떤 인간도, 어떤 강대국도, 어떤 통치자도 이것을 끼면 좋다가도
결국은 백발백중 모두 망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이 반지가 호빗족이라고 하는 난쟁이 족이 있는데,
이 호빗족에 프로도라고 하는 사람에게 넘겨집니다.
호빗족은 키가 너무 작으나 착합니다. 싸움도 전혀 할줄 모릅니다.
욕심도 전혀 없습니다. 너무너무 겸손하고 착한 호빗족에게 반지가 넘어옵니다.
반지를 가진 프로도는 이것이 뭔지 그 자체도 모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권력도 모르고, 물질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 때에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귀한 줄 알고 겸손하게 살면 누구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물질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악한 요소가 있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이 반지가 역사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 자체에 그런 욕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반지를 가지고 통치를 하려고 하는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프로도도 결국 반지를 오래 끼면서 이 반지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반지로 인하여 그 호빗족도, 프로도도 위험하게 되는데,
그는 속히 이것을 빨리 버려야 되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놀라운 결단입니다.
그래서 프로도는 둠산이라고 하는 용광로가 있는 곳에 버리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납니다. 반지를 버려야 됩니다.
떠나는데 거기에 천사도, 친구도 같이 갑니다.
천사가 같이 가는 것을, 요즘으로로 말하면 이것을 목사님도 같이 가는 겁니다.
먼 길을 같이 가는데, 반지를 끼고 있는 이상 전쟁도 끊임없이 일어나며,
일어날 때마다 늘 천사가, 친구가 도와주고,
유혹이 많이 일어날 때도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고,
늘 자제를 해 가면서 갑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그래서 반지를 가지고 가는데 가다가 마지막에 자기도 힘듭니다.
둠산에 결국 올라갈 때, 이 반지를 전에 가졌던 골룸이라고 하는 권력자가
이것을 가지려고 거기까지 옵니다.
마지막에 둠산에 올라가는데 프로도가 못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끝까지 자신과의 싸움을 말합니다.>
욕심이 일어나 다시 한 번 반지를 가지고 싶은데
거기에서 이 골룸과 대판 싸움이 일어납니다.
골룸은 어떻게든 이것을 가지려고 손가락을 물어 반지를 가져가버립니다.
손가락을 자르고 해서 절대권력인 이 반지를 가지고 날뛰다가
용광로에 자기도 같이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나 호빗족의 프로도는 살아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잘 살게 됐다는 결론입니다. 마지막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 말뜻이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인간의 참 만족, 참 행복, 참 기쁨과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것을 가져도... 항상 겸손해야 됩니다.
성도들도 출세할 수 있고, 인기 가질 수 있으며,
좋은 가정 이를 수 있고, 예쁜 미인과 살 수 있으며,
물질에도 복을 받고, 권력을 가질 수도 있는데,(반지를 가질 수 있는데)
오늘 이 호빗족(난장이를 뜻하는 말)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고,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난쟁이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오늘 교인도 자기가 조금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 집은 재앙이 같이 따라 옵니다. 좋은 것과 함께 온갖 재앙이 역사합니다.
(영화에서, ‘반지’는 모든 권력과 온갖 악을 동시에 가져다줍니다.)
이 세상에 반지의 제왕이 인기의 제왕이 되고, 권력의 제왕이 되고,
물질의 제왕이 되어서 살다가 결국에 안 망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좋은 것과 함께 별의별 비참한 온갖 악의 요소가 같이 역사합니다.
그러나 ‘세상적 축복’이 그런 성격을 가지고 설령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기도하고 하나님을 귀히 여기면
순간순간 주님이 지켜주시고 넘어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우리도 탈선하고 넘어질 가능성이 많이 있지만
‘나는 난쟁이다. 나는 부족하다. 내가 그러면 안 되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이 마음으로 계속 컨트롤을 해 나가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로 다윗왕은 권력을 가지고도 안 망했습니다.
사울도 망하고, 엘리도 망하고, 줄줄이 다 망하는데 다윗만 왜 안 망했습니까?
나는 호빗족이라는 겁니다. 나는 목동출신이라는 겁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늘 주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며,
새벽재단을 붙잡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의지합니다.’
이것 때문에 다윗은 끝까지 잘 갑니다.
▶이 세상의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끝까지 행복할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이 다 무너지는 것은
호빗족이 아니라, 반지의 제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년에 12만 가정이 붕괴되는 것은
모두 너무 잘나서 '반지'를 끼고 있으니, 그 가정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생활에도 그렇습니다.
무엇이든지 잘난 사람은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성가대도 너무 노래를 잘하면, 성가대에 오래 못 있습니다.
못해야지, 그래서 호빗족이 되어야 그 사람 오래 남지,
벌써 자기가 잘 한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모르고 있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 한다 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자기는 넘어집니다.
