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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의 교훈

LNCK 2020. 7. 3. 18:07

▣ 민수기의 교훈                                      민1:1, 고전10:4~12                                      인터넷 글 정리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지리적/연대적 구분

 

*출애굽기-출애굽해서 시나이반도 남단의 <시내 산까지의 여정>을 기록.

애굽에서 시내 산까지는 약 2달 소요됨.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에 그들이 시내광야에 이르러 (시내)산 앞에 장막을 침”(출 19:1-2)

 

*레위기- <시내 산 (앞)에서 약 2년을 머물렀다.> 여기서 모세는 율법을 받았음.

“(애굽을 떠난 지) 2년 2월 20일에 시내에서 출발했다”(민 10:11)

 

*민수기- <시내 산을 떠나 요단 동편 모압 땅까지 약 38년간의 여정을 기록.>

원래 시내 산에서 가데스바네아(가나안 남단)까지는 불과 열 하루 길(신 1:2)이지만,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 때문에 이들은 정탐한 40일을 1년씩 쳐서

40년을 광야에서 죽어 엎드러질 때까지 살게 된다.

 

*신명기-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의 소천 직전, 모세의 고별설교이다.

요단 건너편에서 40년 11월 1일에 신명기 설교가 이루어졌다(신 1:3)

 

▶서론

민수기는 광야 훈련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순례 여정의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원망과 불순종으로 일관했다.

결국 그들은 애굽을 떠난 지 2년 동안 계속 불순종과 원망으로 일관했고,

그것은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 때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 결과, 그들은 40일을 40년으로 환산되는 방황과 훈련의 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벌을 받는 38년 기간도 여전히 대체로 불순종적이었다.

(이런 계속된 불순종의 모습에서 오늘 나의 삶을 비추어보게 된다)

그들이 원망과 실패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자.

 

▶1. 고기 없음을 원망함(민 11장) ←1단계

예수님도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을 이기셨는데, 여기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람의 원초적 본능은 일단 <먹고사는 것>이다. 대개는 그것이 선결되어야 다음 일이 가능하다.

 

가라지 그리스도인(노미날 크리스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그 대가로 일단 먹고 살 것을 족히 주실 것을 바란다.

그것이 해결되어지지 않으면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일어나고, 큰 시험에 빠진다.

불신자들은 스스럼없이 이렇게 말한다; “너 밥도 못 챙겨주는 그런 하나님은 뭐하러 믿느냐?”

 

예수님도 이런 사람들이 생길 것을 미리 아시고, 가시떨기 밭과 같은 사람이 생길 것을 염려하셨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막 4:19)

 

이렇게 ‘먹고사는 것’(1단계 욕구)이 불만족해서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메추라기 떼를 하룻길 거리(약 20리)에 2규빗(약 1미터) 높이로,

한마디로 산더미처럼 보내주셨다(11:31).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그 고기가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큰 재앙으로 백성들을 치셨다(11:33).

‘하나님 너무 하신 것 아니신가? 왜 그러셨을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거나 감사하지 못 했다.

4백년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해방된 것만 해도 큰 은혜요, 애굽의 장자가 다 죽는데도 살은 것이 큰 기적이었다.

홍해 갈라짐은 말할 것도 없고, 곡식 한 포기 자라기 어려운 메마른 광야에서

수백만 명이 날마다 만나를 먹는 것도 기적이었다.

 

광야(半사막)에서 구름기둥 없으면 햇볕에 타서 죽고, 불기둥 없으면 밤에 추위로 죽는다.

그 가운데서도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의복이 헤어지지 않도록 날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데,

<9가지 은혜와 감사의 조건을 생각지 못하고, 1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노아의 홍수 때 모든 호흡하는 짐승들이 죽었는데,

용케도 방주 속에서 구원받은 어떤 두 마리의 짐승들이, 1년이 지나서 방주를 떠나 마른땅으로 내려오면서

이렇게 서로 말했다고 한다. “오직 비뿐인 여행, 지긋지긋하고 지루해서 혼났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받은 아홉 가지 은혜는 물에 새기듯 잊어버리고,

오늘 내게 부족한 한 가지 때문에 시험든다.

 

특히, 먹고살것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리라.

(이번 구정 기간에 쓸 돈이 풍족치 못하다고 원망했던 사람들은 회개합시다!)

 

그들이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벌을 받게 되었다.

 

▶2.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불평함(민 13-14장) ←2단계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그들은 그것에 만족할 줄 몰랐고, 도리어 그 땅을 악평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진노를 불러 일으켰는데,

결국 정탐꾼이 탐지한 40일을 40년으로 환산해서 방황하는 벌과,

그들이 그 동안 모두 죽어서 결국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 못 들어가는 징벌을 받게 된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 무엇인가? 그것은 -배우자, 자녀, 직업, 사역지(목회자의 경우)다.

