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를 믿음으로 묶으라 마6:25~34 2001.04.29. 출처
무엇을 염려 합니까?
사람마다 염려하는 내용들이 좀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그 뿌리를 찾아 내려가 보면
예수님이 오늘 말씀에서 지적하신 것이 진리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 염려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생명의 안전과 건강! 이것이 우리 모두의
염려의 뿌리요 중심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목숨과 몸에 대한 특별한 염려를 오늘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좀 있기는 하겠죠
어떤 사람은 염려의 강도가 좀 높고
어떤 사람은 좀 약해서 그저 심하게 염려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염려를 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데
은근히 밑바닥에는 염려에 통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은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이 참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 그들 한 분 한 분을 좀 뜯어 보면
그렇게 믿음이 좋은 데도 염려를 전혀 하지 않고 한 생을 보낸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예를 들면 바울 같은 사람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그래서 자기의 교인들을 보고 아주 자신있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그리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구하라' 고 할 정도로
참 대단한 지도자였지만
막상 자기가 염려를 해야 될 상황에 부딪히니까 똑같더라고요
에바브로 디도라고 하는 자기의 제자가
자기가 수감되어 있는 로마 감옥에
방문을 왔다가 병이 들었어요
그래가지고 이거 소망이 없을 정도로 아주 아주 악화되었습니다
그럴 때 바울이 얼마나 근심을 했던지
나중에 그 에바브로 디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쾌유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마자 그는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에바브로 디도를 고쳐 주심으로 인해서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였도다' 빌2:27
그 말은, 나는 근심하고 또하고 근심하고 또하고 근심하고 또 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에바브로 디도를 고쳐 주심으로
근심을 하나하나 덜어주셨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믿음이 좋은 위대한 지도자도
근심에서 완전히 자유하지는 못하더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마6:25절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공감이 잘 안 가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마6:25
염려하지 말라 하시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금방 와서 닿지 않아요
어떻게 염려하지 않고 인생을 삽니까! 하는
오히려 우리의 마음에 반응이 더 큰 소리를 치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 염려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우리가 염려가 되기 때문에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합니다
염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긴장 합니다
염려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남보다도 더 열심히 뜁니다
그런 순기능도 있어요
그렇지만 염려를 이렇게 정당화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답지 못하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답지 못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 답지 못해요
그래서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거예요
뿐만 아니라 염려를 묶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리고 왜 염려를 안 해야 되는지의 이유도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쭈욱 읽어 보면
우선 먼저 우리가 발견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염려는 안 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 이유를 가지고 말씀하세요 염려는 안 할수록 더 좋다!
전혀 안 할 수는 없지만, 안 할수록 더 좋다는 거예요
▲1. 염려는 해로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참 중요한 교훈을 하셨어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못 섬긴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돈도 사랑하고 그러지는 못한다
하나님 사랑 하면 돈을 덜 사랑하게 되고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미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절대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의 마음을 양쪽으로 똑같이 주지는 못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선택하라 그것입니다
그래놓고 25절에 가서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글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해 놓고는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그게 어떻게 문맥이 앞뒤가 맞느냐? 하고 우리가 생각할지 모릅니다
여기에 아주 깊은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돈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면
드디어 염려에 종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돈에 마음 한 번 줘 보세요, 그러면 틀림없이 염려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되어 버려요
염려는 '배금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열병 입니다
돈을 숭상하는 자는 반드시 그 병에 걸립니다
얼마나 위험한 지 모릅니다 심하면 죽어요
잠언 17장 22절 '마음의 근심은 뼈를 썩히느니라'
여러분 뼈가 썩어 들어가고 뼈가 말라 들어가는 병이면 얼마나 치명적인 것입니까!
바로 우리가 근심을 하고 염려를 하면
그 염려와 근심이 우리를 그렇게 병들게 만든다 는 것입니다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 보면 말세가 되면
성도들이 빠질 수 있는 아주 무서운 악이 3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 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깊이 잠들도록 만들어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 조차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도록 만들 위험이 있는 악입니다
그 악이 뭔지 알아요?
