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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구하지 말고,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야

LNCK 2019. 12. 26. 12:54


◈기적을 구하지 말고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야           막1:12~13     2008.01.08.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3가지 시험의 공통적 특징은

    

<기적을 예수님 사역에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라>이다.

 

당신은 기적을 능히 일으킬 수 있잖아? 기적을 보여줘 봐!’이다.

      

 

 

물론 예수님의 반응은.. 단호한 거절이셨다.

      

 

 

오늘날에도 자꾸 기적을 요구/추구하는 성도들이 있는데

 

굉장히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뿌리에 마귀의 영향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므로.. 조심해야 한다.

      

 

 

목사님, 사람들 좀 깜짝 놀라게 해 봐요, 교회 부흥 저절로 되지..’

 

사도행전 보니까 사도들이 기적을 많이 일으켰던데...? (왜 안 되지?)’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물론 모든 기적이 마귀적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기적을 목적하고, 기적 제일주의로 추구하는 것은대단히 위험한데...

 

      

 

그러면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 행하심도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성경에는 기적.. 특히 요한복음 등에서는 표적이라는 단어를 썼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첫 번째 표적이라고 했다.

 

     

 

표적을 보여주신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첫 표적sign을 갈릴리 가나에서 나타내시매,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2:11

      

   

 

표적(기적)을 보여주신 목적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sign/도구였다.

 

      

 

마술사처럼 기적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드러내기 위한 어떤 수단/방편이었다.

 

      

 

예수님은 기적(=표적)을 동원해서 사람을 끌어모으지 않으셨다.

 

기적을 사용하도록 유혹하는 마귀의 시험을.., 공생애 내내 물리치셨다.

 

오직 자기가 메시야이심을 드러내려는 목적으로서만..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구세주이심을 믿게 하려고할 때에만.. 기적을 사용하셨다.

 

      

 

구약의 이사야서 등에 보면, 장차 오실 메시야가 예언되어 있는데,

 

그가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눈먼 자를 보게 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눈먼 자를 보게 하신 것은,

 

자신이 바로 이사야서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알리시고,

 

그래서 자기를 믿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조선시대에 암행어사의 신분증의 마패였다.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이 일종의 '마패'인 셈이다.

 

 

(암행어사가 마패를 <자기 신분을 알리기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가 다른 이기적 목적으로 마패를 사용한다면.. 가짜 암행어사이다.

 

주막에 가서 밥 먹고, 돈 안 내고, 대신에 마패를 보여준다면.. 가짜다.

 

기적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이다.)

 

 

 

세례요한이 옥에 갇혔을 때, 예수님이 구세주인지 헷갈렸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직접 물어보았다. '메시야 맞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가서 요한에게 말하라. 맹인이 보며, 못 걷던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11:4

      

 

 

구약의 배경을 모르면, 예수님이 동문서답 하신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이다. ‘내가 곧 이사야서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가 맞다!’

 

즉 마11;4절은, 이사야서 예언이 나에게 성취되었으며

 

'내가 바로 이사야서가 예언한 메시야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약하면,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들은

 

<자기가 메시야임을 증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오늘날 기적 사역하는 사람들과는 그 목적이 확연히 달랐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적을 <예수님의 신분을 알리기 위한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더욱이 기적을 <전도자가 자기 신분/능력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적중심>으로 사역을 진행하면 절대 안 된다.

 

<말씀 중심>사역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사도바울의 사역을 연구해 보면,

 

모든 장소에서/모든 경우에.. 예수님 사역은 <말씀 전파가 필수과목>이었다.

 

<표적 나타냄은 선택과목>이었다...

 

, 표적이 일어날 때도 있었고, 안 일어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신 일은... 언제나 항상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기적을 사용하셨는가?

 

사람들/마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까지 끊임없이 기적을 요구했다.

 

한 번 기적적으로, 거기서 내려와 보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물론 기적을 사용 안 하셨다.

 

<사역을 위해서는> 기적을 사용하신 예가 없으시다.

 

     

 

오늘날, 사역을 위해서, 기적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기적이 나타나야 사람들 모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서 사역을 행하신 적이 없으셨다.

 

      

 

기적이 아니라, 자기 삶으로 복음을 전한 바울

 

사도 바울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기대도 안 했는데 기적이 우연히 동반되었던 적은 있었다.

 

그러나 기적을 기대하고, 기적을 목적하며, 의도적으로 바랐던 적은 없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자랑한 적도 없었다.

 

      

 

바울은 기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삶으로 복음을 전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그가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나 감옥 터가 무너져서 그가 구출되었다...

 

이런 식이 아니었다.

 

      

 

감옥에 있으면, 감옥생활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거기서도 복음을 전했다.

 

빌립보에서는 지진이 나서 감옥터가 무너지기도 했는데,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나가지 않았다.

 

     

 

몸은 매여도 말씀은 매이지 않는니라면서, 로마 감옥 안에서 열심히 사역했다.

 

기적이 일어나서, 감옥을 벗어나려고.. 기도조차 하지 않았다.

 

감옥에 갇힌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기적적 구출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로마로 호송되어가다가 풍랑이 일어났을 때도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나서 풍랑이 잔잔케 된 것이 절대 아니다.

 

수 일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다.

 

 

그 외에도 강의 위험, 사람의 위험 등 모든 위험을..

 

자기 몸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다 겪어냈다. 기적/요행으로 피해가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나서 바울을 구출해 주지 않았다.

