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7:13~14
김성덕 목사 설교
▲‘좁은문’하면 두 명작이 떠오른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과 크로닌의「천국의 열쇠」이다.
앙드레 지드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이 작품에다 토로해 놓았는데
주인공 알리사가 결혼이라는 지상의 행복보다는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수도원이란 ‘좁은문’을 택한다.
(아마 그 길로의 부르심이 있었나 봅니다.)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 치섬 신부는
친구 밀리 신부의 바티칸의 영달보다는 중국 선교사로서의 고난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천국의 열쇠가 누구에게 주어지겠는가?’ 라고 묻는다.
우리의 신앙의 길에도 항상 이와 같이 선택해야 할 길이 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고 하신다. 신30:19
선택을 잘한 사람은 복된 삶을 누리며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는 잘 선택한다고 했는데,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앞길에 생명의 길, 좁은 문을 선택할 수 있는 눈이 뜨여지기 바란다.
◑1. 예수님은 왜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가?
→ 생명(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마7:13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명’이란 말은 - 단순히 ‘목숨’만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의 삶을 포함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물질 우선으로 선택하는 유혹
사람이 눈이 뜨여지지 아니하면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줄 알고,
눈앞에 물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우를 범한다.
성경에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에
어느 땅을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 졌다.
롯은 물질을 우선적으로 택했다.
적어도 롯이 볼 때는 그 땅이 비옥하여 농사나 목축에 유리하여
단 시간 내에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에
그 도시가 죄악으로 가득 찬 것은 묵과하고,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했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겠다는 생각보다 앞섰다.
과연 롯은 그곳에 가서 살면서 빠른 시일 안에 돈을 벌었다.
부자가 되었고 그 성안에 유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생활은 관심이 없었다.
가족 식구들에게도 경건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 하시려고 천사들을 보내어 경고하실 때
정혼한 자기 사위들도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고
자기 아내마저 귀담아 듣지 않다가 소금기둥이 된 것을 볼 때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으면 가족들마저 그 말을 믿지 않았겠는가?
결국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다.
▲‘좁은 문’ 후에 ‘생명의 길’
그렇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선先고난 후後영광이다. ‘좁은 문’ 후에 ‘생명의 길’이다.
‘넓은 문’ 후에는 ‘멸망의 길’이다. No cross, No crown이다.
(우리는 좁은 문보다 넓은 문을 먼저 가르치지 않는지...)
◑2. 우리의 신앙생활에 ‘좁은 문’은 무엇을 말할까?
좁고 길이 협착해서 찾는 이가 적다고 했다. 마7:14
왜 사람들은 이 길로 많이 가지 않을까?
▲1. 회개의 좁은 문이기 때문이다.
막1:15절에,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셨다.
이 문은 회개해야 들어가는 천국 문이기 때문이다.
구약에 보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렇게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했는가?
특히 바알 신을 끈질기게 섬겼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거기에는 내가 잘살기 위해서
‘믿으라! 구하라! 즐거워하라! 춤춰라!’는 있지만,
‘회개하라, 계명을 지켜라!’는 없다.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은 있지만, ‘헌신하라, 희생하라’는 말은 없다.
너 편한 데로 믿으라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책망만 하는데 누가 가려고 하겠는가?
‘쉽게 믿고 복 받아라!’ 하는데 가기 마련이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회개 없는 믿음만 강조하다 보면,
기독교의 탈을 쓴 바알 종교로 전략할 위험이 있다.
여기에는 생명이 없다. 구원이 없다. 진정한 복된 삶도 없다.
회개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예수 믿기로 결심 했으면 ‘회개의 좁은 문’도 통과하시기 바란다.
▲2. 기도의 좁은 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상보훈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기도이다.
마5-7장까지 산상수훈 가운데
6장 전체가 기도에 관해 말씀하고 있고
7장 앞부분에서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시며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를 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기도야말로 하늘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도의 문이 왜 좁은 문인가? 기도는 힘이 들기 때문이다.
▲보상이 있으면 안 힘들다
그런데 세상에 힘 안 드는 일이 있는가? 문제는 ‘보상’이다.
한번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다가 도로공사로 교통이 정체 되었다.
여름 태양 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수신호를 하고 있는 청년이
얼마나 힘들어 보이는지 인사말로“수고합니다. 힘들지요?”하니
“말도 마이소, 죽겠심더!”했다.
