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JWqhuR5tM3Q
◈칼을 든 천사 대상21:16, 고전9:16 *출처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대상21:16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이 쓰신 글인데 읽어보면 재미있고 의미심장합니다.
▲임금님이 가르쳐 준 성공의 비결
옛날에 어떤 젊은이가 임금을 찾아와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
임금님은 젊은이에게 잔에 포도주를 가득 채우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나서 도성을 한 바퀴 돌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잔의 포도주를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네 뒤를 따르는 병사가 네 목을 칼로 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청년은 초긴장 상태에 빠져 그 포도주 잔에 사력을 다해 집중하면서 도성을 돌았다.
무사히 다시 임금님 앞에 온 청년은 그 포도주 잔을 내려놓았다.
임금님이 물었다; 도성을 돌면서 무슨 소리를 들었느냐고.
청년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어서 임금님은 도성을 돌면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금님은 바로 무릎을 치면서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한 곳에 온전히 집중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하나님께 칼을 든 천사를 요청했다
시퍼런 칼을 든 천사가 내 뒤를 따라 다니고 있다.
칼을 잡은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그 눈은 곧 내리칠 기세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집중을 놓치는 순간, 내 머리는 땅바닥에 뒹굴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칼을 든 천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 천사가 내게 왔다.
칼을 든 천사는 나에게,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집중을 이루어 줄 것이다.
▲바울의 배수진(背水陣) - 죽여주세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
바울에게 닥칠 수 있는 이 ‘화’라는 것이 무엇일까.
복과 재앙(화)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의 주권인데
왜 바울이 무엄하게도 하나님께 화를 달라고 자신이 선포해 버린 것일까?
문맥상 ‘화’는 지옥의 저주, 생명책에서 이름이 삭제되는....기막힌 상황으로 보인다.
이것은 로마서에서도 나타난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혹시 문학적 기교로 ‘과장법’을 사용했다 하더라도(과장법적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어찌 스스럼없이 자기 목숨을 담보할 수 있을까.....
▲모세의 배수진 - 죽여주세요!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 32:32)
이것은 너무나 처절한 고백이다. 사명을 향한 몸부림이다.
이 처절함이 있었기에 바울도, 모세도 주님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다.
모세와 바울의 말을 묵상할수록 섬뜩하기만 하다. 거의 협박성 문구다.
사명을 위해 자기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저 영혼은 구해 주지 않으실 것이라면 차라리 제 영혼을 지옥불에 떨어뜨려 주십시오.
보통 자기 육신을 볼모로 협박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을 볼모로 협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의 배수진 - 칼을 든 천사를 보내주세요!
나는 하나님께 요청했다;
"하나님, 젊은이를 뒤따르는 병사의 칼이 없다면...,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지 않았다면....
포도주가 가득찬 잔을 성공적으로 운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죽기를 각오하겠습니다. 스트레스에 질려 죽어도 좋습니다.
제게 칼을 든 천사를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진실로 하나님에 대한 집중을, 사역에 대한 집중을,
사랑에 대한 집중을 놓쳐 버린다면 사정없이 제 목을 치도록 명령하십시오.
집중을 놓치는 순간,
저는 더 이상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자격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이 땅에서의 모든 일을 접고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천상의 뜨락을 거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찬양 중에 그 천사가 내게 임하는 것이 영의 눈으로 보였다.
그리고 처절할 정도로 사무치게, 전력을 다해 예배드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배 후에 이어지는 사역에서도 내가 보기에 내 자신이 가엾을 정도로
일과 하나님께, 그리고 사랑하는 일에 몰두했다.
나에게 있어 배수진은 ‘칼을 든 천사’이다. 내가 기도로 요청했으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보내주셔서 내 뒤를 따르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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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함부로 서원(헛맹세)하지 말 것을 경고하셨다.
그러나 결단하고 결심하는 것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
미국 사람들은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고 나면,
“나는 이번 예배 시간에 자신을 committed했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자신을 “위탁했다, 헌신했다, 헌신하기로 결단했다”는 뜻이다.
이런 아름다운 헌신의 결단이 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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