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3) 자막 출처
대환난
제가 우선 먼저 하나님이 기록한 역사와 사람이 기록한 역사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드릴게요. 제가 작은 그림 한장을 특별히 만들어서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역사를 쓸 때 과거에서 현재까지 쓰면서 지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이 원형은 인류 역사를 대표하는데, 하지만 이것은 이야기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이야기이고, 하나님이 기록한 역사가 구현한 것은 전모였으며, 과거에서 현재의 일만 있을뿐아니라 미래의 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상에서 일어난 일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일어난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전모를 볼 수 있는데, 과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도 있었고, 지상에것만 아니라 하늘의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미래를 논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각도에서 미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늘에서부터 지상까지 논했고, 하늘의 상황이 지상의 상황에 영향주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졌다면, 계시록12장에서 ‘그가 매우 분노하고, 이 화 모두를 지상에 부을 것이다. 이 때 적 그리스도와 가짜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일반 역사 학자들은 하늘의 일도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역사의 전모를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를 ‘계시적 역사’라고 부릅니다.
Apocalypsis라는 이 헬라어의 뜻은 ‘열다’인데, 휘장을 열고, 커튼을 열다입니다. ‘계시록’은 두 갈래의 커튼을 열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원래 하늘의 광경을 덮었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덮었습니다. 이 두개의 커튼은 반드시 먼저 열어야 역사의 전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래를 덮은 커튼을 열어서 하늘의 상황을 드러내어 우리더러 역사의 전부를 이해하도록 했습니다. 즉 그의 이야기이며,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좋아요. 이어서 우리가 제4장과 제5장을 빠른 속도로 보겠습니다. 제가 제4장의 주제를 ‘창조주와 그가 지으신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장관스러운 광경을 묘사했는데, 아름다운 무지개, 흰 보좌, 유리 바다, 그리고 네개의 괴상망측한 모양의 생물이 있는데, 이는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린다는 대표입니다. 많고 많은 경배 찬양들이 제4장과 제5장에서 자료를 취한 것인데, 이는 이 두장에 경배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 많은 예술이 있을 뿐만아니라 그리고 많은 음악도 있고, 또 많은 경배와 찬양의 모습이 있습니다. 제4장에서 요한이 하늘로 초청되었습니다. 비록 그의 몸은 아직도 밧모섬 감옥에 있지만 그의 영은 하늘로 드리워 올라갔습니다. 하늘의 아름다움과 오색찬란을 목격했고, 그리고 극히 안전감과 평안을 보았고, 하나님이 바로 그의 보좌에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여자아이가 주일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면서 방금 배운 새로운 노래로 흥얼거렸습니다. ‘하나님이 보좌에서 왕이시라’를 ‘하나님이 보좌에서 놀고 있느니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계시록’ 4장의 진리는 하나님이 여전히 보좌에 계시고, 그가 그의 지극히 높으신 권세를 누구에게도 주시지 않았고, 그가 여전히 사탄과 그리고 모든 사람과 피조물들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동의를 거쳐야 일어났고, 그가 보좌에 앉아 계시고, 역사는 결코 통제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신문을 볼 때 세계가 이미 통제력을 잃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여러분이 ‘계시록’ 4장을 읽으면 하나님이 여전히 통치하고, 모든 것을 그가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모든 일은 그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그의 동의하에 진행이 된다고 말해도 되는데, 사실 두가지 모두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4장의 상황입니다.
이십사 장로가 있는데, 이 숫자가 ‘계시록’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매번 이십사 장로나 혹은 이십사 이것, 이십사 저것을 볼 때면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예수님의 12제자를 대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24명의 관건적 인물들인데, 야곱(즉 이스라엘)의 12명 아들과 12명 사도들이며,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묘한 구속 계획을 구성했습니다. 우리가 새예루살렘에서 12사도와 12지파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그리고 크리스찬들의 동일한 미래를 대표하고, 우리는 동일한 양무리이며, 동일한 목자가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약의 자녀와 신약의 자녀들이 있고, 하늘에서는 모두 이십사로 대표합니다.
