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을 망각했던 벨사살 단5:1~31 스크랩, 2000년도 경 설교
◑벨사살 왕의 마지막 잔치
주전 539년 10월, ‘바벨론 최후의 날’에 흥겨운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미 메대 바사의 군대는 바벨론 궁중을 포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니엘서 5장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5:1
적군이 쳐들어오면 전쟁 준비를 해야지 왜 잔치를 벌입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나의 왕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벨사살의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벨사살은 자기 나라를 수호하는 신들의 능력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믿습니다.
②고고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당시 바벨론 궁중의 성벽은 굉장히 견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벨사살에게는
<설마 누가 성벽을 넘어뜨릴 수 있겠는가?>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입니다.
③아마도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제 아무리 적군이 쳐들어와도
우리는 까딱없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벨사살은 그날 밤 굉장한 잔치를 배설하고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셨을 것입니다.
하필이면 유다가 망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지고 온 기구들을
잔칫상에 대령하게 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5:3~4
벨사살은 바벨론의 우상 신들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5:5
이것은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벨사살
다니엘은 벨사살 왕의 죄를 조목조목 정리하여 그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3가지로 분류됩니다.
▲1. 뻔히 알고도 범하는 죄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알고도... 5:22
‘그의 아들’에서 <그>는 느부갓네살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아들’은 히브리어로 ‘후손’과 같은 말입니다.
즉, 벨사살은 조상 느부갓네살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다가 징계를 받아
왕에서 쫓겨난 후 짐승처럼 울부짖는 정신병자가 되어 7년 동안 고생했던 일을
알고도 똑같은 범죄를 되풀이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조상의 실수가, 선배의 실수가 계속하여 답습되고 있습니다.
오늘 내게는 이렇게 <알고도 범하는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이 다니엘서를 지배하는 가장 중심되는 사상입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상입니다.
다니엘서 2장21절을 보십시오.
“그는(하나님은)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며
한 민족을 흥하게도 하시고, 쇠하게도 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통치자가 실세를 쥐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아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5장21절에서도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똑같은 사실을 다시 선포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
이것이 다니엘서의 위대한 역사 철학입니다.
이 사실을 느부갓네살은 얼마나 무서운 대가를 지불하면서 뼈아프게 배웠습니까?
7년간 미치광이처럼 들판을 기어 다니는,
하나님의 참담한 심판과 징계를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알고도 범한 죄이기 때문에 심판이 더욱 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22절).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더 커다란 범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배울 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2. 교만의 범죄
교만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범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1절에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묘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많은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에는 이 표현이 제일 많이 등장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다니엘은, 하나님 홀로 진실로 높으신 분이시며
그 누구도 그분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입니다.
본문 22절 이하를 다시 한번 보십시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22,23절).
자기 신격화, 이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다니엘은, 벨사살이 느부갓네살이 교만하다가 소처럼 풀을 먹던 역사를 보고서도
그 조상 느부갓네살과 똑같은 교만을 답습한 범죄상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3. 우상 숭배의 범죄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벨사살이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그릇을 가지고
야훼 하나님을 모독했던 행위의 배후에는
자기 조상을 비웃으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조상 느부갓네살은 이렇게 해서 야훼에게 굴복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만은, 아무도 나의 능력과 나의 영광을 초월할 수 없다”
자기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에까지도 자기를 높이려는
이 뿌리 깊은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벨사살의 모습을 보십시오.
◑벨사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야훼 하나님을 모독하고 우상을 찬양하던 바로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보았습니다”(5절).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막고 그분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고 있던 벨사살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하나님 자신의 극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무엇을 썼습니까? 그 내용이 24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24,25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전조(前兆)인 것 같은데
글자의 뜻을 통 알 수 없어서 답답하여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다니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을 해석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다니엘은 세월이 상당히 흘러서 80세는 족히 되었을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5장을 연구하면서
나이 80세가 되어서도 조금도 변함이 없는 순수함으로 하나님 앞에 섰던
다니엘의 모습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26절).
“당신이 얼마 동안 통치할 것이며 얼마 동안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한 나라와 문명의 연한(年限)을
정하신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27절).
“저울에 달아보니 당신은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표준으로 보았을 때
당신은 도저히 더 이상 왕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이것은 심판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베레스>의 복수형이 “우바르신”입니다. 즉, 이것은 바벨론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
메대와 바사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심판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동안에 벨사살 왕은
이미 초죽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의 최후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30,31절).
