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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낭독 <거룩, 이제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에서 벧전1:13~19
*앤드류 머레이 시리즈 제7권, 아가페 출판사
◑거룩함으로 부르심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부른 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3-19)
*여기 나오는 모든 성경을 천천히 두 번 크게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에서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부르시고 거룩한 존재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영성의 출발이며 영성의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기 위하여 성도로 부르셨습니다.
거룩함의 특질은 우리가 행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생명의 전이, 신령한 본성의 주입, 신령한 임재의 능력이
우리 위에 임해야 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생명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가 거룩해질 수가
있습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이며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특성입니다.
그 분이 나누어주지 않는 한 거룩한 존재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거룩함보다는 축복, 형통함, 행복 등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성화보다는 구원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거룩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로, 전도사로, 찬양 인도자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사역으로의 부르심이지만
거룩함으로 부르신 것은 존재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존재가 준비되지 않고 사역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되지 않는 한...
예배자가 될 수 없으며 예배 인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며
그 거룩함을 예배로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는
우리의 삶으로 드려지는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오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알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1-5)
* 항상 성경말씀을 소리내어 두번 크게 읽으십시오.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모든 완전하심을 집약시키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그 분과 연합할 때에 이 거룩은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해 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해 지도록 예비하여 주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거룩과 우리의 비천의 다리가 되어 주셔서
하나로 연합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만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거룩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절망합니다.
마치 성막에서 울타리를 넘을 수 없다는 거룩한 절망과도 같습니다.
결코 거룩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더욱 거룩을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깊고 넓고 길고 높은 은총으로
그 분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될 때에 하나님의 거룩을 만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거룩이 나의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이 거룩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거룩은 다르게 사는 것도 아니요,
깨끗하게 사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 본질의 체험은 그리스도라는 존재 안으로 우리가 들어갈 때 가능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여러번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분 안에 들어갈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것도,
거룩해지는 것도,
새로와지는 것도,
바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때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성도들이 승리하는 비밀입니다
성도들이 성도가 되는,
거룩해지는 비밀이
그리스도 안에(In Christ)...있습니다.
◑거룩함과 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1:1-2)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1-3)
창세기를 두마디로 요약한다고 한다면 다음 두 귀절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다!!
1-6일째까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속성이며
인간의 속성과 절대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7일째 되는 날 하나님은 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성품입니다.
제7일째 되는 날 하나님의 거룩이 나타났습니다.
여섯째 날은 끝납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은 끝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지속적인 작업입니다. 성화의 과정입니다.
6일째 창조된 피조물은 죄나 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7일째 되는 날 이들과 거룩한 교제로 들어가셨습니다.
거룩은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제7일이 없는 한 창조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선함, 무흠함, 정결함, 무죄함 그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거룩...이것은 하나님만의 독점적인 사역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이 되게 하십니다. 절대적 타자가 되게 하십니다.
37쪽....창조하실 때, 말하자면 하나님은 자신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안식하실 때,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일로부터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셨고,
그리하여 친히 지으신 인간에게 사랑을 쏟으시고
그에게 자신을 전달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
하나님은 안식하심으로써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신령한 안식을 누리시는 시간은
또한 그 분이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자기의 가장 고귀한 영광, 자기의 거룩하심에
실제적으로 참예하는 존재로 만드십니다.
38쪽...스스로의 노력을 포기하고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완수하셨고
또한 장차 우리 안에서 모든 일을 완수하실 하나님 안에 안식할 때,
그리고 참된 믿음의 잔잔한 확신 속에서
하나님 안에 안식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칠 때,
비로소 인간은 참된 거룩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거룩함과 계시(겸손한 경외)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리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3:1-6)
하나님은 어디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계시하셨습니까?
인간이 타락한 후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거룩이 계시된 곳이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타오르는 떨기나무...평범하게 광야에 널려 있는 떨기나무이지만
하나님의 거룩이 임재하시게 되자 불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모세가 다가오자 하나님은 이 땅이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소유하시면 모든 것이 거룩해집니다.
창세기 2장에서 주님은 제7일을 소유하시면서 그 날을
거룩한 성일로 만드셨고 이제 땅을 소유하시면서 거룩한
성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불은 유익한 성질과 파괴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은 같은 성질의 것을 끌어당기고
다른 성질의 것은 거부하고 파괴합니다.