제5장에서 요한이 울었고, 요한이 울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를 친히 종결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역사 종결을 한 사람을 대신해서 하신다고 했고, 그는 한 사람의 손을 들어서 역사를 종결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역사 종결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요한이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역사를 종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었고, 이런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요한이 사자 같기도 하고 또 뭐 같기도 한 것을 보았다고 했지요? (어린양!). 아니에요. 어린양이 아니고 숫양, 숫양이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에 번역을 숫양으로 수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린양’이라면 우리더러 순한 작은 양을 연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어린양 그림을 보았습니다. 매번마다 그림에서 순한 흰 어린양 그림을 보았는데, 저는 참다못해 머리를 흔들곤 했습니다. 여러분, 유월절의 양은 일년된 숫양입니다. 하지만 ‘계시록’에서의 이 양은 머리에 일곱 뿔이 있고, 이미 큰 양입니다. 이것은 힘이 있는 하나의 그림인데, 연약한 작은 양이 아닙니다. 이것은 힘이 있는 하나의 그림입니다. 여러분은 홀로 이 머리에 일곱 뿔이 있는 일년된 숫양을 대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은 절대롤 그를 안아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피하려고 방법을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의 사자와 숫양은 매우 힘이 센 그림인데, 하지만 이 숫양은 죽임을 당한것으로 나타났고, 현재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숫양은 죽임을 당한 것 같아 보이는데, 이는 당연히 예수님이지요.
여럽분, 유다의 사자, 그리고 세상 죄를 지고가는 숫양은 예수님을 대표하고, 이 분만이 역사를 종결하기 전의 역수 시간을 전개할 자격이 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버튼을 잘 못 눌러서 핵폭팔이 일어나 모든 인류가 파멸되는 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습습니다. 이미 한 손가락이 그 버턴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손가락이고, 그것은 못에 찔린 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인류를 종결하게 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예수님만이 모든 능력,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때 하늘에서 한 목소리로 예수님을 향해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더러운 인류 역사를 끝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의 비극이고, 더러운 역사이며, 예수님이 이 역사를 종결하실 것입니다.
이 지구는 영원히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영원히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아닙니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끝날 것입니다. 조산이 범죄한 후, 하나님은 인류에게 ‘죽음’이라는 형벌을 주었는데, 그 중의 한가지 원인은 바로 어느 누구도 그의 우주를 끝없이 파괴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수명을 제한했고, 우리가 도덕과 그리고 자질에서 이 환경을 끝없이 오염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수명을 제한했고, 그리고 인간의 역사의 길이도 제한했습니다. 역사가 결국 반드시 끝나지만 끝난 후에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4장과 제5장의 내용입니다.
이제 6-16장까지 보겠는데, ‘계시록’의 중심적인 메시지이고, 가장 무서운 부분이기도 하며 나쁜 소식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성실함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항상 성실하십니다. 제가 사람들의 간증을 들었는데,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걱정이 없어졌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간증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제가 이전에는 믿었는데, 지금은 믿지 않습니다. 저의 간증은 정반대입니다. 저는 1947년에 예수를 믿었고, 이때부터 고난이 따라왔고, 몇 년 후에 제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는데 고난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로써 지난 10년 동안 만난 고난이 그 전 30년보다 더욱 많았는데, 여기에 앉아 계신 몇 분을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더러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그가 인생은 반드시 고난이 있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약속이 나의 생명에서 실현되었고, 그리고 미래에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로, 그가 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주를 믿으라고 인도할 때 반드시 성실히 알려주야 합니다. 당신은 이제 고난을 받게 될 것이고, 당신은 사회와 어울리지 않게 되고, 국외자가 될 것이며, 마치 외지인처럼 될 것이고, 당신이 태어난 이 세계에 속하지 않고, 당신은 현재 이미 신종 인류에 속했고, 더는 ‘지인종’이 아니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며,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미 신종 인류가 되었고, 이 죄악의 세계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사악한 세대가 당신을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환영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너희가 좋다고 할 때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새겨볼 가치가 있습니다.