그런데 만약 이 청년의 일당이 5만원이 아니고, 100만원이라 가정하자.
그러면 사장이 “자네 힘들게 보이니 내일부터 그만두게” 하면,
“남자가 이까지 것 가지고 뭘 힘들어요?” 할 것이다.
문제는 ‘대가(reward)’지, 어느 정도 힘든 것은 문제가 아니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왜 기도하지 않는가? 힘드니까 안한다고 그런다.
그러나 사실은 눈이 뜨여지지 아니해서 안하는 것이다.
눈이 뜨여진 사람은 기도한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서 내려오나니 약1:17절
각양 좋은 은사가 우리에게 내려오는 통로가 있다.
바로 기도라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늘 문을 두드려야 한다.
▲3. 팔복의 좁은 문이기 때문이다.
산상보훈은 팔복으로 시작된다.
팔복 은 신앙생활의 기본자세이다.
팔복이라든지, 시1: 복 있는 사람, 또는 갈5:22절 성령의 열매
그리고 순종의 수레바퀴, 즉 말씀과 기도, 성도의 교제, 전도하는 삶
이런 것이 다 신앙의 기본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팔복보다, 시1편의 복보다, 물질의 복을 ‘먼저’ 구한다.
그래서 자꾸 넓은 길로 간다.)
하루에 성경 한 장 안 읽고, 기도하지 아니하면서
대구의 장자적인 교회 어쩌구 하면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신앙생활이다.
산상수훈은 팔복으로 시작되어진다.
즉 산상수훈은 바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원리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은, 곧 팔복을 지키는 삶이다.
▲4. 십자가의 좁은 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의 문은
십자가의 길과 통하는 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기도의 좁은 문에 들어서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세 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밤을 새워 고민하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지마는
제자들은 육신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잤다.
결국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겁이 나 다 도망 가버렸다.
신앙생활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거치신 주님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능히 질 수 있었고,
그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의 영광’을 가져왔다.
참 축복이 십자가, 좁은 길을 통해서 내려오는 것이다.
부활의 영광은 반드시 십자가의 고난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기도의 문 들어서지 아니하면, 십자가의 길 걸어갈 수 없고,
십자가의 길 외면하고,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 할 수 없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3. 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을까?
→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기 때문이다.
여기에 넓다는 말은 ‘육신적으로 편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편한 길을 택한 것이다.
▲편한 길 찾다가 망하는 길 택한다.
성경에도 보면 육신적으로 편한 길 택하다가 망한 사람들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건이 삼하6: 에 나오는 ‘베레스 웃사 사건’이다.
법궤는 레위 지파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하는데도,
편하게 수레에 싣고 운반하다가 웃사가 죽는 낭패를 당한다.
좀 힘들더라도 하늘의 은혜를 바라보며, 기도의 좁은문 들어가기를 축원한다.
▲자기의 욕심 때문이다
사람들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인데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 즉 욕심으로 눈이 가리어지니
자꾸 자꾸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한다.
다른 비결은 없다
어디 세상뿐이겠는가?
형통의 비결, 축복받는 비결, 영혼이 잘되는 비결,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다. ‘좁은 문, 좁은 길’ 밖에 없다.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값싼 은혜가 우리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원수이다
우리는 오늘 값비싼 은혜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즉 교인들이 너무 쉽게 예수 믿고, 너무 쉽게 축복 받고,
너무 쉽게 천국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신앙의 길이 아니다.
기도의 좁은문 들어서지 아니하면 축복도 없다는 것,
십자가의 길 들어서지 아니하면 영광도 없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는 이가 적은 이유가 무엇인가?
→ 문은 좁고 길은 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을 들어서야, 이 길을 걸어야 생명(영생)이 있다. 영광이 있다.
성경의 믿음의 장자들 보시라.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바울 등
다른 이들이 찾지 않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었기 때문에
구속사를 빛내는 인물이 된 것이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사실은 찾는 이가 적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4
▲좁은 문을 택한 주기철 목사님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든 배후에는
‘좁은 문’을 택한 순교의 신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잔학한 일경들이 잔혹한 고문을 하다가 안 되니
옥에 갇힌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못 판을 같다놓고
“너희들이 신사참배 하면, 주 목사 못 판 위로 걷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그때 주 목사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주기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 지신 십자가만 바라보세요.
오직 주님의 계명만 따르십시오!” 그리고는 못 판 위로 걸어가셨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06.12.17. *원제목 : 좁은 문(마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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