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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들이여 자각하라

LNCK 2019. 12. 29. 17:18

선지자들이여 자각하라                  엡2:20                   편집장 글 


(평신도 사명자들이 꼭 읽어야 할 글)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다.

이 글에서는 더 광범위하게 목회자가 아닌, 하나님의 종이란 관점으로 살펴보자.

 

1. 구약시대 - 제사장과 선지자

 

구약시대 기름부음 받은 사람은 왕, 제사장, 선지자였다.

민주주의, 삼권분립 제도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 벌써 주님은 삼권분립을 세우셨다.

 

제사장은 제도권의 주의 종이었다.

선지자는 제도권의 주의 종이었다.

 

제사장제도권이란 - 아무나 제사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출신성분이 레위지파, 아론의 후손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반면에 선지자, 엄격한 제사장 자격과는 달리 아무나 할 수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라고 외치면.... 자칭/타칭 선지자였다.

그래서 선지자는 비제도권이며, 오늘날 평신도 중 사명자는 선지자라고 본다.

 

그래서 거짓제사장은 양산될 수 없었지만, 거짓선지자는 얼마든지 양산될 수 있었다.

(옛날에 한국에도 머리 밀고, 법복 걸치면... 스스로 가짜 중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인권이 미천했던 여자도 여자선지자”(드보라)로 발 벗고 나섰다.(4:4)

워낙 영적 파워가 강하니까 여자제사장은 안 되고, ‘여자선지자로 인정해준 것이었다.

 

(단락의 주제는 선지자는 아무나 평신도도 될 수 있었다이다.

이 글 전체 주제는 -오늘날 평신도들이 누구든지 선지자로 일어날 수 있다.

, 성령이 그 마음에 크게 감동될 때,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임할 때!)

 

오늘날 <제도권의 목사, 신부는 구약의 제사장과 가깝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1) 제사(예배)를 집례 한다. 집례에 따르는 특별 복장도 있었다.

2) 아무나 스스로 될 수 없다. 엄격한 자격 기준이 있었다. (선지자와 비교해서)

3) 사례를 받는다.

 

반면에 위 3개 항목과 정반대인 신/구약 시대의 선지자는

오늘날의 평신도에 가깝다고 본다.

 

엘리야와 엘리사 때에 선지 생도가 있었으나

그 이후에 선지학교가 지속된 흔적은 성경에 찾을 수 없다.

선지자는 당시 선지학교 졸업장 없어도 아무도 될 수 있었다.

 

제사장과 선지자의 연합 사역

구약시대에 많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겼다. 이에 대해 긴말할 필요 없다.

많은 신도들이 있었고(국민 전체가 신도), 매일 제사, 매년 절기가 있었으며

제도권 제사, 절기 지킴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땀이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구약시대에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섬겼다.

사실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제사장보다는 선지자가 훨씬 많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엘리야, 엘리사, 나단 등등

 

제사장과 선지자는, 구약 시대에, 사역에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

물론 선지자(미가)들이 나태한 제사장들을 공격한 때도 약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그들은, 각자 상호보완관계로 자기 사명을 제각각 성실히 수행했다.

 

바꾸어 말해서, 제사장은 선지자들이 월권한다고 그렇게 심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아무 출신 배경도 없는, 더군다나 천민들을... 하나님의 종, 선지자로 인정했다.

 

이들 선지자들의 출신들은 정말 다양했다; (오늘날 평신도처럼)

정치인(다니엘),

농부(엘리사, 밭 갈다가),

천민 목동(아모스, 1:1),

귀족출신 스바냐(히스기야 4대손 1:1)

제사장 출신 에스겔(1:3) .

 

그러나 많은 선지자들의 출신 배경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서민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 많은 선지자 평신도들이 있다.

그들이 제사장(목회자)과 더불어 힘써 사역에 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자신이 하나님의 종(선지자)임을 자각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신약시대 - 사도와 선지자

 

사도는 제도권의 주의 종이다.

예수님이 엄히 세우신 종교적 권세자이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도 사도와 더불어 선지자가 있었는데

누가 선지자들을 임직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 그의 영적 권세를 인정해서 사람들이 대접해준 호칭인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도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선지자로 통했다.(21:11, 46)

 

선지자 아가보(21:10), 세례 요한(14:5, 7:26), 유다와 실라(15:32)

그레데인 선지자(1:12), 사도 요한과 동역한 선지자들(22:9),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13:1, 바나바) ,

 

*(참고) 자칭 선지자(2:20)

민간에 일어난 거짓 선지자(벧후 2:1)

 

선지자도 하나님의 종이다

1) 너희는 사도들과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2:20)

 

신약의 교회는 사도들 위에만 세워지지 않았다.

사도선지자와 나란히 위에 세워졌다.

 

2)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16:16)

 

구약도 마찬가지였다.

구약도 율법(제사장)과 선지자의공동기반으로 유지되어 내려왔다.