환난, 멀지않은 미래에 환난을 만날 것이고, 그것도 대 환난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좋은 소식 하나가 있는데, 우리는 ‘계시록’ 6-16장의 상황보다 더욱 나쁜 것은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가장 나쁜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웃네요. 하지만 이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분은 의사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제일 나쁜 상황을 알려주기를 원해요 아니면 의사선생님이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어떤 것을 좋아합니까? 우리 모두는 제일 나쁜 상황을 알고 싶어하는데, 그래야 먼저 준비하지요. 예수님이 이 일곱교회에 솔직하게 알려주었고, 그리고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상황은 더욱 나쁘게 됩니다. 그래서 6-16장에서 일련의 재앙을 묘사했는데, 이 재난이 바로 우리가 소히 말하는 대환난, 대환난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총 세개 조의 7이 있는데, 먼저는 일곱인이고, 그리고 일곱 나팔이고, 마지막으로 일곱 대접입니다. 우선 이 삼자의 관계를 상관하지 말고, 우선 그것들이 어떤 함의인지 개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본 이 세개 조의 ‘7’은 모두 각자가 4, 2, 1로 난뉘었고, 네개가 함께이고, 2개가 함께이고, 마지막 한 개가 단독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의했는데, 매 조의 제일곱번째 재앙 모두는 전 지국적인 진동이며, 모두 똑같습니다. 하지만 앞의 여섯 재앙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먼저 앞 네개 인과 네마리 말인데,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진짜 말이 아니고 상징입니다. 붉은 색, 흰 색, 검정 색과 청황색이 있는데, 하지만 성경에서 우리에게 이 색들의 뜻을 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흰 색은 군사 침략을 대표하며, 나폴레옹이 당시 바로 흰 말을 탔는데, 무력으로 정복하는 자들 대다수가 흰 말을 탔습니다. 붉은 말은 피를 상징하는데, 군사 침략이 있으면 바로 피 흘림이 있을 것이고, 피 흘림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성경에서 검정 말은 기근을 대표하는데, 사실 영양이 심각하게 부족한 사람들의 피부색이 항상 검게 변합니다. 검정은 기근을 대표하고, 기근 뒤에는 무엇일까요? 청황색 말, 청황색은 질병, 전염병 그리고 살해를 대표합니다. 여기에는 네마리 말이 있고, 군사 침략, 피 흘림, 기근, 질병인데, 이 네말리 말이 이미 이 지상에 왔고, 일부 지역에서 달리고 있으며, 우리가 세계 많은 곳에서 이 네마리 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군사 침략은 피 흘리는 사건을 일으키고, 그리고 기근과 질병을 가져옵니다. 이 네마리 말은 역사가 끝나기 전에 온 지역을 다니는데, 하지만 현재는 일부 지역에서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음은 다섯번째 인인데, 크리스찬들이 핍박을 받는 것을 논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묻기를 ‘이 상황은 아직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합니까? 주여,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이 어느때까지 고난을 받아 죽어야 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아마 작년에 35만명 이상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모르실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위해 순교한 사람이 이전보다 훨신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크리스찬이라는 신분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말세가 가가울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합니다. 여섯번째 인을 뗄 때 각 곳에는 지진이 있을 것이고, 이런 광경이 비크리스찬들더러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게 하고, 인심이 흉흉해집니다. 마지막 일곱째 인을 뗄 때 하늘은 온통 고요해 지는데, 하지만 지상에서는 대 지진이 있습니다.