불은 소멸하는 것과 정결케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은 구원이기도 하고 심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앞에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무한한 가까움이 있기 전에 무한한 격차를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가까이 하지 말라는 음성을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 분이 가까이 오시지만 우리는 결코 그 분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그 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우리의 타락한 모습으로는 주님의 거룩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룩 앞에서 우리는 벗어야 합니다.
포기하여야 합니다. 얼굴을 가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불 가운데서 거룩해질 수가 있습니다.
소멸과 정결...이 두가지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상치되는 것은 모두가 불로 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 분의 거룩함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53쪽...오 나의 하나님,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죄많은 이 몸과 이 마음을 그분처럼 죽음에 바칩니다.
제 안에 있는 부정한 모든 것을 그 불로 소멸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 가운데 거하시는 분으로,
그리하여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은 녹이시고 제거하시며 멸하시고
하나님의 속한 것은 구원하시며
자신의 거룩함으로 끌어올리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함과 구속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서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은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이사야 43:1-7)
구속은 완전한 소유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소유하시는 것은 모두가 거룩합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는 우리의 죄값을 갚으시고
구속하여 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들이기는 하지만
죄값으로 사단에게 팔려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사서 데리고 오지 않는 한 우리는 주님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구속은 노예의 몸값을 갚고 다시 자유의 몸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사셨으니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것이 되었으므로 주님이 모든 것을
전적으로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60쪽: 구속의 목적은 소유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유의 목적은 구속자이며
소유주인 그 분의 형상을 닮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형상은 곧 거룩합니다.
구속과 거룩함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구속이 있을 때 거룩함이 있고 거룩함이 있으려면 당연히 구속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구속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룩함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거룩한 존재로 초청받았습니다.
60쪽: 사람들은 종종 소극적인 측면에서 구속을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속의 실제적인 영광은
그 분 안으로 구속을 받았다는 적극적인 측면에 있습니다. ...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완전하게 그리고 전적으로 소유하시는 그곳,
바로 그 곳에 온전한 거룩함이 있습니다.
두가지 거룩함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칭의의 사건, 의인화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내 안에 들어오는 점진적 거룩함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라고 말합니다.
이 거룩이 진정한 거룩함으로 향한 발걸음입니다.
하나님은 제7일을 소유하시면서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59쪽: 하나님은 그 날을 소유하셨고 복 주셨으며 안식하셨고 평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안식하시는 그 곳에 거룩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안식에 동참할 때에 우리도 거룩함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거룩함과 영광
모세가 산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 하니라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의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 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출19:14-23)
하나님의 거룩함은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스라엘의 체험가운데 회막 가운데 주님의 영광을 체험한 것을
그 분의 거룩이 임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분의 거룩함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70쪽: 그리하여 이러한 승리의 감격 속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루신 구속의 큰 목표와 결과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내주하심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운데 얼마나 내주하시기를 원하시는지..
그러나 거룩이 준비되지 않는 한 주님이 내주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그리스도 안으로 초청하여 거룩하다고 여겨주시고
다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이유는
그 곳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영광을 드러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심은 그 분의 속성이라기보다 그 분의 완전하심의 총체입니다.
이 거룩하심으로 인하여 백성들을 찬양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들의 찬양 가운데 거룩을 계시하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찬양합니다.
77쪽: 영광으로서의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거룩함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참된 거룩함은 항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십시오.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거룩함과 순종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며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28:1-6)
그 분의 구속함과 거룩함을 잇는 연결고리는 순종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에 우리를 부르셨는데
순종은 거룩함에 이르는 길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순종자체는 거룩함이 아니지만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아니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순종은 오직 지.정.의가 모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말을 잘 들으면(순종하면) 너희가 내게 대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4-6)
우리는 순종이라는 연결고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거룩함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회복되며 그의 거룩함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순종가운데 거하십니다.
순종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86쪽:
거룩함의 계시와 전달은 인간이 그것을 받을 준비를 갖추는 데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은
인류를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만큼이나 시간을 요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시간은 매일 매시간 순종해 나가는 삶입니다.
자기 의지를 따라 소모한 시간과 주님과의 생생한 관계에서
이탈한 시간은 모두 죽은 시간입니다. ...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바로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살아 계신 하나님,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자기의 처소를 정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 그 처소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는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거룩함과 내주하심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하신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9:11-15)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모두가 거룩합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집은 그 주인의 됨됨이를 나타냅니다.
집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인의 성격과 삶의 형태를 표현해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소는 하나님의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합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거룩한 자가 거하시는 곳은 거룩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거룩함의 정도도 더욱 더 깊어집니다.