첫째는 방탕, 둘째는 술 취하는 것, 세번째는 염려 라고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는 방탕은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우리는 방탕은 악이라고 믿어요
술 취하고 알코올 중독 되면 벌써 인간 다움을 이미 포기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려가 방탕과 맞먹는 악이라고 여러분 생각해 본 일이 있어요?
그만큼 염려는 해로운 거에요!
누구든지 돈에 마음이 빼앗기면
이 염려가 우리를 사로 잡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영과 육을 망칩니다 해로운 거에요
▲2. 두 번째로 염려는 무익하기 때문에 안 할 수록 좋아요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어요
27절에 유명한 말씀 있지 않습니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6:27
키 작은 사람에게 염려 주사를 놓는 다고 해서
한번에 한 자(약 30센티)나 자라는 걸 봤어요?
아무도 염려해서 키가 자라는 사람은 없어요
이 본문은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염려 한다고 해서 너희 생명을 한 자나 더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안 된다는 그 말입니다!
우리가 염려해 가지고 내 생명을 1~2년 연장할 수 있다면
염려만 잔뜩 하면 천년도 살 수 있겠네요
아무도 그거는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아요
이렇게 염려는 무익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염려를 재미있는 사실에다 비유를 했습니다
자동차에 앉아 가지고 기아를 딱 중립에 놓고
그 다음에 시동걸고 엑셀레이터 밟아대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세요
기아를 중립에 놓고 엑셀레이터를 밟아보세요
소리는 요란합니다 엔진을 막 돌아갑니다
그리고 기름은 펑펑 들어갑니다
그러나 차는 한 치도 안 움직여요
에너지만 소비합니다 소음만 요란합니다
염려가 뭐냐? 꼭 기아를 중립에 놓고 엑셀레이터 밟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사람만 요란 해요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모든 에너지만 소모되어 버려요
그러니까 무익한 겁니다 쓸모 없는 겁니다
그걸 왜 해야 됩니까!
▲3. 세번째로 <염려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안 할 수록 좋습니다>
어리석은 거에요
자 우리 34절 큰소리로 한 번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너무너무 유명한 말씀입니다
잘 보세요 내일이라는 것은 뭐에요? 아직 나에게 이르지 아니한 시간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내일입니다
아직 이르지도 않았고 내 것도 아닌 시간,
나를 놓고 걱정 한다는 것,
이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입니다
헨리 나우웬 여러분 잘 아시죠?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염려 한다는 건 뭐냐?
아직 내 앞에 오지도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뭔가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바꾸면
마음이 '혹시'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혹시'로 가득차 있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이런 '혹시'가 내 마음에 염려로 이제 자꾸 차오르기 시작하면
불안해지고 두려워 지고 의심이 많아지고 탐욕이 생기고 조급해지고
나중에는 우울해져 버려요
그래서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이와 같이 쓸데없는 염려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영적인 삶을 망가지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호흡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시고자 하는
성령의 발목을 잡아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비참해 질 수밖에 없잖아요
아직도 나에게 오지 않는 내일을 놓고 왜 그렇게 염려 해야 합니까?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 가운데서 유명한 詩句가 나 있습니다
이런 자만이 행복하리라 이런 자만이 행복하리라
'오늘을 내 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행복하리라'
오늘을 내 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행복하리라!