이상은 일곱 인 뿐입니다.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이 나타날 때 이 재앙들이 더욱 맹렬할 것이고, 시간이 더욱 짧은데 하지만 더욱 맹렬합니다. 더욱이 정세는 인재에서 천재로 변할 것이며, 인재에서 천재로 변할 것이며, 모든 환경이 사람에게 불리하기 시작합니다. 전 네개 나팔 소리가 날 때 지상에 불에 타서 가물 것이며, 빗물이 부족하고, 바다가 오염될 것이며, 그래서 더는 생물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또 지상의 수원이 오염되고, 식수가 오염되고, 태양이 어둡게 되는데, 이는 대기층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천재인데, 이 전에 인재가 있을 것입니다. 다섯번째 나팔 소리가 날 때 황충떼가 또 나타날 것입니다. 다음 여섯번째 나팔은 아주 신기한데, 동방으로부터 방대한 군대가 침입해 오는데, 수천수만명 군대가 중국 방향으로부터 중동 지역으로 오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번째 나팔 소리가 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강림하였다는 것을 선포하고, 지상의 모든 나라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이번에도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일곱 대접을 보겠는데, 이 재앙들은 더욱 격렬합니다. 첫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몸에 악하고 독한 종기 혹은 암세포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두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바다가 피로 변하였고, 이 현상이 얼마 전에 남아메리카의 서해안에서 발생했었는데, 여러분이 그 사진을 보셨습니까? 라틴 아메리카 서해안에 한 조각이 피빛으로 변하였는데, 시간은 아주 짧았습니다. 하지만 몇 백 마일 길이었는데, 미래에 해양 모두가 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지상의 모든 샘물이 피빛으로 변합니다. 네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태양이 사람을 태울 정도인데, 한쪽은 햇빛이 너무 적고, 한쪽은 햇빛이 너무 많게 됩니다. 다섯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온 땅이 흑암이 되고, 빛이 없어집니다. 여섯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아마겟돈 전쟁이 전개되는데, 이는 우리가 뒤에서 논할 것입니다. 일곱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온 땅 각 곳에서 대재앙이 일어나고, 또한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만약 여러분이 순서를 생각해낸다면 틀림없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후에 제가 생각하고 있는 순서를 제의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건데 예수님이 좋은 선생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제가 순서에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면, 그가 순서를 더욱 간단하고 명확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뜻은 우리가 그의 시간표 찾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대면하는데 있어서 잘 준비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더러 가장 나쁜 상황을 먼저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 상황이 발생할 때면 우리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놀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주 놀라면서,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의심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알려줄 기회가 있게 됩니다. 중점은 이 세계가 어떻게 변했느냐가 아니고, 이 세상이 ‘누구’에게로 가고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답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상황이 일찍이 우리의 예상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일찍이 알려주었으며, 예수님은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면서 우리 자신더러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 곧 올 이 재앙들은 확실히 매우 무섭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크리스찬은 도대체 어떻게 견디어 내야 하고, 어떻게 대면해야 하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이 일들이 발생하는 순서를 논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여러분이 중간 몇 장에서 말하는 대환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 대환난은 3년 반만 지속될 것이고, 3년 반이면 바로 42개월이거나 혹은 1260일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들 사이 관련에는 일반적으로 세가지 견해가 있는데, ‘계시록’에서 잇달아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어떤 순서일까요? 첫번째 견해는 연속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먼저는 일곱 인을 떼고, 그리고 일곱 나팔을 불고, 마지막에 일곱 대접의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간단한데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매 조의 일곱번째가 모두 똑같기 때문입니다. 위 도표에서 주의해 보셨는지요. 매 조의 마지막 세개 모두는 재앙인데, 사실 원어에서는 ‘저주’로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매 조의 마지막 한가지 재앙은 대지진입니다. 그래서 매 조의 일곱번째는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의 해석에는 두번째 견해인데, 이것들은 동시에 발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그리고 일곱 대접은 동시에 발생하고, 모두 동시에 시작하고, 동시에 끝나며, 그래서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런 견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이런 견해는 참으로 매우 억지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번째 견해를 제의합니다.