92쪽: 성소, 곧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는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중심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거룩했습니다.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내주하는 생명과의 연합보다 더 큰 연합은 없습니다.
성령님의 사역의 절정도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요14:21,23, 엡3:16,17)입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주하실 때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때만이 가능합니다.
97쪽: 우리는 전심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처소,
곧 옛 성막과 성전처럼 구별된 그 분의 거룩한 처소가 되는데
자신을 온전히 바쳐야 합니다. ...
믿음으로 다음과 같은 축복, 곧 그리스도, 하나님의 거룩한 자께서
천부의 이름으로 들어오셔서 소유해 주기를 받아들이며 굳게 붙잡으십시오.
◑거룩함과 구별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서10:16-22)
구별함은 거룩함이 아닙니다.
구별함은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즉 거룩함이 다르게 사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깨끗하게 사는 것이라든지,
구별되고 성별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함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구별자체가, 성별자체가 거룩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별되어 살더라도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칭함을 받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구별과 거룩을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그릇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릇을 사용하기 위하여 깨끗하게 씻는 것을 구별이라고 한다면
그릇에 담기는 것이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그릇이 아무리 깨끗하게 씻겨져 있다고 하여도
그 그릇에 무엇이 담기는 가에 따라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담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깨끗한 것이지만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구별함은 거룩함을 이루는데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구별의 정신은 단지 죄된 것을 포기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데 있는 것입니다."(115쪽)
그래서 구별이 중요합니다.
구별이 없이 거룩이 채워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별을 위한 구별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지기 위한 구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별이라는 말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가운데
"내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것과 다른 것은 구별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별하시고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별해 주시고 성장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며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내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사야 6:1-7)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거룩함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을 보여줍니다. 거룩한 시간...하나님이 소유하신 시간,
거룩한 장소들...하나님이 소유하신 성막, 거룩한 사람들...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의식 들을 통해 거룩함을 예비하십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중요한 거룩의 근거 곧 이스라엘의
거룩함의 보증과 능력이 되시는 분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레위기에서는 더 발전해서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짐을 체험하는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구원의 근거가 되시고
거룩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사랑하십니다. 거룩함이 구속을 완성시키십니다.
거룩함에 참여시킬 수 있는 요소는 사랑입니다.
127쪽: 거룩하심과 관련된 가장 가까운 개념은 높으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목격했던 거룩하신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스랍들의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129쪽: 그러므로 신령한 거룩하심은 의와 사랑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것들이 기인하며 이것들이 함께 계시하는 바로 그 신성의 무한한 온전함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의 연약함과 죄에서 자기를 구별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끊임없이 그 피조물을 끌어올려 자기와 연합시키고 자신의 순수하심과
온전하심에 충만히 참예하게 하시는 능력을 가진 바로 그 신령한 생명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 거룩하신 분과 깊은 교제를 나눌 때에
우리는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됩니다.
거룩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마음에 받아드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는 어떤 거룩함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하신 자
서로 창화하며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이사야 6:3-4)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온 우주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높이 경배하게 됩니다.
거룩, 거룩, 거룩이 세번 반복이 되었을 때에
항상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거룩을 이루어 나가십니까?
138쪽: 삼위일체의 신비는 곧 거룩함의 신비입니다.
삼위일체의 영광과 능력은 곧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입니다.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성부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의 소멸하시는 불로서
저항하느느 모든 것을 멸하시고 또한 복종하는 모든 것을 자신의 순결하심으로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그 소멸하시는 불-천국에서 영원한 복으로 타오르는 불이든지,
아니면 지상에서 맹령한 분노로 타오르는 불이든지-에 자신을 던지신 성자 하나님은
멸하시고 구원하시는 불의 능력의 계시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불의 재료와 만족이 되는 자발적인 희생제물입니다.
그리고 성결의 영은 사방으로 능력있게 퍼지는 불꽃으로서,
파멸의 영의 위치에서 정죄하고 심판하시며
그런 후에는 도달 가능한 모든 것을 자신의 광채와 거룩하심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1. 거룩하신 성부하나님은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서 높이 들린 보좌에
계신 분이시고 아무도 본 일이 없고 볼 수도 없는 분이시며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거룩함을 지니신 분이시나
또한 친히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자신의 거룩하심으로
가까이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2. 거룩하신 성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자기의 백성을 위해 거룩한 생명과 본성을 준비하신 분이십니다.
3.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 안에서 거룩함의 능력이 되시는 분이시고 그리스도와 연락하시며
그 분을 품고 계신 분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는 곧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요 거룩함의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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