 

3)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고전 14:37)

 

선지자는 임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거짓선지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이 글의 주제는, 오늘날 많은 평신도들이 <목회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그 논리가 비성경적 발상임을 성경에 근거해서 논박하는 것이다.

 

그들 목회자들은 주님의 부름 받은 풀타임 종이야!.....’

나는 목회자가 아니니까, 평신도니까.....크게 신경 안 써도 돼!’

나는 마음에 소명감이 있어도.... 평신도니까.... 대충 대충해도 되....!’

 

하나님은 두 증인을 사용하신다

구약에서의 제사장, 신약시대의 사도 - 하나님은 그들을 풀타임 종으로 부르셨다.

동시에 구약에서, 또한 신약에서 선지자 - 하나님이 그들도 으로 부르셨다.

 

오늘도 많은 평신도 사명자들이 있는데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명 의식이 투철하지 하다.

오직 안수 받은 목회자만 하나님의 종이라는데, 선지자도 하나님의 종이었다.

 

*이 점에 대해 과거부터 한국 교회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 글은 목회자의 권위에 평신도가 맞먹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평신도들이 스스로 자각하고, 엄연한 으로서의 자기 사명을 일깨우자는 것이다.

 

 

3. 오늘날 -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조화

 

CHURCH PARA-CHURCH 의 조화

PARA 는 헬라어로 주변의, 둘러싼이란 뜻이다.

PARA-CHURCH- '교회를 둘러싼 주변교회'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선교회가 조직되어져서 해외선교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을 때

교단선교회에 대해 약간의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교단은, 선교회가 교단의 치리와 통제에 복속되기를 원했을 것이고,

선교회는, 스스로 패러처치로 자처하면서, 그 목적은 교회를 돕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교단선교회가 서로 조화롭게(갈등) 연합해 나가자는 결론을 맺었다.

 

*과거 몇 백 년 전에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에 의해 항상 분리주의자로 낙인찍혔다.

2차 바티칸 공회(1962)에서 최초로, 개신교회를 형제교회’’로 인정해 준 것으로 안다.

 

그런 저런 연유로, 아직도 개신교회의 제도권 교회패러처치에 대해

천주교에 비해서는 대처에 더 유연한 것 같다. 상생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

 

 

4. 마치는 말

 

1. 조화와 병립

구약의 제사장들은, 선지자들을 비제도권이라고 법적으로 몰아세우기보다는

그 속에 영성을 보고,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면서 율법과 선지자로 병립했다.

 

신약의 사도들은, 선지자들이 족보 없다고 무시하지 않고

사도와 선지자의 터위에 교회를 세워나가려 했다.

 

제사장과 선지자는 조화를 이루어가야 하며

사도와 선지자도 조화를 이루어가야 하며

제도권과 비제도권도 조화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그것이 지난 수 천 년 동안 하나님의 사역 패턴pattern 이었다.

 

영력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써, 목회자의 권위와 차별성을 도에 지나치게 유지하려 한다면

그것은 종교개혁시대 이전으로 퇴보하는 것이며, 천주교회의 오랜 병폐였다.

 

2. 한국의 유교적 목회자관

외국에는 안수 받지 않은 많은 평신도(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활동하는데

한국에서는 유교적 권위주의 때문인지.... 그것이 비교적 어렵다.

그래서 평신도(선지자)로 부름 받은 종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제도권 목사가 되려고 한다.

 

그들은 신학을 배우겠다는 열망도 있었겠지만

<목사가 아니면, 해외선교도/캠퍼스전도도 할 수 없다>(잘못된) 사상,

그러니까 <목사가 아니면, 주의 종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세태> 때문에

대거 신학을 한 것은 아닐까....

 

외국 선교사들 중에는 안수 받은 평신도 선교사들도 많다.

그런데 한국 선교사들은 대부분 안수 받은 목사 선교사들이다.

 

3. 사명 받으면, 안수 안 받아도 - 하나님의 종이다.

오늘날 많은 평신도들은, 자기가 평신도이고, 목사가 아니라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엄중한 사명을 책임회피하고 있다.

 

당신이 마음에 뜨거운 사명을 받았으면, 비록 안수 받은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하나님의 종이다.

왜냐하면, /구약에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선지자로 활동했다.

기름부음을 받으면 하나님의 선지자였는데, 그것은 제도권이 아니라,

위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었다.

 

오늘날 의사, 법조인, 교사, 체육인, 예술가, 문필가, 방송인, 연예인, 실업가 등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부르시고 계신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신학을 하며 목사 안수를 받을까 갈등하며, 실제로 받는다.

*그러나 목사 안수를 받으면 - 하나님의 종이고

받지 않으면 - 하나님의 종이 아직 아니고 .... 그런 주장에 나는 반대한다.

 

자기 마음에 뜨거운 열정(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종(선지자)

으로 자기 스스로 자각하고,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영향력을 발휘하라!

평신도라서 안일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 사명을 날마다 자각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