저는 이 견해가 중간 몇 장과 완전히 부합된다고 믿습니다. 이 세개 조에는 연속 발생했고, 또한 동시에 발생했으며, 잇달아 발생했는데, 하지만 동시에 끝났습니다. 즉 먼저 첫번째부터 여섯번째 인까지 떼고, 그리고 첫번째부터 여섯번째 나팔을 불었고, 다음 첫번째부터 여섯번째 대접에 쏟아지고, 마지막으로 일곱번째 인, 일곱번째 나팔과 일곱번째 대접이 함께 끝났습니다. 이런 견해는 성경과 부합됩니다. 점점 더 강해지는 악보 같이 뒤로 갈수록 더욱 빨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변의 세상사가 갈수록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자의 관계가 연속이면서도 동시적입니다. 이 도표는 매우 복잡하게 보이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어떤 도표를 주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더욱 간단하게 말씀했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 삼자의 관계를 알고 싶으면, 제 생각에 이것이 다른 두개보다 더욱 논리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재미있는 것은 매번 여섯번째가 지나고 나면 갑자기 한 토막의 에피소드가 나타나는데, 이 에피소드는 크리스찬들이 당하는 것을 묘사하였습니다. 물론 이 재앙들이 온 세계에 임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이로써 고난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이에 특별히 크리스찬들의 당하는 것이 끼워 있습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제7장에 있는데, 여섯번째 인 후입니다. 두번재 에피소드는 10장과 11장에 있는데, 여섯번째 나팔 후입니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12, 13장인데, 하지만 여섯번째 대접 후가 아닙니다. 편폭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서 앞 여기에 끼워 넣었습니다.
이것은 6-16장까지의 간략한 대강입니다. 여섯번째 인을 떼고, 그리고 제7장은 에피소드입니다. 여섯번째 나팔을 불고, 그리고 10, 11장은 에피소드입니다. 다음 세번째 에피소드는 12장과 13장입니다. 그리고 여섯번째 대접을 쏟았고, 마지막은 일곱번째 고조에 도달했습니다. 많은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대지진, 아마겟돈 전쟁, 나라가 임하고, 모두는 이 때 발생합니다.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복잡한 순서에 걱정하지 마세요. 중점이 여기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미래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바라는데 중점이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대환난에 대해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이 대환난이 그들 앞에서 그림자를 던졌고, 이 그림자가 이미 2000년이나 존재했습니다. 요한이 그의 서신에서 말하기를 ‘적그리스도는 반드시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카다피나 혹은 사담을 적그리스도가 아닌가하는 것을 여러분은 들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폴레옹이나 혹은 히틀러가 적그리스도가 아닌가라고 합니다. 답은 ‘이 세상에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두머리 적그리스도가 한 명 있을 것이며, 마지막에는 우두머리 가짜 선지자도 한명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이미 많은 가짜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 색갈이 서로 다른 네 말이 말이 이미 아프리카와 아세아 일부 지역에서 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세의 상황은 바로 오늘날 신문에서 본 내용과 같습니다. 신문의 내용은 그림자 같이 미래의 상황을 예고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세의 시대에 살고 있고, 말세 시대에 살고 있으며, 말세의 상황들을 이미 먼저 그림자를 던졌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이미 실마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계시록이 말세를 논할 때 현금 매매가 필요없습니다. 여러분이 마트에서 계산할 때 여러분의 손이나 혹은 이마에만 스캐닝하면 됩니다. 당신의 손이나 혹은 이마에 찍힌 숫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20년 전에 들으면 공상 과학 소설 내용 같습니다. 스윈던은 전 세계에서 첫번째로 현금이 필요없이 물건을 살 수 있는 도시입니다. 단 하나의 숫자만 있으면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영국에서 이미 발생했는데, 이는 ‘계시록’ 13장의 내용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표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예선 그림자입니다. 비록 미래에 이런 천재가 일어나지만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이런 실마리들을 이미 볼 수 있습니다. 세계 각 곳에서 핍박 받는 크리스찬 모두는 ‘계시록’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상황이 이미 그들에게 임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침 아주 편안하고 안락한 지역에 살고 있어서 이런 상황의 그림을 볼 가능성이 적습니다. 