옳은 말이에요
염려는 오늘로부터 나의 행복을 앗아가는 강도 입니다
주어진 오늘도 제대로 살 줄 모르면서
내일을 끌어안고 씨름하며 염려한다는 것은 바보 짓이죠
여러분 스스로를 잘 돌아 보세요
이처럼 염려하는 것은 하지 아니할수록 좋아요
해로운 것이요, 쓸데없는 것이요, 무익한 것입니다
이런걸 왜 해야 됩니까
해롭고 쓸데 없고 무익한 염려를
오늘까지 끌어안고, 제 새끼처럼 그냥 끼고 앉아서 내놓지 않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은 내가 안하겠다
주님의 말씀이 옳다,
'주여 옳습니다
이 염려로부터 내가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주여 이 염려를 묶어서 꼼짝 못하게 해주세요' 하고 우리가 기도한다면
성령께서 시간이 우리를 도와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중요한 멧세지, 그 다음 메시지를 들으세요
염려를 묶어 놓을 수 있는 비결이 뭐냐? 이것입니다
우리가 염려로 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못해요
세상이 너무 험하기 때문에!
그러나 염려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묶어 놓을 수는 있어요
어떻게 하면 묶어 놓을 수 있느냐?
주님의 말씀이 오늘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비결은 <믿음> 이에요!
세 가지 믿음 이에요
세 가지의 믿음이라고 하는 쇠사슬로 우리 염려를 꽉 묶어놓고
꼼짝 못하도록 만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1. 첫째 믿음이 뭔지 압니까?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의 믿음> 이에요
예수님께서 염려하는 제자들을 보고 하시는 말씀,
'너희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백합화를 봐라 저 아름다움 백합화 누가 저렇게 옷을 잘 입혔느냐
하나님이 입히셨다'
그래놓고 여러분 30절 한번 보세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 보냐!'
공중의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
근데 그 하나님이 하물며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날짐승을 다 먹이고 키우신단 말이에요
그 전능하시고 부유하신 하나님이 날짐승도 저렇게 먹이고 키우시는데
'하물며 나일까 보냐,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이 믿음을 가지라는 그 말입니다
날짐승도 먹이시는 하나님, 들판에 있는 풀도 키우시는 하나님
그것에 비해서 너무너무 중요한 우리를 가만히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굽니까?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볼 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습3:17)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너무사랑 받는 자녀이기에, 우리에게 있는 모든 악과 죄와 모든 범죄를
예수의 십자가로 깨끗이 씻으시고 이제는 죄와 흠이 하나도 없는
거룩한 자기 자녀들 처럼 날마다 보시면서
그 머리칼도 다 헤아리시고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고
어디를 나나 동행 하시고 모든 기도를 귀담아 들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얼마나 소중한 존재 입니까!
공중의 새도 저렇게 먹이시는 하나님이
이렇게 소중한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어요?
아니다 그겁니다 절대 그럴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일까 보냐'
이 믿음 가지면 염려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2. 두번째로 <있어야 할 줄을 아노니라>의 믿음입니다
자 31절에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해놓고는 32절에 가서
'이런 것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할렐루야
'있어야 할 줄 아신다'고 하는 믿음!
하나님이 내 사정 다 아신는 이야기입니다
5장 45절 보면,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에게 비를 주시고 해를 주셔서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다 주신다고 그랬잖아요
우리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비록 이방인이라도, 악인이라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다 주신다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모르실리가 없잖아요
다 알고 계세요
그러므로 여러분 염려가 몰려오면
길에 나가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좀 보세요
그리고 마음으로 이렇게 외치세요
'하나님 저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참 건강하네요
좋은 자동차 타고 다니지 않아요
저들을 보세요, 예수 안 믿는 사람이에요 내가 알아요
그런데 좋은집에 살잖아요
하나님, 저런 사람에게도 무엇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시고 다 주셨는데
하나님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고 여러분이 스스로 한 번 장담해 보세요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한 거 다 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주신다고 믿습니다!' 하고 여러분 소리를 지르세요
그 믿음이 내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상 염려는 꼼짝 못 해요
그 믿음이 그 염려를 묶어 놓는 거예요
하나님은 다 아세요
우리 하나님 은 다 아세요
▲3. 또 세번째 믿음입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아>의 믿음입니다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는 믿음!
이거 참 좋은 믿음입니다 좋은 믿음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은 내가 구하지 아니해도 다 주신다는 말씀이에요
이거 얼마나 좋은 믿음 입니까
여러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말을
너무 어렵게 생각지 마세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게 뭡니까?
