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 (허리케인) 를 보는 세계관의 차이 수23:6 여러 자료 취합
지금까지 미 본토를 강타한 허리케인 가운데 5등급(최고등급)으로 분류된
허리케인은 단 3개밖에 없다고 한다.
(카트리나는 바다에서 5등급이었으나, 상륙 직전 4등급으로 약해졌음)
가장 최근 미 본토에 상륙한 5등급 허리케인은 지난 1992년 남부 플로리다를
상륙해서 엄청난 피해를 내고, 당시 타임 등 시사주간지를 도배했던 ’앤드루’였다.
▶모든 것을 너무 영적으로 치우쳐 해석하는 아프리카인
미국 의료 선교사는 아프리카에 가서 간호대학 여학생들을 모아놓고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병균과 그 예방법에 대해 한 학기 내내 열심히 가르쳤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방학을 맞아 여학생들은 뿔뿔이 고향으로 흩어졌다.
교정을 떠나면서 여학생들은 서로 마주보며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아무리 뭐라고 떠들어도, 우리 동네에서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것은 귀신spirit이야!”
거의 대부분 아프리카 인들은, 카트리나의 피해를 하나님의 징계로 믿을 것이다.
그 외 질병, 화재, 가뭄, 이혼 등 모든 삶의 불행의 근거와 또한 해법을
→ 그들은 영적인 방식으로 찾는다.
▶반대로 모든 것을 너무 이성적/과학적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서구인
태풍 카트리나의 피해가 하나님의 징계였다고 말하면....
다수 미국인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자리를 피할 것이다.
서구는 16세기 르네상스와 18세기 이성주의로 이어지는 강한 이성적 전통이 있다.
그런 학교 교육을 10년 이상 받은 서구인은 모든 현상을 이성적/과학적으로만 판단한다.
그래서 대부분 미국인들은 카트리나의 피해를
어쩌다가 당하는 천재지변이며,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 정도로 해석한다.
감정적 경향이 강한 오순절 성도 일부만 ‘하나님의 징계’로 다소 인정할지 모르겠다.
참고로, 한국인등 동양인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
동양인은 모든 재해를 무조건 영적 원인으로만 보지 않으며
또한 무조건 과학적으로도 보지 않는다.
서구인과 아프리카인 사이에 중간쯤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서구식 교육을 많이 받은 젊은층일수록, 서구식 사고 판단을 내릴 것임)
▶모든 것을 과학적/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그것은 인본주의에 더 가깝다.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과 신앙이다.
모든 것을 무조건 아프리카 인들처럼 신앙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물론 위험하다.
제멋대로 자의적인 <사이비 무당식 예언과 판단)을 내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폐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더욱 과학적/ 이성적 판단에 무리 없이 끌린다.)
그러나 성경은, 국가적 재난을 당하면, 왕과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적당한 때에 등장하여, 그 이유와 해법을 전달해 주었다.
이렇게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자연재해를 당하면 꼭 영적/신앙적 해답을 찾았다.
▶재난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미국 정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카트리나 때 조금 안일한 대응을 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았던 연방 정부가
그런 연유인지, 지금 리타 때는 보다 부지런히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재앙이 만약 하나님의 징계라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며,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주 방위군으로 막을 수 없고, 제방 둑을 튼튼히 한다고.... 턱도 없다.
사람들이 대피하는 그 경로를 따라 태풍이 뒤따를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크리스천들이니, 그들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겠지만
미국인들은, 자기들이 지나치게이성적/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수용하기 힘들겠지만, 영적/신앙적 대처에 보다 민감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점에도 만약 미국 교회가 입을 다물고 회개를 외치지 않고 있다면....
거저 천재지변의 하나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이성주의 전통’의 영향이요,
더 나아가 불신앙이다.
▶카트리나 피해 추모 예배 유감
05.09.16.(금)은 미국에서 카트리나 피해자를 위한 국가기도의 날로 지켜졌고
와싱턴 D.C.의 National Cathedral 에서는
부시 대통령과 각료들은 추모예배에 대거 참석한 가운데 추모예배가 드려졌다.
이 날 특별추모예배에는 부시 대통령 내외와
체니 부통령 내외도 참석했다.
추모예배에서 설교한 내용을 읽어보았다.
http://www.cathedral.org/cathedral/worship/tdj050916.html
설교자 Bishop Jakes, the Potter's House in Dallas, Texas.
카트리나의 피해가 주로 흑인들이라서, 흑인 성직자가 초빙된 이유의 하나인 듯 하다.
또한 거기서 부시 대통령이 연설한 내용을 읽어보았다.
설교나 연설 내용들은 모두 단아하고, 잰틀하고, 아무런 손색없이 훌륭했다.
그러나“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더욱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혹시라도 모르는 우리의 잘못에 대한 주님의 용서를 바랍니다!”
그런 회개와 관련된 내용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가장 근접한 표현을 찾으라면
우리는 자연의 광대하고도 냉담한 힘에 의해 겸손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자연의 능력을 곁에서 (보고) 작아짐을 느낍니다. ... 가 고작이었다.
We’re humbled by the vast and indifferent might of nature
and feel small beside its power.
그러니까, 카트리나의 재난을 일종의 천재지변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전통적 서구인의 전형적 사고구조를 누가 탓할 수 있으랴마는....
정말 전형적 추모예배처럼, 희생자의 명복을 기리고,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앞으로 있을 복구 작업에 다같이 열심내자... 뭐 그런 내용 일색이었다.
성직자의 설교 내용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도와서 열심히 복구하자가 그 주제였다.
▲금년(2005년) 여름, 한반도는 북핵 문제로 다시 전쟁 위기론이 팽배했었다.
그 때 한국의 여러 교회에서는 “회개, 자복, 용서 구함, 돌아가자”가 있었는데....
“자연의 힘 앞에서” 겸손하고 작아짐을 느꼈다는데, 그 어구를
“하나님 앞에서” 로 바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동양인과 서구인의 세계관의 차이다. 서구인은 지나치게 이성적인 것이다.
미국 신문 기사를 보면, 국가기도의 날에, 흩어진 미국 지역 교회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다고 한다.
http://tennessean.com/apps/pbcs.dll/article?AID=/20050917/NEWS08/509170338/1025/news
그러니까 대부분 지역 교회들은, 국가기도의날에, 모여서 기도하지 않았다.
직장에 가느라 그랬겠고, 또한 일부는 “너무 기도의 날이 늦었다”고 했다.
벌써 태풍이 지나 간지 오래되어 자기 교회에서 기도회를 다 끝냈는데,
또 무슨 새삼스럽게 기도회를 다시 하랴? 는 반응이었다.
미국에 직접 안 가 봐서 잘 모르겠지만, 아래 기사만 의존해서 보면 좀 안타깝다.
거기엔 미국인들의 이성적/과학적 세계관, ‘거저 천재지변이다’는 안일한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도 늘 대통령과 백악관이 기도회를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세는
참 존경스럽다고 할 수 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태풍의 피해가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할 따름이다.
'분류 없음 > 2004~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천덕, 당신은 실패한 사역자입니다 (0) | 2019.12.28 |
---|---|
하는 기도, 되는 기도 (0) | 2019.12.28 |
금대접에 기도가 차면... Orr (0) | 2019.12.24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0) | 2019.12.24 |
때가 차매... (0) | 2019.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