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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고난의 이유

LNCK 2019. 5. 13. 22:12

 

 

넘치는 고난의 이유               고후1:4~9                 출처

    

1. 자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고난

 

하나님이 특별한 사명을 맡겨서 쓰시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고난이 임합니다.

왜냐면 그가 감당할 일이 특별히 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자기가 많은 고생을 한 것을

본문에서 넘치는 고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후1:5

 

옥에 갇히고, 수없이 얻어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했습니다.

돌에 맞고, 세 번 파선하고, 강도의 위험, 바다의 위험,

잠을 못 자는 고통, 목이 마른 고통, 버림 받는 고통,

춥고 헐벗는 고통..

 

또 기가 막히는 고통은, 바울은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병을 위해서는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 않는 질병의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같은 동족들로부터 미움 받고, 버림 받고, 배반당하는 고통도 경험했습니다.

 

이런 극심한 고통들이 그에게 닥쳐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오늘 그걸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1:4~10절 본문은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넘치는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됩니다.

 

본문은 이렇게 나옵니다.

왜 넘치는 고난이 나에게 임하느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하여

그런 고통이 임한다고 그랬습니다.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극심한 고난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합니다.

 

바울은 너무 믿을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학식이 든든했지요. 배경으로나 신분으로나

그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고요,

든든한 뒷배경이 있었고, 인맥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자신의 이런 배경들을 의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이 줄을 의지하다가, 하나님 줄을 놓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모든 줄들을 다 끊어버리셨습니다.

 

저 허원구 목사는 어떤 면에서 보면 흙수저 입니다.

부모님이 불신자였습니다.

 

여러분, 목사로서 부모님이 불신자라는 것은

얼마나 흙수저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출석했던 우리 고향교회 목사님은

영향력이 별로 없는 목사님이셨어요.

성도나 후배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장신대)에 가 보니, 얼마나 금수저들이 많은지요.

자기 아버지가 목사님, 장로님, 총회장 등

얼마나 든든한 사람들이 많았던지요.

보니까 저는 흙수저 중의 흙수저였습니다.

 

그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 흙수저의 은혜가 크구나!’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니까요)

 

한 번은 자기 아버지가 대단한 분인데

금수저 중에 금수저인 동급 신학생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금수저들도 힘듭니다.

제가 열심히 잘 했는데, 사람들은 아버지가 밀어줘서 잘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뭘 잘 해도 다 그건 아버지 덕이라고 말합니다.

 

또 제가 조금만 잘못해도

네 아버지 밑에서 그것 밖에 못하느냐고 막 질책이

제게 마구 쏟아집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주위에 믿을 수 있는 배경이 없는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큰 무기가 무엇입니까?

주님만 의지하는 심령이 되면,

그것이야말로 든든한 우리의 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 그의 환도뼈를 꺾었습니다.

그는 자기 재주(능력)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계략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얍복강가에서

그의 환도뼈와 함께 끊어버렸습니다.

 

믿었던 재산도 다 끊어버리고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리고

심지어 가장 중요한 그의 건강, 즉 환도뼈마저도 위골시키셨습니다.

 

그는 다음 날 아침에 절면서, 절뚝거리면서 걸어갑니다.

그날 이후로 평생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하나님 한 분만 붙들고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

그가 새 사람이 되었다는 증표이지요.

그가 달라진 것은, 그 후로 그는 자신을 절대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며 남은 평생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많은 책을 써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작가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하나인 C. S. 루이스 교수,

 

그가 한 번은 옥스퍼드 대학 채플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설교 후에 걸어나오는데, 한 젊은이가 묻습니다.

교수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 세상은 왜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고통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때 루이스 교소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은 교만하고 오만한 존재가 인간인데

고통마저 없다면 얼마나 더 교만하겠는가!

고통은 말이야, 잘 듣게,

바로 귀 먹은 사람을 깨우치는 하나님의 확성기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고통속에서 역경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지!’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돈 줄이 끊어지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기도도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돈 줄이 끊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요?

 

하나님께서 돈 줄을 끊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후1:9

 

때로는 살다보면 하나님께서 관계의 줄을 끊어버리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줄을 끊어야 하나님 줄을 붙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사람을 좋아합니다.

너무 사람과의 관계를 의지합니다.

전화기와 수첩에 수 백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인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끊게 하십니다.

그 모든 인간관계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건강의 줄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예의 줄을 끊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주님은 내가 더욱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께로부터 오는 힘을 얻고, 주께로부터 오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

그것으로 사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극심한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믿고,

주님만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길 기원합니다.

 

버섯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장작을 세워놓고 버섯 포자를 붙여서 버섯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섯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때는 농부가 나무 장작을 발로 걷어서 넘어뜨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망치로 장작을 땅땅 때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장작에 붙은 포자들이 비로소 발아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나무 장작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망치로 충격을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빨리 버섯을 맺게 하기 위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성장과 유익을 위해서

우리 인생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지게도 하십니다.

우리가 미워서 그러시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충격을 주십니다.

 

우리를 고통 가운데 몰아가시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는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세우기 위하여 넘어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고로 넘어졌다고 실망하지 말고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확인하기만 한다면

바로 우리를 주님께서는 다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고로 넘어져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소연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하나님을 확신하는 마음

그것이 하나님앞에 분명해지면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2. 너희(타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고난

 

우리 인생에 닥치는 극심한 고난은

우리 개인을 위해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이 자라고, 든든히 내가 바로 서는 인생이 되게 하기 위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위로를 받고, 바로 서게 되어서

우리를 통해 하시려는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고후1: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내가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나를 통해 위로 받게 하기 위하여

내게 고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 그릇만 준비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내가 자라고, 위로를 받아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존재로 일어나게 되면

주님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몸이 아파본 사람만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압니다.