이것이 메대 바사가 일어나고 바벨론이 넘어지던 순간입니다.
벨사살이 열었던 잔치는 문자 그대로 멸망의 잔치였던 것입니다.
이 교만한 왕에게 멸망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서서히 오다가도, 어떤 때는 한순간에 다가옵니다.
“악인에게는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합니다”(잠 6:15).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영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무(無)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이래로 바벨론 제국의 최후는 성경에서,
인류 역사의 최후의 모델(계18장)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항상 체중계에 올라서서 자기 몸무게를 재듯이
주님도 항상 우리의 영적인 무게를 달아보고 계십니다...
................................
주1) ◑벨사상 왕의 역사성 단5:1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단5:1
위 본문에 등장하는 벨사살 왕은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이 벨사살 왕의 정체에 관해서 신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해 왔습니다.
논쟁의 발단은 일반 세속역사 책을 뒤져 보면
바벨론 역사 가운데 ‘벨사살’이란 이름을 가진 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벨사살 왕이 역사 속에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다니엘서 전체를 역사적 정확성이 결여된 책이라는 진단을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권위는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래 발견 때문입니다.
▲<나보니도스 왕과 그의 아들 벨사살을 위한 기도문> 발견
1854년 영국의 J. G. 테일러는 고고학자 팀을 이끌고
이라크 남부 지방에서 고고학 탐사를 하는 가운데
고대 바벨론어로 새겨진 글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나보니도스 왕과 그의 아들 벨사살을 위한 기도문>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느부갓네살 왕(바벨론의 창건자)이 죽은 후 3명의 왕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①첫째 왕은 메로다크 왕으로서 느부갓네살의 아들이었습니다.
메로다크는 2년 정도 통치하다가 느부갓네살 왕의 사위에 의해서 암살당합니다.
②느부갓네살 이후 두 번째 통치자는 네글리사 왕입니다.
이 사람은 4년쯤 통치를 하다가 물러났으며,
③네리글리사의 아들인 라바쉬말드크가 이어서 왕위에 등극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9개월밖에는 왕위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④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 네 번째 통치자,
그러니까 곧 바벨론의 마지막 통치자가 바로 나보니도스였습니다.
이 사람은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족끼리 복잡하게 얽힌 것이지요.
나보니도스가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한 것은,
자기도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합법적인 왕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정략적 이유에서였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벨사살이 바로 나보니도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1854년에 영국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서 비로소 증명되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일이 없는 벨사살에게
어떻게 왕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가 있느냐는 문제가 남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나보니도스의 통치 시기는 주전 556년부터 539년까지입니다.
주전 539년은 바로 바벨론 제국이 멸망한 해입니다.
나보니도스는 전쟁을 많이 한 왕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그의 마지막 10년 동안은 거의 매일같이 전쟁을 했습니다.
전쟁을 많이 하게 되니까 자연히 해외 원정을 많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해외에 나가서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왕은 도대체 누구에게 통치권을 위임했겠습니까? 아들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즉, 나보니도스 왕이 해외에 출정 가 있는 동안
실제적으로 바벨론을 통치했던 사람은 그의 아들 벨사살이었으므로
당연히 그를 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과거에 북한에 ‘위대하신 아바이’라는 김일성과 ‘친애하는 지도자’라는 김정일
두 사람이 통치자로 있는 것처럼, 당시 바벨론에도 통치자가 둘이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에 기록된 바벨론 제국의 멸망 직전에도 나보니도스 왕은
새롭게 일어나던 메대 바사 제국과 북아랍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패전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보리시파라는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이것은 그리이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의 증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메대 바사의 군대는 드디어 바벨론 왕궁에까지 쳐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이 다니엘서 5장 본문의 배경입니다.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증명하는 ‘셋째 치리자’
5:7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이 <셋째 치리자>라는 단어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보통의 경우, 벨사살 자기 다음에 <둘째 치리자>를 삼는다고 해야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셋째 치리자>일까요?
그것은 첫째 치리자가 나보니도스,
둘째가 자기 자신인 벨사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셋째 치리자’란 벨사살 자기 바로 아래 사람을 삼겠다는 말입니다.
단5:16절에도 ‘셋째 치리자’란 말이 재등장합니다.