그래서 호빗족은, 이 프로도는 그것을 알게 되자
어떻게 하든 이 반지를 버려야 되겠다 라는 결심을 하며, 그 둠산을 향합니다.
그것을 버려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내 잘난 것과 싸워 이기는 자, 그것을 버리는 자가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불행은 어디에 있습니까? 반지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인을 만났기 때문에,
여러분이 너무 좋은 조건(반지) 때문에... 불행해 지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반지를 낀 목사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다 넘어집니다. 자랑할 것이 많고, 능력 많은 목사님은 다 넘어집니다.
호빗족 같은 목사가 끝까지 남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릅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반지'가 맥을 못 춥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세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고 주님을 의지하면 반지가 맥을 못 추는데,
조금만 잘 났다고 그러면 그 반지가 그를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반지가 온갖 악한 일을 만들어 그 가정과 그 교회에 난리법석을 만듭니다.
오늘 좋은 교회, 큰 교회, 우리 교회가 최고다, 우리 교회가 유명한 교회다,
우리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다, 이런 말을 하기만 하면 '반지'는 역사합니다.
항상 겸손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호빗족이야.’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십니다.
◑강영우 박사 간증...
불의의 사고로 그가 호빗족처럼 되었을 때, 누군가 도우는 손길이 끊이지 않다!
강영우 박사님은 12살 때 축구하다가 공에 맞아서 실명되었습니다.
한순간에 뛰어놀던 이 아이가 시각장애인이 됩니다.
12살인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의 가정은 그 순간 다 무너집니다.
동생들은 전부 고아원으로 넘어가고 어머니는 화병으로 돌아가십니다.
그러면서 다 무너진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사 이 호빗족,
불쌍한 한 시각장애인에게 주님의 손길이 다가옵니다.
그 순간부터 하나하나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천호동 공안과에 와서 치료하며,
그때부터 중학교 과정을 밟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낙심되는 일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러나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갑니다.
대학을 가야 되겠는데 연세대학에 가려고 하니
연세대학교 역사상 시각 장애인을 한 번도 받아준 일이 없지만
이 분이 들어가려고 하니 누군가 도와줍니다.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나니까 미국유학의 길을 가고 싶은데
우리나라 문교부 역사에 장애인을 외국에 유학 보낸 일이 없습니다.
당시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때, 건강한 사람도 유학 못가는 세상에
그 당시에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갑니까?
우리사회가 당시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장관의 마음을 누군가 움직입니다.
민관식 교육부장관을 제가 만났습니다.
그때 아무도 결정할 수 없는 일을 자기가 담대하게 했다는 겁니다.
누군가 자기 마음에 감동을 주더라는 겁니다.
이 분이 장가갈 때가 됐지만 쉽게 결혼할 수 없지 않습니까?
30년 전, 그 당시에 장애인이 어떻게 정상인과 결혼을 합니까?
시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끼리 만나서 결혼하는데,
그때 숙명여자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까지 다녀온 그 예쁜 아가씨 마음을
누군가 움직입니다. 누군가 역사하는 겁니다.
그래서 석은옥 아가씨가 결혼하겠다고 나서자, 온 집안이 난리통이 납니다.
대학을 나와 유학까지 다녀와서 세상에 부모형제 없는 저 가난하고 비참한 장님,
아무것도 없는 장님하고 결혼을 한다고 하니 집안이 야단이지만
누군가 움직였습니다. 자기는 강영우씨가 좋다라는 겁니다.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둘이 함께 유학을 떠났습니다.
애기를 안고 미국 유학을 가서도 거기서 누군가 계속 돕습니다.
하루는 셋집에서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공원으로 둘이 나갔습니다.
거기서 어떤 분이 시각장애인인 자기 남편을 그네를 태우면서 묻더랍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이 대학에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어디에 삽니까?”
“집이 없어 나가라고 그래서 지금 집을 나왔습니다.”
“그렇습니까?” 똑같은 입장에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우리 집에 방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에 오십시오!”
그래서 돈 하나 안들이고 방을 얻었습니다. 누군가 계속 돕는 것입니다.
▶성도는 왜 행복합니까?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 성도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일을 만나도
우리는 절대로 눈물 흘릴 일에도 눈물 흘리지 않고,
절망할 때도 왜 절망하지 않습니까?
누군가 가까이 오셔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누군가를 움직이시는 겁니다.
▶장애인이지만 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계속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는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하겠다 해서
수기를 써서 간증을 했는데,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들어보시고 너무 놀랍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 간증이 가이드포스트에 나갔고,
하나님은 그 가이드포스트를 누군가 보게 하십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게 이것을 보게 합니다. 누군가 도우시는 겁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5천만 미국 장애인들의 모든 정책, 그분들의 모든 환경,
모든 것을 돌보는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되게 하시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전 세계 인류의 장애인들을 돌보는 UN 장애인 위원회 부위원장이 되게 하시고
세계적인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과거에 보잘 것 없는 장애인이 되어 엉엉 울고 있는 12살 이 소년에게
누군가 가까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떤 위기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바라봅니다.