하지만 눈을 열고 전 세계를 보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에피소드를 조금 강의하려는데, 바로 크리스찬들이 어떠한 것을 마나는지를 보겠습니다. 제7장의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두 종류의 하나님 백성을 묘사했습니다. 첫번째는 유대인이고, 두번째는 크리스찬입니다. 유대인들이 지상에서이며, 여기에서 대환난 시기에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또한 이스라엘 나라를 보존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대족죄 어린양이 되었기 때문인데, 크리스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대환난 시기에 보호를 받게 됩니다. 다음은 많은 사람들이 각 나라, 각 민족, 각 백성, 각 곳에서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지킴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크리스찬들은 대환난 임하기 전에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다음 단원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런 견해를 그다지 믿지 않습니다. 만약 제7장의 후반부를 자세히 읽으면, 이 사람들은 세계 각 곳에서 오신 크리스찬들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논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깨끗이 씻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대환난 중에서 나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의 동사 ‘나오다’는 한 무리가 함께 나왔다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나왔다는 것입니다. 한 시기 안에 천천히 나왔고, 이 사람들은 대환난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나왔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어떻게 나왔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주 간단한데, 바로 순교입니다. ‘계시록’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교에 대해 매우 강조한다는 것을 여러분도 발견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대환난을 경험했고, 사람을 태우는 햇빛과 여러가지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히와 뜨거움이 그들을 해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을 감동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는데, 그들이 만약 대환난이 임하기 전에 몸을 뺏으면 어떻게 눈물이 있지요?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대환난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교했기 때문에 몸을 뺏고, 이 사람들의 숫자는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첫번째 작은 에피소드이며, 지상의 유대인을 논했고, 또한 하늘에 많은 크리스찬들이 있다고 논했는데, 모두가 순교 때문에 대환난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크리스찬이 순교하는 것은 아니며, 조금은 벗어날 수 있고, 도시에 숨은 것이 아니고 시골에 숨어서 재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찬이 순교할 것인데, 이에 우리가 조금 후에 다시 논하겠습니다. 바벨론이 성도의 피를 마셨는데, 이는 하나님께 속한 도시가 아닙니다. 이상은 첫번째 에피소드입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여섯번째 나팔 후인데, 여기에서 증인을 논했습니다. 이 때 요한이 환상에서 천사의 분부대로 책을 먹었는데, 양피지로 된 감겨있는 한권의 책이었으며, 그가 먹고 난 후 새콤달콤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새콤달콤한 맛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이 곧 제일 큰 환난을 목격하게 되는데, 천사가 그더러 책을 먹어라고 하였고, 맛은 아주 신기한데, 즉 새콤달콤하였으며, 처음 먹었을 때는 달콤하였고, 그리고 새콤하였습니다. 단맛을 판별하는 맛이 혀끝에서 일어났고, 신맛을 판별하는 맛이 혀 뒤에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새콤달콤한 갈비를 드셔 보셨지요. 새콤달콤한 갈비를 먹으면 아주 편합니다. 혀끝에서는 달고, 혀 뒤에서는 신맛입니다. 요한이 책을 먹었더니 맛이 새콤달콤하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계시록’을 읽을 때 바로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 느낌이었는데, 예수님이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기시기 전에 발생할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하면 혀 뒤끝의 맛이 바로 신맛으로 변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요한이 책을 먹은 후의 반응을 매우 생동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제가 ‘계시록’에 대한 느낌도 이렇게 새콤달콤하였습니다. 단맛은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고, 신맛은 나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나쁜 소식이고, 그리고 좋은 소식입니다.