고독해본 사람만 고독한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우리가 살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어날까?

아니, 저 사람은 편안히 잘 사는데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할까?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내가 그 분야의 고통을 겪고 위로를 받아서

그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바로 그 고통을 직면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위로자가 되고

그 사람을 돕고, 그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그냥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하심입니다.

특별히 정하십니다.

 

넘쳐 흐르는 고통을 우리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시는 것은

내가 거기서 위로를 받아

또 다른 사람을 향하여 그 위로가 넘쳐 흘러

그에게 은혜와 평강이 임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통을 통해 훈련받고

위로를 받아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도구로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위해

내게 고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도구가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망치 하나, 송곳 하나

도구를 만들려고 하면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적어도 불을 통과해야 합니다.

망치질이 지나가야 합니다.

두들깁니다. 조입니다. 깎아내기도 하고, 뚫기도 합니다.

연마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하나의 도구가 됩니다.

도구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불행한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10살 즈음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배고픈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일찍이 형제를 부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결혼한 지 13년 만에 아내가 죽었습니다.

 

재혼했습니다. 20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가운데 10명이 10살 전에 죽었습니다.

남은 하나도 정신박약아였습니다.

인생 말년에 그는 시력을 잃었습니다.

뇌출혈로 그는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곡을 하나 완성하면, 그 악보끝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런 글을 써 넣었습니다.

 

그가 바로 근대음악의 아버지 바하입니다.

그는 예수는 인간 근원의 기쁨그 아름아운 음악, 위로의 음악, 소망의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습니다.

 

저는 바하가 연주했던 오르간 앞에 서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고난이 겹치고 힘든 가운데

그가 한 숨을 후욱 내쉬고 또 다시 앉아서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위로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강을 전하는

그런 아름다운 음악 작곡과 연주가

그런 배경에서 탄생되었구나..를 생각하면서 감격스러웠습니다.

 

여러분, 그의 곡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쳐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께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넘치는 고난을 통해서요!

 

종합적인 고통을 당했던 그의 생애가

다 그의 음악 안에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이 있을 때는

다른 음악 말고,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음악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편안해 지실 것입니다. 왜요?

그가 받은 위로가 그 음악에 녹아 있습니다.

그가 받은 소망이 거기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인간 기쁨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그의 음악 제목)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또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5단계 욕구에 대해 말했던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것은

얼마나 고난을 이겼는가.. 거기에 달려 있다!’

 

내 인생에 남들이 겪지 못한 극심한 고난과

시련이 오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위로를 받아서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상처만 입었지만, 이 상처 때문에 주저앉지 않고

도리어 다른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하는 치유자를

헨리 나우웬은 상처입은 치유자라고 불렀습니다. Wounded Healer

 

이 세상에는 지식만으로 남을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는 것이 남달리 많습니다.

그 모든 지식을 통해서 치유해 보려고 하지만, 그렇게 효과는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돈과 사상과 이념으로 남을 치유하고

사회를 치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필요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 분이시죠.

그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이시며

나를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의 그 상처는 이미 치유된 상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상처 입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상처에 대한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그는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자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상처를

다 치유하셨습니다.

이 시간 어떤 상태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를 경험하시는 예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상처입은 치유자!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내게 허락한 상처는 우연이 아닙니다.

나를 키우는 상처입니다.

나를 주님 곁에 가까이 두는 상처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그런 특별한 상처입니다.

 

혹시 남들보다 더 극심한 고난이 주어졌다면

그 누군가 나의 도움이 더욱 간절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특별하게 고난 당하고, 상처를 경험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 사람들은 마음속에 기억되는 영화중에 <서편제>가 있습니다.

온 국민을 울렸습니다.

거기에 아버지가 나오고, 그는 떠돌이 소리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양딸인 송화가 나오죠.

 

아버지는 이 송화가 자기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다른데 가지 않고 자기 곁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또 그 송화가 명창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한 가지 끔찍한 일을 행합니다.

 

명창이 되려면 한이 서려야 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자기 양딸 송화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어떤 약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 뒤에 아버지는 죽습니다. 죽으면서 거기에 대한 것을 다 사과합니다.

 

송화는 명창이 됩니다.

마지막에 바로 이 송화가 의붓오빠 동우를 만나고

절창의 소리를 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저는 가만히 그 영화를 보면서 제 마음속에 담기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주님 곁에 나를 두기 위하여!

주님 곁에 가까이 두기 위하여!

주님만 의지하고 이 험한 세상에서 주께로부터 오는 힘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극심한, 남다른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극심한 고난 중에 계십니까?

더욱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이게 답입니다.

더욱 주님을 바라보시고, 주님을 더욱 더 의지하고

주님을 붙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에게 남다른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내가 주님의 위로를 받아서

천국의 명창, 복음의 명창, 소망의 명창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고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상처를 입지 않은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좀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다 상처를 경험합니다.

고난을 경험합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꺾이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일어나 주님의 위로를 받고 은혜를 받고

다시 서서 주님처럼 바울처럼

주님이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워주고 붙들어주어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입은 치유자들이

다 되시기 축원합니다!

 

고후4:7~10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

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