‘너로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그래서 <나보니도스 왕과 그의 아들 벨사살을 위한 기도문>의 발견은
대단히 중요한 발견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세속 역사에 벨사살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던 사람들의 주장이 억지였음이 드러났고
성경의 위대한 권위와 정확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 이동원 목사님 설교문에서 발췌. 아래는 인터넷에서 펀 글
오랫동안 역사가들은 벨사살이 과연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가 하는 사실을 의심해 왔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여러 문헌에 의하면 바벨론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였고, 바벨론 역대 왕들 중에 벨사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있었다는 사실은 본 다니엘서 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벨사살이 역사적으로 실제 인물이었으며, 바벨론 제국 멸망 당시 그가 바벨론을 통치하였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분명히 증거되었다.
이에 이것을 간략하게 살펴 성경의 진정성을 깨닫고자 한다.
1. 벨사살의 역사성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
처음 벨사살이 가공(架空) 인물이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임을 확증 된 것은 1854년 한 영국 영사가 바벨론 왕 나보니두스(Nabonidus. B.C.555-539년) 가 옛날 바벨론 갈데아 우르 지역의 수호신인 ‘달의 신’ 에게 바치기 위해 우르(Ur) 에 세운 신전(神殿)의 폐허 속에서 몇 개의 조그만 점토 기둥들을 발굴함으로 부터였다.
그 기둥들에는 가로와 세로의 10cm 정도의 정방형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의 내용은 나보니두스와 그의 큰 아들의 건강과 장수를 신께 기원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벨론의 왕 곧 나 나보니두스가 당신께 죄를 짓지 않도록 해 주소서.
그리고 나의 장남이며, 사랑하는 아들인 ‘벨사살’ 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이 있게 해 주소서.”
한편 1854년 이후에 벨사살에 대한 바벨론의 문헌들이 더 발견 되었는데, 그 때마다 벨사살이 왕자 또는 왕의 아들로만 언급되었고, ‘왕’ 으로서는 확인 되지 않았다. 그러나 또 다른 비문에서 벨사살이 비록 법적으로 왕위를 계승 받지 못하였으나 그 부친 나보니투스와 바벨론의 공동 섭정을 하였음이 밝혀졌다.
즉 바벨론의 최고 신인 ‘벨’(Bel) 또는 ‘말둑’(Marduk)이라 불리우는 신(神)보다 다른 두 도시 하란과 우르의 수호신인 달의 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괴짜 나보니두스 왕은 B.C.555년에 등극한지 3년이 되는 때부터 실제 통치권을 자신의 아들에게 맡겨버리고 바벨론을 떠나 아라비아의 테이마(Teima) 라는 곳의 오아시스 주변에서 거주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그가 바사 왕 고레스 2세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빠져 그곳에서 은둔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본다.
한편 이러한 사실은 다니엘이 어떻게 바벨론 제국의 ‘셋째 치리 자’가 될수 있었는지도 설명해 준다. 즉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정식 왕이었기 때문에 그의 지위가 첫째이고, 벨사살 자신은 섭정 왕으로서의 둘째가는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다니엘에게 나라의 셋째가는 자리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단 5:16, 29절). 한편 바벨론 제국이 메대-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인 B.C.539년에 나보니두스가 바벨론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실제 통치권은 그의 아들 벨사살에게 그대로 맡겨두고 섭정 왕 자리에서 물러가게는 하지 않았다.
2. 의의
이상의 사실들을 통하여 우리는 본문에 기록된 벨사살 왕이 다니엘 저자의 상상력에서 나온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존힌 인물이었음을 살펴보았다. 비록 바벨론의 여러 문헌에서 벨사살이 법적인 왕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고고학 자료들은 그가 섭정 왕으로서의 바벨론 제국 멸망 당시 실제적인 통치자였음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에서 벨사살을 바벨론의 왕으로 칭한 것은 하등 이상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성경은 그 기록 의도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 주고자 함에 있지는 않지만, 역으로 그 사실성을 생각하게 될 때에도 결코 이스라엘의 민족을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경의 기록의 역사성은 성경이 여호와가 영감을 받은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정확 무오한 여호와의 말씀(딤후 3:16) 임을 다시 한 번 확증하는 것이다.
그랜드종합주석 다니엘 5장 pp110-112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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