다음은 11장인데, 역사가 종점에 다다랐을 때 예루살렘에 두 증인이 있게 됩니다. 그들은 증인이 되었기 때문에 살해되었고, 시체는 거리에 버려두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지막 두 증인이며, 삼일 후에 그들은 부활할 것이며, 사람들은 그들이 승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이 경험했던 일들을 그들을 통해 재연합니다. 이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는 모릅니다. 이 두 사람이 올 때 만약 제가 있다면 여러분에게 알려드릴게요. 우리는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를 추측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지상의 크리스찬들이 극한 핍박을 받을 것인데, 이는 세계의 통치권이 세 악령인 화신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에 관하여 이 세 화신은 사탄, 적그리스도 그리고 가짜 선지자입니다. 악령의 세 화신이 마침내 지상에서 통치하고, 크리스찬의 삶이 아주 어렵게 되며, 삶이 어렵기로 그 때면 물건이나 혹은 음식까지도 살 수 없게 됩니다. 원하는 숫자 666을 몸에 새기지 않으면, 마트에 물건을 살 때 바로 이 숫자로 결산합니다. 그 때면 삶이 아주 어렵게 됩니다. 가짜 선지자가 심지어 기적을 행하는데, 그것은 사탄의 기적이며, 이를 도와 독재자의 통치를 하게 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적’이라는 단어는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대신’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그가 말하기를 ‘나에게 절하기만 하면 내가 만국 모두를 너에게 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줄 것은 적그리스도의 자리인데, 이 자리는 후에 인류가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시 만약 이 시험에 빠졌더라면 현재 우리는 그를 주 예수 적그리스도라고 부를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그를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이는 그가 그 유혹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훗날 어느날에 누군가 적그리스도의 자리를 받아들일 것이며, 이 시기에는 독재 정권을 할 것이며, 그러면 세계의 결말은 민주 정권이 아니라 독재 정권이 될 것입니다. 세 독재자가 있는데, 그 중 두 명은 사람이고, 하나는 인류를 초월하는 사탄이며, 그 때는 크리스찬의 삶이 아주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에피소드인데, 13, 14장에 있습니다.
14장의 마지막에 세 천사를 논했는데, 이 환상은 무서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우리더러 미래를 맛보게 하였고, 많은 성도가 하늘에게 평안한 것을 볼 수 있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벨론이 넘어졌다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다음 단원에서 논하겠습니다. 마지막에 크리스찬에게 경고 하나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크리스찬들이 지옥에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예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아마 순교 될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가 요한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이것을 기록하라. 이 후에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일을 하는 성과도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상례에서 항상 듣던 것인데, 그러나 사실은 말세 때 많은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수를 다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위해 순교한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다음 우리가 이 몇 장을 겨냥한 것을 보겠는데, 일반적으로 어느 네가지 다른 해것이 있을까요? 어떤 해석은 정말로 상식을 벗어났는데, 제가 여러분에게 방방곡곡에서 ‘계시록’을 논한 것을 알려드릴게요. 통상적으로 이 네가지 해석을 떠나지 못하고, 가장 주요 문제는 바로 이 재난이 도대체 어느 때에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들이 어느 때에 이루어질까요? 성경 학자들이 네가지 답이 있는데, 우리가 한번 보겠습니다. 이 답들이 ‘계시록’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견해에 반드시 부딛힐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이해하는 것이 비교적 좋을 것입니다.