첫째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뭡니까?
우리가 이렇게 바쁜 세상에서도 시간 내서 주님 앞에 나와 경배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는 예배가 너무 소중한 줄 알고
모든 들판으로 나가고 싶은 유혹을 끊어버리고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이 생활 자체가, 행동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 뭡니까?
주기도문에 나오는 말씀대로
하나님이여 어떻게 하면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온 땅에 영광을 받으실 수 있습니까?
이거 관심을 갖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거예요
주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는 소원을 갖고 사는 게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영생을
우리가 누리도록 하신다는 그 아름다운 약속을 붙들고
그날의 청사진을 가슴에 품고 꿈을 꾸는 삶이
하나님의 나라는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한다'는 말을 여러분이 주의하세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되는거 아니에요, 노력해야 됩니다
훈련 해야 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 되는거 아니에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나갑니다 똑같은 생활이 반복됩니다만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의 태도는 달라요
조금이라도 좀 일찍 일어나서 아무리 바쁘고 쫓기지만
하나님의 말씀 펴놓고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내 스케줄은 이렇습니다 이 스케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사용해 주세요 하나님의 뜻에 나를 일치 시켜 주세요!' 하고
단 5~10분이라도 기도하고 일어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 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노력,
이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사와 우리의 관심사를 일치시키고
우리의 삶의 무게를 하나님의 나라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선 순위를 바로 정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항상 제일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제일 뒤에,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도 구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나의 젊음과 나의 인생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나라 걱정 하고, 나는 너희들 걱정하마!
내가 너희들 걱정하면 너희는 염려 안해도 돼!' 하시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문헌을 보면 그 초대교회 성도들 성도들이
별명처럼 자기 이름 앞에 붙이고 다니는 말이 있었습니다
'티테디오스' 라고 하는 말입니다
'염려에서 해방된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식합니다 가난합니다
그들의 삶에 무슨 인간적인 기쁨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예수 믿고 나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그들이 보고나서 부터는
그들의 가슴이 얼마나 은혜로 충만했는지요
한 생을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종사하는 모든 생업을 통해서
자기들이 몸 담고 있는 가정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로마가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전세계에 복음이 증거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헌신된 삶을 그들이 사니까
염려가 다 날아가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염려 에서 해방된 사람'
이것을 좀 자랑하고 싶어서 '디테디오스 베드로' '디테디오스 요한'
'디테디오스 도마' 하고 이름을 갖다 붙이고 다녔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어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무리 염려가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현실이 할지라도
디테디오스 옥한흠 얼마나 신나요!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디테디오스 OOO'
바로 그 거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이에요
예수님은 우리가 염려해서 자유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세계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믿음의 세계입니다 죠지 뮬러가 말한 것처럼
'믿음의 시작은 염려에 끝이요
염려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다'
그러므로 염려하느냐? 믿음이 죽습니다
믿음을 가지는가? 염려가 죽습니다!
▲정리하면, 첫째는 무엇입니까?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는 믿음이에요
두번째는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의 믿음,
세번째는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는 믿음이에요
집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세요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상당수는 교회의 오시면서
염려 한테 포로가 되어가지고 끌려 오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나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는 그렇게 돌아가면 안 돼요
여러분의 믿음으로 염려를 꽁꽁 묶고
그리고 질질 끌고 가세요
끌고 가서 집에 가서 저 뒤에 있는 창고에 집어넣어 버리세요 가두어 버리세요
자물쇠로 잠그세요
여러분의 이와 같은 변화가 안 일어나면 오늘 말씀들은 효과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믿음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런 담대한 믿음 주셔서
염려가 산더미 처럼 쌓여있고, 염려 없이는 하루를 살 수 없는 불안한 세상에 살지만
'디테디오스' 염려에서 해방된 사람으로 세상 앞에 우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기도하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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