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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알기를 간절히 열망해야 합니다

LNCK 2018. 10. 10. 11:03

www.youtube.com/watch?v=NzJ3PC5L2dk&feature=youtu.be

◈주님을 알기를 간절히 열망해야 합니다                시27:4                  설교 중 일부 스크랩

 

우리가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원할진대,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알기를 간절히 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요, 우리의 불타는 열망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신앙을 한마디로 줄이면 ‘주님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주님을 알기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도 다 그렇게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여기서 성경에 나오는 두 사람만 예로 들고자 합니다.

 

먼저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7:4)”

 

다윗은 평생 동안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을 그의 오직 한 가지 구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소원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많은 소원 중에 가장 우선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더욱 아는 것을 그의 유일한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주님만을 구할진대,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다윗에 관하여 직접 증거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신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약의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2: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

 

여기에 보면, 바울도 예수님을 아는 것을

그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구절은 그가 전하는 메세지에 대해 말하는 구절로서(2:1-4),

주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면 그분을 진정으로 전할 수 없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3:7-10).”

 

이 바울의 소망과 열망을 보십시오.

빌립보서는 바울의 사역 말기에 로마 옥중에서 씌어진 서신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서신을 쓰기 전에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차례 만났으며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만 하더라도),

 

삼층천까지 가서 사람의 언어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보았고,

그는 그의 모든 계시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았으며,

그의 손수건에만 닿아도 사람들의 병이 나을 만큼 놀라운 성령의 역사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이와 같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한 후에도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하는 것을 그의 일관된 소원이요 목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주님을 더욱 알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겼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아는 지식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도 바울도 주님을 더욱 알기를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사실, 그것을 그들의 유일한 목표요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원할진대,

우리도 주님을 알기를 간절히 열망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부귀영화도, 혹은 주를 위한 어떠한 사역도

그분과의 긴밀한 교제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깊이 알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여 나아가기만 하면,

나머지는 그분께서 다 하십니다.

그런고로 그분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요,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우리 주님을 더욱 알고, 그분을 더욱 사랑하는 것을

당신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을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 주님께서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에게 가까이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4:8)

라고 약속하신 그대로 주님께서 당신에게 가까이 임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아는 유익

 

끝으로, 주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요 근본일 뿐 아니라,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①첫째, 우리 속에 거룩함이 산출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을 다해 죄를 이기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경은 피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의 노력만 가지고는, 우리는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각오와 결심을 했습니까?

그리고 그 각오와 결심들이 얼마나 자주 이내 곧 무너지고 말았습니까?

 

그리고 설령 우리가 우리의 노력을 가지고

우리의 삶에서 악한 일들을 다 버렸다 할지라도.. 그것이 거룩함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바리새인들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영적인 우월감을 갖게 되고,

따라서 지극히 악한 종류의 교만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거룩함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 속에 사실 때에만,

우리 속에 주님의 거룩함이 산출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성경공부나 율법적인 행위를 통해서 산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임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되고,

아울러 우리 속에 주님의 거룩함이 산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들을 기쁨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②우리의 영을 씻어줍니다.

 

단순히 주님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을 쌓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씻어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여러 종류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에 거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반면에,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 가운데서 주님이 내게 하신 말씀은

참으로 내 영혼을 정결케 해줍니다. (엡5:26-27)

 

그리고 아울러 우리는 정기적인 영적 목욕을 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때가 끼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목욕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에도 때가 끼지 않도록 우리는 정기적인 영적 목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교제가 우리의 영을 씻어줍니다.

 

③우리의 혼을 보호합니다.

 

주님 앞에서의 참된 순결은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 자신을 간절히 구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보호막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줍니다.

 

우리의 각오와 결단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뜨거운 사랑만이 우리를 모든 죄의 유혹에서 이기게 해 줍니다.

 

④우리 마음에 주님을 향한 불길을 당겨줍니다(아가서 8:6).

 

우리가 주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그분과 같이 있기를 더욱 간절히 열망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깊이 앎이 없이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깊이 알지 않고도 외부적인 신앙의 모양은 갗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임의로 설정해 놓은 경계선 내에서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깊이 앎이 없이

그분을 위해 소위 옥합을 깨뜨리는 사랑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르다와 마리야 자매 중 주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린 사람은

늘 주님의 발아래서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과의 긴밀한 교제를 우선적으로 구했던 마리야였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자기를 향한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먼저 깨달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갈 2:20 참조).

 

⑤인간의 영을 만족시켜 줍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전에서의 하루가 세상에서의 천 날 보다 더 귀하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슨 말일까요?

그저 교회에서 하루 보내는 것이 세상에서 3년 이상을 보내는 것보다

더 좋다는 말일까요?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함께 있을 때,

그것은 실로 우리에게 만족을 줍니다.

주님의 임재하심 가운데서 그분과 함께 있는 단 5분이라도

그것은 세상에서의 그 무엇보다 귀하고 아름답고 기쁘고 만족스럽습니다.

 

이처럼,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보다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 무엇도 더 귀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여(귀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해로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⑥인간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줍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환경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위,

혹은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우리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질수록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은 우리에게 자존감과 가치를 부여해 주며,

따라서 다른 종류의 두려움과 불안감에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 줍니다.

 

⑦내적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게 될 때, 주님은 우리 가까이 찾아오셔서

그 부드러운 사랑의 손길로 우리 속에 있는 깊은 상처까지 만져주시며,

그것들을 치유해 주십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주님께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 내 속에 있는 상처들을 치유해 주사,

나에게 참다운 자유함을 주신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⑧영적 전쟁에서 승리로 인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됩니다.

 

성경은 날마다 순간마다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날마다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주님과의 깊은 교제보다 더 큰 승리의 비결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웠던 모든 전쟁은 영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들이 나가서 창과 칼을 가지고 실제로 적들과 싸우지 아니하고

그저 앉아서 기도로서 싸웠다는 것을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나가서 창과 칼을 가지고 실제의 적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쟁에서의 승패는

한 번도 군사력의 우위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전쟁은 모두 영적인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는

아무리 큰 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었지만,

반면에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를 관계에 있지 않을 때는

엄청난 군사적인 우위를 가지고도 매우 작은 적 앞에서 대패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전쟁에서 승리의 비결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어떠한 환경과 군사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전쟁에서 승리의 비결은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인 것입니다.

 

⑨아홉째, 주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성경에서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 사무엘, 엘리야, 다윗, 바울 등등 모두가 다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구할 때,

말세지말을 당한 이 때에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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