이 이름들을 매우 좋지 않게 취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환난에 대한 해석을 ‘과거형’, ‘역사형’, ‘미래형’, ‘영적해석법’으로 나누는데, 모두가 이 재난이 어느 때에 오는가에 대한 회답입니다. 과거형 해석법은 이 재난은 이미 발생했으며, 바로 로마제국이 넘어질 때 발생했고, 그것은 아시아 일곱 교회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로 말하면 이미 끝났고, 그 모든 것들은 이미 과거형입니다. 이것은 1, 2세기 때 발생한 일이고, 혹시 제3세기까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의 바벨론은 일곱 산 위에 놓여있는데, 그것은 로마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로마가 바로 일곱 산 위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과거형 해석법은 완전히 로마제국의 각도에서 해석했습니다. 구래서 이 모든 것을 지나간 일로 여기는데, 이것은 제1세기의 일입니다.
역사형 해석법은 중간 이 몇 장이 교회 역사 전체를 언급하는 것으로 봅니다. 제1세기부터 예수님 다시 오실때까지가 교회 역사 전체를 포함했다고 봅니다. 그들이 ‘계시록’ 6-16장을 마치 여섯권으로 되어 있는 ‘케임브리지 현대사’처럼 읽습니다. 연달이 읽으면서, 이것은 지난 2000년 역사를 논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 해석은 통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해석하면 매우 억지스럽습니다. 6-16장에서 대다수의 재앙이 로마제국이 넘어질 때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해석을 믿지 않는데, 이는 참으로 매우 억지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16장의 사건이 1997년에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거기에서 개교 운동과 초기의 핍박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해석은 바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교회 역사의 일곱 시대로 해석하면서 현재는 라오디게아 시대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셨습니까? 여러분, 아시아 일곱 교회는 교회 역사의 일곱 시대를 대표하지 않고, 역대 이래의 여러가지 형식의 교회를 대표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대표하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 역사가 일곱 시대로 나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제1세기부터 예수님 다시 오실때까지를 일고 시대로 나누고, 심지어 ‘계시록’에서 우리가 현재 어느 장에 있는지까지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세번째는 미래형 해석법인데, 이런 미래형 해석법은 이 재난들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과거형 해석법을 가리킴) 재난은 이미 지나갔다고 하고, 그리고 이 사람들은(역사형 해석법을 가리킴) 현재에 이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고 하고, 그리고 또 이 사람들은(미래형 해석법을 가리킴) 이 재앙들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미래형 해석법은 마지막 7년 동안인 3년 반은 대환난 시기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해석을 믿습니다. 제가 6-16장을 읽을 때 이 사건들이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대환난에 있다는 것을 저는 믿지 않으며, 이미 지나갔다는 것도 믿지 않고, 이 사건이 미래에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혹시 오래지 않아서 올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미래에 발생할 것입니다.
네번째 해석법은 찍어서 어느 시대라고 말하지 않고, 매 시대마다 모두 이럴 것이라는 합니다. 이는 단지 신화나 혹은 이야기일 뿐이고, 어느 시대에나 적용되고, 이는 어느 지점이나 혹은 시간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며, 선악 사이의 영원한 투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를 어느 시간에 제한시키면 안되며, 하늘의 선과 지상의 악 사이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면 얼마만큼 진실됩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는데, 미래의 재난을 먼저 그림자로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몇가지 서로 다른 해석법은 사람들이 이 재앙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재앙이 이미 지나갔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로마제국이 넘어졌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지금 절반을 겪었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미래에 발생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수시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 재앙들은 대부분 미래에 발생합니다. 우리가 응당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래에 반드시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미래의 이 사건들의 그림자를 이미 볼 수 있으며, 해양이 오염되는 것을 볼 수 있고, 해가 너무 밝거나 혹은 너무 어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고, 오존층이 파열되는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현상을 볼 수 있고, 이 네 마리 말이 지상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 깨끗한 수원이 매우 부족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여러가지 현상들이 더는 공상 과학 소설 속의 장면이 아니고, 모두가 진짜로 존재하고, 상황이 갈수록 진짜와 같아집니다. 그래서 영적 해석법은 이 재앙들이 각 세대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거의 진실됩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형 해석이 맞다고 믿습니다. 좋아요. 우리 여기까지 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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