언제나 주님은 누군가를 보내서 당신을 격려하고 도우시며
누군가를 통해 쓰러진 당신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라인 강에 로렐라이 언덕 근처를 지나 갈 때 배들이 침몰하지 않습니까?
무슨 유령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 들으면서 중심을 잃어버리고 배가 기우뚱하면서 거기에 들이 박습니다.
오늘 세상의 논리를 들으면 가정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논리로 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다 파괴됩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만군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여러분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은 이렇게 좋은 '반지'를 끼고도, 불행하고 파멸되는 이유를 모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 반지만 가지고는 이 세상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언제나 난장이 호빗족처럼 스스로 낮추어 겸손할 때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실줄 믿습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이 힘들어 좌절하고 무너지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중보기도의 음성을 듣고, 무너진 그 자리에서 다시 벌떡 일어서십시오!
그 분을 위해 같이 기도해 주십시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 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을 위해 기도하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도와주네.
내가 홀로 병들어서, (시험 들어, 실패하여, 가난하여)
마음이 무너질 때 주님이 널 위해 도와주네.♬
◑「꽃들의 희망」에 나오는 우화 한 토막
땅에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늘 자기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나는 이 먼지 속에 늘 코를 쳐 박고, 모든 더러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평생 살아야 하다니...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가?'
걸어 다니는 짐승들을 보니 부러웠고,
뛰어다니는 짐승을 보면 흠모의 대상이었고,
더욱이 하늘을 훨훨 나는 짐승들을 보면.. 몹시 부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애벌레들이 어디를 향해 큰 행렬을 지어 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가는가?”
“매우 중요한 데로 가고 있다네!”
그 애벌레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애벌레 떼의 행렬을 앞질러 쫓아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애벌레들이 한 우람한 나무를 타고 줄지어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위의 애벌레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 위에 뭐가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데!”
애벌레들은 한 발짝이라도 먼저 가기 위해, 서로 남을 밀치고 아귀다툼하였습니다.
그 애벌레는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어, 자기도 남을 밀치고 당기고 싸웠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인지, 이제 자기도 나무에 올라가는 대열에 겨우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애벌레들과 한참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행렬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 위에 뭐가 있더냐?”
“가 봐야 아무 것도 없다네!”
그러자 동료 애벌레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구경할 것 다 구경하고,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고 나서, 말로는 아무 것도 없다고 그래!”
그 애벌레는 동료들과 함께 계속 위로 꼭대기까지 애를 쓰고 올라갔습니다.
정말 꼭대기 정상까지 가 보니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빈 하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탈하게 내려오는 길에
용을 쓰며 올라오는 여러 애벌레들의 행렬과 자연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저 위에 뭐가 있더냐?” 그들이 물었습니다.
“위에 올라가봐야 헛수고다. 아무 것도 없다던데, 사실이더라” 그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 둥치를 기어 올라오는 애벌레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애벌레는 절망적인 자기 인생을 깊이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한 나뭇가지에 자기 몸을 누이고 고착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기 내면을 깊숙이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자기 몸에 고치(캡슐, cocoon)가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 속에서 더 깊은 묵상을 하며, 그 모든 시간을 인내하며 견뎠습니다.
그랬더니 그 못생긴 애벌레가 변해서, 어느 날 찬란한 호랑나비가 되었습니다.
그 호랑나비는 이곳저곳 꽃들을 돌아다니면서
꽃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애쓰고 수고해서 계속 위로 올라갑니다. 계속 소유를 쌓습니다.
그런데 올라가 본 사람은, ‘위에 가면 아무 것도 없다’고 아무리 외쳐대도
밑에서 아귀다툼하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가져 봤으니 하는 소리야!’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우화입니다.
◑정채봉선생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60년대 서울에 올라온 한 시골 청년이 고향 친구에게 편지를 합니다.
‘서울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오직 일자리를 구하는데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일자리를 찾느라고 애쓰고 있다.’
70년대 들어와서 이 청년은 다시 고향 친구에게 편지를 합니다.
‘서울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돈에 있는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눈에 비친 서울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80년대 들어서 이 청년은 친구에게 다시 편지를 합니다.
‘지금 서울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권력에 있는 것 같다.
권력을 잡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경주한다.
권력이면 모든 일이 다 될 것처럼 생각한 나머지
그 권력을 잡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쓴다.’
90년대 들어와서 다시 편지를 합니다.
‘서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곧 스피드다.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단 1분의 시간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달린다.’
(그래서 성공주의와 자기 계발self development 등이 당시에 유행했습니다.)
60년대부터 각 십년(decade)마다
교회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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