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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내 거룩함을 도우심 / 존비비어

LNCK 2018. 6. 5. 17:51

www.youtube.com/watch?v=8eJOtpzyPFQ&feature=youtu.be

◈은혜로 내 거룩함을 도우심 /  존비비어              벧후1:3                스크랩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나는 너처럼 생각하지 않고 너처럼 말하지도 않고 너처럼 살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게 살고 있단다. 나의 삶의 수준으로 올라오너라." 는 말씀입니다.

 

은혜는 단지 용서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은혜는 진리가 명령하는 일을 하고 평범함을 뛰어넘도록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에베소서 3:10)

우리가 특별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기쁘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베드로후서 1:3)

 

특별한 삶을 살기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은혜는 공없이 얻는 것이며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은혜는 우리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

,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합니다.

 

은혜의 열매 가운데 하나는 "거룩"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많은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전합니다.

그것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입니다.

거룩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우리는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

거룩을 추구해야하는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미래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은 아무도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전합니다.

요한계시록 224절은 "이겨낸 자들은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볼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영광 가운데 그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을 추구해야 하는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거룩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인데, 이것은 지금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318절에서 분명히 전합니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이는 거룩하게 행하지 않으면 마음으로 주님을 볼 능력이 없고,

결국 우리는 변화되지 않는 다는 것이죠. 우리는 정보를 얻지만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거룩은 중요합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교회에 예수님이 돌아오시지 않는다고 성경에서 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아무 오점이 없는 교회에 오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실 교회에 대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수 있는 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특히 성적으로 거룩하게 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속에 있는 깊은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성적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나 불순종, 권력에 대한 탐욕, 분노등이 성적인 타락과 같은

외면의 문제를 일으키는 내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부족입니다.

 

비록 성적으로 깨끗한 것이 거룩의 전부는 아니지만,

음란은 거룩이 부족하다는 것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한다고 분명히 전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음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 심각성에 대해 전했습니다.

곧 모든 불의와 음란이 가득한 자요.. (로마서 1:29)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1:32)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46절에서8절까지 전하는 말씀을 계속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하고 엄히 경고한 대로

주께서는 이 모든 행위에 대해 징벌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부정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모로 현재의 교회와 비슷한 고린도 교회에 편지했습니다.

일부 성도가 음란에 휘말려 있었죠

바울은 이들을 강력하게 규탄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린도전서 10:1-4)

 

어려운 시기에 적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자.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5-12)

 

은혜를 받은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다 덮어 주시는 것으로 잘못 알려졌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리에 따라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새로운 성품에 협력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도들은 사도행전에 놀라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선도적인 사도들은 한목소리가 되어 기도하고 이 편지를 쓰고,

그것이 그들 안에 있는 성령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이 편지는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쓰신 것이라는 뜻이죠.

 

모든 믿는 자는 네가지 가운데 금욕을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네 가지 가운데 셋은 편지를 써야 했던 근본적이 이유였습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 목매어 죽인 것을 먹는 것이었죠.

이것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금지됐습니다.

사도들은 신약에도 이것을 계승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사도들이 하나를 더 추가했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사도행전15:28)

 

그들은 도둑질이나 거짓말, 살인이나 질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유대인이나 새롭게 믿게 된 이방인들이 음란을 자제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두둑질을 삼가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흥미롭지 않으세요?

그들이 한 가지 더한 것은 음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때부터 우상의 제물과 피, 목매어 죽인 것을 먹는 것이 금지돼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특별히 더 첨가한 것은 음란을 삼가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14-16)

 

영어성경은 반드시(must) 거룩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 처럼.

 

이제 "거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거룩(holy)은 그리스어 'hagios'에서 유래했습니다.

'구분되다. 성화되다. 성별되다. 깨끗하다. 도덕적으로 흠이없다.' 이렇게 정의됩니다.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구분, 성화, 하나님의 예배에 대한 헌신,

하나님의 순수하심을 공유하는것' 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은 한 국가로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믿는 자들은 세상속에서 거하고 세상과 교류하면서도 악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은혜는 우리를 의롭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히브리서 1228절에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어떻게 해야 기쁘시게 섬깁니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왜 두려움일까요?

고린도후서 71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뤄야 한다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아시겠나요?

은혜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능력을 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모든 죄를 피해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말라." (.6:1)

 

고린도후서 71절에서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영의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험담, 비방, 분노등입니다.

육의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꽤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

과 영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했나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 구원과 거룩을 온전히 이룹니다.

베드로의 말씀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외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의롭게 하는 일과 거룩하게 하는 일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의롭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님께 여러분의 삶의 주권을 드릴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난 순간 예수님의 성품이 내면에 자리하게 되고,

여러분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의 눈에 여러분의 영혼은 완벽합니다.

바로 그 순간 거룩하게 하는 일이 시작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신성화라고 하죠.

여러분의 내면에서 일어난 일이 밖으로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의롭게 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거룩하게 되는 문제에서는 우리가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은혜의 능력과 협력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자신을 깨끗케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많은 크리스챤이 그러듯이, 은혜를 모든 것을 덮어주는 것으로 보면

어떻게 이 구절이 이해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헛되이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은혜의 모든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은혜라고 이해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헛되이 쓴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안에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천국)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35:8-10)

 

이사야는 거룩한 길이라 불리는 대로가 있다고 전합니다.

여러분이 그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너처럼 생각하지 않고 너처럼 말하지도 않고 너처럼 살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게 살고 있단다.  삶의 수준으로 올라오너라."

성경은 그 대로를 걸어갈 때 아무도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여기에 있는 약속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거룩하게 살 때 속임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이죠.

베드로도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1:9)

 

그는 믿는 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행하지 않으면 옛 죄가 깨끗해진 기억을 쉽게 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벧후1:10)

 

베드로는 여러분이 거룩을 추구한다면

절대 실족하거나 속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왜죠?

이 길에는 사자나 짐승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길을 걷는 자는 누구든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행한다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절대 실족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