자녀는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다(시 127:3).

 

기업을 ‘땅 개념’으로 볼 때, 우리의 직장과 사역지는 나의 기업이 된다.

배우자 역시 내가 취했다기 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볼 때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 된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 대해 감사와 만족이 없다.

도리어 불평하고 악담하고 남의 떡이 좋게 보인다.

그러다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꼴 난다. 하나님은 그 기업을 빼앗아 가실지도 모른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14:7-8)는

고백이 있어야겠다.

 

감사와 원망은 항상 반대된다. 원망을 하지 않는 길은

가만히 앉아서 원망을 꾹 참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사드리는 일이다.

 

▶3.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불평함(민 16-17장) ←3단계

사람이 먹고살것이 해결되고, 가정과 직장이 안정되면,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 나도 좀 높은 자리 하나만 얻게 해 주시오!

내가 저 사람보다 못난 것이 뭐 있습니까?”는 마음이다.

 

그래서 종종 분수에 지나쳐서 스스로 높인다(16:3), 이런 일을 위해 고라처럼 당을 지어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도전하기도 한다.

(고라Korah는 발음상 한국인Korean과 흡사하다. 러시아어 성경에 고라는 ‘카레이’인데,

그것은 한국인을 뜻하는 ‘카레이’와 같다.)

 

고로 Korean은 Korah처럼 당을 지어 반역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요한다(웃음).

 

보통의 경우 사람은 자기 직분에 만족치 못한다. 부목사는 당회장이 되고 싶어하고, 장로는 목사를,

안수집사는 장로가 되고 싶어한다. 남선교회에서 부회장은 회장을 바라고, 총무는 부회장을 바란다.

총재는 대통령을 바라고, 대통령은 중임을 바란다.

그래서 분쟁과 분란을 일으킨다면, 고라 자손 꼴 난다.

 

현재 내가 받은 직분에 만족할 줄 알자. 모든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롬 13:1).

내가 억지로 받으려고 하면 고라처럼 된다.

 

▶4. 세상에 안주하려는 욕망(민 22-25장) ←마지막 방심단계

이제 거의 광야 40년 연단의 기간이 끝나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맞은편 모압 땅에 도달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대망의 가나안이다.

이 ‘싯딤’은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낸 장소이다(수 2:1).

 

바로 거기서 상당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 거민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했다(민 25:1).

그 여자들이 우상에게 제사할 때 거기 동참했던 것이다.

 

40년이나 연단을 받았는데, 그것이 끝날 찰나,

다시 또 세상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다. 거저 세상에 안주하기를 원했다.

오늘도 ‘교회 다녀봐야 별 수 있나? 안 다녀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염병으로 2만4천명이 죽게 된다(25:9).

후에 바울은 이 사건을 두고서 “우리도 이와같이 간음하지 말자” (고전 10:8)고 촉구한다.

이 일 때문에 백성들은 하마터면 가나안 땅에 못들어가고  모압 땅에서 전멸될 뻔했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도 매력적인 일이 많다. 세상 재미 다 못 보고 사는 것은

(순간적으로) 바보같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발목 붙잡히면,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간다.

 

들여보내실 사람은 극심한 형벌로 회개케 하시고,

안 들여보내실 사람은 그렇게 즐기도록(정말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내버려두셨다가 지옥에 보내실 것이다.

 

▶도리어 줄어듦, 본전만 해도 다행.

민수기Number는 그 의미가 ‘숫자, 인구조사’를 뜻한다.

그래서 40년 전과 40년 후에 인구조사 기록이 나오는데, 40년 후에 오히려 전체적으로 약 2천명이 감소했다.

(민 1:46엔 603,550명 → 약 40년 후 민 26:51엔 601,730명)

 

민수기 1장에는 각 지파의 인구조사가 나오는데 르우벤 지파 등 12지파의 숫자는

각 지파마다 평균 4만 명 꼴이었다.

4백년 전 1명(르우벤)이, 4백년 종살이를 거치고 나서 4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렇게 왕성한 인구증가율을 나타내 보였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40년이나 지났는데도 인구가 도리어 줄어들었다.

아니 거의 본전만 된 것도 천만다행이었다. 잘못했으면 다 멸망당할 뻔했었다.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 계속 원망하고 불순종하면,

개교회(혹은 전체 교회)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모세의 훌륭한 지도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백성들의 반역은, 40년 후에 마이너스 성장이요,

그들 대부분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 우리 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수기의 백성들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신령한 음료를 마시고도 멸망 받음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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