 

(그 위험을 미리 알려주신 적은 있지만,

 

초자연적인 기적적으로 구출해 주신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앙생활을 자꾸 기적으로 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무슨 어려움이 닥치면.. 기적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며,

 

경제적으로 좀 어려우면.. 기적적으로 대박이 터지기를 바라며,

 

질병에 걸리면.. 기적적으로 다 치료되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물론 우연이나 기적으로, 하나님이 자기 뜻을 이루실 때도 아주 가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주님의 섭리는,

 

그 상황이 필요하니까.. 내게 주신 것이다.

 

     

 

그러면 자기 생활/삶 속에서 그것을 견디고, 이겨 나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꾸 그런 어려움에서 자기를 도피시키려 한다.

 

그리고 기적적인 해결만 바라는데...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잘못 이해해서 그렇다.

 

예수님이나 바울은, 한 번도 기적을 그런 식으로 동원하신 적이 없으셨다.

 

      

 

목회 사역도 기적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설교도 기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아니다. 연구해야 한다. 책을 읽고, 성경을 연구해야.. 설교가 되어진다.

 

아무 준비 없이 기도만 하다가, 강단에 올라서면

 

천사가 주신 말씀이 주루룩 나오는 적은.. 글쎄 없다.

      

 

 

부득이한 이유로 설교준비를 못 했을 때, 어쩌다 한 번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99%의 경우는.. 설교는 성실히 준비해야 되어 진다. 기적이 아니다.

 

      

 

내가 성실하게 살고, 성실하게 자기 일에 충실할 때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는 것이지,

 

자기 생활은 도외시하고, 마치 로또 복권 당첨되길 바라듯이

 

무슨 기적이 일어나서 자기 가정이 확 펴기를 바라는 것은... 건전한 신앙 아니다.

      

 

 

만약 자기가 기적만 바라는데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면,

 

마귀에게서 온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 식으로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내 선교/해외 선교를 떠날 때

 

어떤 팀은, 준비는 거의 하지 않고, 오직 기도만 하는 팀이 있다.

 

혹시나 하나님이 특별히 그렇게 시키신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도를 해야 하지만 동시에

 

-전화해서 팀원들을 모아야 한다.

 

-단기선교팀은 언어를 준비해야 한다.

 

-전도지, 구급약, 어린이전도용 시청각 교재 등은.. 사람이 준비해야 한다.

 

      

 

그런 준비 하나도 없이, 기적이 일어나서

 

선교지 사람들이 모두 뒤집어지기를 바란다면...

 

글쎄, 그게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오해한 데서 나온 발상이 아닐까?

 

      

 

사도바울은 성실하게 삶으로전도했다.

 

거기에 기적이 동반되든지/안 되든지.. 그게 사역의 변수는 아니었다.

 

기적/표적이 나타나지 않은 도시(약 절반정도)에서도

 

그는 발로 걸어가서, 말로 복음을 전하고, 핍박이 오면 견디면서..,

 

성실하게 삶으로전도를 해 나갔다. 그 고난적 환경을 참고 견디어 내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쫙 해결/처리해 주시길 바라지 않았다.

 

 

 

그런 최선을 다하는 삶 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신앙은 성실한 삶/생활로 하는 것이지, ‘기적/요행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따르는' 것이었다. 성실하게 살 때, 기적이 '따르는' 경우가 있다. not 목적

 

 

단기선교 다녀와서, <이번에 기적이 없어서 썰렁했어요!> 이런 간증 하지 마시라.

 

기적을 바라고 단기선교를 떠났다는 얘긴데,

 

그런 것을 부추기는 설교/책을 워낙 많이 접해서 그런 영향을 받은 모양인데,

 

여러분, ‘기적은 있어도 되고/없어도 된다.

 

      

 

단기선교는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다.

 

무슨 기적 보여주러/보러 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생애의 하이라이트는 십자가였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적을 많이 행하셨다면,

 

왜 십자가 지실 때는 기적을 한 번도 행하지 않으셨을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기적을 행하며 살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기적 추구> 인생이 되지 마시고

 

<십자가 추구> 인생이 되시기 바란다. 그게 올바른 신앙생활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무슨 뜻인가?

 

자기 삶에 부여된 모든 어려움(십자가)을 기꺼이 당하라는 뜻이다.

 

기적(요행)으로 피해가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성경을 자세히 보시라. 한 번도 <기적을 행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다만,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은 반복해서 나온다.

 

자기 삶에 힘든 고난이 계속 닥쳐와도,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내가 간절히 기도하면, 기적이 아니라, 삶의 성실성을 주신다.

 

시험 답안이 꿈에 환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성실히 시험공부를 준비하게 하신다.

 

      

 

한 판에 끝내세요!’99% 마귀의 유혹이다. 기적으로 일을 해결하라는 유혹이다.

 

꼭 기적이 필요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은 내가 성실하게 일상을 살게 하신다.

 

내가 하루아침에 출세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것.. 마귀의 시험이다.

 

꾸준히 한 걸음씩 성실하게 자기 경력을 쌓아가는 것.. 예수님의 인도방식이다.

      

 

 

이제 더 이상 기적을 간구하지 마시라.

 

하나님의 응답은 삶의 성실성으로 대치해서 주실 것이다.

 

 

그런 기도문이 있지 않은가?

 

내가 하나님께 빵을 구했더니, 밀을 주셨다고...’

 

기적적으로 하늘에서 빵이 뚝 떨어지기 기대하지 말고,

 

밀알을 심어서, 농사지어서, 추수해서, 그 밀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